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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28화 (128/307)
  • 제128화

    128화

    입구를 막고 있는 돌은 에르제의 키보다 조금 더 컸다.

    때문에 돌 뒤에 아이들이 있다면 다칠 수도 있어서 에르제는 이곳에 내려왔을 때와 같은 방법을 이용했다.

    파삭―.

    구멍을 내고 금이 간 부분 위주로 넓혀 가니, 곧 에르제가 몸을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통로가 만들어졌다.

    ‘두께가 두껍지는 않아서 다행이네.’

    에르제는 안으로 들어간 이후, 고개를 돌려서 혈향이 나는 곳을 찾았다.

    그러나 냄새보다 소리가 먼저 들렸다.

    귀를 기울여야 들릴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괜찮아. 오늘은 안…… 올 거야.”

    “……정말?”

    “응. 정말로.”

    “……형아, 나 배고파.”

    “……기다려 봐.”

    그 말을 끝으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배고프다는 말에 뭐라도 찾아보려고 움직이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살아 있는 아이들이 있구나.’

    에르제는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목소리가 들린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심하게 절뚝거리던 다리도 조금씩 회복되는 모양인지, 이제는 거의 정상적으로 걷는 것과 다름없어 보였다.

    그렇게 10m가량 안쪽으로 더 들어가자, 조그만 어린아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먹을 것을 찾으러 간 아이는 벌써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후우.”

    호흡을 가다듬은 에르제는 조심스럽게 아이에게 접근해 말을 걸었다.

    “안녕?”

    “……!!”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앙증맞은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나, 나쁜…… 나쁜 아저씨야!!”

    “어?”

    “형아!! 형아!”

    기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 보이던 아이가 큰 소리로 다른 아이를 부르기 시작했다.

    “나는 나쁜 아저씨가 아니야. 착한 아저……. 아니, 형이야.”

    “아니야! 저리 가!!”

    아이는 움직일 힘도 없는지 제자리에서 울먹거렸다.

    ‘어두워서 분간이 잘 안 되는 건가?’

    에르제는 입술을 깨물다가 이내 주머니에 들어 있는 물건 하나를 떠올렸다.

    자신은 어둠에 익숙해서 쉽게 떠올리지 못했으나, 지금의 상황이 되니 문득 생각이 난 것이다.

    에르제는 스마트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던전은 아니긴 한데, 지하라서 전파가 안 잡히나.’

    그랬으면 바로 구출을 요청할 수 있을 텐데.

    아쉬움을 삼킨 에르제는 불빛으로 자신의 모습을 비추었다.

    “나쁜 아저씨는 이제 없어. 형은 너희들을 구해 주러 온 거야.”

    아이는 불빛 때문에 손으로 눈을 가렸다가 조그만 손가락 틈으로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발부터 시작해 천천히 위를 향하던 아이의 눈길이 에르제의 상체와 얼굴 쪽에서 멈췄다.

    “히익……!!”

    그러고는 손가락으로 다시 눈을 가린 채, 무릎 안에 얼굴을 꼭 파묻었다.

    “거짓말……!! 피…… 피잖아!! 나쁜 아저씨잖아!!”

    그렇게 말하며 아이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었는지, 멀리서 ‘형아’라고 불린 아이가 비척거리며 달려오는 소리도 들려왔다.

    ‘아!’

    그제야 에르제는 불빛에 자신을 비춰 보며 아이가 보인 반응을 이해했다.

    ‘……이걸 어떻게 하지?’

    레스터에게 찔렸던 곳, 그리고 그 이후 자신이 흘린 피로 온몸이 피투성이였다.

    보석 때문에 계속 피를 빼앗겼을 테니 피와 피 냄새에 트라우마가 있어서 저런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했다.

    에르제는 잠시 고민했다.

    그래도 일족들을 다스릴 때, 어린아이들을 상대한 경험이 적지는 않았다. 에르제는 기억을 뒤져 해결책을 강구했다.

    그리고 에르제는 곧 위쪽에 두고 온 것을 기억해 냈다.

    “나쁜 아저씨는 이제 갈 거야. 형아랑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에르제는 그런 말을 남기고는 빠르게 귀신의 집 쪽을 향해 달렸다.

    달리며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에르제는 입술을 깨물었다.

    ‘다행히 교대 시간은 아직 지나지 않았어.’

    그렇다는 건 이곳에 머무를 시간이 조금 더 남아 있다는 뜻.

    에르제는 왔던 길을 빠르게 되돌아가 처음 이곳으로 내려왔던 장소에 도착했다.

    고개를 드니 자신이 뚫어 놓은 구멍이 보였다.

    ‘있다!’

    에르제는 가장자리에 삐쳐 나온 인형 탈을 발견하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거면 되겠지.’

    벽을 타고 올라간 에르제는 인형 탈의 외형을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귀신이라고 하기에는 귀여웠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거부감 없이 다가갈 수 있을 듯했다.

    ‘돌아가서 입자.’

    인형 탈을 입고 달리기를 할 수는 없었기에 에르제는 이것을 손에 들고 빠르게 되돌아갔다.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온 이후, 주섬주섬 인형 탈을 뒤집어쓴 에르제는 뚫어 놓은 구멍을 바라보았다.

    ‘……인형 옷을 입고 지나가긴 너무 좁은데.’

    잠시 고민하던 에르제는 돌덩이 근처에는 아이들이 없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럼 문제없겠지.’

    에르제는 망설임 없이 거대한 돌덩이에 몸통 박치기를 해서 완전히 부숴 버렸다.

    쾅!!

    큰 소리가 나고, 에르제는 인형에 달려 있는 팔을 움직이며 크게 외쳤다.

    “나쁜 아저씨를 물리쳤다!!”

    하지만 꼼짝 말고 기다리라는 말은 아무 효과가 없었는지, 아이가 있던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큰 아이가 데리고 갔나?’

    그러나 고작해야 어린아이 둘이다.

    숨는다고 해도 에르제의 감각을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이제는 절반 정도 회복된 혈기를 이용해 감각을 넓히자, 곧 4개의 발이 물을 찰박거리며 밟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 가지는 못했구나.’

    하긴……. 이곳에서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지도 못했을 테니 이동이 힘들었을 터.

    에르제는 씁쓸한 표정을 짓고는,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뒤뚱뒤뚱 뛰어가며 다시 소리쳤다.

    “나쁜 아저씨를 물리쳤다!! 나는 정의로운 달걀 용사!!”

    “!!”

    “!”

    멀리서 손을 잡고 뛰어가던 아이 둘이 이쪽으로 몸을 돌리는 것이 보였다.

    에르제는 아이들이 겁을 먹지 않도록 천천히 다가가서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니? 다친 곳은 없어?”

    그러나 귀여운 인형 탈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에르제는 인내심을 발휘해 아이들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자, 큰 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저, 정말 달걀 용사예요?”

    “그렇단다.”

    에르제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희들을 괴롭히던 나쁜 아저씨는 이 달걀 용사가 처리했으니 안심하렴.”

    “정말이요?”

    이번에는 작은 아이가 눈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탈을 쓰지 않았을 때와 확연하게 다른 반응이었다. 정의의 용사라는 말도 아이들에게는 잘 먹힌 듯했고.

    “그럼. 그러니까 이제 밖으로 나가자.”

    “헙.”

    작은 아이가 조그만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고는 큰 아이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마치 허락을 받으려는 듯한 모습에 에르제가 탈 안에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갓 태어난 뱀파이어들을 보는 것 같네.’

    매일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을 텐데, 그동안 서로 의지하며 잘 버텨 낸 모양이다.

    안쓰러운 마음에 두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에르제는 팔을 내려 아이들에게로 뻗었다.

    “잡으렴.”

    손가락은 없고 펭귄 날개같이 생긴 손이라서 아이들은 머뭇거리다가 집게손을 만들어 한 쪽씩 사이좋게 나누어 잡았다.

    에르제는 아이들이 다치지 않게 속도를 조절하며, 처음 이곳에 들어왔던 곳으로 향했다.

    도중에 레스터의 시체를 보고 두 아이가 놀랄 수 있었기에 그곳을 지날 때는 보지 못하도록 하고 재빨리 지나쳤다

    돌아가는 길에.

    “……혹시 다른 아이들은 없니?”

    라고 물었더니 큰 아이의 얼굴에 슬픈 빛이 어렸다.

    고개를 젓는 큰 아이를 보며, 에르제는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그래서 그 이상의 생명 반응이 없었구나.’

    혹시나 싶었던 것이 확신이 되니 입맛이 꽤 썼다.

    “돌아가자.”

    에르제는 다짐하듯 아이들에게 말했다.

    * * *

    이윤은 최근 굉장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소속 가수이자 자신이 매니저로 관리하고 있는 토트윈의 성장이 가팔랐기 때문이다.

    각종 음악 방송, 예능, 심지어는 퀴즈쇼 같은 예능도 할 생각이 없는지 연락이 계속 왔다.

    “아오, 정신이 하나도 없네.”

    이윤은 식지 않는 스마트폰의 열기에 지쳐 그대로 의자에 등을 기대고 쓰러졌다.

    그러고는 스튜디오형 예능에 고정으로 출연하고 있는 태현우의 모습을 관찰했다.

    ‘오늘 현우 예능 끝나면 숙소 데려다주고……. 은우는 정원형 씨가 서울까지는 태워 준다고 했으니 그때 나가면 될 거고.’

    대충 오늘 스케줄을 정리하던 이윤은 그래도 일거리가 많다는 사실에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소속사 대표로 토트윈을 키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토트윈의 성장에 자신의 지분이 어느 정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

    ‘은우가 갑자기 사고로 기억을 잃었을 때만 하더라도 세상 무너지는 것 같았는데 말이지.’

    이윤은 허허허 웃으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서은우 생각을 하니, ‘다이 랜드’에 가서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잘하고 있겠지.’

    알바 몬스터는 계속해서 괜찮은 시청률과 인기를 유지하는 중이었고, 서은우는 그 안에서도 꽤나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무엇보다 중2병이 최근 들어 보이지 않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놈의 이달그마는 팬들까지 같이하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요즘에는 주둥아리가 잠잠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알바 몬스터에서도 편집의 힘인 건진 모르겠지만, 그런 장면이 딱히 보이지 않기도 했고.

    ‘아니, 내가 촬영장에 따라갔을 때도 멀쩡했으니까 이제는 확실히 괜찮아졌다고 생각해도 되겠지?’

    지금까지는 기억을 잃어서 그랬다고,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될 터.

    ‘기억만 빨리 돌아오면 좋겠는데.’

    답답한 마음에 이윤이 하아, 하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고가 난 지도 벌써 1년이 되어 가는데, 기억이 완전히 돌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 컴백 앨범 음악 방송도 여기저기 출연하게 될 텐데, 이윤은 하루빨리 모든 것들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했다.

    지이잉―.

    그렇게 이윤이 서은우를 생각하고 있을 때, 마침 서은우에게서 코코아톡이 날아왔다.

    단체방이 아닌, 개인 톡방이었다.

    “……?”

    아직 촬영 중일 텐데, 쉬는 시간인가?

    혹시 중간보고를 하겠다는 기특한 생각인 건가?

    이윤은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코코아톡을 확인했다.

    그러나 내용을 확인한 이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 아이가 생겼어요. 어떻게 해야 해요? ]

    세상에,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거니.

    이윤이 다급하게 엄지손가락을 움직였다.

    [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이? 아이가 생겼다고?? ]

    [ 네. 둘이에요. 큰 아이는 정민철, 작은 아이는 김혜성이요. ]

    [ 벌써 이름도 정했다고? 아니, 둘이 왜 성이 다른 건데? ]

    심지어 서씨도 아니잖아. 도대체 이게 무슨 소리야.

    중2병을 벗어난 것 같다고 좋아했더니, 갑자기 성인이 되어 버렸다.

    [ 너 도대체 뭐 하고 있냐? ]

    이윤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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