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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36화 (136/307)
  • 제136화

    136화

    에르제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은 이전에 ‘다이 랜드’에서 얻었던 혈석이었다.

    여전히 혈석 안에서는 귀기 어린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이걸 먹는 게 맞나.’

    비명 소리로 인해 에르제의 표정이 굳어졌다.

    ‘굳이 따지면 먹을 수 있기는 한데.’

    에르제는 손바닥 위로 혈석을 데구르르 굴렸다.

    혈석은 일반 광물 덩어리가 아니었다. 이건 피로 이루어진, 일종의 결정체였다.

    에르제가 혹시 이걸 먹는 게 아닐까 생각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돌덩이를 먹는 게 아니라 피를 흡수하는 것이 될 테니까.

    하지만 꺼림칙한 기분 때문에 에르제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신이 먹으라고 했던 게 이 혈석이 확실하다면 주저하지 않고 먹겠지만, 만약 아니라고 한다면 라하임에게 주려던 계획이 틀어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지.’

    그렇게 에르제의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바깥의 소음도 차차 잦아들었다.

    찌르르.

    숲속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만이 주위의 고요를 깨뜨렸다.

    “…….”

    혈석을 주먹에 꼭 쥔 채 옆으로 누워서 고민하던 에르제는 결국 몸을 일으켰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는 없으니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직감을 믿자.’

    에르제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혈석을 입 가까이에 가져갔다.

    그런데 그 순간.

    파드득―.

    살짝 열려 있던 캠핑카의 창문 틈으로, 박쥐 한 마리가 몸을 비비적대고 들어왔다.

    “……!”

    그것이 제이라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에르제는 앞뒤 재지 않고 재빨리 혈석을 입안에 넣어 버렸다.

    ‘이 시간에 제이가 무슨 일이지?’

    뜬금없는 타이밍에 찾아왔기 때문에 에르제는 볼을 살짝 부풀린 채로 눈동자만 굴렸다.

    그러나 제이는 에르제가 입안에 무언가를 넣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밤을 새울 생각입니까? 안 자요?”

    그렇게 말하는 제이의 눈가에 아쉬운 빛이 스쳤다가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에르제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가 김지원의 기억을 읽었다는 건 알고 있을 텐데.’

    에르제는 입을 꾹 다문 채로 생각했다.

    ‘뱀파리스라는 사실을 들킨 뒤인데도 굳이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뭐지?’

    이제는 적대 관계가 되었기에 대하기 더 껄끄럽지 않나?

    게다가 생각하고 보니, 제이가 ‘바람 좀 쐬자’에 출연한 이유도 석연치가 않았다.

    이미 1군 아이돌이 된 LAK의 리더가 굳이 자신과 예능에 나올 이유가 있을까.

    제이 정도면 다른 예능도 제의가 많이 들어올 테고, 굳이 자신과 엮일 이유가 없었다.

    ‘바람 좀 쐬자’ 프로그램의 영향력이 그렇게 크게 미치는 것도 아니고…….

    토트윈의 서은우와 친하다는 사실이 제이에게는 그렇게까지 큰 이득이 되진 않다는 점도 그렇고.

    ‘그렇다는 건 지금 이렇게 둘만 있을 시간이 필요해서라는 소리인데.’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뚜렷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에르제는 제이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자기가 알아서 밝히겠지.’

    어차피 지금은 입안에 혈석이 있어서 자유롭게 대화하는 게 불편하기도 하고.

    “…….”

    “…….”

    제이는 에르제가 아무런 말이 없자, 허락도 없이 그의 앞에 놓여 있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

    “말이 없는 건 찾아온 용건을 밝히라는 겁니까?”

    제이가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다리를 꼬아 앉으며 한쪽 주머니를 허벅지로 가렸다.

    ‘뭐지?’

    뭔가 위화감이 들어서 그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제이가 헛기침을 하며 몸을 틀었다.

    “라하임은 만나 보셨습니까?”

    이제는 뱀파리스라는 사실을 숨길 생각도 없는지, 꽤나 당당하게 라하임에 대해서 물어왔다.

    “제가 라하임에게 팬사인회에 들어가는 방법을 알려 줬는데.”

    만났다고 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말을 듣고 보니 제이는 이미 알고 있는 모양이라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요.”

    제이는 그렇게 말하며 상체를 살짝 앞으로 숙였다.

    “혹시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습니까?”

    그 모습에 에르제는 반사적으로 몸을 뒤로 젖혔다. 그러고는 눈을 더욱 가늘게 떴다.

    ‘고작 이걸 묻겠다고…… 예능까지 나온 건가?’

    확실히 뭔가 이상하다.

    지금의 대화는 시간을 끌기 위해서라는 냄새가 강하게 났다.

    만약 시간을 끌기 위해 아무 말이나 꺼내고 있는 거라면.

    ‘주머니.’

    에르제의 시선이 제이가 손을 찔러 넣은 주머니에 고정되었다.

    뭔가를 작동시키기 위한 시간을 버는 건지, 아니면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 때를 기다리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

    에르제는 침대에 걸터앉은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레스터에게 당했을 때와는 다르다.

    그때는 일족인 그가 자신을 배신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방심했던 것이고, 지금은 명백히 적과 대치 중인 상황이니까.

    “!”

    곧 에르제가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제이가 입술을 살짝 깨물며 웃었다.

    “손님이 왔는데, 한 마디도 말을 안 하니 섭섭하네요.”

    불청객도 객이라고, 손님 대접을 해 줘야 하냐.

    그렇게 쏘아붙일까 생각하던 에르제는 순간 입안에서 느껴지는 공명에 멈칫했다.

    “……!”

    제이와 에르제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기다리고 있던 게 이거였나? 혈석을 공명시키는 것? 왜?

    순간 의문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졌지만, 해답을 찾을 시간이 없었다.

    볼 한쪽에 밀려 구석에 있던 혈석이 천천히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웁.’

    곧 비린 맛이 입안에 가득 고이고, 삼키지도 않았는데 피가 목 안쪽으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다.

    에르제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흐욱…….’

    평범한 피였다면 아무리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달콤하게 느껴졌을 텐데, 어떻게 된 일인지 티즐 고크드르늘보다 더 맛이 없었다. 세상의 끔찍한 것들만 모아 놓은 맛이었다.

    ‘토할…… 것 같아.’

    하지만 이대로 제이가 보는 앞에서 피를 쏟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에르제는 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새어 나오는 피를 꾸역꾸역 삼켜서 목 뒤로 넘겼다.

    그런 에르제를 바라보는 제이의 눈에는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피 냄새……?”

    분홍색 머리카락이 얼굴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졌다.

    “설마 그걸 입에 넣고 있었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화아아악―!!

    혈석을 모두 흡수한 에르제의 몸에서 붉은빛이 폭사하듯 터져 나갔다.

    * * *

    신채원 PD는 편집실에 앉아서 이번 ‘바람 좀 쐬자 – 서은우, 제이’ 편의 촬영분을 보면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자막만 잘 달면 되겠어.’

    연예계 전체 외모 순위에서 당당히 상위권에 이름을 올릴 두 사람이 출연해서 그런지, 둘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는 장면만으로도 분위기가 살았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티카타카도 재미있는 포인트가 많았고, 요리 대결은 약간 과열 양상을 띠어 꽤 흥미로운 그림이 되었다.

    신채원은 영상을 뒤로 넘기며 피식 웃었다.

    ‘하이라이트는 이거 두 갠가.’

    처음 것은 두 사람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특히나 제이가 기타를 치고 서은우가 노래를 부를 때는 원 테이크로 찍었던 촬영 분량 전부를 내보내도 될 것 같았다.

    카메라 뒤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촬영 팀 모두가 멍을 때리며 지켜봤을 정도였으니까.

    ‘나도 그랬고.’

    그녀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그다음 날 오전 촬영분으로 화면을 넘겼다.

    탁, 탁.

    오전 7시, 각각 캠핑카에서 나오는 두 사람의 모습이 담겨 있는 장면이었다.

    5초 뒤로 화면을 넘기자, 부스스한 머리를 하고 하품을 하는 서은우의 모습이 나왔다.

    그녀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이번 회차의 최고 명장면은 바로 이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편집 팀 직원도 같은 생각인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어떻게 자고 일어났는데, 사람이 더 화사해지는 걸까요?”

    “……그러게. 비법이라도 물어볼 걸 그랬나?”

    신채원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가 이내 팔짱을 끼며 생각했다.

    ‘근데…… 뭔가 분위기가 바뀐 것 같았단 말이지.’

    단순히 메이크업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가 아니었다.

    그냥 겉으로 느껴지는 분위기가 크게 달라진 듯했다.

    ‘하루 전만 해도 뭔가 선한 배우의 바이브였는데…… 갑자기 퇴폐미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신채원의 머릿속에 부스스한 머리 사이로 보였던 서은우의 느른한 눈매가 떠올랐다.

    ‘뭘까…….’

    그리고 ‘바람 좀 쐬자’ 프로가 TV에 방영되었을 때, 시청자들의 반응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은웈ㅋㅋㅋ ‘저는 다시 태어나도 아이돌이요.’ ㅋㅋㅋ 제이 눈으로 욕하는 것 같은뎈ㅋㅋㅋ

    ┖ 우리 제이는 욕 몰라요.

    ┖ ㄹㅇ TV 보다가 먹던 거 뱉어 냄.

    ┖ 으악, 더러워.

    ┖ 윗댓뭔뎈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갑분 요리 예능 된 거 겁나 웃기네.

    ┖ 그 와중에 괴식 아이돌 타이틀을 끝까지 지키는 은우 절대 놓지 않아.

    ┖ 아니, 왜 본인도 매워하고 있냐고. ㅠㅠㅠㅠ

    ┖ 저번에 티…… 뭐시기, 그거 했을 때도 멀쩡한 척했음. ㅋㅋㅋㅋ

    ― 둘이 선후배를 떠나서 진짜 친한가 봄. 서은우를 바라보는 우리 제이 눈에서 꿀 떨어진다. 거의 팬들 바라보는 수준.

    ― 여러분 제발 기타 치는 제이 좀 봐주세요. ㅠㅠㅠㅠ

    ┖ 손 진짜 예쁘다. 길고 하얗고…….

    ― 이번 편 둘이 기타 치고 노래 부르는 게 레전드 모먼트 아니에요? 저 부분만 따로 소장하고 싶다.

    ┖ 저도. ㅠ 은우 음색 미쳤음. 귀를 갉잙갉잙 하는 거 같다.

    ┖ 저 앞에 앉아서 라이브로 들었을 제작진이 넘 부럽다. 혹시 귀 파시면 연락 좀 주세요.

    ┖ 222222222

    ┖ 333333

    첫날 방송이 나갔을 때만 하더라도 시청자와 팬들의 반응은 무난했다.

    대부분 둘의 케미에 관한 이야기들이었고, 신채원의 예상대로 둘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에 대한 언급이 제일 많았다.

    그러나 다음 날이 되고, 에르제가 캠핑카에서 나올 때였다.

    ― ????

    ― 뭐지? 자고 일어난 사람 맞음?

    ┖ 제이도 제인데, 서은우는 갑자기 머리에 물음표 생기게 만드네.

    ―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은우 갑자기 색기 스탯 생긴 느낌이다?

    ┖ 그것도 F등급 이런 거 아니고, S등급으로 때려 박은 느낌인데;;

    ┖ 눈빛 미쳤음. 심정지 오는 줄.

    ┖ 뱀파이어라더니 진짜 뱀파이어가 된 거냐고!!

    ― 얼굴에 점 하나 찍고 다른 사람 된 그거 같음.

    그리고 그 밑으로 ‘바람 좀 쐬자’의 자막이 같이 떠올랐다가 스르륵 사라졌다.

    [ 여러분들 시선에 방해되니, 자막은 조용히 치워 드리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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