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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15화 (115/307)
  • 제115화

    115화

    ‘지서후에게?’

    에르제는 스마트폰을 든 상태로 잠깐 몸이 굳었다.

    과연 이게 좋은 생각일까, 최선일까 하는 의문 때문이었다.

    ‘……도움을 청하는 것 자체는 나쁜 생각이 아니긴 한데.’

    늑대인간이 도움을 줄 만한 부분이 있을까?

    그것도 혼자서?

    ‘우두머리 자리에서 내려왔다고 했으니 일족 전체를 움직일 수는 없을 텐데.’

    그렇다면 지서후 혼자서 자신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를 고려해 봐야 하는데…….

    ‘딱히 생각나는 게 없어.’

    게다가 연예계에서 지서후의 입지를 생각하면, 자신보다 훨씬 바쁠 것이 분명하다.

    더빙이 끝나고 또 새로운 작품의 배역을 맡았다고 말해 주기도 했으니 말이다.

    ‘음…….’

    에르제는 고개를 젖혀 천장을 바라보았다.

    ‘녀석의 코를 이용하면 추적은 가능하겠지만, 이미 한 번 냄새를 맡아 본 뱀파이어가 아니라면…… 누구라고 특정을 못 할 텐데.’

    에르제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가 내렸다.

    ‘그래도 시도는 해 볼까?’

    현재 뱀파리스 내에서 카테이아 대륙의 음식을 알아본 이가 분명히 있었다.

    어쩌면, 카테이아 대륙에서 넘어왔을 뱀파리스가.

    ‘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했던 것처럼 모종의 방법으로 넘어왔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만약 운이 좋다면 지서후에게 냄새로 각인된 뱀파리스가 걸릴 수도 있다.

    ‘늑대인간은 뱀파이어 말고도 뱀파리스하고도 싸워 댔으니까.’

    오히려 자신보다는 이번 일에 더 적합한 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

    에르제는 곧바로 결정을 내린 뒤, 지서후에게 세리나의 집 주소가 적힌 톡을 보냈다.

    [ 시간 날 때, 뒷문에서 왼쪽으로 10m에 있는 결계 한번 조사해 줘. 네가 알고 있는 뱀파리스가 찾아왔을 가능성이 꽤 높아서. ]

    “…….”

    아무래도 바쁜 모양인지, 1이 금세 없어지지는 않았다.

    ‘시간 되면 답장 주겠지.’

    에르제는 스마트폰을 충전기에 꽂은 뒤, 멤버들의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부엌으로 나가서 앞치마를 둘렀다.

    * * *

    [ 친구 부탁이면 들어줘야지. ]

    며칠 뒤, 지서후에게서 그런 대답이 돌아오기는 했으나 이후 소식이 없었기에.

    에르제는 일단 김지원에 관한 문제는 접어 두기로 했다.

    ‘애초에 김지원으로 제이를 저격하려고 한 것도, 뭐…… 그렇게 정정당당한 방법은 아니었으니까.’

    사실관계를 밝히는 일임에도 실력으로 이기는 게 아닌 듯해서 내심 찝찝하게 생각하던 참이었다.

    또한 세리나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고, 플랑도 다시 경호원으로 복귀했기 때문에 더 이상 그쪽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지 않기 위함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3집 앨범 발매까지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일단 여기에 집중하자.’

    에르제는 차트를 확인하며 전의를 다졌다.

    ‘뚫어야 할 게 많아.’

    현재 차트에는 ‘Sea through’를 포함해, LAK의 앨범에 수록된 곡들 중 총 3곡이 10위권 안에 안착해 있었다.

    그리고 LAK뿐만 아니라, 저번에 토트윈이 음방 1위를 하지 못하게 막았던 발라드 강자도 차트에 곡을 박아 넣은 상태.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기 위해서는 더 단단하고 빠를 필요가 있었다.

    때문에, 토트윈 전원은 8월 29일이 되기 전까지 본인들의 역량을 한계까지 쥐어짜 냈다.

    장시간의 안무 연습이 끝나고, 에르제와 민주혁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화장실로 달려가 헛구역질을 할 정도였다.

    그렇게 하루, 이틀, 일주일이 흐르고.

    마침내 8월 29일로 넘어가는 자정이 가까워졌다.

    늘 그래 왔듯, 토트윈은 다 같이 뮤비를 보기 위해 숙소 거실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하지만 오늘은 전과 분위기가 확실히 달랐다.

    불안하고 긴장감 넘치던 과거와는 다르게, 오늘은 다들 눈빛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어제 티저 영상 반응 봤어? 괜찮았지?”

    “벌써부터 추측 글 올라오고 있는 것 같았어여.”

    안단테가 뮤비 티저로 올라갔던 두 곡, FM과 AM의 반응 댓글을 보여 주며 히히 하고 웃었다.

    “아직 숨은 뜻은 발견하지 못한 것 같지만여.”

    “티저니까.”

    윤치우가 신난 안단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제목으로 떡밥도 던져두었으니까 조금 이따 뮤비 전체 공개되고 나면 알아차리시지 않을까?”

    “어차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다 했어.”

    민주혁이 무릎을 모으며 말했다.

    “곡 해석은 팬들한테 맡겨 두고, 우리는 오늘 뮤비 반응을 체크하고 음방에서 어떻게 할지 논의하는 게 아이돌로서 해야 할 의무야.”

    “그건 맞지.”

    원래 이쯤 태현우가 딴지를 걸어야 하는 타이밍 아니던가?

    의외의 반응에 에르제가 고개를 갸웃하다가 무튜브를 연결해 둔 TV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00시에 뮤비가 공개되는 ‘AM’이 떠 있었다.

    ‘FM은 00시 30분에 풀린다고 했던가.’

    에르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에 소속사와 토트윈이 계획하고 있는 구상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더블 타이틀로 제작된 AM과 FM은 8월 29일에 뮤비를 공개하고, 이어지는 음악 방송에서 무대를 선보인다고 했다.

    에르제는 컴백 이후의 일정을 예상하며, 뻐근한 어깨와 목을 풀었다.

    뱀파이어인 자신이 가벼운 결림을 느낄 정도면, 다른 멤버들의 상태는 가히 짐작이 갔다.

    ‘……물론 그것 때문에 다들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지만.’

    에르제는 피식 웃으며, 기대에 가득 찬 멤버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팬들도 그만큼 좋아해 주면 좋겠는데.’

    어느덧 아이돌로서 생각하게 된 에르제의 시야에 자정에 공개되는 AM의 표기가 바뀐 것이 보였다.

    “열두 시다.”

    동시에 이를 확인한 태현우가 빠르게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틀게?”

    그러고는 멤버들의 대답도 듣지 않고, 곧장 뮤비를 재생시켰다.

    * * *

    치직, 치지지직―.

    라디오 주파수 맞추는 소리, 그리고 차를 타고 이동하는 소리가 동시에 들려온다.

    꽉 막힌 서울의 대교 위, 양옆으로 보이는 밤하늘과 한강의 전경.

    차창에 운전대를 잡고 있는 윤치우의 모습이 어렴풋이 비쳤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윤치우의 표정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쏟아져 들어오는 반주에 차창에 비친 윤치우의 입술이 살짝 떨어졌다.

    ― 함께 했던 밤은

    이제 Rainy Dawn

    마지막일 줄 알았던

    Maybe, but.

    점점 희미해지는 너의 얼굴.

    차창에 비친 윤치우의 얼굴이 완전히 블러 처리가 됨과 동시에, 카메라가 차의 천장을 뚫고 위로 치솟았다.

    그리고 느릿느릿하게 기어가는 차들을 잠깐 비추었다가, 창가에 걸터앉아 있는 한 사람의 모습으로 전환되었다.

    물끄러미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안단테였는데, 그 옆 탁자에는 옛날 형태의 라디오가 놓여 있었다.

    아슬아슬하게 앉아 있던 안단테가 창문을 드르륵 여는 순간, 하늘에서 별 두 개가 반짝였다.

    ― 마치 우리 사이 같아.

    Distance between stars.

    가까운 듯, 또 먼 듯

    안단테가 그리움 가득한 눈을 하고 창문 밖으로 손을 천천히 뻗었다.

    ― 기다리고 있어.

    In my world

    잊지 않았어.

    Our memory

    화면이 천천히 아래로 떨어지고, 캄캄한 골목길로 화면이 전환되었다.

    양쪽에 나란히 늘어서 있는 가로등 불빛이 느릿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탁, 탁―.

    천천히 걷는 발걸음 소리에 검은 구두를 비추던 화면이 조금씩 뒤로 빠지며 정장을 입은 민주혁이 나타났다.

    민주혁은 좁은 골목길을 걸어가다가 한 손을 주머니에 넣으며 골목길 벽에 기댔다.

    그러고는 조금 거칠게 넥타이를 끌렀다.

    점점 고조되어 가는 악기 위로 민주혁의 담담한 랩이 얹혔다.

    ― 시간이 오래 걸려도

    It’s okay.

    돌아갈게.

    많은 고난도, 방해도

    Can’t stop my step.

    별과 별 사이만큼 멀다 해도

    We know―.

    생각보다 가깝다는 것.

    순간적으로 빨갛게 타오른 민주혁의 눈동자에 카메라가 흠칫 놀란 듯 멀어진다.

    그리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골목길이 동그랗게 말리며 화면이 뒤집혔다.

    동시에, 드럼과 함께 드라마틱한 사운드가 와르르 쏟아져 들어왔다.

    코러스 부분이었다.

    ― 너를 놓지 않게―

    지워지지 않게―!

    매일을 견뎌, 나.

    Cause I’m

    Amplitude.

    (Amplitude)

    어둡게 칠한 무대와 아래에서 쏘아 올리는 하얀 조명이 높은 고음으로 뻗는 에르제의 목소리를 따라 살짝 흔들렸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는 토트윈 5명 전원이 각자의 안무를 소화하면서 군무를 맞추었다.

    아크로바틱한 동작은 없었지만, 곡의 어두운 감정선을 그대로 살리기 위한 포인트는 존재했다.

    확실히 가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든 안무였다.

    에르제의 파트가 끝나고, 대형을 뚫고 나온 태현우를 카메라가 비췄다.

    ― 내가 쫓아갈게―.

    멈추지 않을게―!

    이별의 끝을 나

    붙잡은 채로

    Cause I’m…….

    코러스 파트가 끝나며, 비트가 확 드롭 되었다.

    고조된 분위기가 훅 가라앉았다가.

    ― 치지지지직―!

    다시 라디오의 전파 소리가 들리고, 앞선 1절과 다르게 민주혁의 랩으로 먼저 시작되었다.

    ― 느려도 나는 확실하게

    I don’t believe.

    It’s not real.

    …….

    중저음으로 쏟아내는 랩이 다시 한번 묵직한 감정선을 그려 냄과 동시에.

    조금씩 몸부림치는 듯한 안무 구성에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이별, 그리고 그 이후.

    그리움과 추억 속에 살아가지만, 묵묵히 언젠가 다시 돌아올 거라고 믿는 기다림.

    ― 너를 놓지 않게―

    지워지지 않게―!

    그렇게 2번째 코러스 구간까지 지나고 난 뒤.

    5명 모두가 한 공간에 모였다.

    그리고 그 밑으로 하얀 연기가 무릎 위까지 올 정도로 차올랐다.

    착, 착―.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딱딱 맞아떨어지는 군무와, 혼자 슬쩍 앞으로 나오는 태현우의 모습이 보였다.

    ― Can’t stop thinking

    Yoooouuu――!!

    웬만한 아이돌은 소화하지 못할 높은 음역대로 태현우의 고음이 마치 사이렌 소리처럼 울렸다.

    거의 반쯤 허리를 접었던 태현우가 몸을 일으키는 대신 고개만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숨을 몰아쉬며 카메라와 눈동자를 맞춘다.

    동시에 남은 멤버들이 언제 튀어나왔는지 태현우의 앞을 부동자세로 감싸고.

    미묘하게 섞여 있는 일렉 사운드 위로, 시릴 정도로 아련한 에르제의 목소리가 울렸다.

    ― 잊히지 않게

    내가 잊지 않게

    이 자리에서

    Cause I’m

    Amplitude.

    (Amplitude)

    노래의 끝과 함께, 제자리에 서 있던 멤버들이 모두 카메라를 등지고 섰다.

    하얀 연기의 높이는 더욱 높아져 멤버들의 어깨까지 올라왔다.

    동시에 음악이 페이드아웃이 되기 시작하고, 카메라의 초점도 점차 흐려져 갔다.

    스윽―.

    마지막으로 흐릿해진 연기를 느릿하게 뚫고 나오는 누군가의 손.

    그 손을 기점으로 ‘AM ― ToT-win’이라는 글자가 하얀색으로 선명하게 박혔다.

    ‘…….’

    ‘…….’

    그리고 완전히 뮤직비디오가 끝났다고 여겨질 때쯤.

    계속 치직거리는 노이즈만 나오던 라디오가 정상적인 음질을 찾은 듯 선명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나긋나긋한 여성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이별’이란 주제에 맞게 듣기만 해도 가슴 아픈 사연이었네요. 꼭 잘 극복해 내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어서 다음 사연을 읽어 드리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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