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1화
121화
제이의 홈마는 카메라를 드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토트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어떻게 알았지?
그녀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둘은 ‘당연히’ 서은우가 멀쩡하게 등장할 것을 알고 있었는지 태연한 표정이었다.
‘아, 아닌가.’
다시 보니 태연…… 하지는 않았다.
벌써부터 대포 카메라를 든 채 무대 앞으로 나오는 토트윈을 찍고 있었고, 장미영은 양손을 가슴께에 모은 채 감격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제이의 홈마는 흔들림 없는 손놀림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아……!”
본인의 본분을 깜빡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재빨리 카메라를 들어 무대를 시작하는 토트윈을 찍었다.
두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궁금하기는 했으나, 그녀에게 그건 나중의 일이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토트윈의 3집 앨범 ‘Radio Trip’의 첫 음악 방송 무대가 무려 FM이었으니까!
뮤직비디오를 보고 난 이후, 팬들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무대로 꼽은 게 FM이었다.
때문에 서은우 홈마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녀에게 오늘 음악 방송 무대 촬영은 아주 막중한 임무였다.
‘침착하게.’
제이의 홈마는 완벽한 사진을 찍기 위해 열심히 몸을 움직여 가며 무대 위 토트윈의 모습을 담아냈다.
― DA, DA, DA, DA ― DA
DA DA ― DA, DA, DA
에르제가 센터로 느릿하게 걸어 나오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도입부를 불렀다.
목까지 꽉 채운 셔츠, 그리고 검은색 슈트에다 다시 흑발로 돌아온 에르제의 모습은 순간 넋을 잃고 바라볼 정도였다.
메이크업도 전반적으로 진한 편이었는데, 검정이 강조된 착장이어서 붉은색 입술이 유독 튀어 보였다.
‘미쳤다.’
시작부터 무대 분위기를 확 휘어잡은 에르제는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며 오른손을 앞으로 쭉 뻗었다.
― 벗어날 수 없단 건
Already I knew
애초에 우린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
내 심장에 찍힌 지문은
지울 수 없어.
뮤직비디오에서는 에르제만 했던 안무였으나, 이번에는 다 같이 앞으로 뻗은 손을 가로로 휙 그었다.
그리고 윤치우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그 관성을 이용해 몸을 한 바퀴 휙 돌렸다.
그러고는 주먹을 꾹 쥔 채 가슴에 가져가 대고, 윤치우와 에르제가 센터 자리를 바꾸었다.
― 지워지지 않는 건
Already I knew
어제와 오늘
어쩌면 더 먼 미래라도
혹은 다른 세계라도
하늘을 향해 빠르게 팔을 들어 손바닥을 펼쳐 보이고, 다시 힘없이 떨어트리고.
강, 약, 강, 약.
널 붙잡겠다는 포인트에서는 강하고 힘찬 안무가, 반대로 힘없이 툭툭 떨어뜨리는 부분에서는 놔줘야 하는 고민을 여실히 드러내게끔 안무가 짜여져 있었다.
이를 지켜보는 이브들의 심정도 이에 맞춰서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 Frequency
너와, 나의
Frequency
넘어지겠지만
부서지겠지만
널 다시 잡을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 타이밍에 치고 들어오는 태현우의 보컬이 간질간질하던 감정선을 확 폭발시켰다.
Frequency라는 가사에서 강하게 스트링 사운드가 들어오고, 날카롭게 뻗어 나가는 태현우의 고음이 위태로운 모습을 그대로 표현해 냈다.
‘……하지만 과하지 않아.’
제이의 홈마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기존에 토트윈이 쌓아 왔던 이미지를 생각하면, 섹시한 콘셉트를 과하게 드러내면 무의식중에 거부감이 생길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되면 이후에 노래를 듣고 보는데 왠지 모를 부담감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토트윈은 영리한 방식으로 그것을 해결했다.
섹시함에 시선이 집중되지 않도록 그것을 리드미컬한 박자 감각으로 해소한 것이다.
― Frequency
우리, 우리
Frequency
난 깊숙하게
끌려 들어가
점점 더.
가사와 가사 사이에 쉬는 구간을 만들어 박자감을 살리고, 그리 어렵지 않게 구성된 안무를 이용해 자신도 모르게 춤을 따라 하게 만든다.
뮤직비디오에서는 그것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으나, 직접 무대를 보고 있는 제이의 홈마는 확신했다.
‘이건 무조건 먹힌다.’
요소들의 적절한 구성과 배합.
토트윈을 알고 있던 이들은 물론, 모르던 이들까지도 끌어당길 수 있는 힘이 충분히 있었다.
‘챌린지 같은 거 하면 좋을 것 같은데.’
1일 3FM, 이런 것들이 일반인들 버전으로 무튜브에 올라온다면 커다란 홍보 효과가 될 듯싶었다.
그러나 그런 즐거운 상상도 잠시.
― 너에게
“……!?”
토트윈 전원이 제자리에 우뚝 선 채 위를 노려보듯 턱을 사선으로 끌어내렸다.
그러고는 거칠게 왼쪽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는 모습.
‘미친!’
놀란 제이의 홈마는 카메라를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다.
토트윈의 오른손이 걷어진 왼쪽 손목을 훑고 지나가면서, 그곳에 각기 다른 문양이 타투처럼 새겨진 것이다.
‘CG가 아니었어?!’
그녀는 그 과정을 담아내기 위해 연신 사진을 찍으며 감탄했다.
새하얗게 드러난 팔에 각자의 색에 맞추어 드러난 문양은 퍼포먼스의 완성도를 한껏 높여 주었다.
‘아니.’
슬쩍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기야 이곳까지 올 정도의 팬들이 뮤직비디오를 보지 않았을 리는 없을 테고, 그렇다면 자신과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한 거야……?’
그러나 감탄도, 놀람도 잠깐이었다.
― DA, DA, DA, DA ― DA
DA DA ― DA, DA, DA
또다시 무심한 듯이 들어오는 에르제의 목소리에 제이의 홈마는 그만 카메라를 손에서 놓칠 뻔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그냥 음 하나를 툭, 투욱, 내뱉는 것뿐인데 그대로 정신이 홀리는 기분이었다.
‘……제이랑 비슷해.’
이전에 데뷔 쇼 케이스를 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와…….’
그녀는 속으로 감탄사를 뱉어 내며, 뒤이어 들어오는 민주혁의 저음 랩까지 입을 벌린 채 감상했다.
그리고.
― 쉿.
잠깐의 정적 이후에 들어오는 에르제의 오토튠을 입힌 고음까지.
3옥타브의 고음이 무려 10초나 이어지는 다이내믹한 곡 구성에 카메라를 든 손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으, 손 저려.’
그녀는 주먹을 꾹꾹 쥐어서 손을 풀어 가며, 뷰파인더에 눈을 가져다 댔다.
마침 곡도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군무를 마친 나머지 멤버들이 중앙에 서 있는 에르제의 주위로 모여들고.
주르륵―.
에르제의 오른팔에서 피처럼 보이는 붉은 액체가 흘러내렸다.
‘……!!’
꾹 감았다 뜬 에르제의 눈동자는 어느새 흑안에서 적안으로 바뀌어 있기까지 했다.
‘아니, CG 아니었냐고!’
제이의 홈마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도대체 무대에 공을 얼마나 들인 것인지 가늠조차 되질 않는다.
‘설마.’
게다가 마지막 파트에서 튀어 나가려는 태현우를 멤버들이 잡았다가 놓치고, 이내 태현우가 바닥에 쓰러지는 순간에는.
‘너네 재 돼서 날아가는 거 아니지?’
순간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무대에 몰입해 있었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토트윈이 재가 되어 날아가는 슬픈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역시.”
“항상 은우 님은 제 예상을 뛰어넘네요.”
“그러니까. 아, 그런데 마지막에 재가 되서 날아가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셨을 텐데…….”
“팬들이 놀랄까 봐 자제한 거 아닐까요?”
“아! 그런가 보다.”
도대체 당신들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 거야.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말을 애써 무시하며, 제이의 홈마는 자신의 카메라에 담긴 사진들을 확인했다.
‘드디어!’
데뷔 쇼케이스에서 제대로 된 사진을 건지지 못해서 얼마나 아쉬웠던가!
이후 음악 방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데뷔 쇼케이스 때보다는 훨씬 나았지만, 그녀의 프라이드에 한참 못 미치는 사진들이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그야말로 완벽했다. 마음에 쏙 드는 컷들이 최소 10장 이상으로 예상됐다.
‘……이번에는 꼭 이긴다.’
그녀는 새로이 급부상한 서은우의 한 홈마를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Serina’라는 이름의 아이디였는데, 그 사람이 올리는 서은우의 사진은 완벽한 컷과 보정이 아름답게 조합되어 있었다.
“후우.”
제이의 홈마는 심호흡을 하며, 사진을 천천히 넘겼다.
“됐어.”
곡에 딱 어울리는, 절정으로 달한 퇴폐미가 사진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게다가 나른하게 읊조리는 파트와 피 흘리는 모습, 적안을 드러내는 모습 등 중요한 부분들까지도 깔끔하게 찍혀 있다.
그녀가 그렇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옆에서 다시 두 사람이 대화하는 것이 들렸다.
“헉! 저 이 사진 보내 주시면 안 돼요?”
“그래. 어려운 일도 아니고, 보정해서 보내 줄게.”
저쪽도 분명 카메라를 들고 있었지.
‘……궁금한데.’
보여 달라고 하면 실례이려나?
에이, 몰라.
제이의 홈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뒤이어 나올 토트윈의 ‘AM’을 기다렸다.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사람, 아니 뱀파이어가 그 ‘Serina’라는 것을 전혀 모른 채.
* * *
‘FM’ 무대를 끝내고 난 뒤, 토트윈은 대기실로 가지 않고 그대로 백스테이지에서 대기했다.
곧 있으면 사회를 보는 MC들이 있는 곳에서 대화를 나누어야 하고, 그 이후 ‘AM’ 무대를 하기 위해 다시 무대로 향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후읍, 후읍.”
멤버들은 무대 위에서 엄청난 집중력을 쏟아 낸 부작용을 겪으며, 다른 팀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구석에 모여 앉았다.
“으으, 답답해.”
자리에 앉자마자 태현우가 눈썹을 찡그리며 단추를 풀었다.
두세 개쯤 푸니 조금 숨통이 트이는 모양인지, 한결 나아진 숨소리로 호흡을 뱉어 냈다.
“뮤비 찍을 때보다 더 빡센 것 같아.”
민주혁이 태현우의 말을 받으며 피식 웃었다.
“네 말대로 이거 은근 불편하긴 하다. 너무 조여.”
민주혁도 단추를 푼 채로 목을 꺾었다.
목까지 단추를 꽉 채워 둔 것은 ‘FM’이 가지고 있는 곡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답답해 보이도록 연출한 것이었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왠지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게 춤출 때 기도를 조금 막는 건가.’
에르제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띠자, 윤치우는 이를 확인하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래도 첫 무대니까 우리도 연습 때는 눈치채지 못한 사실이니 어쩔 수 없지. 내가 윤이 형이나 의상 팀에 말해 둘게.”
“앗, 감사해여.”
“그러네. 그럼 되겠다.”
다른 멤버들이 손부채질을 하다 말고 윤치우에게 엄지를 세워 주었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다음! 토트윈이요!!”
스태프가 커다랗게 외치는 말에 토트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MC들과 이번 앨범에 관한 짧은 토크를 나누고, 또 앨범 홍보를 하기 위해서였다.
빠르게 그쪽으로 걸음을 옮기는 토트윈 사이에서 윤치우가 에르제 곁에 다가와 작게 속삭였다.
“돌발 질문에 해야 할 대답은?”
“평범한 대답 혹은 침묵.”
“……정답.”
에르제의 자신 있는 표정에 윤치우는 못 미더워하는 듯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