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화
109화
“이건…… 로드의 힘인데.”
뱀파리스의 3장로 ‘데 캄’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링크’를 걸어 놓았던 뱀파리스 하나가 움직임이 없어서 확인한 참이었는데.
거기서 생각지도 못한 수확을 거둔 셈이었다.
“캇캇캇!”
데 캄은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보랏빛으로 변한 눈을 번들거렸다.
“운이 좋았군.”
김지원은 분명 제이가 뱀파리스로 만든 녀석이었다.
사회적으로 매장당한 놈이기도 하고, 이제 막 뱀파리스가 되었기에 사고나 치지 않을까 싶어서 링크를 걸어 두고 감시하려 했는데.
“인간 사냥이나 다니던 녀석이 더 좋은 걸 사냥해 올 줄이야.”
링크는 걸어 놓은 대상의 움직임도 볼 수 있었고, 정신도 공유할 수 있는 카테이아 대륙의 술법 중 하나였다.
감시 용도이기에 비뱀륜적인 술법이라며, 뱀파이어 쪽에서는 금지시켰으나.
그런 제약에서 벗어난 뱀파리스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고, 그 덕분에 김지원과 서은우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낱 뱀파이어인 줄 알았던 서은우가 로드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캇캇캇.”
데 캄은 웃음을 터뜨리며, 로드의 힘을 가지고 있던 괴물의 얼굴을 떠올렸다.
뱀파이어와 적대 관계인 뱀파리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자 마족 내에서도 수위를 다투던 강자.
그의 힘이 지구의 뱀파이어에게 넘어왔다는 사실은 한 가지 사실을 의미했다.
“죽었구나. 에르제.”
로드의 힘을 발견한 것보다 더 희소식이었다.
솔직히 자신처럼 에르제도 지구에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게 완전히 불식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흐음.”
그렇게 생각하던 데 캄은, 서은우가 보인 로드의 힘을 떠올리며 곰곰이 생각했다.
‘서은우가 에르제 본인일 가능성도 있나?’
그렇게 중얼거리던 데 캄은 잠깐의 생각 이후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지. 그러기에는 힘의 밀도가 너무 커.’
서은우는 확실히 에르제가 아니다.
그릇의 차이가 명백했고, ‘매혹의 눈’을 썼을 때에도 힘의 밀도가 너무도 달랐다.
자신이 직접 카테이아 대륙에서 에르제의 힘을 목도했기에 자신 있게 내릴 수 있는 결론이었다.
‘그렇다면 에르제는 죽었고, 운 좋게 서은우란 놈에게 그 힘이 갔다는 소리이겠군.’
데 캄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혀를 날름거렸다.
‘서은우를 적합자로 판단한 건가.’
로드의 힘은 사용자가 죽으면, 다른 적합한 뱀파이어에게 흘러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카테이아 대륙의 초창기부터 존재했던 뱀파이어는 로드를 그렇게 선출했고, 선출된 로드가 일족을 번영시켰다.
모든 뱀파이어를 굴복시킬 수 있는 힘이었기에 순혈에 의해 세습되지 않도록 만들어진 시스템.
자신과 같은 시대를 살아온 에르제도 어렸을 때 힘을 받아 자연스럽게 로드가 된 케이스였다.
‘물론 서은우도 에르제처럼 성장하고, 힘을 더 잘 다루게 되기는 하겠지만.’
데 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래도 에르제 같은 괴물이 될 것 같지는 않군.’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데 캄의 결론이었다.
마치 인간의 몸인 것처럼, 서은우는 뱀파이어치고도 작은 그릇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의문이었다.
어째서 로드의 힘은 서은우를 적합자로 판단한 것인지.
“쓰읍.”
데 캄은 숨을 들이마시며, 피가 담긴 잔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욕심이 피를 빨아들이며 순식간에 자라났다.
‘나라면 더 잘 다룰 수 있는데 말이지.’
그러나 탐욕이 커진 만큼, 현실적인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로드의 힘은, 적합자가 죽으면 다른 적합자를 알아서 찾아가는 시스템으로 이루어진다.
즉, 서은우를 죽여 봤자 그 힘이 자신에게 오지는 않을 거란 뜻이었다.
‘그렇게 될 거였으면, 서은우가 아니라 진즉에 나한테 힘이 왔겠지.’
데 캄은 빈 잔을 기울이다가 바닥에 툭 떨어뜨렸다.
탱! 태애애앵!
대리석 바닥에 금속 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벽 쪽으로 데구르르 굴러갔다.
‘내가 로드의 힘을 가지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나.’
서은우를 구슬려서 자발적으로 힘을 바치게 만드는 방법.
‘난이도가 최악이군.’
일단 자신은 서은우와 접점이 전혀 없었다.
구슬리려면 일단 얼굴을 마주 보거나, 적어도 영상 통화로 대화를 나누어야 할 게 아닌가.
‘그럼 제3자를 이용해야겠지.’
데 캄은 손가락으로 의자를 타다닥 두들겼다.
“흐음.”
이럴 때 유용한 녀석이 있긴 하다.
서은우와 접점이 있으면서 자신에게도 충성하는 녀석이.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제이는 자신에게 충성심을 보이고 있지만, 그만큼 로드에게도 충성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게 문제야.’
로드의 힘을 갖는다는 것은 뱀파리스 로드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것과 같다.
즉 제이가 자신의 계획을 알게 된다면, 로드에게 일러바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데 캄은 치미는 짜증에 얼굴을 구겼다.
‘거동도 제대로 못 하는 로드가 무슨 로드라고 충성을 바치고 있는 건지.’
이미 데 캄의 머릿속에서는 로드가 행했던 은혜가 지워져 가고 있었다.
지구에 온 것도 400년이 넘어가니, 시간에 의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여기면서 말이다.
‘뭐 얼마나 대단한 술법이라고.’
로드의 힘을 원하는 탐욕이, 서서히 데 캄의 모든 생각을 잠식해 가기 시작했다.
‘차라리 내가 로드의 힘을 먹고 뱀파리스와 뱀파이어의 로드가 되는 게 맞아.’
언제까지고 로드의 애완 박쥐 노릇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로드의 힘을 얻고, 에이리스의 목숨도 끊는다.’
그리고 뱀파리스 로드의 힘도 자신이 갈취한다면, 완벽한 정점에 설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미친 황제에게 당했던 걸 그대로 돌려줄 수도 있겠군.’
“캇캇캇!!”
데 캄의 희망찬 웃음소리가 공동에 크게 울려 퍼졌다.
지금은 에이리스에게 대항할 힘이 부족하지만, 로드의 힘만 있다면 충분히 찍어 누를 수 있다.
그런 계산이 서자, 데 캄은 의자에서 비대한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는 김지원과 서은우가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리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
‘제이한테는 그걸 전해서 빚 정도만 지워 두고.’
배신의 우려가 있으니 김지원에 대한 조치까지는 맡길 수 없을 터.
‘차라리 라하임을 구슬려야겠군.’
녀석과 자신의 목표는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데 캄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육중한 몸을 이끌고 문으로 향했다.
쿵, 쿵.
걸을 때마다 묵직한 소리가 났다.
끼이이익―.
돌로 된 문이 열리고, 그 앞에 서 있던 두 명의 뱀파리스가 보였다.
데 캄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그중 하나에게 물었다.
“라하임은 어디에 있지?”
* * *
7월 27일.
LAK의 컴백 날짜가 다가오고 있는 현재, 에르제와 다른 멤버들은 다른 의미로 초조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서 안단테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였고.
이내 거실에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서야, 팽팽한 긴장감을 풀어냈다.
‘다 됐어?’
‘어. 단테 핸드폰 알람 울릴 때까지 5분 남았으니까 아직 여유 있어.’
‘카메라 세팅은?’
‘내가 했어.’
‘오케이.’
스파이 영화처럼 은밀하게 대화를 주고받은 그들은, 서로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곤 각자 정한 자리로 향했다.
태현우와 민주혁은 거실의 커튼 뒤로 숨었고, 윤치우는 소파와 에어컨 사이의 작은 틈에 몸을 구겨 넣었다.
“…….”
그리고 에르제는 숨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거실 테이블 밑 공간에 몸을 웅크렸다.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아무래도 토트윈은 몰래카메라 중독에 걸린 게 틀림없었다.
윤치우 때는 일부러 하루 종일 모르는 척하다가 저녁에 깜짝 놀라게 하는 방식을 택하더니.
‘이번에는 새벽이냐.’
24시간을 참 알차게 보내는 녀석들이다.
째깍, 째깍.
초침 소리가 느릿느릿하게 지나가고, 새벽 6시 30분이 되었을 때.
― 굿 모니잉~!! 빠라바바바바바바바바바!!
정신 나갈 것 같은 시끄러운 알람 소리가 숙소 안을 가득 메웠다.
에르제도 조용히 귀를 막았다.
보지 않아도 다른 멤버들도 같은 모습일 거다.
“으웅…….”
곧 안단테가 자고 있는 방 안에서 알람을 끄고 뒤척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곧.
“허어억……!!”
놀라서 잠에서 깨는 소리가 들렸다.
“아……. 꿈이었구나.”
혼자서 중얼거리는 걸 보니, 뭔가 무서운 꿈이라도 꾼 모양이다.
‘……괜히 양심에 찔리는데.’
덕분에 몰래카메라가 더 실감 날 것 같기는 한데, 심장마비로 쓰러지지는 않을는지…….
조금 걱정스러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조심스럽게 방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어……?”
거실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안단테가 “헉.” 하는 소리를 내며 살금살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혀, 형들?”
보통 때 같았으면 켜져 있어야 할 거실 불도 꺼져 있고, 아무런 인기척이 없으니 불안해하는 모습.
“아무도 없어여……??”
목소리도 불안함으로 가득 차 있다.
“머, 먼저 연습…… 갔나……?”
다른 방도 다 살펴본 안단테는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일부러 소리를 내어 중얼거렸다.
공포심을 덜어 내기 위한 일환인 듯했다.
“이, 일단 불이라도.”
어둠에 익숙해졌는지 안단테가 거실로 다시 나와서 불을 켰다.
틱, 틱, 틱.
“왜, 왜 이래.”
거실 불은 켜지지 않았다. 숙소는 여전히 어둠에 잠식되어 있었다.
열심히 다른 방과 화장실 불도 켜 보는 안단테였으나, 불이 들어올 리 없었다.
태현우가 낄낄대며 차단기를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흐읍.”
숨 참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빨리 숙소를 벗어나기 위해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는 소리도.
대충 아무 옷이나 걸쳐 입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거실을 통과하는 바로 순간.
파아아앙―!!
커튼에 숨어 있던 태현우와 민주혁이 폭죽을 터뜨리며.
“와아아악!!”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튀어나왔고.
소파에 숨어 있던 윤치우가 좀비 흉내를 내며 삐걱삐걱 안단테에게로 걸어갔다.
“호합다더러두라……!!”
안단테가 의미 불명의 소리를 내며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꽉 감은 채 얼굴을 무릎 사이에 파묻었다.
“아하하핰핰!!”
잔뜩 신난 태현우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핰핰, 못 참겠다.”
“많이 놀랐어??”
윤치우가 걱정스럽게 안단테의 곁으로 가서 물은 뒤에야, 녀석이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안단테의 눈가에는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
“아……! 아아아아!! 진짜!!”
그러고는 뒤로 널브러져서 안도와 공포가 섞인 소리를 내질렀다.
“놀랐잖아여!!”
흐어엉, 하는 소리를 내뱉은 안단테가 태현우를 노려보았다.
“이거 형이 계획한 거져!!”
“응. 나야.”
태현우가 당당하게 가슴을 펴며 말하자, 안단테가 어이없다는 듯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눈동자에 물음표를 만들었다.
“근데 은우 형은여?”
“은우?”
태현우가 안단테를 테이블 쪽으로 오게 유도하며 말했다.
“은우 여기 있어.”
“?”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휙휙 돌리는 안단테의 발을 테이블 밑에 숨어 있던 에르제가 손으로 꽉 붙잡았다.
“히이익!!”
이미 충분히 놀란 줄 알았는데, 또 놀랄 줄이야.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안단테는 그제야 테이블 밑에 숨어 있던 에르제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 에르제가 하하, 웃으며 말했다.
“생일 축하해.”
“아!”
솔직히 생각보다 더 재미있기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