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화
104화
민주혁이 바뀌기 시작하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에르제는 녹음이 끝나고 지서후를 기다렸다가 술 한잔하자고 말했다.
“나랑? 왜?”
지서후는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진지한 에르제의 표정을 보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고민이라도 있는 건가……?”
지서후는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리다가 이내 에르제에게 따라오라고 말했다.
“매니저한테 허락은 받은 거지?”
“당연하지.”
“그렇다면야 상관없지. 네가 싸우려고 술 먹자고 말할 뱀파이어는 아닌 것 같으니까.”
지서후는 ‘그래도 우린 연예인이다’라는 이유로 에르제를 술집이 아닌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늑대인간들이 부산에 모여 있다고 하더니, 지서후도 이쪽에 집이 있는 모양이었다.
지서후는 스튜디오까지 몰고 왔던 자신의 차로 에르제를 태워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남자를 집에 들이는 건 또 처음이네.”
지서후가 헛웃음을 흘리며 신발을 벗고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카테이아 대륙에서는 지저분하게 살더니 지구에서는 인간 생활에 많이 적응을 했는지 내부가 아주 깔끔했다.
에르제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생각보다 청결하네?”
“그건 옛날이고. 이제는 그런 인식 안 먹힌다.”
“그러기에는 여전히 몸에서 냄새나던데.”
“진짜?”
지서후가 팔을 들어 자신의 몸 냄새를 킁킁 맡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냄새 안 나는데? 무슨 냄새가 난다는 거야?”
“담배 냄새랑 늑대인간 냄새. 한 3일은 안 씻은 냄새가 나. 춤 연습하고 난 직후의 연습실 같아.”
“……뭔지 정확히 모르겠는데, 내가 기분이 안 좋다는 건 알겠다.”
지서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투덜거렸다.
“매일 샤워하는 늑대인간한테 뭔 소리를 하는 건지.”
그렇게 말하고는 일부러 에르제 주위에 와서 코를 찡긋거렸다.
복수하겠다는 심보가 엿보이는 코의 움직임이었다.
“나보다는 네가 더 냄새나는 것 같은데? 동굴에서 한 3년 묵은 냄새 같다?”
에르제가 그 말에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지서후의 얼굴을 가리켰다. 정확히는 입 쪽을.
“그거 네 인중에서 나는 냄새야.”
지서후는 말의 의미를 알아차리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 마디를 안 지네.”
“지는 거 싫어해.”
에르제가 담담한 말투로 대답하자, 지서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냉장고에서 맥주 두 캔을 꺼내 왔다.
“더 필요하면 네가 알아서 꺼내 먹어라. 손님 대접은 딱 여기까지야.”
“혹시 속도 좁아?”
안주도 내오지 않는 주인장의 센스에 에르제가 혀를 찼다.
“카테이아 대륙에서 여태까지 어떻게 늑대인간들을 관리했는지 궁금하네. 그러다가 우두머리 자리에서 쫓겨난다.”
“카테이아에 있을 때야 카리스마도 있었고, 전통적으로 순혈이 자리를 세습……? 잠깐만.”
지서후는 맥주 캔을 따다 말고 에르제를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내가 우두머리였다고 말했던가?”
“그렇게는 말 안 했을걸.”
에르제가 맥주 한 모금을 홀짝 마시자, 지서후가 재차 물었다.
“그런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어?”
그 말에 에르제가 피식 웃었다.
지구에서 넘어왔다고 했을 때부터, 에르제는 진즉 지서후의 정체를 눈치채고 있었다.
‘파르만 덕분이긴 하지만.’
오늘 지서후의 냄새를 가까이서 맡고 난 이후, 녀석의 정체를 더욱 확실하게 알아차린 에르제였다.
“네 이름도 아는데?”
“……??”
못 믿겠다는 듯이 지서후가 쳐다보자, 에르제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게툰 부족 우두머리 뮬.”
“!!”
늑대인간들은 부족이라는 이름 아래 여러 무리로 나뉘어 생활했는데, 게툰 부족은 그들 모두를 통솔하는 우두머리 부족이었다.
그리고 뮬은 게툰 부족의 우두머리이자 모든 늑대인간의 정점에 위치한 녀석이었다.
뱀파이어로 치자면, 자신과 동급이라는 뜻이다.
‘자유분방한 성격이라고는 들었지만, 인간의 몸에 들어와서도 똑같을 줄이야.’
에르제가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켜자, 지서후가 굳은 얼굴로 입술을 씹었다.
“……설마 내 기억을 훑었냐?”
“그럴 틈이 없었을 텐데.”
“아, 그건…… 그렇지.”
여전히 감을 잡지 못하는 듯해서 결국 에르제가 설명했다.
“네가 그랬잖아. 지구로 넘어왔다고. 나도 마찬가지거든.”
에르제를 바라보는 지서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잠깐만. 그럼, 넌 누군데……?”
누구냐고 묻는 말에 에르제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뮬이라면, 굳이 자신의 정체를 숨길 이유가 없을 듯했다.
오히려 동급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게 앞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수월할 듯했으니 말이다.
“에르제.”
“에르제라고??”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에 에르제가 살짝 힘을 끌어올렸다.
로드의 힘인 ‘매혹의 눈’이 존재를 드러냈다.
“……진짜네?”
검은 안개 속에서 뜬 눈알을 보며, 지서후가 맥주 한 캔을 한꺼번에 목구멍 속으로 때려 넣었다.
그러고는 숨을 한 번 참았다가 터뜨리듯 말을 쏟아 냈다.
“너도 신이 보냈어? 언제? 혼자만? ……옆에 그림자처럼 숨어 있던 건 여기 와서 늘린 일족이야?”
“하나씩 물어.”
에르제는 혀를 찼다.
이거야 입장이 완전히 바뀐 꼴이 되지 않았나. 원래는 자신이 물어볼 것이 있어서 왔는데 말이다.
‘……뭐 뮬이라고 말하면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그래도 지구에서는 늑대인간과 이왕 화해를 하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였다.
다행히 저쪽 우두머리인 뮬도 자신과 같은 생각이고.
‘어쩔 수 없지.’
에르제는 이야기가 조금 길어지겠다고 생각하며, 그동안 있었던 일을 짧게 풀어냈다.
물론 드워프인 파르만에게 들었던 이야기도 포함해서였다.
“하…….”
모든 이야기를 들은 지서후가 헛웃음을 흘리며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더빙 일은 신선하겠다고 생각해서 하겠다고 했더니,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이야.”
그렇게 말한 지서후는 냉장고에서 맥주를 더 가져왔다. 이번에는 무려 6캔이었다.
“오늘 나한테 술 먹자고 한 것도 이거 말해 주려고 그랬던 거냐?”
“아니. 그건 아니고, 따로 물어볼 게 있었어.”
“……그걸 묻기 위해서 앞의 이야기가 필요한 거였군.”
눈치 빠른 지서후의 말에 에르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네가 지구로 온 건 100년 전이라고 했지?”
“어. 대충 40년은 허송세월로 까먹었지만.”
“그럼…… 남은 60년은 일족을 늘리고, 그들을 모은 거잖아?”
“지금은 우두머리 자리에서 물러나서 거의 이방인 수준이긴 해.”
지서후의 시원시원한 대답에 에르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유로워 보였던 건 우두머리로서의 짐을 내려놔서인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
우두머리에서 내려왔다고 해도 완벽히 자유로워지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더욱 궁금해진 에르제는 빠르게 물었다.
“네가 카테이아 대륙과 이곳에서 일족들을 통솔한 방식이 궁금해.”
“……?”
지서후가 이해를 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뭔가 거창한 것일 줄 알았는데, 뜬금없는 질문이 날아와서였다.
“그건 왜?”
“그냥. 최근에 생각하고 있는 게 있어서. 혹시 말해 주기 어려운 얘기인가?”
“그건 아냐. 오히려 말해 주기 쉬운 이야기라서 당황했네.”
지서후는 고개를 저으며 에르제가 궁금해할 만한 것들을 이야기해 줬다.
“우두머리라고는 해도 그들을 모두 관리해야 하는 위치는 아니라서 나는 자유롭게 풀어 주는 편이었어. 너도 알잖아. 늑대 놈들 성정이 워낙 거칠어야지.”
지서후가 피식 웃었다.
“뭐, 너희보다 숫자가 훨씬 많아서 하나하나 관리하지 못하는 것도 있었고. 그래도 뱀파이어처럼 특수 능력이 없는데도 전쟁에서 딱히 밀리지 않은 거 보면……. 뭐, 그 방식에 후회는 없어.”
“그럼 이곳에 와서는?”
“음……. 처음 와서는 나도 정신이 없었지. 미친 황제 때문에 동족들이 모조리 죽어 나가고, 어쩌다가 나만 이곳에 살아서 오게 된 거니까. 다른 동족들을 찾으려 했는데, 여긴 죄다 인간들 천지더라.”
지서후가 깨끗하게 다듬은 자신의 손톱을 매만졌다.
“처음에는 미친 황제 때문에 인간에 대한 증오심만 커져서 미친 늑대처럼 날뛸까 했는데……. 다른 차원에서 뭐 하는 짓인가 싶어서 그만뒀고, 그냥 새롭게 일족을 늘리는 데에만 집중했어.”
지서후는 “아!” 하고 손가락을 튕기더니, 방에 들어가서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챙겨 나왔다.
그가 지금까지 배우로서 쌓아 온 커리어가 모두 담긴, 앨범 형태의 책이었다.
“일족들 먹여 살리려면 어쩔 수 없겠더라고. 어떻게 운이 좋아서 배우 일을 시작하게 됐는데, 생각보다 적성에도 맞고……. 돈도 꽤 잘 버는 축에 속하기도 하고?”
“……돈?”
“어어. 여기는 말이야. 땅에도 주인이 다 있더라.”
“……?”
지구의 현실적인 이야기로 넘어오고, 에르제의 흥미가 점점 동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겠냐. 일족들이 부족 단위로 모여 살 터전을 만들려고 했더니, 죄다 자기들 땅이라고 하는데.”
지서후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돈으로 사는 것 말고 방법이 없더라고.”
“……그래서 땅을 산 거야?”
“대충 일족들이 모여 살 수 있는 부지는 내 자식들이 해 줬어. 일단은 대충 나무로 집 짓고 사는 것 같더라고.”
지서후가 필모그래피를 ‘자식’이라고 부르며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러고는 씁쓸한 눈빛으로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너도 벌 수 있을 때 벌어 둬. 보니까 너도 일족들이 있는 것 같던데……. 녀석들 살 터전은 만들어 줘야 할 거 아니냐. 명색이 로드인데.”
그러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씩 웃었다. 늑대인간 특유의 기다란 송곳니도 깎아 냈는지 치열이 고르게 되어 있었다.
“그 이후에야 지들 알아서 사는 거지. 나도 배우로서 내 삶을 살고 싶어서 이제 우두머리 일에서도 손을 떼고 이렇게 살고 있는 거고.”
“살아갈 터전…….”
에르제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분명 1집 앨범의 정산금은 작지 않았으나, 에르제는 일족들의 숫자를 떠올리고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더 많이 필요해.’
그러니까 더 열심히 아이돌 활동을 해야 한다. 그리고 더 성공해야 한다.
딱, 일족들이 살아갈 공간을 만들어 줄 때까지만.
‘그러면, 이후에는…….’
에르제는 열망이 깃든 눈으로 지서후를 바라보았다.
‘나도 다시 꿈을 꿀 수 있을까.’
로드라는 책임 때문에 온전히 하지 못했던 음유시인으로서의 꿈을?
― 노래가 하고 싶었을 뿐이라고요!!
자신이 맡았던 늑대인간의 대사가 절절하게 귓가에 울렸다.
‘해도 괜찮을까.’
그동안 일족들만 생각하던 행보가 자꾸만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에르제의 생각을 읽었는지 지서후가 취기 오른 얼굴로 말했다.
“너무 보호만 하면 제대로 못 큰다? 그러다가 너도 망가져.”
“내가 망가진다고?”
“너, 하고 싶잖아. 아이돌.”
그렇게 티를 내고 있었던가?
‘정확히는 노래를 부르고 싶은 거지만.’
에르제가 픽 웃어 버리자, 지서후가 맥주 캔을 내려놓으며 따라 웃었다.
“하고 싶은 건 해. 나처럼 로드에서 내려오던가.”
“……하하.”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데, 지서후가 쉽게 말하니까 쉽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쉬고 싶기는 해.”
에르제가 꾹 담아 두었던 속마음을 털어놓자, 지서후가 손을 내밀었다.
“카테이아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운 놈들의 우두머리한테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에르제가 악수를 하듯 내민 지서후의 손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 그가 억지로 에르제의 손을 붙잡았다.
“친구하자.”
“친구?”
“어어. 그쪽 세계의 일은 그쪽 세계에서 끊어 내자고.”
“…….”
생각에 잠겨 있던 에르제가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마침 자신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지 않았던가.
“좋아.”
인간이 아니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구에 와서 만든 첫 친구였다.
‘……아니, 카테이아 대륙에 있을 때도 친구는 없었구나.’
유일한 친구였던 눈먼 소녀는 일찍이 죽었으니까.
“같이 달구경이나 하자고.”
똑같이 달을 좋아하는 녀석들끼리 왜 그렇게 싸워 댔는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조금 우스웠다.
“고민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라. 아직도 마음 못 정했으면 내가 열심히 설교해 줄게. 귀찮은 일 싫어하는 늑대인간의 설교는 귀하다?”
“그래. 고마워.”
지서후와 실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창가에 비친 달을 구경하던 에르제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
윤치우에게서 온 코코아톡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겨우 꿈을 꾸기로 다잡은 마음이 흔들릴 만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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