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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16화 (116/307)
  • 제116화

    116화

    “후아!!”

    대학생은 꾹 참았던 숨을 토해 냈다.

    이번 앨범의 더블 타이틀곡 중 하나인 ‘AM’은 기존에 토트윈이 보여 주지 않았던 색깔을 드러냈다.

    2집 타이틀곡인 ‘그 시절의 너’는 추억을 회상하는 듯한 풋풋한 사랑 노래였다면.

    ‘물론 가사가 좀 웃기기는 했지만.’

    이번엔 성인으로 훌쩍 커 버린 듯,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감정을 풀어낸 것이다.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색 슈트를 기반으로 한 착장도 뮤직비디오 내내 그런 이미지를 강조했다.

    “이런 진한 맛도 있어야지.”

    대학생은 히죽히죽 웃으며 뮤직비디오를 돌려 보다가, 문득 가사에 나온 단어를 떠올렸다.

    ‘그런데 Amplitude가 뭐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사전적 의미로 ‘진폭’이라고만 나온다. 그 외에는 데이터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과학 블로그가 대부분이었고.

    “으음…….”

    혹시 떡밥이나 그런 것들이 있을까 싶어 댓글을 훑어보았으나, 아직까지는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일단은 FM까지 들어 봐야 알 수 있으려나?’

    대학생은 책상에 앉아 턱을 괸 채, 서은우 얼굴이 박힌 커버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2집 앨범 때 얻은 것인데, 그곳에는 서은우의 개발새발 글씨가 꼼꼼하게 적혀 있었다.

    대학생은 다음 뮤직비디오인 ‘FM’이 풀리기만을 기다리면서, 이번 앨범에 대해 생각했다.

    ‘이번에 예구한 것도 빨리 오면 좋겠다!!’

    이번 토트윈의 3집 앨범인 ‘Radio Trip’은 공동 구매 공식 계정에서 구성을 공개했는데, 이전과는 다르게 버전이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A버전은 흰색, B버전은 검은색 박스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정보가 없었기에 두 버전의 내용물이 어떻게 다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기존에 덕질을 했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아마 크게 다르지는 않을 듯했다.

    ‘일단 영업 자체도 팬 친화적으로 많이 하니까…….’

    토트윈이라면 빌어먹을 랜덤 요소를 버전을 나눠 가면서까지 강화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차피 이번에 팬사인회 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여 보고자, 모아 둔 용돈으로 앨범 12장을 구매했기 때문에 두 버전 모두 열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학생은 커버 카드를 책상에 다시 내려놓았다.

    ‘당분간은 학식으로 연명해야겠지만.’

    그러고는 어깨를 당당히 폈다.

    ‘포카로 은우만 나와 주면 돼.’

    유닛 포카에도 서은우가 나와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듯했다.

    ‘중복도 상관없어.’

    같은 걸 여러 장 보관하는 것도 상관없었고, 교환비를 생각하면 서은우가 일단 최고였다.

    물론 모든 멤버들을 모든 팬들이 공평하게 좋아해 준다면 정말 좋겠지만…….

    현실은 냉혹한 법.

    토트윈 멤버 모두를 사랑하는 그녀도, 최애와 차애 등의 우선순위가 있지 않는가.

    팬들 사이에서 포토 카드의 시세가 멤버별로 달라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군가 앨범 전체를 사들인 다음에 ‘내가 무료로 자비롭게 원하는 것을 내어주겠노라’라고 하지 않는 이상.

    잠깐의 실없는 생각을 하던 대학생은 곧 00시 30분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털어 잡념을 떨쳐 냈다.

    ‘일단 뭐든 간에 뮤비부터 확인해야지.’

    3분.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기대감에 심장이 쿵쿵대서 마치 3년처럼 길게 느껴졌다.

    ‘빨리……!!’

    나이 먹는 기분만큼 빠르게 좀 흘러가지!

    “후, 하!”

    대학생은 초침이 한 칸 움직일 때마다 두 발을 동동거리며 어서 30분이 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AM이 이별 노래였으니까 FM은 반대로 사랑 노래이려나?’

    분명 AM의 마지막에 ‘다음 사연 들어 볼게요.’라는 내레이션이 나왔던 것 같은데.

    그렇게 온갖 추측을 하면서 대학생의 상체가 책상과 거의 붙을 지경이 될 때쯤.

    거치대에 올려놓은 스마트폰에서 알림이 울렸다.

    “억!”

    급하게 상체를 들다가 무릎을 책상에 찧은 대학생의 눈가에 살짝 눈물이 고였다.

    그러나 그런 아픔 따위는 대학생의 조급함을 누르지 못했다.

    ‘다음 사연!’

    그녀의 손가락이 공개로 전환된 FM의 뮤직비디오를 재생시켰고.

    “……?!”

    예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대학생은 순식간에 압도되고 말았다.

    시작부터 현악기 소리가 베이스로 묵직하게 깔렸고, 곧바로 고음과 저음을 오르내리는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멜로디와 곡의 구성은 AM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악기 사용과 베리에이션을 이용해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리고 시작부터 돌계단에 쭈그리고 앉은 서은우가 한쪽 입꼬리를 쓱 올리며 손으로 입술을 훑는 순간.

    ‘미친……?’

    ― DA, DA, DA, DA ― DA

    DA DA ― DA, DA, DA

    나른한 표정으로 툭툭 음을 찍어 내뱉는 서은우의 도입부는 대학생을 순식간에 곡에 몰입시키기에 충분했다.

    대학생은 완전히 몰입한 상태로, 뮤직비디오의 모든 부분을 분석하기 위해 빠르게 눈동자를 굴렸다.

    ‘이번 착장도 슈트이기는 한데…….’

    그러나 AM은 단정한 차림에 검은색 타이가 포인트였다면, FM은 넥타이는 없었지만 반대로 셔츠 단추를 목까지 꽉 채워서 답답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헙.’

    대학생은 순간 숨이 막히는 기분을 체감함과 동시에, 그녀의 눈은 돌계단에서 천천히 일어나 걸어 내려오기 시작하는 서은우를 좇았다.

    이번 앨범에서 다시 흑발로 돌아온 그의 머리가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오는 리듬에 맞춰 찰랑거렸다.

    설핏 웃는 붉은 입술 사이로, 송곳니가 드러났다.

    ― 벗어날 수 없단 건

    Already I know

    애초에 우린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

    내 심장에 찍힌 지문은

    지울 수 없어.

    화면 가까이 다가온 서은우의 손이 가로로 선을 긋자, 이를 따라서 카메라도 빠르게 휙 돌아갔다.

    이번에는 폐허처럼 보이는 건물 안이었는데, 그 중앙에는 무릎을 세워 누워 있는 윤치우가 있었다.

    툭―.

    하늘을 향해 뻗은 손이 힘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져 내렸다.

    ― 지워지지 않는 건

    Already I know

    어제와 오늘

    어쩌면 더 먼 미래라도

    혹은 다른 세계라도

    옆으로 기울어 있던 윤치우의 시선이 천장으로 치솟고, 세로로 길게 그어진 붉은색 눈동자로 변했다.

    화아악―!

    동시에 위를 향해 포물선을 그리는 윤치우의 팔을 따라 그의 주변에서 불기둥이 위로 확 치솟았다.

    카메라가 360도로 빠르게 뒤집히고 똑같은 공간이 등장했다.

    그리고 화르륵 불타오르던 5개의 불기둥이 바닥으로 훅 꺼지고, 그 위로 토트윈의 멤버가 대형을 갖춘 채 등장했다.

    각자 착용한 포인트 액세서리는 조금씩 달랐지만, 기본적인 착장은 처음 서은우의 것과 같았다.

    ― Frequency

    너와, 나의

    Frequency

    넘어지겠지만

    부서지겠지만

    널 다시 잡을 수만 있다면.

    스트링 사운드와 함께, 송곳처럼 날카로운 태현우의 목소리가 파고든다.

    그리고 안무는 격하지 않은 수준으로, 가사에 맞춰 딱딱 끊어서 리듬감을 끌어올렸다.

    ― Frequency

    우리, 우리

    Frequency

    난 깊숙하게

    끌려 들어가

    점점, 더.

    하이라이트 부분이 끝나면서, 멤버 모두가 위를 노려보듯 턱을 사선으로 당겼다.

    그리고 거칠게 입으로, 왼팔의 소매를 잡아끌어 당겼다.

    살갗이 드러난 왼팔 위로 오른손이 느릿하게 지나가고, 그 위로 멤버마다 각기 다른 문양이 타투처럼 새겨졌다.

    ― 너에게

    ― DA, DA, DA, DA ― DA

    DA DA ― DA, DA, DA

    폐허 건물이 재가 되서 파스스 사라지며, 소용돌이처럼 서서히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커다랗게 보이던 소용돌이는 화면이 줌아웃이 되면서 점점 작아지고, 곧 재의 소용돌이를 떠받치고 있는 작은 손바닥이 보였다.

    꾸욱―.

    천천히 주먹을 쥐어 휘몰아치던 재를 집어삼킨 손바닥은 순간 옆으로 거칠게 뻗어졌다.

    더 멀리 줌아웃 된 화면은, 그 손의 주인인 안단테를 담아냈다.

    ― 붙잡을 수 없는 건

    Already I knew

    but, 그리움 따위

    추억 놀이 따위

    There is no time.

    그냥 필요해, 네가.

    안단테가 거칠게 바닥에 발을 구르고, 땅이 꺼지듯 화면도 수평 상태에서 아래로 쭉 떨어져 내렸다.

    새까만 지층이 수직으로 빠르게 지나가고, 마치 지하 세계를 비추듯 황량한 대지가 펼쳐졌다.

    쓸쓸하게 지나는 먼지바람 사이로, 항공 샷으로 잡아낸 민주혁이 멀리서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선명했던 화면이 잠깐씩 흐려질 때마다 민주혁의 위치가 순간이동을 하듯 뒤바뀌었다.

    그와 동시에, 한 옥타브를 낮춘 저음의 랩이 귓속에 쿡쿡 박혔다.

    ― 먼지처럼 사라진

    네 흔적을 찾길 바라진

    못해도, 길어진

    그림자의 끝엔 네가 있기를.

    날 도와줘, 끝없는 Rail 위,

    난 미쳐 가고 있어.

    깊게, 파인 가슴 구멍

    술만 들이붓는 중이야.

    ― Frequency

    너와 나의

    Frequency

    민주혁의 랩 파트 위로 태현우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반 마디 정도 오버랩 되었다.

    그리고 원래라면 사비의 B파트가 나왔어야 하는 구간에서.

    ― 쉿!

    소리와 함께, 1초 정도 모든 음악과 멤버들의 움직임이 딱 멈추었다.

    ― Ah―, Aa―――――!

    이어서 오토튠으로 훨씬 더 높은 음으로 만든 서은우의 고음과 함께 곡의 분위기가 엄청난 속도로 고조되었다.

    ― 너에게 yeah―.

    4명의 다른 멤버들은 아직 걷지 않았던 반대편 손의 소매를 걷어 버리며, 허리를 굽힌 채 10초 넘게 음을 유지 중인 서은우에게로 모여들었다.

    원을 그리듯 나선형으로 모인 그들은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푹 숙였다.

    곧 하이라이트 구간을 끝내고 숨을 몰아쉬는 서은우 가까이로 화면이 줌인 되었다.

    그러자 유일하게 오른손의 소매가 남아 있던 서은우의 팔목에서.

    주르륵―.

    두 줄기의 피가 바닥으로 툭 떨어져 내린다.

    ― DA, DA, DA, DA ― DA

    DA DA ― DA, DA, DA

    오싹하게 들려오는 토트윈 모두의 목소리가 조금 더 강한 에코를 받아 진동했고.

    ― Frequency

    벌떡 일어나 앞으로 튀어나가려는 태현우의 팔을 모든 멤버가 양쪽에서 꽉 잡았다.

    마치 묶여 버린 듯, 태현우는 몸이 앞으로 기운 상태에서 곡의 끝을 향해 달려갔다.

    ― 망가진다 해도

    부서진다 해도

    너라면

    I’m Okay.

    It’s our same.

    30도가량 기울어 있던 태현우의 몸이 멤버들이 팔을 놓음과 동시에 그대로 앞으로 쓰러지고.

    태현우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 전부 천천히 재가 되어서 사라락 날아갔다.

    ― Frequency

    마지막 가사와 함께, 화면은 점점 뒤로 빠지고.

    AM과 마찬가지로 태현우가 쓰러진 공간이 블러 처리가 되면서, 이번에는 검은 글씨로 ‘FM – ToT-win’이 진해지며 뮤비가 끝이 났다.

    AM과는 다르게, FM에서는 라디오 진행자의 내레이션은 들려오지 않았다.

    ‘미쳤다.’

    대학생은 멍하니 다음 재생 목록이 뜬 화면을 바라보았다.

    ‘콘셉트 안 겹칠 거라고 하더니.’

    이래서였구나.

    토트윈이 여름 기간을 노리고 가져온 것은 본인들의 그룹 색과도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AM은 서글픈 이별 여행의 감성.

    FM은 토트윈의 색깔이 담긴, 다소 격한 이별의 감정.

    그렇게 생각하던 대학생이 쓰러졌던 몸을 일으켜 세우며 눈동자를 빛냈다.

    두 곡의 제목에 대한 생각이 떠올라서였다.

    ‘AM이랑 FM 둘 다 라디오 주파수잖아……!’

    대학생은 서둘러 스마트폰을 집어 AM과 FM에 달린 댓글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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