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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35화 (135/307)

제135화

135화

제이의 혈압이 아슬아슬한 수준까지 치솟는 순간을 제외하고는, Q&A 시간은 무난하게 흘러갔다.

“은우 씨는 제일 좋아하는 곡이 뭐예요?”

“저는 소고기요. 돼지고기랑 닭고기도 좋아하기는 하는데, 전에 ‘알바 몬스터’에서 고생했다고 소고기 구워 주셨을 때 진짜 맛있었어요. 입에서 살살 녹더라고요.”

신나서 대답하던 에르제가 문득 든 생각에 손을 들었다.

“아! 다른 예능 제목을 말하면 안 되나요?”

제작진 측에서는 괜찮다고 웃었고, 제이는 슬픈 얼굴로 말했다.

“고기 말고, 곡이요. ……음악.”

“아!”

에르제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저희 곡이요.”

“…….”

뭐……. 물론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두 사람(?)은 저녁 시간 전까지 분량은 알차게 뽑아냈다.

어느덧 저녁 6시를 훌쩍 넘어서 시간은 7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숲속이라 그런지 주변은 금세 어두워졌다.

두 출연자는 밤이 더 익숙해서 상관없었지만, 촬영 팀은 그렇지 못했다.

때문에 촬영 팀에서는 빠르게 조명을 켜서 시야를 확보하고, 두 사람 앞에 있던 장작에 불을 붙였다.

“…….”

덕분에 문득 옛 생각이 떠오른 에르제는 캠프파이어에 손을 가져다 댔다. 따뜻한 온기에 기분이 좋았다.

‘카테이아 대륙에 있을 때는 이게 일상이었는데.’

인간들 사이에 섞여 살아갈 때에는 박쥐로 변해 날아다닐 수는 없었기에 주요 이동 수단이 마차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도시와 도시 사이를 이동하다 보면 중간에 노숙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어두운 숲속을 밝히기 위해 모아 온 장작에 불을 붙이고 요리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있지.’

오랜만에 추억에 빠져 있던 에르제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자연스럽게 캠핑카에서 꺼내 온 것들을 손에 쥐었다.

“어, 할 줄 알아요?”

엉거주춤 일어나 있었던 제이는 예상외의 상황에 멈칫했다.

뚝딱뚝딱 일사천리로 일을 진행하는 에르제로 인해 당황한 모습이었다.

“어……!”

어느덧 둘 앞에는 두 개의 요리 세트가 완성되어 있었다.

실제로 요리를 즐겨 하던 제이는 놀란 얼굴로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진짜로 요리 좋아하는 거였어요?”

“네.”

“……하긴, 잘하는 거랑 좋아하는 건 다르니까.”

왜 맘대로 납득하고 있는데.

에르제가 입술을 비죽 내밀자, 제이가 능숙하게 프라이팬을 손에서 빙글빙글 돌렸다.

“서로 해 주고 싶은 요리를 하는 거였죠?”

“네.”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에르제는 제작진이 준비해 둔 재료들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재료가 엄청 많네요. 원래 캠핑 오면 이렇게 많이 해서 먹나요?”

“찌개도 하고, 고기도 구워 먹고……. 각자 취향 나름이려나요? 은우 씨가 좋아하는 소고기도 있네요.”

어깨를 위로 올려 보인 제이는 느른하게 재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꽤나 신중하게 고민하는 것이 예상외로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려는 듯했다.

‘나도 실력 발휘 좀 해 볼까.’

에르제는 소매를 걷어붙였다.

티즐 고크드르늘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은 장난 반, 협박 반이었고, 에르제에게는 꼭 벗어야 할 오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괴식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을 오늘에야말로 떨쳐 내리라.

에르제는 바로 옆에서 요리를 시작하는 제이를 지나쳐, 신중하게 요리 재료를 골랐다.

‘닭다리 살, 고구마, 깻잎…….’

구상하고 있는 요리에 들어갈 재료들이 에르제에게 간택을 받아서 차곡차곡 쌓여 갔다.

“……뭘 하려고?”

옆에서 흘깃 확인한 제이가 중얼거렸으나, 이미 에르제의 집중력은 최고조의 상태.

주변의 소음이 차단되면서, 에르제의 눈은 오로지 닭고기 하나에 고정되었다.

물로 닭고기를 씻어 내는 동시에 지방과 껍질을 제거한 뒤, 이번에는 양념장을 만들기 위해 에르제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

“…….”

본래의 기획 의도는 이게 아니었을 텐데.

어느덧 둘 사이에 발동된 경쟁심이 극한으로 치달으며 ‘힐링’ 방송이 본격 요리 방송으로 변질됐다.

‘……PD님, 이거 맞아요?’

‘일단 찍어. 그림은 확실하네.’

‘테이블 큰 거로 바꿀게요…….’

작가와 PD가 중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카메라에는 화려하게 치솟는 불길의 모습이 담겼다.

그렇게 둘 사이의 치열한 요리 대결이 끝나고 난 뒤.

에르제와 제이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둘의 요리가 제작진이 어디선가 공수해 온 긴 테이블에 차례대로 놓였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제이였다.

“식전에 먹을 로메인 샐러드와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그리고 소고기 스테이크와 마무리로 먹을 스프까지 준비해 봤어요.”

오랜 시간을 들여 만든, 자신의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투였다.

물론 에르제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닭갈비와 그에 곁들여 먹을 소시지 꼬치, 그리고 매운맛을 더해 줄 제이버 블로그에 나온 고추장찌개입니다.”

그가 지구의 요리를 공부하기 위해 주로 참조한 것은 제이버 블로그였기에 에르제는 출처까지 밝혀 주는 친절함을 잊지 않았다.

“삐 처리가 하나 늘었군요.”

제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에르제와 자리를 바꾸어 테이블 앞에 앉았다.

원래는 라면이나 끓일 수 있다면 다행인 코너가 시청자들의 야식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

에르제는 제이가 만든 음식 앞에 앉아서 손을 이용해 향기를 코 쪽으로 끌어당겼다.

‘냄새는 괜찮은 것 같은데.’

제이는 적이었지만, 적이 만든 요리까지 미워할 이유는 없었다. 자신은 넓은 포용력을 갖춘 뱀파이어 로드니까.

에르제는 일단 로 뭐시기 샐러드부터 시식했다.

아삭거리는 식감과 발사믹 소스가 어우러져 상큼한 맛을 자아냈다.

‘합격.’

아이돌 채소 전문가인 자신의 입맛에 맞았다는 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은 점수를 줄 만했다.

제이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는 아직 자신의 음식을 먹지 않은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

제이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자 에르제는 빠르게 풀어졌던 표정을 다잡았다.

그러나 몸은 솔직한 법. 어느덧 포크를 집어 든 에르제는 이번에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돌돌 말아 입속에 넣었다.

“!!”

얼굴에 남아 있던 느낌표가 한 개 더 늘었다.

‘맛있다.’

지구에 와서 파스타란 음식을 처음 먹어 본 소감이었다. 알리오 올리오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기름과 마늘 향이 적절히 배합되어 맛이 일품이었다.

대망의 스테이크 또한 마찬가지였다.

에르제가 뱀파이어임을 배려해 레어로 조리된 스테이크는 질긴 맛 하나 없이 입안에서 살살 녹아드는 착각마저 불러일으켰다.

“나중에 먹방 BJ 해도 되겠는데요?”

제이가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에르제의 앞에 놓여 있던 많은 양의 음식이 실시간으로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짜 잘 먹네.”

혀를 내두르던 제이는 먹방을 찍고 있는 에르제 덕분에 배가 고파졌는지, 그 또한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잠시 고민하던 제이는 조심스럽게 양념이 잘 발린 닭갈비를 골라서 입으로 가져갔다.

‘이제 내 거 먹는구나.’

에르제는 파스타를 호로록 빨아들인 뒤에 닭갈비를 음미하는 제이를 바라보았다.

“읍.”

그리고 곧 제이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씹지도 삼키지도 못하고.

제이는 새빨간 얼굴로 물컵에 물을 담아 그대로 입안에 때려 부었다.

“으……. 어으…….”

“?”

너무 맛있어서 충격을 받았나?

에르제가 고개를 갸웃하고 있으니, 입술에 잔떨림을 만들던 제이가 본인의 이마를 감싸 쥐었다.

“제가…… 정말 매운 거 잘 먹거든요. 팬분들도 아세요. 맵다고 유명한 떡볶이도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수준인데…….”

제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에르제가 만든 닭갈비를 이쪽으로 스윽 밀었다.

“완성하고 안 드셔 보셨어요?”

에르제가 고개를 저었다.

“……독을 넣지는 않았는데요.”

제이가 한번 먹어 보라는 듯 손짓을 했다.

본인이 먹을 것을 양보하다니, 음식의 소중함을 모르는 아이돌이 분명했다.

1군 아이돌이 되면, 저렇게 초연해질 수 있는 걸까.

잠깐 다른 생각을 하던 에르제는 이내 젓가락을 들어 자신의 요리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오물오물.

자신이 만든 매콤한 양념장과 알싸한 깻잎의 향기, 짠맛을 잡아 주는 고구마의 조화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은가.

너무 맛있어서 눈물까지 났다.

“너무 맛이써허요.”

“…….”

제이가 눈물을 닦는 에르제를 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 본인의 모습이 별로 설득력 없는 건 알죠?”

“무슨 소리힌지 모르겠는데혀.”

에르제는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 * *

식사 이후, 둘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것을 끝으로, 저녁 촬영은 종료되었다.

각자 준비되어 있던 캠핑카로 들어가서 잠을 자기로 했는데, 캠핑카 안에 카메라는 설치하지 않았다고 했다.

에르제는 간단하게 씻은 후, 배정받은 캠핑카에 들어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숙소에 있는 침대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푹신푹신한 매트리스가 깔려 있었다.

잠시 그 위에서 콩콩거리던 에르제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찝찝하네.’

청결을 중요시하는 뱀파이어였기에 샤워를 할 수 없는 이곳의 환경이 아쉬웠기 때문이었다.

‘냄새나는 건 아니겠지.’

팔을 들어 냄새를 맡던 에르제는 문득 든 생각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그걸 잊고 있었네.’

축복.

아니, 축복이라고 하기는 좀 그런가.

에르제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생각했다.

일전에 혹시나 싶어 숙소에서 기도를 했던 순간이었다.

멤버들에게 동시에 정산금이 들어오면서 자신에게도 목소리가 들려왔다.

[ 먹어라. ]

딱 3글자밖에 말하지 않았는데, 그 목소리에 잡음이 얼마나 끼어 있었던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을 정도였다.

에르제는 손으로 매트리스를 쓸었다.

‘도대체 뭘 먹으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네.’

최근 계속 이것에 대해 생각했지만,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라하임이 만나 보라고 한 녀석을 만나기 전에 힘을 키워 둬야 하는데…….’

그리고 분명 먹으라는 것은 그것과 관련이 있을 터.

‘자세히 알려 주면 어디 덧나나.’

에르제가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었다.

‘도대체 뭘까.’

뭘 먹으라고 하는 걸까.

오늘 진수성찬을 먹었음에도 딱히 변화는 없었으니, 음식은 아닐 듯하지만……. 그 외에 먹을 수 있는 게 또 있나?

먹구름이라도 낀 듯 머릿속이 답답했다.

“하아.”

에르제는 양팔을 넓게 벌리고 그대로 매트리스 위에 누웠다.

그러고는 베개를 집어 품 안에 끌어당기고는 좌우로 몸을 굴렸다.

답답한 상황을 어떻게든 풀어 보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굴러다녔을까.

툭―.

그 때문에 주머니에 넣어 둔 것이 매트리스 위로 빠져나왔다.

‘……어.’

이를 발견한 에르제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에르제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집어서 눈앞에 들어 올렸다.

‘혹시…… 이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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