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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18화 (118/307)

제118화

118화

멤버들이 모두 나간 뒤에 에르제도 연습실에 갈 준비까지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쪽에서 보내온 장소는 택시로 15분 정도 거리였기에 그렇게 급하게 준비할 필요는 없었다.

“이쪽으로 가 주세요.”

“네, 네에.”

완전 무장을 한 에르제를 택시 기사가 조금 이상하게 쳐다보기는 했지만, 에르제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노란색 톤에 입구에 화분이 주르륵 늘어서 있는, 아기자기한 카페였다.

“이달그마.”

에르제는 훌륭한 드라이빙 솜씨를 보여 준 택시 기사에게 가벼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구석에 있다고 했는데.’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에르제는 이내 시야에 잘 들어오지 않는 구석진 장소를 찾았다.

그쪽을 제외하고는 딱히 구석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없었기에 망설임 없이 그쪽으로 다가갔다.

“오셨군요.”

상대방도 가까이 다가온 에르제를 확인하며 인사를 건넸다.

‘대리인이라고 하기엔…… 조금 평범한데.’

일단 겉으로 보이는 힘은 그리 강해 보이지 않는 뱀파이어였다.

‘연예계에 있다고 하기에는 나이도 좀 있어 보이고.’

에르제는 자리에 앉아 그를 면밀히 살폈으나, ‘평범하다’는 특징 말고는 별다른 특징을 찾지 못했다.

‘그렇다면 수장은 아닌 듯하고.’

제이도 대리인을 보내올 거라고 했으니 아마 그쪽일 가능성이 높았다.

어느 정도 상황을 파악한 에르제는, 시간을 끌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단검의 소재는 파악한 건가요?”

“예.”

대리인은 품에서 의식용 단검을 꺼내 탁자 위로 올리고, 에르제 쪽으로 쓱 밀었다. 그러고는 옅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결과부터 빠르게 듣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서 말씀드리지만, 그리 유용한 정보는 아닐 겁니다.”

“…….”

“아! 그리고 일단, 여기 단검에 작게 파인 홈은 보석을 박아 넣는 곳 같은데……. 보석에 관한 정보는 아예 찾을 수가 없어서…….”

말끝을 흐리는 그의 말에 에르제는 상체를 뒤로 젖혔다.

‘장진규를 데려오지 않은 이유가 전자였어?’

등가교환을 할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에 에르제의 얼굴 위로 실망감이 스쳐 지나갔다.

‘그 이상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말로, 내 쪽의 정보를 최대한 취하려는 모양인데.’

그리고 역시 에르제의 예상대로 대리인은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꺼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단검을 사용했던 이의 소재지를 찾았습니다만. 그가 머물고 있는 장소의 특이성 때문에 그 이상 알아내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에르제는 단검을 회수하며 대답했다.

“딱히 기간에 제한을 두지도 않았고, 제가 재촉한 적도 없는 것 같은데……. 정보가 많이 빈약하네요.”

에르제의 말에 대리인은 말없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더 이상 할 말은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어쩔 수 없나.’

에르제는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두들기다가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애초에 이 정보를 장진규에게 말해 주었을 때도, 남에게 얻어낸 정보라서 가볍게 취급하지 않았던가.

‘누가 사용했는지는 이미 알고 있고.’

오히려 현재 위치를 알고 있다는 게 자신에게는 더욱 유용할 듯했다.

보석인지 뭔지는 더더욱 의미가 없을 듯했고.

“그래서 단검 주인의 위치는 어디입니까?”

어지간히도 특이한 장소에 있는 것인지, 대리인은 주위에 엿듣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고 난 뒤에야 대답했다.

“뱀파리스의 중앙 지부로 여겨지는 곳에 있었습니다.”

“……?”

에르제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대리인을 쳐다보았다.

“뱀파리스 쪽에 있었다고요?”

“네.”

대리인은 빈약한 정보에 죄책감을 느꼈는지 묻지도 않은 것까지 설명해 주었다.

대충 어떤 방식으로 위치를 찾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단검을 사용했을 때 묻은 혈기를 추적했단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고, 100명이 넘는 뱀파이어들이 혹사를 당했다고 했다.

‘……어차피 나 혼자서 찾을 수 있는 건 아니었겠네.’

이쪽에 부탁하길 잘했다고 여기던 에르제는 이내 손으로 이마를 감싸 쥐었다.

찾는 방법이고 나발이고, 그보다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하임이…… 어째서 뱀파리스 쪽에 있는 거지?’

단검에 카테이아 대륙의 언어로 ‘라하임’이라고 박혀 있었고, 의식과 관련된 물품이니 단검의 주인은 확실히 라하임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라하임이 뱀파리스 쪽에 있을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위치를 찾은 줄 알고 좋아했더니…….’

오히려 더 찾기 어려워진 느낌.

‘왜?’

에르제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 갔다.

라하임은 카테이아 대륙에 있을 때, 충성심으로 치면 그 누구에게도 절대 지지 않는 녀석이었다.

자신과 함께 인간 사이에 섞여 살아가기도 했고, 또 반대로 자신이 없을 때 일족들의 일을 대신 처리하기도 했다.

‘그런데, 왜?’

배신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무언가 이유가 있긴 할 거라고.

‘아니면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 건가.’

커피 잔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곧 쩍, 하는 소리와 함께 잔이 부서져 테이블과 바닥에 떨어졌다.

소리가 그리 크지 않았기에 주변에서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아.”

차가운 액체가 피부에 닿으니 조금 정신이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매몰되어 가던 생각에서 벗어난 에르제는 빠르게 고개를 털어 냈다.

‘어쩌면, 저쪽에서 잘못 찾아낸 걸 수도 있어.’

에르제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기로 했다.

곧 음악 방송 무대도 앞두고 있었고, 정신적으로 무너질 이유를 일부러 만들어 낼 필요는 없었으니까.

직접 눈으로 보지 않은 이상, 믿지 않기로 생각을 바꿨다.

저쪽에서 엉뚱한 사람을 추적했거나, 그냥 실력이 부족했던 거라고 믿고.

에르제는 유리잔을 깬 손을 바라보았다.

아까운 피가 상처 난 손에서 흐르고 있었다.

‘혈기로 보호도 못 했네.’

어지간히도 생각에 빠져 있었나 보다.

“하.”

자조 어린 미소를 지은 에르제는 마침 잘됐다고 여기며 흘러내린 피를 손바닥 안에 모았다.

곧 적혈구와 비슷한 형태로 피들이 모여 구체를 만들었다.

“오늘 장진규를 데려 왔다면 굳이 이럴 필요는 없었겠지만, 자리에 없으니…….”

에르제가 대리인의 손 위로 핏방울을 떨어뜨렸다.

대리인의 손바닥에 부딪히며 핏방울이 살짝 위로 튀어 올랐으나, 놀랍게도 흩어지지 않고 구체를 유지했다.

“이걸 장진규에게 먹이면, 제가 봉인해 두었던 기억이 돌아올 거예요. 약간의 고통이 수반될 거라고 전해 주시고요.”

“아, 알겠습니다.”

겁을 먹은 듯한 눈치로 대리인은 조심스럽게 핏방울을 받아서 투명한 유리관에 그것을 담았다.

‘저런 건 왜 들고 다니는 거지?’

궁금하긴 했으나 보관해 갈 방법이 있다는 것은 저쪽에게 다행스런 일이었다.

만약 잃어버렸다면, 에르제는 다시 봉인을 풀어 줄 생각이 없었으니까.

‘저쪽이 잘못한 책임을 내가 질 필요는 없지.’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상대와의 거래였으니 말이다.

에르제는 흐트러졌던 정신을 겨우 추스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과가 실망스럽기는 하지만, 약속은 지켰어요.”

“네. 감사합니다. 혹시 다른 추가적인 정보가 나온다면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에르제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택시를 잡아타고 그대로 연습실로 향했다.

* * *

대리인과의 만남이 있고 일주일 후.

에르제는 토트윈의 멤버들과 함께 뮤직 큐 스튜디오를 찾았다.

“뭔가 오랜만인 것 같아여.”

대기실에 들어오자마자 안단테가 소파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그러게.”

윤치우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뭔가 반가운 기분이야. 전에는 조금 무섭기만 했는데.”

“오올~.”

태현우가 히죽거리며 윤치우의 옆에서 치댔다. 그리고 에르제는 그런 태현우의 반응을 이해했다.

‘하긴, 데뷔 앨범 때는 화장실에 가서 토하다가 혼절했었으니까.’

그때를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태현우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데뷔 때와 2집, 그때만 하더라도 대기실 안은 묘한 긴장감으로 가득했었는데, 오늘은 한결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태현우야 원래 긴장감 같은 것에 압박 받는 스타일은 아니고.’

아마 이것이 이윤이 말했던, ‘신인에서 벗어나는 과정’일 것이다.

서서히 모든 것들이 익숙해지고 여유로워질 때를 조심하라면서 했던 잔소리였다.

그리고 윤치우도 이윤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는지, 손바닥을 부딪쳐 풀어진 공기를 바짝 쪼였다.

“우리가 준비를 열심히 한 것도 맞고 곡이 훌륭하게 나온 것도 맞지만, 그건 데뷔 때도 마찬가지였어. 그러니까 긴장 풀지 말고, 연습한 것 이상으로 팬들에게 보여 주자. 알았지?”

“넵!”

“치우 형의 말이 맞아. 안일한 생각을 하는 것만큼 안 좋은 게 없어. 저쪽 초동 100만 넘은 건 들었지? 우리 2집 앨범이 70만이나 나오긴 했지만, 100만은 다른 영역이야. 정신 바짝 차려.”

음……. 그렇게 말하는 민주혁 본인도 조금 전에 표정이 풀어져 있었다는 사실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그렇게 모두가 정신 무장을 하고, 리허설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우웅―.

에르제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연속적인 진동이 아니라, 두세 번 울리다가 마는 진동이었다.

‘코코아톡인가?’

에르제는 스마트폰을 꺼내 톡을 확인했다.

톡을 보내온 것은 알아보겠다고 한 뒤로 아주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지서후였다.

[ 미안. 내가 작품 때문에 서울에 있지 않아서 최근에야 네가 말한 거 조사해 봤다. ]

[ 네 말대로 결계 깨진 곳을 확인했는데……. 내가 아는 냄새더라고. ]

지서후가 아는 냄새였다고?

눈을 가늘게 뜨고 다음 톡을 확인한 순간, 에르제의 목울대가 크게 출렁였다.

[ 라하임 기억하지? 네 옆에 맨날 붙어 있던 녀석. 그 녀석 냄새던데? 얘가 왜 지구에 있지? ]

[ 암튼 피 냄새는 라하임인데, 껍데기 냄새는 조금 다르더라. 그것까진 모르겠다~. ]

결계를 부순 녀석이…… 라하임이었다고?

“…….”

어느덧 에르제의 얼굴은 표정 자체가 사라진 듯 보였다.

혈액 공급이 순간 떨어진 건지 스마트폰 화면이 뿌옇게 보였다.

뻑뻑해진 눈을 손가락으로 누르며, 에르제는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지서후가 냄새를 잘못 맡았을 리는 없어.’

녀석은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악수 한 번만으로 알아낸 늑대인간이었다.

‘게다가…….’

에르제는 지서후에게 일족들을 지구로 보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애초에 지서후는 라하임이 지구에 있는지조차 몰랐던 상태라는 거다.

‘그런데도 라하임으로 특정을 했다는 건……. 단검에 대한 정보도 진짜였다는 뜻인가……?’

에르제는 물끄러미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배신.’

가장 믿고 있었던 녀석이었기에 이 두 글자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충격이 엄습해 왔다.

‘왜? 어째서?’

답을 내릴 수 없는 물음표들이 머릿속을 정신없이 맴돌았다.

쿠웅, 쿠웅.

느린 심장박동 소리가 엇박자로 귓속을 울렸다.

툭, 하고 손에서 스마트폰이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그리고.

“은우야! 괜찮아??”

에르제의 안색을 살핀 윤치우가 황급히 달려와 물었고.

“토트윈, 리허설 시작할게요!!”

문만 살짝 연 채 스태프가 공지를 하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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