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111화 (111/307)

제111화

111화

소속사에서 보내 준 곡은 총 10곡이었는데, 대부분 토트윈이 먼저 건넨 3곡을 기반으로 콘셉트를 맞춰 준 곡들이었다.

그중 3곡은 발라드를 기반으로 한 곡이었고, 나머지 7곡은 다양한 장르가 믹스된 형태였다.

그리고 그중에서 2집 앨범에서 했던 시티 팝 감성의 곡도 하나 있었는데, 이건 유일하게 멤버들의 만장일치로 뽑혔다.

“이 곡이 저희 타이틀 곡 뒤에 나오면 딱 좋을 것 같아여. 앨범에 수록된 순서대로 듣는 분들도 많으니까 전체적인 감정선도 잘 이어질 거 같고여.”

“나도 같은 생각이야. 타이틀곡은 어쨌든 안무가 포함된 곡인데, 이건 격한 안무 없이 분위기를 한 번 전환시킬 수 있을 것 같아.”

“응. 그러면, 이건 다들 좋다고 했으니까 먼저 선정해 두고 나머지 9곡 중에서 3곡을 뽑아 보자.”

“일단 4번 곡 한 번 더 들려줘.”

그렇게 처음 1곡은 일사천리로 뽑았으나, 나머지 3곡을 고르는 데에는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멤버별로 음악적 취향이 달라서이기도 했지만, 민주혁은 춤, 태현우는 노래, 안단테는 곡 구성 그리고 윤치우는 묻히는 멤버가 없을 것 같은 곡 등 서로가 추구하는 방향이 각각 다른 점도 한몫했다.

‘보는 눈이 달라서인가.’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들의 의견을 하나하나 담아 두었다.

남의 의견을 듣지 않는 것은 소인배나 하는 짓. 고귀한 밤의 주인인 뱀파이어는 남의 의견도 수렴하여 결정을 내릴 줄 아는 훌륭한 종족이었다.

“은우 생각은 어때?”

“흠…….”

그래서 윤치우가 물어왔을 때, 에르제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모두의 의견을 종합하고 거기에 자신의 견해를 녹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발라드 쪽은 다 빼는 게 맞을 것 같고, 그러면 6곡 중에서 3곡을 고르면 되는 건데.’

태현우가 발라드 한 곡을 고르기는 했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반대했다.

‘이미 앨범 구성 자체가 이지 리스닝 형태야. 굳이 발라드를 추가할 필요가 없어.’

그리고 그건 에르제도 같은 생각이었다.

‘지루해진다.’

자신이 이미 경험해 본 일이었다.

음유시인이었을 때, 공연장에서 직접 자신이 노래를 부르고 있음에도 하품을 하는 이들이 보였으니까.

그렇다면 앨범으로, 혹은 무튜브로 듣는 경우에는 그것이 더 심할 터다.

‘같은 패턴이 반복되면, 쉽게 질릴 수밖에 없어.’

그렇기에 발라드 장르는 모두 제외.

‘반대로 억지로 집어넣은 밝은 노래도 없는 게 나아.’

이건 지루한 것의 반대로, 곡 전체의 유기성을 해친다.

앨범을 듣다가 갑자기 ‘?’ 하는 표정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소속사에서는 어쨌든 여름 기간이니까 거기에 맞춘 콘셉트 곡 하나를 넣자는 뜻이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앨범 전체의 퀄리티를 떨어뜨리고 유기성을 해칠 수는 없는 법.

퍼포먼스가 강한 형태의 곡이었기에 민주혁이 원했지만, 이것 또한 에르제의 머리에선 제외되었다.

“…….”

에르제의 대답을 기다리며 흐른 침묵이 그가 입을 열면서 깨졌다.

“일단 6번, 8번 곡은 제외하자.”

“왜!”

“어째서?”

역시나 바로 반발이 나오는군.

“6번 곡이 들어가면 앨범 전체가 지루해질 거고, 8번은 유기성이 흐트러질 거야.”

“읏.”

“그렇기는 하지.”

둘 다 하고 싶은 곡을 밀면서도 같은 생각을 하기는 했나 보다.

에르제가 정곡을 찌르자, 딱히 반발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 말이다.

다만.

“하지만 다른 곡들도 마찬가지 아니야? 솔직히 문제없는 건 시티 팝 말고는…… 딱히 괜찮은 게 없지 않나?”

“그렇다고 해도 6번, 8번은 본인들이 잘하고 싶은 거 하려는 거잖아.”

“음.”

에르제의 말에 민주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

아니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그게 가수잖아?”

“?”

“특히나 아이돌 그룹에서는 그게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퍼포먼스가 강한 그룹은 퍼포먼스 위주로 앨범을 내고, 노래가 강한 그룹은 노래 위주로 앨범을 만들어. 못하는 걸 보여 주기보단 잘하는 것 위주로 하는 건 당연한 거지.”

효율적, 효과적.

지극히 민주혁다운 발언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노래, 춤 둘 다 되잖아. 어쩌면 6번, 8번 곡 모두 다 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래.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그의 말을 곱씹으며 에르제가 볼을 긁적였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답도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에르제는 윤치우를 흘긋 보고는 그가 골랐던 10번 곡을 선택했다.

“네 말이 맞아. 그러니까 10번 곡을 하자.”

“……?”

민주혁이 자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느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왔다.

“10번 곡을 하자고? 노래랑 춤, 둘 다 애매한 곡을?”

“응.”

“……이유는? 치우 형이 골라서 따라 고르는 건 아닐 거 아냐.”

“당연하지.”

전체적으로 무난한 10번 곡은 윤치우의 바람대로 멤버 모두의 장점이 잘 묻어나는 곡이었다.

그렇기에 에르제가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베이스가 좋잖아.”

곡의 기조 자체가 그랬다.

“여기서 조금만 더 수정해 보면, 원하는 그림이 나올 것 같은데.”

“?? 우리가 곡에 손을 대 보자고?”

“어. 잠시만.”

에르제는 안단테가 쓰던 노트북을 가지고 와서 바로 안단테의 앞에 놓았다.

그리고 윤치우의 스마트폰을 연결해서 10번 트랙을 노트북 화면에 띄웠다.

“나는 이거 다루는 법 모르니까 말로 해 줄게. 네가 실시간으로 고쳐 줘.”

“엇, 네. 네.”

안단테가 황급히 키보드와 마우스에 손을 올렸고, 다른 멤버들도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 싶어 더욱 가까이 모여들었다.

에르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런 작업은 100번도 더 해 봤지.’

카테이아 대륙에 있을 때, 에르제가 작곡한 곡도 있었으나 다른 인간들이 작곡한 곡도 많았다.

팀으로 활동했던 적도 있었으니까.

당연히 그때도 서로의 의견이 충돌한 적은 수도 없이 많았고, 에르제의 중재 아래 더 좋은 곡으로 탄생한 경우도 많았다.

“일단 태현우와 내가 음역대가 높으니까 하이라이트 구간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키를 높일 필요가 있어.”

“몇 키여?”

“최소 2키. 3키까지 해도 상관없을 것 같기는 한데, 다른 사람들도 파트 나눠야 하니까……. 일단 2키로.”

“옙.”

“멜로디 라인은 좋으니까 굳이 건드릴 필요 없고, 악기 몇 개만 더 추가하자.”

에르제가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안단테가 디테일을 만들었다.

그렇게 30분 정도, 에르제와 안단테가 뚝딱뚝딱 키보드를 두드리고 난 이후.

에르제가 자신 있게 MR을 재생시켰다.

그리고 그 위에 예전 카테이아 대륙에서 불렀던 노래 가사를 얹어 불렀다.

용사들을 위해 작사했던, 명곡 중 하나였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우리의 모험―! 고난의 파도가 몰려와도, 함께 손을 잡고 나아간다면 아무것도 무섭지 않지. 하늘의 달이 앞길을 밝혀, 어둠조차 부수는 용기――!!”

거의 3분, 에르제의 단독 라이브 쇼였다.

노래가 끝이 났을 때는, 멤버들이 감격의 박수를 쳐 줄 정도였다.

‘감격했나?’

에르제가 훗 하는 얼굴로 웃어 보이자, 민주혁이 빠르게 말했다.

“확실히 퍼포먼스하기 좋게 악기 배분이랑 추가도 잘된 것 같고, 키를 올려놓으니까 너희 셋이 가창력 발휘하는 것도 문제없겠다. 이 정도면 나도 8번 곡 포기할 수 있어.”

그렇게 말한 민주혁이 조금 빨개진 얼굴로 에르제를 의식하며 말했다.

“가사만 좀 바꾸자. 그거 그대로 갈 거 아니잖아. 그렇지?”

“저 가사는 절대 못 쓰져.”

“어……. 나도 같은 생각이야.”

“……?”

에르제의 표정이 어리둥절하게 바뀌었다.

다른 건 다 좋다고 해 놓고, 가사에서 좋지 않다고 한다고?

모험을 떠나는 용사와 모험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곡 중 하나에 당당히 발을 올린 노래였다.

이것만 들으면 심장이 벌렁벌렁 뛰고, 용기백배했단 말이다.

“좋은 가사 아닌가…….”

왠지 시무룩해진 에르제가 털썩, 안단테 머리 위에 자신의 머리를 얹자, 윤치우가 황급히 입을 열었다.

“아, 물론 가사가 별로라는 뜻은 아니었고, 콘셉트가 겹쳐서 그래. ‘D.D.’가 용사 콘셉트잖아. 우리가 그걸 가져다 쓸 수는 없지.”

“아.”

그제야 멤버들의 반응을 이해한 에르제가 안단테에게서 떨어졌다.

푹신푹신했는데, 아쉽다.

그런 생각을 잠깐 하고는, 이내 다른 생각으로 전환했다.

‘나중에 D.D. 만나면 가사 한번 줘 볼까.’

경쟁자이기는 하지만, 카테이아 대륙에서 썼던 멋진 가사가 이 세계에 등장하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또 D.D.가 잘되면 좀 그런가.’

일단은 보류하자.

에르제는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는 나머지 2곡을 정하기 위해 운을 뗐다.

“아무튼 이건 편곡으로 해결했다고 치고, 나머지 2곡은 거의 정해진 거지?”

6번, 8번은 제외, 그리고 10번 곡은 편곡으로 해결.

여기서 발라드 2곡이 추가로 제외되고, 처음 골랐던 곡도 제외하고 나면…….

“4곡이 남기는 하는데, 솔직히 남은 2곡은 퀄리티가 너무 떨어져.”

“인정해여.”

“편곡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거지?”

혹시나 싶은 윤치우의 질문에 에르제와 안단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두 명 다 같은 생각이면, 편곡도 힘들 거고. 그러면 그렇게 남은 2곡 추가해서 4곡 보낼게. 10번 곡은 편곡 버전으로 보내 주면 되지?”

“네!”

안단테가 히히 웃으며 우렁차게 대답했다.

이제 8월 말까지 토트윈에게 남은 것은 끝없는 연습뿐이었다.

* * *

그렇게 시간이 빠르게 흐른 뒤.

8월 6일, LAK가 컴백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토트윈이 예상했던 대로, 8월의 더운 날씨를 의식한 청량 콘셉트였다.

앨범 제목부터가 ‘Sea Through’였고, 타이틀곡도 앨범 이름과 똑같았다.

벌써 4년 차인 LAK는 이번 앨범이 6집 앨범이었는데, 그럼에도 기존 앨범과 겹치지 않게 곡을 들고 온 듯했다.

― ㅁㅊㅁㅊㅁㅊㅁㅊㅁㅊ진짜 개미쳤다!

― 우리 LAK는 해마다 더 잘해지네. ㅠㅠ 진짜 덕질 할 맛 나는 그룹이다.

― 와, 푸른 배경에 핑크색 재질 제이라니. 너무 귀해서 손이 떨린다.

┖ 무의식적으로 캡쳐 딴 나, 칭찬해…….

음악 방송 첫 무대를 보고 난 직후, 팬들의 반응만 보아도 그들의 저력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분홍색 머리로 염색한 제이와 더불어, 다른 멤버들의 머리색도 형형색색이었는데.

여름 분위기의 곡에 맞춰서 강렬한 퍼포먼스에 흔들리는 머리카락은 보는 눈을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게다가 LAK가 준비한 회심의 ‘튜브 퍼포먼스’에서는 댓글창이 거의 폭발할 지경.

― 와! 미친, 튜브 구멍으로 점프하는 거 누가 생각했냐.

┖ 다칠까 봐 무서운데, 또 그걸 쫄깃한 심정으로 보게 하네. (심장이 튀어나오는 강아지 이모티콘)

― 하……. 이번에 제이가 안무 짰다고 하더니, 돌고래 쇼 뭐냐고!

┖ 돌고래 숔ㅋㅋㅋㅋㅋ

그리고 당연하게도 훌륭한 무대의 역풍은 애먼 토트윈에게로 향했다.

토트윈이 앨범 콘셉트를 아직 밝히지 않았기에 다양한 추측과 우려를 빙자한 조롱이 이어진 것이다.

― 토트윈 불쌍해서 어떡하냐. ㅠ 7월까지는 D.D. 애들이 가져가고, 8월은 LAK가 씹어 먹을 것 같은데……. 그냥 피해 가지 그랬어. ㅠ

― ㄹㅇ 딱 봐도 LAK랑 콘셉트 겹칠 것 같은데, 어떡하냐. 애들 숙소에서 LAK 무대 보고 벌벌 떨고 있는 거 아니야?

┖ 다 늙어 빠진 LAK 보고 토트윈이 그럴 리가요? ㅎ

┖ 이브들 또 방어하러 나왔네. ㅋㅋㅋ 들어가라~.

당연히 LAK 팬들뿐만 아니라, 이브들도 같은 심정이기는 했다.

토트윈이 질 것 같다는 생각보다는 LAK와 콘셉트가 겹치면 어떡하나 싶은 우려에서였다.

아직 LAK와 같은 콘셉트로 싸우기에는 체급이 낮다는 의견도 꽤 많이 나왔고 말이다.

하지만.

토트윈이 컴백하기 전 진행한 인터뷰 덕분에 팬들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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