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24화 (124/307)

제124화

124화

6명의 인원 그리고 게스트 둘.

총 8명의 인원은 놀이공원 내에 이렇게 배치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둘씩 두 팀. 그리고 나머지는 하나씩 놀이기구를 맡는 것으로.

둘이 팀이 된 쪽을 부러워하는 참가자들을 보며 임 PD가 사악하게 웃었다.

“둘이 한 팀으로 움직인다고 해서 꼭 좋은 건 아닐 겁니다. 두 분이 서로 힘이 될 수야 있겠지만……. 뭐, 생각보다 힘들어서 그런 생각 못 할 거예요.”

“앗.”

“크흠.”

게스트 한 명과 팀이 된 강보라는 헛기침을 했다.

에르제는 그들의 반응을 살피다가 옆에 서 있는 이를 보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그냥 2배로 힘든 거 아닌가?’

에르제도 2인 1조 팀이 되었는데, 팀원이 요즘 그와 케미가 좋은 정원형이나 장미영이 아니었다.

매 회마다 에르제에게 당하고 있는 박장호였다.

“아오, 하필 이 자식이랑 팀이 되냐.”

혼잣말을 들리지 않게 하려는 노력조차 없는 것으로 보아, 여전히 박장호는 자신에게 감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장미영이 박장호에게 관심 없다고 사석에서 대놓고 이야기했다고 하던데, 왜 아무 상관도 없는 자신을 붙잡고 늘어지는 건지.

‘……진짜 나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이돌은 연애를 할 수 없다. 하면 큰일 난다.

이윤의 말에 따르면, 팬들에게 합법적으로 연애와 결혼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연차가 굉장히 오래되어야만 한단다.

그렇다면 박장호도 분명 그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뭔가 연적으로 오해하는 것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

‘이 정도 친해졌으면 물어봐도 괜찮겠지?’

그래도 몇 주간 촬영했다고, 에르제는 박장호와의 내적 친밀감이 진드기 다리털만큼은 생겼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서 에르제는 혼자 투덜거리고 있는 박장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우리가 처음에 맡은 곳이 그리팅이에요.”

“……그래서?”

“그리팅은 입구에서 표 검사를 하거나 유모차 렌털 등을 도와주는 역할이에요.”

“알아. 나도 아까 봤거든?”

“평소 기억력이 안 좋지 않은 편이 아닌가요?”

“안 좋…… 뭐?”

박장호가 얼굴을 구기며, 이게 도대체 어느 나라 말인가 해석을 하고 있을 때.

에르제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속삭였다.

“박장호.”

“……넌 내가 이름만 그냥 부르지 말라고……. 하, 됐다.”

“장미영 좋아해요?”

“……아니.”

“저는 안 좋아해요.”

“뭐 어쩌라는……. 하, 꺼져.”

박장호는 손을 휙휙 내저으며 멀리 가 버렸다.

에르제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흠, 연적이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밝혔는데도 저렇게 나오는 건가.’

에르제는 스마트폰을 꺼내어 시간을 확인했다.

촬영 준비는 이제 끝이 났고, 곧 있으면 박장호와 단둘이 있을 수 있게 된다.

‘아, 카메라랑 그거 찍어 주는 분들은 있겠구나.’

어차피 민감한 이야기가 나오면 임 PD가 알아서 눈치껏 편집해 줄 테니 편하게 말해도 되겠지.

‘아육시 일도 있고 하니까.’

에르제는 벌써부터 ‘다이 랜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오는 박장호를 발견하고 멀리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 * *

오픈 10분 전.

임 PD는 두 사람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고 갔다.

“두 사람은 입구에서 손님들을 가장 처음 만나는 자리니까 그렇게 가리고 있어도 알아보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릅니다. 일단은 최대한 아니라고 잡아떼시고, 혹시 들킨다면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세요.”

그의 말에 에르제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박장호는 평범한 얼굴이라서 사람들이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저는 아니라고 잡아떼기 어렵지 않을까요? 인간들이 금방 알아볼 것 같은데.”

“음……. 굉장한 자신감인데, 뭐 또 그럴 만하긴 하지.”

임 PD가 손가락으로 턱 부근을 쓸어내리다가 결국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아서 포기했다.

“솔직히 거기서 뭘 더 가릴 수도 없어. 그게 더 수상해 보이니까. 은우 씨는 혹시 들키면 그냥 가벼운 팬 서비스만 해 줘. 여기서 사인회라도 열렸다가는 입구에서부터 입장하는 데 엄청 오래 걸릴 테니까.”

“네.”

에르제는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입구에서부터 줄이 길어지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았으나, 각자 맡은 자리는 제비뽑기에 의해 결정되었으니 항의를 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로테이션으로 돈다고 하니까.’

그나저나 이렇게 하루 종일 일하는 모습을 찍는 게 재미있게 나오려나?

에르제가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자, 박장호가 그를 불렀다.

“야, 서은우.”

“네. 선배.”

대외용 만능 호칭을 꺼내 드니, 박장호가 헛웃음을 흘렸다.

“나는 개그맨인데, 왜 내가 네 선배냐? 그냥 아까처럼 박장호라고 부르지?”

“그럴까요? 솔직히 그게 편하기는 해서.”

“……?”

보통 그렇게 대답 안 하지 않나?

박장호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아니, 뭐 아무튼. 야, 내가 왜 평범해? 이 정도면 잘생긴 편이지. 나 얼굴 때문에 좋아하는 팬도 많아.”

“아.”

영혼 없는 얼굴로 에르제가 엄지를 세워 주었다.

“네.”

“……진짜……. 후우.”

고혈압 증세를 호소하는 박장호에게 에르제가 아까의 질문을 다시 했다.

“그래서 장미영 좋아해요?”

“아니라니까?”

“그러면 나 왜 싫어해요?”

“누가, 내가?”

“네.”

“너 안 싫어하는데?”

“거짓말.”

“진짜, 정말로 너 안 싫어해. 프로그램 하면서 정 많이 들었어.”

“아까 나랑 같은 팀 됐다고 엄청 싫어하던데.”

“그거야……. 아, 아무튼 너 안 싫어해. 정말정말정말. 그러니까 그냥 입 닫고 일이나 하자. 적당히 촬영 분량만 챙기고.”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던데요.”

“……내가 널 싫어하기를 바라는 거냐, 아니면 싫어하지 않았으면 하는 거냐?”

“그러게요?”

이제는 스스로도 무슨 소리를 하고 있나 싶을 정도가 되어서 에르제도 같이 입을 다물었다.

‘진짜 싫어하는 게 아니었나?’

아니면 그냥 카메라 돌고 있으니까 아닌 척을 하는 걸까.

평소 누군가 자신을 이런 것으로 싫어한 적은 없었기에 명확한 판단이 서지 않았다.

평소에 자신을 자꾸 이겨 먹으려고 하고,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길래 역으로 괴롭히기는 했는데…….

‘이제 장미영이 걸어 놓은 매료가 풀려서 나에 대한 악감정도 자연스레 사라진 걸지도.’

에르제는 대충 납득했다.

물론 진실은 전혀 아니었지만, 다이 랜드를 방문한 손님들 덕분에 더 깊이 생각할 여유가 사라졌다.

“와! 서은우다!!”

첫 손님부터 자신을 알아보았다.

“와! 저는 서은우가 아니에요!”

“맞는 것 같은데. 이목구비가 마스크 뚫고 나오는데요?”

첫 손님부터 아주 강적이다.

아니라고 잡아뗐으나, 그게 그렇게 잘 통한 것 같지는 않았다.

박장호 쪽을 슬쩍 바라보니, 저쪽은 알아보지를 못해서 무난하게 입장이 잘되는 상태.

반면에 이쪽은 아직도 첫 손님이었다.

‘어쩔 수 없지.’

이제는 아이돌로서 이쪽 세계에 많이 적응을 한 상태였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충분히 경험이 쌓여 있는 상태라는 뜻이다.

“쉿.”

에르제는 검지를 마스크 위로 가져다 대고는 눈웃음을 지었다.

“대박. 진짜네.”

눈치를 챈 여학생은 입을 틀어막고는 본인의 뒤쪽을 슬쩍 살폈다.

“비밀이에요?”

“네. 그러니까 혼자만 알고 있어요. SNS에도 올리면 안 되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저 있다고 말하는 것도 안 돼요. 그 대신 약속 지켜 주신다고 하면…….”

거래는 일방적이면 안 된다.

약속을 지켰을 때, 돌아오는 보상이 필요했다.

“이따 어디로 오면 또 볼 수 있는지 알려 드릴게요.”

“헙.”

나긋나긋한 에르제의 목소리에 미약한 매혹의 힘이 섞이니, 여학생으로서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네!”

여학생은 에르제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한 뒤에 우다다다 놀이공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난 뒤.

‘쉽지 않네.’

에르제는 끝나지 않는 입구의 줄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그를 알아보는 손님들이 자꾸 나와서 시간이 지연된 것도 있었지만, 그냥 사람 자체가 많았다.

‘손님들이 너무 많지 않은 평일로 골랐다고 했는데도…….’

오늘 확인한 표의 개수가 얼마나 되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다.

새삼 놀이동산에서 일하는 이들의 고충을 느끼며, 에르제는 입구 중앙에 세워져 있는 커다란 시계탑을 바라보았다.

10시 30분, 다음 로테이션을 위해 움직여야 할 시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드디어 끝났다.’

슬쩍 옆을 보니, 박장호도 반복 노동에 지쳐 죽어 가고 있었다.

‘딱히 재미있는 장면도 없었는데, 방송으로 나갈 게 있으려나.’

이제는 방송 분량까지 걱정할 정도로 적응한 에르제는 박장호를 괴롭히며 분량을 뽑을까 하다가 그만뒀다.

멀리서 다음 로테이션을 위해 다가오는 강보라와 게스트 2인 1조 팀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우, 사람들 왜 이렇게 많아?”

“그러니까요.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그러게……. 나는 안내 데스크 쪽에서 일했는데, 벌써부터 미아 생기고 그런 것 같더라.”

“아이고.”

강보라와 박장호가 교대하며 잠시 담소를 나누는 장면을 지켜보던 에르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촬영 초반이니까 괴롭히는 건 조금 여유롭게 해도 되겠지.’

오늘은 거의 하루 종일 촬영을 한다고 했으니, 박장호와 다음으로 향하게 되는 곳에서 해도 충분할 것이다.

‘마침 딱 분량 뽑기에 좋은 곳이고.’

그렇게 강보라 팀과 교대한 뒤, 에르제와 박장호가 도착한 곳은 ‘귀신의 집’이었다.

저번에 멤버들과 함께 갔던 흉가와 비슷한 듯했는데, 그때는 놀라는 쪽이었다면 이번엔 놀라게 하는 쪽이라는 게 달랐다.

그곳에 근무하는 이가 둘을 환한 미소로 맞이해 주었다.

“제일 중요한 부분만 설명해 드릴게요.”

그러고는 두 아르바이트생을 위해 간단한 설명도 곁들여 주었다.

대략적으로 숨어 있어야 할 위치, 손님들이 다니는 동선 및 복귀하는 길, 비상로 등을 숙지하는 일이었다.

에르제는 조금 전에 들었던 내용을 머릿속에 집어넣으며, 중얼거리고 있는 박장호를 흘긋 보았다.

‘아쉽다.’

여차하면 손님을 놀라게 하는 박장호를 놀라게 하면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둘의 위치가 꽤 멀리 떨어져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게 커 보이지 않았는데, ‘다이 랜드’의 명물 중 하나라더니 내부는 꽤 넓은 모양이었다.

슬슬 내부로 들어가서 준비할 때가 되니, 스태프들이 다가와서 그들에게 셀프 캠을 내밀었다.

“저희는 안에 못 들어가서요. 머리에 이렇게 쓰면 돼요. 고무 밴드라 두 분 분장해도 잘 고정될 거고요.”

그렇게 각자 셀프 캠을 하나씩 받아서 손에 꼭 쥔 채 둘은 어두컴컴한 내부로 들어섰다.

그들이 있어야 할 위치는 근무자가 안내를 해 주었기에 찾는 데 그리 어려움은 없었다.

“서은우 님은 이쪽에 숨어 계시면 돼요.”

고개를 끄덕인 에르제는 그들이 준 달걀귀신 탈을 쓰고 구석 안쪽으로 몸을 구겨 넣었다.

‘좁네.’

에르제가 숨어 있는 곳은 손님들이 다니는 통로가 넓었던 탓에 그리 넓지 않았다.

때문에 조금 불편했으나, 밤눈이 밝다는 것은 그나마 위안이었다. 그가 숨고 10분 정도가 지난 뒤에,

“꺄악! 어떻게 해! 여기 귀신 있는 거 아니야!?”

인간 커플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모습이 생생하게 보였으니 말이다.

“걱정하지 마. 오빠가 귀신 나오면 막아 줄 테니까.”

남자는 문신이 가득 그려진 울퉁불퉁한 근육을 내보이며, 자신의 가슴을 쿵쿵 쳤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앞에 동그란 달걀 탈을 뒤집어쓴 귀신 에르제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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