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화
105화
아직 더빙이 완벽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카 엔터테인먼트와 토트윈에 비상이 걸렸다.
그렇지 않아도 아육시 출신 그룹이 ‘D.D(Dead Dragon)’라는 이름으로 데뷔를 하고, 프로그램 보상 차원에서 전국 투어까지 한다고 하는데.
거기다 토트윈의 3집 컴백 일정과 비슷한 시기에 강력한 경쟁 그룹인 LAK까지 컴백을 하겠다고 나온 것이다.
“우리 쪽에서 먼저 컴백 관련 기사를 뿌렸어야 했어.”
“내부 정보가 샌 거야?”
민주혁이 묻자, 윤치우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아. 그게 아니면 저렇게 시기 좋게 치고 들어오지는 못했을 것 같거든.”
‘제이의 짓이군.’
에르제는 대충 상황을 파악했다.
‘휴전 제의는 인간사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어쩐지, 순순히 휴전 제의를 해 온다고 생각했다.
아육시에서 물 먹었던 일을 제이는 그대로 넘어갈 생각이 없었던 거다.
윤치우가 멤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주혁이도 저번 주부터 더빙 진도 많이 뺐고, 은우도 예능 출연 하면서 그쪽 일은 잘해 주고 있으니까…… 괜찮을 것 같은데, 문제는 3집 앨범이네.”
윤치우는 말꼬리를 흐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일단 우리가 먼저 시작을 해 줘야 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최근 3집 앨범과 관련해서 회사에서 내려온 지침은 2곡을 먼저 토트윈이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곡의 완성을 시켜 달라는 뜻은 아니었고, 대략적인 앨범의 방향성을 토트윈에게 일임하겠다는 것.
2곡의 콘셉트를 미리 정해 주면, 나머지 곡은 그에 맞춰서 회사에서 작업하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안단테가 떠맡은 상황.
“일단 우리끼리 회의했을 때, 2집이랑 유기성을 생각해서 이별로 콘셉트를 잡기는 했는데…….”
안단테는 테이블 위에 엎어졌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섬머송이 나을지도 몰라서 계속 고민이네여.”
“그건 그래.”
태현우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리고 LAK도 8월에 컴백한다고 했으니까 분명 섬머송을 들고 나올걸. 왜, 그런 거 있잖아. 바다, 여행 그런 느낌으로 청량 콘셉트?”
“완전 동의해여.”
안단테가 엎어진 채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테이블에 붙은 녀석의 볼이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가 늘어나길 반복했다.
“피부 상해.”
그 모습에 윤치우가 억지로 안단테의 어깨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여행이라…….’
에르제는 멤버들의 대화를 종합하며, 전반적인 그림을 머릿속에서 그려 냈다.
카테이아 대륙에서의 일은 그쪽에서 끝맺는 게 좋겠다고 지서후와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노래와 관련된 일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그쪽에서 만든 곡이 이번 2집 앨범에 녹아 있기도 했으니까.
‘……그때도 이별 노래들이 꽤 있었는데.’
하지만 지구에서 써먹기에는 조금 애매했다.
사랑에 대한 이별 노래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전쟁이나 가난 등으로 인한 가족 간의 이별 노래가 더 성행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아이디어를 조금만 첨가하면 되는 건데…….’
지구에서 있을 법한 아이디어.
‘바다, 청량, 여행, 파란색, 하늘, 이별…….’
지금까지 멤버들의 입에서 나온 모든 키워드를 떠올리던 에르제가 이내 두 단어를 조합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이별 여행 어때?”
“엉?”
이제까지 말이 없던 에르제의 말에 멤버들이 귀를 쫑긋했다.
“지금 말한 거 은우야?”
여태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수동적인 모습이 강했던 에르제였기에 지금의 적극적인 모습이 낯선 탓도 있었다.
이전에는 ‘인지도’가 목적이었던 만큼 보통 이럴 때 가만히 듣고만 있는 타입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성공의 열망으로 가득한 에르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여름 시기에 맞춰서 여행 가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꼭 신나야 할 필요는 없잖아. 인간들의 취향은 다양한 편이고.”
“그렇기는 한데, 다수를 공략하는 게 유리한 건 사실이야.”
민주혁이 현실적인 말을 꺼냈지만, 나머지 멤버들은 더 이야기해 보라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우리의 인지도가 낮을 때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곡이 좋으면 다수가 들어 줄 것 같아서.”
“맞는 말이네여.”
안단테가 동의하고 나섰다. 그러더니 무언가 아이디어를 떠올린 듯,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역시! 은우 형 아뱅!”
안단테가 무언가를 슥삭슥삭 써 내려갔고, 이내 그것을 멤버들에게 보여 주었다.
“라디오?”
“네! 이별 여행을 떠났다고 생각하고 상상을 해 봤는데, 앨범 자체를 라디오 형식으로 만드는 건 어때여?”
“오……. 괜찮은데? 옛날 뮤직비디오 같은 거 보면, 이별하고 라디오 듣는 장면도 많이 나오잖아.”
“이별 여행을 하면서 듣는 라디오, 이런 콘셉트? 주혁이는 어때?”
“흠…….”
이번에 더빙하면서 알을 깨고 나오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여전히 현실적인 부분을 고려하는 그의 성격은 여전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긍정적인 현실이었다.
“LAK도 그렇고, 이번 아육시 데뷔 앨범 들어 보니까 그쪽도 교복 청량 콘셉트더라고. 처음 기조를 못 버렸는지, 무슨 이고깽 같은 콘셉트이기는 한데……. 여름 분위기에는 잘 맞는 것 같기는 해.”
“이고깽이 뭐야?”
“이세계에 고등학생이 가서 깽판 치는 거.”
에르제의 물음에 친절하게 대답해 준 태현우가 말을 이었다.
“하긴 아육시에서 대놓고 우리 잡겠다고, 판타지 세계관을 은근슬쩍 가져다 쓰고 그랬지. 마왕 잡는 용사 느낌으로. 이고깽이라고 하니까 느낌 딱 온다.”
“내가 볼 때는 구린데, 매니아 층을 확보하기에는 그런 것도 괜찮긴 하니까.”
민주혁이 대답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아무튼, 우리가 그런 콘셉트로 가면 시기가 겹치는 것도 크게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아. LAK가 1군 아이돌이기는 한데, 초동 밀리는 건 팬들 숫자에서 차이가 나니까 어쩔 수 없고. 그러면 음원 성적에서 누르는 수밖에 없으니까.”
“오케이. 그러면, 라디오 콘셉트로 잡고 조금 더 브레인스토밍을 해 보자.”
리더답게 상황을 정리한 윤치우가 이후에도 하나씩 멤버들의 아이디어를 모았다.
인터넷에 라디오와 관련된 지식을 검색해 보기도 하고, 앨범의 전체적인 배열까지 고려하면서 시안을 짰다.
어느새 민주혁이 안경을 끼고 돌아와서 노트북을 펴고 PPT까지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온전히 반나절을 투자한 결과.
“미쳤다.”
완성된 그림을 보고, 태현우가 저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에르제를 보며 엄지를 세워 주었다.
“야! FM이랑 AM은 진짜…… 획기적이야.”
라디오에 대한 지식을 검색한 것은 에르제였는데, 거기서 영감을 얻어서 좋은 아이디어를 낸 것이었다.
열정적으로 변한 에르제의 태도는 토트윈 내에도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냈다.
“근데 이렇게 되면, 3곡을 우리가 만들어야 할 텐데……. 단테, 괜찮겠어?”
“어차피 라디오 형식으로 이어지니까 충분히 할 수 있어여!”
안단테가 주먹을 불끈 쥐며 아래로 끌어당겼다.
“오늘부터 바로 시작할게여!!”
조금 처져 있던 부산 숙소의 분위기가 어느덧 활기차게 바뀌었다.
“그럼 단테가 완성시켜서 우리한테 주면, 그때 주혁이랑 내가 안무 짜고, 현우랑 은우가 가사 쓰는 걸로 하자.”
“아싸, 은우랑 둘이 작업한다!”
태현우가 신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LAK 컴백은 8월 초, 그리고 토트윈은 8월 말. 그 전에 판을 깔아 두는 건 아육시 데뷔 멤버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여름 시기의 아이돌 전쟁이었다.
‘8월 말까지 대략 2달 반……. 할 수 있다고는 했지만, 결코 여유롭지는 않아. 나중에 마스터링이랑 뮤비 찍는 기간까지 고려하면 빠듯해.’
에르제는 작곡 프로그램을 곧장 실행하는 안단테를 바라보다가 어깨를 툭 쳤다.
“잠깐만 와 봐.”
“??”
안단테가 무슨 일인가 싶어서, 에르제를 따라 방으로 들어왔다.
“왜여?”
안단테가 물었지만, 에르제는 대답 없이 서랍을 열었다.
그곳에는 에르제의 완전 기억 능력에 의해 복원된 10곡의 악보가 담겨 있었다.
“이곳에 와서 틈틈이 만든 곡이야. 지구……. 아니, 이곳 정서랑 맞을지는 모르겠는데 혹시 도움이 될까 싶어서.”
“엇.”
안단테가 놀랐다는 듯이, 악보를 받아 들었다.
카테이아 대륙의 방식이 아닌, 지구의 방식으로 악보를 작성했기에 안단테가 알아보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거기서 괜찮은 소스 있으면 얼마든지 써도 돼.”
“……이거 저 주셔도 되는 거예여?”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어차피 카테이아 대륙에서는 한 번 빛을 발했던 곡이었다. 그게 지구에서도 먹힐 수 있다면, 언제든지 내어줄 수 있었다.
‘어차피 멤버 혼자 독식하는 그룹이 되는 건 의미 없어. 오히려 팬들끼리 싸움만 부추기는 꼴이야.’
만약 자신이 작사뿐만 아니라 작곡까지 한다고 해 봐라.
물론 그룹 전체를 좋아하는 팬들도 있지만, 개인 팬도 무수히 많은 게 아이돌 판이었다.
같은 팀끼리 칼을 겨누는 모습은 뱀파이어와 뱀파리스, 그 둘의 관계로 충분했다.
‘그러니까 내가 쓴 곡들이 안단테의 작곡 실력 향상에 양분이 되는 게 더 좋아.’
그렇게 생각한 에르제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물론 완전히 똑같이 쓰면 내 이름으로 낼 거야. 그러니 알아서 재조립해서 네 방식대로 곡을 만들어.”
“…….”
조심스럽게 쥐고 있던 안단테의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매번 형들한테 도움이나 받고…….”
악보 끝이 조금 구겨졌다.
“그래도…… 자존심 때문에 거절하지는 않을게여. 이번 앨범은 꼭 명반으로 만들 거예여.”
안단테는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더욱 또렷해진 눈동자로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그래, 이렇게 안단테가 의지를 다졌다면 됐다.
지금까지 함께해 온 팀이었다.
토트윈으로 정상에 서는 것. 이제는 그게 아니면, 별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 * *
시간은 토트윈이 바빠진 만큼 쏜살같이 흘러갔다.
3집 앨범의 가닥을 잡고 작업을 시작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게 흘러서 어느덧 7월 중순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더빙의 대장정도 슬슬 끝이 보인다는 말과 같았다.
[ 토트윈이 합류한 ‘Dreams on stage’, 초읽기에 돌입한 토트윈의 컴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
[ 8월 초, ‘Dream on stage’ 더빙판 방영 예정. 토트윈에게 과연 독일까 약일까? ]
‘Dreams on stage’의 한국어 더빙판이 곧 개봉된다는 소식에 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대부분은 예상했던 대로 부정적인 반응이었다.
“매번 있는 일이라 그냥 그러려니 하네.”
태현우가 특유의 긍정 바이브를 풍기며 스마트폰을 끄고 소파로 던졌다.
“매번 우리가 엮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라.”
그렇게 말하는 태현우의 말 속에는 ‘얼마나 더 증명해야 하느냐’는 불만이 담겨 있었다.
“이번 3집 앨범으로 앞으로 다신 그런 말 못 하게 만들면 돼.”
민주혁이 드물게 자신 있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이 우리 음원 성적에 도움을 줄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3집 앨범 나오기 전에 LAK랑 싸워 줄 거야.”
그렇게 말한 민주혁은 태현우가 던진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기사 하나를 검색해 보여 주었다.
“얘네들도.”
[ 아육시 출신 D.D. 전국 투어 성공적으로 완료!
‘이제는 본격적으로 음악 방송 활동에 전념할 계획입니다.’
아이돌 지각 변동 예고.
‘D.D.’와 ‘LAK’의 경쟁은 과연 누구의 승리로? ]
분명 8월 말 컴백이라는 기사를 냈음에도 그 기사에는 토트윈에 대한 언급조차 없었다.
자존심이 상할 법했지만, 에르제와 멤버들은 그저 웃어넘겼다.
그만큼 이번 3집 앨범에 자신이 있어서였다.
‘한국어 더빙판도 감독이 만족할 정도로 잘 뽑혔지만.’
이번 앨범은 그것을 뛰어넘을 예정이었다.
절치부심한 안단테가 만든 3곡은 역대급 퀄리티였고, 에르제가 낸 아이디어도 곡 안에 완벽하게 녹아든 상태였다.
‘이번에는 확실하게 씹어 먹는다.’
입꼬리를 올리며 송곳니를 드러내던 에르제가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뭔가 오랫동안 잊어 먹은 게 있는 것 같은데.’
뭐……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니,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