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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17화 (117/307)
  • 제117화

    117화

    ‘Radio Trip.’ 토트윈의 앨범 제목과 AM, FM 뮤비를 보면서 같은 것을 떠올렸는지, 댓글에는 대학생과 비슷한 의견이 올라오고 있었다.

    ― AM, FM이 라디오 주파수인 것까지는 알아냄.

    ┖ 그건 다 알고 있을 듯.

    ┖ 내 생각에는 앨범 콘셉트 전체가 라디오 형태일 것 같아. 유기성을 그렇게 맞춘 듯.

    ― ON AIR 까지 보고 나면 확실해질 것 같은데. ㅠ

    ― 내 생각인데, 둘 다 전체적인 주제는 이별이잖아. AM이랑 FM이 뭔가 이별 방식의 차이, 같은 거 아닐까?

    ┖ 오?

    이브들은 기본적인 곡의 탐구부터 시작해서 뮤비 곳곳에 나온 떡밥까지 찾아냈다.

    ― 일단 이번 앨범에서도 각자 종족 콘셉트는 어느 정도 드러난 듯.

    서은우의 송곳니랑 피, 민주혁의 순간이동(?)이랑 지하 세계 돌아다니는 거, 안단테의 재, 윤치우의 불기둥…….

    ┖ 정리 감사합니다, 선생님.

    ┖ 타임라인 적힌 거 다른 댓글에 있으니 참고하세요.

    물론, 뮤비 분석만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AM의 분위기는 감성적인 느낌이 강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FM은 확실히 지금까지 보여 주지 않은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이렇게 그룹 이미지가 바뀌면 안 어울리는 경우가 많은데…….’

    대학생은 본인이 덕질 하는 아이돌의 콘셉트 소화 능력에 새삼 감탄했다.

    ‘섹시까지 가능했던 거냐고.’

    처음 데뷔하고 올해 초까지만 해도, 장난감 물총 뿅뿅 쏘면서 노는 어린아이들 같았는데.

    이번에는 갑자기 전차 한 대를 끌고 와서 대포를 한복판에다 쏴 버린 느낌이었다.

    ‘아니지, 아니지.’

    그렇게 생각하던 대학생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생각해 보면 이런 콘셉트도 잘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토트윈은 캐릭터가 2개이지 않은가.

    지구 버전과 판타지 버전.

    ‘그러니까 이런 분위기에서는 판타지를 끌어오는 거구나.’

    재미있는 사실에 대학생이 입꼬리를 올리며, 댓글창을 쓱쓱 아래로 끌어내렸다.

    떡밥과 해석에 관한 글들이 지나가고, 그냥 뮤비 감상에 대한 반응 댓글도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 아니, 여러분……. 해석이고 나발이고, 이번 거 진짜 미친 거 같음. ㅠㅠㅠㅠ

    ┖ 집착광공의 FM 버전이 아니었나……. 개쥬아. ㅠㅠ

    ┖ 호러 느낌까지 더해 놔서 뮤비 보는 내내 약간 오싹? 소름? 돋는 그런 거 있었어. ㄷㄷ

    ― 이게 자본주의의 맛이냐? ㄹㅇ CG랑 연출에 돈을 얼마나 때려 박은 거임.

    ┖ 원래 모카가 여돌 라인이 짱짱해서 자본력으로는 웬만한 대형급은 됐음.

    ┖ 이전 앨범도 퀄리티 지렸음.

    ― 4K님, 감사합니다.

    ┖ 이 정도면 실물 아니냐며. ㅠㅠㅠ

    ― 이브가 부릅니다……. ‘텅 빌 예정인 통장’

    ┖ 제가 화음 쌓아 드릴게요…….

    ┖ 코러스 참여합니다…….

    ‘오!’

    대학생은 입을 동그랗게 만들고, 전반적으로 분위기 좋은 댓글창을 바라보았다.

    이전 앨범까지만 해도 익명 뒤에 숨어서 시비를 거는 이들이 꽤 보였었는데.

    ― 흠……. 내 스타일은 아닌 듯.

    ― 그냥 청량 콘셉트로 해서 LAK랑 제대로 붙는 게 좋았을 것 같은데. 괜히 내가 도망치는 기분이네. ㅠ

    수위라고 해 봤자 이 정도 수준?

    특정 멤버를 깐다거나 하는 글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 ㅋㅋㅋㅋㅋㅋㅋ LAK랑 너무 비교되지 않냐? 안무나 곡 수준 많이 딸리는 것 같은데.

    ― 초동만 봐도 확 차이가 날 듯. ㅋ 바로 뽀록나겠죠?

    LAK의 팬들인 라쿤들의 견제구가 들어오는 것을 보면,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곡이 잘 뽑혔다.’

    딱 봐도 별로라면, 견제구는 들어오지 않는다. 그냥 팩트 줄줄이 들고 와서 스트라이크로 그냥 꽂아 버리지.

    아니면 아예 관심조차 없거나.

    ‘그런 의미에서 행복회로 좀 돌려도 되겠는데?’

    토트윈의 활발한 활동과 아육시 사건 이후로 팬 유입도 많이 늘었기 때문에 초동 기록을 깨는 건 당연할 것 같고…….

    1, 2위가 해외에 나가 있는 상태이니 사실상 현재로서는 1위나 다름없는 LAK를 어쩌면 성적에서 꺾는다면.

    ‘팬덤 크기도 확 따라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대학생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약 한 달의 기간 차이가 있지만, LAK의 기세는 아직도 수그러들지 않았으므로 충분히 성적으로 맞붙는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을 터.

    ‘음방만 잘하자, 얘들아……!!’

    뮤직비디오에서 보여 준 퀄리티만 나와 준다면, 충분히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생은 곧 있을 음악 방송 무대를 기다리며, 멈춰 있던 무튜브 화면을 다시 재생시켰다.

    * * *

    ‘전반적으로 반응은 괜찮은 것 같은데.’

    에르제는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고 난 다음 날 아침부터 팬들의 반응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건 에르제뿐만이 아니었는지,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로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는 상태.

    가장 먼저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윤치우가 멤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가 1집 때 LAK랑 비슷한 기간 차이로 시기 겹쳤던 거 기억해?”

    “응. 기억하고 있지. 그때 그거 뭐야, 이채선 갑질 때문에 빡치기도 했었잖아.”

    “맞아여. 저는 아직도 그거 때문에 그 사람 싫어여.”

    “우리 데뷔 앨범의 타이틀곡 제목도 모르고 있었잖아.”

    민주혁이 피식 웃으며 마무리를 짓자, 윤치우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당시에 내가 했던 말 기억해? 배울 수 있는 거 다 배워서 우리 걸로 만들자고 한 거.”

    “그것도 기억하고 있음여!”

    안단테가 손을 번쩍 들며 대답했고, 에르제도 그 순간을 회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매혹의 힘 비슷한 걸 느꼈었는데, 나중에 제이가 했다는 걸 알았었지.’

    그래서 제이가 뱀파이어인 줄 알았건만, 알고 보니 뱀파리스였다는 건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이었고.

    에르제가 그렇게 제이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고 있자, 윤치우가 말을 이었다.

    “물론 연차도 차이가 나고, 아직 배울 게 더 있을 수도 있지만……. 난 이제는 충분히 해 볼 만하다고 생각해. 팬들도 비슷한 생각인 것 같고.”

    윤치우가 스마트폰을 살랑살랑 흔들며 맑게 웃었다.

    “그러려면 뭘 잘해야 하지?”

    “음방?”

    “자, 연습하자.”

    윤치우가 손바닥을 부딪치며 말했다.

    기승전연습에 기운이 빠질 법도 했지만, LAK와의 악연을 상기시키며 이끌어 온 빌드업 덕분에 멤버들의 풀이 죽는 일은 없었다.

    “현우 형! 저 노래 좀 봐줘여!”

    “……그거 끝나면, 안무 맞춰 보자. 디테일 더 잡아 보게.”

    오히려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가 된 느낌.

    ‘저 녀석도 성장한 건가.’

    에르제는 윤치우를 보며 피식 웃었다.

    리더로서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는 모습에 조금 대견한 기분이 들었다.

    이전에는 일단 끌고 가는 느낌이 강했다면, 최근에는 승부욕을 살살 자극하거나 칭찬으로 꼬드기는 스킬까지 붙은 모양이다.

    ‘나는 윤치우한테 연습 같이하자고 할까.’

    그러나 그 순간, 다른 멤버들을 따라 옷을 챙겨 입는 윤치우를 바라보던 에르제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

    이 시간에 연락 올 만한 일이 있었던가?

    ‘이윤이 또 ‘대박이다 얘들아!’ 이러려고 연락했나.’

    에르제는 고개를 갸웃하며 발신인을 확인했다.

    이를 확인함과 동시에 에르제는 서둘러 아무도 없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장미영?’

    장미영은 뱀파이어 진영에 들어가서 간간이 정보를 보내 주긴 했으나, 전화를 한 적은 없었다.

    ‘내가 던진 질문의 답이 나왔나?’

    에르제는 조심스럽게 초록색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잔뜩 상기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은우 님!]

    “응. 무슨 일이야?”

    [그때 맡겨 주셨던 일, 결과가 나왔다고 해요!]

    “……단검?”

    [네!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지금 제 옆에……. 앗!]

    장미영의 목소리가 잠깐 멀어지더니 굵은 남자 목소리가 대신 들려왔다.

    제이가 말한, 뱀파이어 수장의 대리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오전 10시. 1시간 뒤에 볼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하죠.”

    에르제는 선선히 대답했다.

    멤버들은 곧 연습을 하기 위해 나가니까 자신은 조금 이따 가겠다고 하면 된다.

    ‘어차피 이야기만 하는 거니까 몇 시간씩 걸릴 일도 아니야.’

    남자는 만날 장소까지 고지해 준 뒤에, 장미영을 바꿔 주지도 않고 그대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장진규는 나오지 않는 건가.’

    에르제는 변기에 앉아서 곰곰이 생각했다.

    ‘봉인한 기억을 풀어 주려면 장진규 본인이 필요한데. 뱀파이어 쪽에서 그걸 모르지는 않을 테고…….’

    무릎에 세워 둔 팔로 턱을 괸 그는 손가락을 세워 볼을 툭툭 두들겼다.

    ‘그렇다는 건 저쪽에서 주는 정보가 시원찮을 수도 있나?’

    협상을 하자고 나올 수도 있었다.

    우리의 한계는 이 정도니까 너도 이쯤에서 양보해라. 이런 뉘앙스로 말이다.

    그러다가 에르제는 문득 든 생각에 미간을 찌푸렸다.

    ‘혹은…… 반대일 수도 있고.’

    만약 저쪽에서 알아낸 정보가 엄청나게 중요한 거라면, 역으로 인질이 잡히는 구도가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내가 장진규의 기억을 먼저 풀어 준 뒤에야 단검에 대한 정보를 알려 줄 수도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주도권을 내어줄 수도 없어서 고민이 깊어졌다.

    ‘머리 아프네.’

    원래 세계에 있을 때에도 정보는 항상 최고로 중요하게 취급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럴 때 꼭 지는 쪽은 더 급한 쪽이야.’

    에르제는 훅 하고 한숨을 뱉어 냈다.

    오히려 장진규의 기억을 너무 많이 지워 버린 탓에 저쪽에서 중요한 정보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게 되면 상황이 꼬일 수도 있었다.

    ‘어떻게 해야 주도권을 계속 잡을 수 있지?’

    그렇게 에르제의 고민이 점점 깊어지고 있을 때, 화장실 불이 켜지면서 문이 벌컥 열렸다.

    “?”

    “왁! 깜짝이야!!”

    깜짝 놀라서 뒤로 넘어진 태현우가 소리쳤다.

    “놀랐잖아!”

    “사람이 있는데 무작정 들어오면 어떻게 해?”

    차분한 에르제의 말에 태현우의 이마에 힘줄이 돋았다.

    “불이 꺼져 있는데 그걸 어떻게 아냐?”

    “문이 닫혀 있잖아.”

    태현우의 이목구비가 가운데로 모이고, 눈이 가늘게 변했다.

    “수상한데.”

    그러고는 에르제가 앉아 있는 변기를 가리켰다.

    “불은 꺼져 있고, 변기 커버까지 덮은 채로 앉아 있고……. 수상해. 아주 수상해.”

    그러고는 똑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휙휙 돌려가며 에르제의 얼굴을 살핀다.

    “너 혹시, 울었냐?”

    “……?”

    “스마트폰도 꽉 잡고 있는 거 보니까 맞는 거 같은데?”

    태현우가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며 말을 이었다.

    “왜? 이번 앨범 잘 뽑히고, 팬들 반응이 좋으니까 막 울컥해? 흐흐흐. 야, 우냐?”

    낄낄대는 태현우를 보며, 에르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울었어.”

    “안 울었으면 뭐, 우리한테 들키지 말아야 할 전화라도 와서 화장실에서 몰래 받은 거야~?”

    태현우가 은근슬쩍 에르제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한 말에 에르제의 표정이 굳었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눈치야.’

    고작 그 정도 정보만으로 이런 것을 유추한단 말인가.

    하지만 티를 낼 수는 없기에 에르제는 태현우를 지나쳐 화장실을 나가면서 말했다.

    “개구리입쏙독새 같은 표정 짓지 말고, 얼른 연습이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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