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32화 (132/307)

제132화

132화

길게 뻗은 도로 위 양옆은 넓은 벌판이었다. 드문드문 세워진 나무와 도로 한쪽에 놓인 스포츠카가 시선을 잡아당겼다.

― Hop on my car―!

태현우가 센터로 치고 나오며, 이어서 허공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툭 쳤다.

― white cloud, sky is clear.

아무 생각 하지 않고

멀리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날.

Is it all right?

If I call in to see – you.

태현우의 장난기 어린 웃음과 함께 머리카락이 살랑거렸다.

그리고 그의 양옆으로 민주혁과 안단테가 한 발을 앞으로 쭉 뻗었다.

둘의 상체가 하체보다 조금 더 늦게 따라오면서, 품이 조금 넓은 청재킷과 셔츠가 바람에 날리듯 팔락였다.

그러고는 운전대를 꺾듯이 좌우로 빙글 돌며 갈라지고 그 사이로 윤치우가 한쪽 주머니에 손을 꽂고, 긴 다리로 저벅저벅 걸어 나왔다.

― I’m on your car―.

Bright sun, sky is clear.

머리가 복잡해서

멀리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날.

Is it okay?

If I go further from - past.

전형적인 댄스팝에 로파이 힙합을 섞은 안단테의 작곡 센스가 돋보였다.

자칫 신나기만 느껴질 수 있는 분위기에 간결하고도 몽환적인 감성을 더했다.

상실 이후 떠나는 여행.

AM과 FM, 두 곡과의 유기성과 여행이라는 단어. 그 어떠한 것도 놓치지 않은 장르의 결합이었다.

그렇게 벌스의 끝과 동시에, 서은우가 앞으로 나오면서 나머지 멤버들이 좌우로 날개를 펴듯 자리를 잡았다.

― Turn on radio.

너무 늦지 않게

Umm Umm

깊이 들이마셨던 숨을

Now we are on trip.

얼룩이 진 슬픔을 닦아 내.

Whip out with clear sky.

We are

On Air.

모든 멤버가 오른발을 들었다가 교차시켜 뻗고,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빙글빙글 돌았다.

거만하게 휘적거리며 도로 위를 걷다가 또 한 번씩 입꼬리를 올려 화사하게 웃었다.

몸을 움직일 때마다 펄럭거리는 겉옷에 바람이 불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 We are

On Air

Umm Umm

탁, 타닥, 탁!

박자에 맞춰 마치 한 몸처럼 발을 구르던 토트윈이 종횡무진 발을 누빌 때마다 이를 지켜보는 대학생의 마음을 몽글거리게 만들었다.

‘여행 가고 싶다.’

대학생은 자신도 모르게 바닷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차 안을 상상했다.

당장에라도 친구들한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 그녀는 뮤비에 시선을 고정했다.

공간을 어쩜 이렇게 넓고 알차게 쓰는 건지.

― Turn On, On radio.

And On, On Air.

Hop On, On car.

어느덧 뮤비는 끝을 향해 달렸다.

― Umm Umm

허밍을 하는 서은우의 목소리가 산들바람이 되어 귓가를 간질였다.

치지직, 하는 라디오 소리와 함께 음악의 볼륨이 서서히 줄어들었다.

― Bright sun, sky is clear.

머리가 복잡해서

멀리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날.

Is it okay?

If I go further from - past.

거의 무반주나 다름없는 상태로 윤치우의 목소리가 툭툭 악보 위로 찍혔다.

― On Air

그 가사를 마지막으로 모든 멤버들이 차로 모여서 각자 위치에 털썩 앉는 것으로 뮤비는 끝이 났다.

‘진짜 귀엽고 사랑스럽고 춤도 잘 추고 노래도 잘하고……!!’

토트윈을 향한 온갖 칭찬을 쏟아붓던 그녀는, 이내 혀를 내두르며 생각했다.

‘이거 무대는 안 할 생각인가? 이것도 직캠 퍼지면…… 진짜 끝나겠는데.’

물론 LAK의 이번 앨범도 ‘역시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훌륭하기는 했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토트윈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여론도 꽤 있었다.

하지만 토트윈은 보란 듯이 콘셉트가 겹치지 않는 AM과 FM을 들고 나와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켰고.

그것도 모자라서 ‘여행’이라는 키워드를 성공적으로 ‘On Air’라는 곡에 입혀 냈다.

이별 노래와 여행 분위기의 노래.

둘은 분명 따로따로 나온 곡들이고 융화되기 어려울 듯 보였으나, 토트윈은 라디오라는 소재를 내세워 이를 해결했다.

‘그래서 앨범 제목이 ‘radio trip’인 거지.’

여행을 떠나며 듣는 라디오. 토트윈은 앨범 제목을 방패로 삼아 슬픈 노래와 신나는 노래 모두를 한 앨범에 조화롭게 담아 낸 것이다.

여행 가면서 듣는 노래에 장르가 뭔 상관이겠는가?

‘여행 떠난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른 거지.’

대학생은 조금 전의 뮤비 때문에 또 한 번 소름이 돋은 팔을 쓸어내리며, 조만간 여행을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 * *

팬사인회가 끝난 이후 토트윈의 음원 순위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그 첫 번째가 3집 앨범 모든 곡의 차트 인이었다.

― ㅁㅊ 초동 기간도 안 지났는데, 실환가?

⌎ 이번에 ㄹㅇ 100만 장 뚫을 듯.

⌎ 100만 장이 뉘 집 개 이름이냐? 이브들 X나 쉽게 입에 담넼ㅋㅋㅋ

― 하, ㅠㅠ 토트윈 처음으로 앨범 전 수록곡 차트 인 아니냐. 왜 내가 눈물 날 거 같지. ㅜㅜㅜ

⌎ 22222

⌎ 33 이미 티슈 한 통 다 씀.

― LAK 타이틀곡 1위, D.D. 타이틀곡 지금 2위, 그 뒤로 10위 안에 LAK곡 총 3곡;; 토트윈이 낄 자리가 있나?

⌎ 이상 심장 약한 라쿤의 심경이었습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토트윈 FM 지금 6위까지 수직 상승했는뎈ㅋㅋㅋ 이미 들어가 있죠?

팬사인회가 끝난 이후, 단 하루 만에 일어난 변화였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이 되었을 때, 또 한 번 차트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 왘ㅋㅋㅋ 토트윈 FM 3위, AM 10위!

⌎ 심지어 앨범 나왔을 때 80위이던 On Air 지금 21위임. ㅋㅋㅋㅋ

⌎ 기세 미쳤다;; 갱신될 때마다 순위 바뀌겠는데?

⌎ 그리고 저번에 ‘Dreams on stage’에서 토트윈이 부른 더빙 노래도 20위권에 있음.

⌎ 아, 맞네. ㄷㄷ 그것도 포함시키자.

앨범 전 수록곡 차트 인 그리고 순식간에 타이틀곡 모두 10위권 안에 진입한 것이다.

“이 정도면 On Air도 10위 안에 충분히 들어가겠다.”

윤치우가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며 말했고, 민주혁이 그 말을 받았다.

“우리 곡이 10위권 안에 들어가면, 아마…… LAK 곡이 거의 남아 있을 텐데 진짜 정면 승부네.”

그의 말에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흠…….’

에르제는 그 말에 조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만약 김지원을 뱀파리스 쪽에 뺏기지만 않았다면, LAK의 상승세에 브레이크를 조금이라도 걸 수 있었을 텐데.

하필 링크가 걸려 있어서 뱀파리스 쪽에 정보가 새어 나갔다.

‘……그럼 그걸 본 누군가가 제이한테도 말을 해 줬을 텐데.’

만약 제이보다 지위가 높은 뱀파리스라면, 그걸 가지고 딜을 걸었을지도 모른다.

에르제는 라하임이 주고 갔던 메모지를 떠올리며 고개를 천장 쪽으로 들었다.

‘뭐가 됐든, 그 누군가를 만나 보면 알겠지.’

그리고 그 전에 착실히 준비를 해 두는 편이 좋을 듯했다.

혹시나 라하임이 착각을 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카테이아 대륙 시절의 힘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걸로 착각하고 있는 거라면.’

그렇기에 만나도 괜찮을 거라고 여겼다면,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었다.

‘뱀파리스의 세력도 만만치 않아.’

그들의 지배하에 놓인 라하임이 과연 자의로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에르제는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가만히 팔짱을 꼈다.

‘……뱀파이어로서의 힘을 더 늘려야 하는데.’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흡혈 말고는 뚜렷한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흡혈 욕구는 축복에 의해 완전히 제로가 된 상태.

게다가 단기간의 힘을 얻으려 하다가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도 꽤 많다.

‘흡혈은 그리 좋은 생각이 아냐.’

에르제는 입안에서 혀로 송곳니를 핥았다. 볼이 씰룩 움직였다.

‘일단 다행인 건 만나는 시일을 내가 정할 수 있다는 건데…….’

준비할 시간에 여유가 생긴 것은 분명하나, 그렇다고 시간이 무한한 것은 아니었다.

시간을 너무 끈다 싶으면, 저쪽에서 거절이라고 판단하고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

결국 에르제는 다른 방법을 떠올리고는 정말 싫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흡혈하는 게 무리라면, 축복밖에 기댈 곳이 없는 건가?’

하지만 최근에도 몇 번 신을 불러 보았으나 답이 없었는데, 과연 축복을 또 내려 줄지.

입술을 잘근잘근 씹던 에르제는 에라 모르겠다, 한숨을 내쉬며 팔짱을 풀었다.

‘일단 해 보는 수밖에 없나.’

에르제는 갑자기 숙소에서 무릎을 꿇고 양손을 꼭 맞잡았다.

“?”

“뭐 해? 우리 앨범 잘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거야?”

멤버들이 그런 에르제에게 물었으나, 그는 대답하지 않고 잡념을 떨치고 집중했다.

그리고 축복을 받았던 순간을 떠올렸다.

‘두 번 다 내가 원해서 받지 않았어.’

어쩌면 그래서 응답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풀을 먹어도 고기 맛이 나는 축복을 달라고 한 건 그저 자신의 요청이었을 뿐이니까. 그래서 들어주지 않은 게 아닐까.

‘…….’

그래서 그냥 머리를 비우고 인간들이 기도를 하듯 기도 자체에 집중했다.

처음 축복을 받았을 때처럼.

가만히, 아무 말 없이.

그때도 스튜디오에서 시키는 대로 그저 기도하는 자세만 취하지 않았던가.

“…….”

“은우야?”

“……서은우 씨, 계십니까~?”

주변에서 잠깐의 소란이 일었으나.

“…….”

“…….”

곧 멤버들도 괜히 에르제의 분위기에 압도되어서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옷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지이이잉―!

지잉―!

에르제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스마트폰에 진동이 울렸다.

코코아톡을 확인한 민주혁이 현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스마트폰과 에르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뭐야. 설마 정산금 보내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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