제137화
137화
시청자와 팬들의 반응만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촬영을 마치고 온 날, 숙소에서 멤버들은 에르제를 마치 동물원의 동물 바라보듯이 신기하게 구경했던 것이다.
숙소로 오기 전에 이미 이윤에게 같은 일을 당했기 때문에 에르제는 다소곳하게 앉아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태현우는 에르제의 얼굴을 정신없이 살피며 말했다.
“아니, 숙소에서까지 메이크업을 하고 있는 건 아닐 거 아냐?”
“아까 은우 형 샤워하고 나오는 거 봤어여.”
졸지에 구경거리가 된 에르제가 안타깝다는 듯이 안단테를 바라보았다.
“그거 습관성 관음증 후군이야.”
“그런 증후군 없어여! 그리고 이상한 데서 띄어 말하지 마여.”
안단테가 발끈했으나, 슬프게도 이어지는 민주혁의 차분한 목소리에 묻혔다.
“그래도 얼굴이 아니라 분위기가 바뀐 거라서 괜히 뭐라 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 같은데?”
“나도 같은 생각이야.”
한 발 뒤에 떨어져 있던 윤치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전에 윤이 형도 나한테 그렇게 이야기하기도 했고. 그 부분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옆에 있던 태현우가 거들었다.
“왠지 팬들은 더 좋아할 것 같은데?”
“응? 왜여?”
안단테의 말에 태현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대답했다.
“은우가 맡은 게 뱀파이어잖아. 전에는 뭔가 좀 착해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훨씬 더 캐릭터에 잘 어울리는 거 같아. 특히 웃을 때.”
그 말에 에르제가 보란 듯이 웃음을 지어 주었다.
붉은 입술이 위로 말려 올라가면서 눈꼬리가 살짝 아래로 처졌다.
전에는 선하고 예쁜 배우 느낌의 미소였다면, 지금은 마치 먹잇감을 바라보는 듯한 강렬한 미소였다.
이번 FM의 곡 분위기와 딱 어울리는 듯했다.
“야……. 웃어 달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태현우가 황급히 얼굴을 뒤로 물렸다. 그러고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물었다.
“그나저나 밤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하루아침에 갑자기 사람이 왜 이렇게 변했어?”
“맞아여. 저도 그게 궁금했어여.”
둘뿐만이 아니라 윤치우와 민주혁도 얼른 말해 달라는 듯이 에르제를 재촉했다.
멤버들은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에르제의 맨 얼굴을 수도 없이 보아 왔기에 무언가가 확실히 달라졌다는 것을 바로 눈치챌 수 있었던 것이다.
“…….”
“그렇게 계속 웃고 있어도 안 돼. 그거 반칙이야. 안 돼, 돌아가.”
가만히 미소만 짓고 있었더니 태현우가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음…….’
에르제는 웃음기를 지우고 코끝을 손가락으로 긁적였다.
그러고는 곧 제이가 찾아왔던 순간을 떠올렸다.
― 피 냄새?
제이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혈석에서 흘러나오던 피를 모두 삼킨 에르제의 몸에서는 붉은빛이 폭사했다.
찰나였지만, 무대 위에서 붉은색 레이저를 사방으로 쏘아 대는 것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일어난 변화는 그리 작지 않았다.
로드의 힘을 사용하기에는 걸림돌이 되었던 인간의 육체, 즉 서은우의 몸이 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릇이 커진 것과는 달라.’
저번 축복과는 다르게, 육체가 뱀파이어처럼 바뀌었다는 게 맞는 표현일 듯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분위기가 바뀐 것도 아마 그래서겠지. 외부적으로도 뱀파이어와 가까워졌을 테니까.’
다만 같이 있었던 제이가 그 사실까지 눈치챘는지는 모르겠다. 그는 붉은빛이 나옴과 동시에 그대로 자리를 달아났으니까.
에르제는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다가 아직 자신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는 멤버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
에르제가 고개를 들어 그들과 시선을 맞췄다.
당연히 ‘내가 뱀파이어가 됐어요!’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이럴 때일수록 당당하고 뻔뻔하게 나가야 한다.
어차피 멤버들은 육체가 바뀌었다는 걸 알아채지는 못할 테니까.
‘내가 뱀파이어라는 걸 알고 있는 윤치우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생각한 에르제는 몸을 뒤로 기댔다.
그러고는 인터넷에서 보았던 변명거리를 떠올렸다.
“이런 걸 여섯 글자로 줄여서 표현하는 게 있더라고.”
“?”
“그런 게 있어? 뭔데?”
민주혁이 고개를 갸웃했다. 나머지 멤버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에르제는 당당하게 어깨를 펴고 대답했다.
“카메라 마사지.”
“……카메라 마사지로 갑자기 사람 분위기가 이렇게 바뀐다고? 없던 퇴폐미가 생겨?”
“그리고 그건 카메라로 비쳐지는 모습을 그렇게 얘기하는 거 아니야? 맨 얼굴이 아니라?”
“그거까진 잘 모르겠는데.”
어이없어하는 멤버들의 말에 에르제는 뻔뻔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나는 카메라 마사지 때문이라고 생각해. 다른 이유는 모르겠어.”
그냥 대놓고 모른다고 하는데, 뭐 어떻게 하겠는가.
“…….”
“본인도 모르는 것 같네.”
결국 저들끼리 결론을 내렸다. 태현우가 에르제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그래, 뭐 더 좋아진 거 아닌가? 성형했다고 말이 나올 정도도 아니고.”
“그건 그래.”
윤치우도 동의하면서, 곧 멤버들의 흥미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처음에는 좀 신기했지만, 결국 원인도 알아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곧 달아올랐던 열기가 가라앉고, 멤버들은 각자의 할 일을 위해 흩어졌다.
‘다행히 무사히 넘어갔나.’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가장 잘 아는 멤버들이 이렇게 넘어갈 정도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그럼 이제는 맘 편히 라하임 쪽을 신경 쓸 수 있겠어.’
에르제는 라하임이 적어 주었던 번호를 기억을 뒤져서 찾아냈다.
예상했던 것보다 시기는 좀 늦춰졌지만, 그만큼 준비는 착실히 했다.
그쪽에서 무슨 짓을 해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정도로.
혈석을 섭취했다는 사실이 조금 껄끄럽기는 해도 그 성능은 확실했으니 말이다.
이제는 거의 제약 없이 로드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
그동안 사용하지 못했던 술법도 마찬가지고.
‘세리나는 전투력이 약하니까 플랑만 데려가면 되겠지.’
에르제는 스마트폰을 들어 번호를 입력한 뒤 메시지를 보냈다.
[ Trick Or treat! 안녕하세요! 토트윈의 서은우입니다! ]
* * *
‘바람 좀 쐬자’가 모두 방영되고 난 이후.
음원 차트 순위에 또 한 번의 큰 변동이 일어났다.
며칠 전 ‘FM’이 세 개의 음원 사이트에서 차트 1위를 차지한 뒤로 ‘AM’이 3위, ‘On Air’가 4위까지 올랐다.
LAK의 ‘Sea Through’가 2위에 머무르고는 있었으나, 그 외의 곡들이 모두 밀려났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졌다.
그리고 이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바로 에르제였다.
예능 이후 ‘모닝 은우’라는 타이틀의 짤이 무수히 생산되어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또 무튜브에서는 영상으로도 만들어져 퍼져 나갔던 것이다.
그로 인해 유입되는 팬들과, 단순히 토트윈의 노래가 궁금해서 찾은 이들이 많아진 때문이었다.
덕분에 토트윈의 숙소에서는 아직 활동기 중임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소소한 파티가 열렸다.
술이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멤버별로 하나씩 먹고 싶은 것을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내일과 모레, 아무 스케줄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와……. 이게 얼마 만에 보는 진수성찬이야.”
태현우가 테이블 위에 놓인 배달 음식들을 보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장 대표가 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뭐 시켜 놓고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기는 한데, 먹고 나서는 다시 그만큼 운동하자.”
“네!!”
뭐든 어떠랴.
미세하게 늘어날 체중 감량을 내일의 자신에게 미루고 멤버들은 신나게 음식을 섭취했다.
에르제 또한 눈에 보이지도 않을 빠른 속도로 젓가락을 움직이며, 평소 먹어 보지 못했던 것들 위주로 집어 갔다.
치킨, 피자, 족발…….
게 눈 감추듯 사라지는 음식을 보며, 장 대표가 혀를 내둘렀다.
“천천히 먹어라. 안 없어진다.”
“누구가으 이브로 업서지거에오.”
“……그래, 방해해서 미안하다.”
장 대표가 헛웃음을 지었다가 이내 말을 이어 갔다.
“아무튼 짧은 시간에 3집 앨범까지 달려오느라 다들 고생이 많았다.”
장 대표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보통 아이돌이 신인으로 데뷔해 성패를 가르는 기준이 3년이라고 본다면, 벌써 3집을 내고 이 정도로 놀라운 성과를 낸다는 것은 정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운과 외부 조건이 따라 주지 않는다면 금방 묻혀 버리는 것이 이 바닥이었으니까.
몇 년 동안 무명이었다가 역주행으로 뜨는 것도 아주 극소수라 장 대표의 입장에서는 토트윈이 예뻐 보일 수밖에 없었다.
“팬들에게 늘 감사하고, 겸손함을 잃지 말고.”
장 대표가 이윤에 빙의해서 얘기하고 있으니, 오히려 이윤이 옆에서 말렸다.
“대표님, 애들 체하겠습니다.”
“아아, 그래. 말을 하다 보니 신이 나서.”
장 대표가 멋쩍게 웃으며 오른손을 펴 보였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파티는 계속 이어졌다.
장 대표와 이윤은 오래 있지 않고 바로 자리를 떠났으나, 멤버들끼리는 조금 더 오랫동안 웃고 떠들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LAK가 한 달가량 먼저 앨범을 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같은 달에 나와서 차트 순위를 밀어냈기에 다들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건배!!”
건배용 닭다리를 따로 남겨 둘 정도.
그렇게 밤 11시까지 떠들고 간단한 게임도 하면서 놀다 보니, 다들 체력이 떨어져서 하나둘씩 거실에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배부르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모든 음식을 먹어 치우던 에르제도 결국 항복 선언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방으로 들어가면서 정리를 해서 그런지 치울 게 많지는 않았다.
“여기 좀 닦아 줄래?”
“응.”
윤치우와 함께 완벽하게 청소를 마친 뒤, 에르제도 방 안으로 들어왔다.
가장 신나게 놀았던 태현우는 그 반동으로 인해 1시간 전에 들어왔음에도 이미 뻗어 있었다.
‘잘 때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네.’
에르제는 태현우의 몸 위로 이불을 덮어 주고는 반대편 침대에 걸터앉아 부른 배를 살살 문질렀다.
그러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대충 1시간 반 정도 남았나.’
약속 장소까지 가는 데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으니, 다른 멤버들이 잠에 든 이후 나가는 것은 문제없을 듯했다.
‘소화도 좀 시켜야 하고.’
그렇게 40분가량 인터넷으로 지구 세상 공부를 한 뒤.
에르제는 조용히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라하임이 기다리고 있을 장소로 가기 위해 날개를 활짝 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