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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99화 (99/307)

제99화

99화

‘김지원이라고?’

에르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윤소희의 옆에서 같은 자세로 무릎을 굽혔다.

확실히 윤소희의 말대로였다.

‘플랑이 얼굴을 망가뜨려 놔서 눈치를 못 챘어.’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에서 보았던 얼굴이 부어오른 상태에서도 언뜻언뜻 비쳤다.

확인을 마친 에르제가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김지원 맞네요.”

“그렇지? 내가 눈썰미가 좀 있거든.”

윤소희가 콧대를 세웠으나, 에르제의 정신은 다른 데 팔려 있었다.

‘김지원은 분명 인간이었는데?’

그러나 지금 눈앞의 김지원은, 인간이 아닌 뱀파리스가 되어 있었다.

뱀파이어가 아니라 ‘뱀파리스.’

김지태의 기억을 읽었을 때는 없었던 녀석이었으나, 불행하게도 근처에 있다가 플랑에게 우연히 걸린 모양이었다.

혹시나 뱀파이어를 잘못 잡아온 거 아닌가 싶었으나, 기운을 녀석의 몸에 흘려 보내 샅샅이 훑은 결과…… 김지원은 뱀파리스임이 더욱 확실해졌다.

‘김지원을 이렇게 만들 놈이라고는…… 제이밖에 없는데.’

끄나풀로 녀석을 이용하던 건 제이뿐이었다. 이건 아육시에서도 증명된 사실.

그러나 범인을 제이로 단정을 내리기에는 그가 뱀파이어 진영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가뜩이나 뱀파리스와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는데, 굳이 적대 세력을 늘려 줄 필요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제이가 뱀파리스라면?’

에르제의 입꼬리가 살짝 휘어졌다.

뱀파리스임을 숨기고 뱀파이어 진영 내에서 스파이 노릇을 하고 있는 거라면, 꽤나 흥미 있는 이야기가 된다.

다른 종족이 지구에 넘어왔다는 것 외에 또 다른 카드 하나를 손에 쥐게 된 거니까.

‘어차피 진위 여부를 확인할 재료도 손에 들어왔으니까.’

윤소희와 서은우의 기억을 읽어 내고 나면, 다음으로 이 녀석의 기억을 읽어 내면 될 것이다.

김지원의 입장에서는 두 번이나 정신 지배를 당하는 것일 테지만, 어차피 인간이었을 때에도 그리 호감이 없었다. 뱀파리스가 된 지금이라면 더더욱.

‘그간의 미운 정으로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하겠지.’

다만, 김지원과 제이의 유착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게 남아 있으니 일단은 패스.

어느새 김지원에게서 흥미를 잃고, 스마트폰을 보는 윤소희가 더 중요했다.

“시작할게요.”

“……괜히 긴장되네.”

윤소희는 김지원과 그녀 사이에 연결된 반투명한 선을 흘긋 보았다.

“이거 확실한 거 맞지?”

대답하기도 귀찮아서 에르제는 곧장 윤소희의 이마에 손을 가져갔다.

곧 반투명한 선이 빛이 나기 시작했다. 윤소희와 김지원의 정신 체계가 연결되었다는 뜻.

“알려 준 시기의 기억만 보고 얼른 나올게요.”

에르제는 눈을 감으며 윤소희의 기억으로 들어갔다.

* * *

처음으로 보게 된 윤소희의 기억은 어느 응접실이었다.

세로로 길게 놓인 식탁과 샹들리에 그리고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은 인간 시절 보았던 어느 귀족의 저택 응접실과 꽤나 비슷해 보였다.

‘여긴…….’

유령 비슷한 상태의 에르제가 고개를 돌리니, 응접실 안에 하나둘씩 기억의 조각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던 곳에 뱀파이어들이 생기고, 둥그런 식탁도 빈 공간에서 튀어나왔다.

윤소희 본인도 흐릿하게 기억하는 장면이 점점 뚜렷해지는 과정이었다.

‘뱀파이어들이 이렇게 많은 곳이 있었나.’

에르제는 둥둥 떠다니며 그들의 머리 위를 날아다녔다.

어디까지나 기억이기 때문에 윤소희가 있는 곳에서 거리가 먼 장소에서 나누는 대화는 들리지 않았다.

‘……일단은 뱀파이어 진영이라고 봐야겠지.’

윤소희가 뱀파리스와 잠시 협력 관계를 맺었던 것처럼, 그 전에 뱀파이어들과 접점이 있었다는 사실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지부장이라는 위치에 있는 마녀였으니까.

‘……그러고 보니, 뱀파이어가 아닌 인간들도 보이네.’

그녀들이 윤소희와 비슷한, 지부장 혹은 그와 비슷한 직책을 맡고 있는 마녀들인 듯싶었다.

에르제는 대충 상황을 파악한 뒤, 윤소희가 앉아 있는 테이블에 와서 기억을 다시 재생시켰다.

윤소희의 앞에 뱀파이어 하나가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아는 뱀파이어는 아닌데……. 얼굴이 왠지 낯이 익어.’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어서 둘 사이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알 수 있을 듯해 에르제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지부장님은 인간 세상에서는 모카 엔터테인먼트의 실장님이시죠?”

“맞기는 한데, 그쪽은 누구실까요?”

“…….”

허리까지 내려온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던 뱀파이어의 손은 손톱으로 뜯어낸 듯이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다크서클이 광대까지 내려온 그녀는 윤소희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혹시 실장님이시면, 은우……아시나요?”

“……은우요? 서은우?”

“아, 역시! 아시는군요……!!”

순간적으로 광적인 미소를 지은 뱀파이어는 찻잔을 잡으려는 윤소희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윤소희의 감각과 감정도 공유하고 있어서, 손바닥의 꺼슬꺼슬함과 불쾌한 느낌이 에르제에게도 고스란히 느껴졌다.

“뭐 하시는 거예요?”

“죄, 죄송합니다.”

윤소희가 당황해서 손을 쳐 내자, 그녀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고는 느릿하게 입술을 떼었다.

“그…… 은우는 잘 지내고 있나요?”

“글쎄요. 그건 그쪽이 서은우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무슨 관계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알려 드릴 수는 없죠. 서은우는 인간이고…… 그쪽은 뱀파이어니까요.”

망설이던 뱀파이어는 심호흡을 하고는, 눈을 질끈 감으며 말했다.

“제가…… 은우를 낳았습니다.”

“아아.”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던 윤소희는 순간 충격 받은 얼굴이 되었다.

“서은우 어머니라고요???”

“모, 목소리 좀 낮춰 주세요.”

“아.”

윤소희가 주위를 한 번 살피고는, 뱀파이어와 같이 테이블에 붙을 듯이 목을 깊이 숙였다.

“서은우는 연습생으로 들어올 때, 부모에게 버려졌다고 말했는데요.”

“……맞아요.”

뱀파이어는 그렇게 대답하며,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뱀파이어였는데, 둘 사이에 낳은 하나뿐인 자식은 뱀파이어로 태어나지 않았다.

순혈이 아닌, 하프나 쿼터 뱀파이어들끼리 결혼을 했을 때 드물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뱀파이어가 아니라는 이유로 아이를 버린 건 아니죠?”

“절대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당시 남편과 저는 이곳 뱀파이어 세력에 속해 있었는데, 사실 그들이 강요를 했어요.”

“여기서 강요했다고요?”

“네……. 지침이라고 말은 하는데, 사실 강요나 다름없었죠. 인간으로 태어난 아이는 강제로 피를 먹여 뱀파이어로 만들라고 했어요.”

“잠시, 잠시만요.”

윤소희는 이마를 짚었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아이가 뱀파이어가 될 확률은 10%도 채 안 돼요. 90% 확률로 사망하고요.”

“……그래서 달리 선택권이 없었어요. 10%의 확률을 믿고 도박을 할 수는 없었으니까요.”

“그렇다는 건 죽었다고 말하고, 몰래 고아원에 맡긴 거군요.”

“……네.”

그렇게 대답한 뱀파이어는 손톱을 물어뜯었다.

그리고 윤소희의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에르제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어째서 낯익은가 했더니 서은우랑 닮아서였어.’

뜬금없이 윤소희의 기억에서 서은우의 어머니를 만날 줄이야.

예상치도 못한 전개에 에르제가 빠르게 기억을 재생시켰다.

의미 없는 대화가 조금 더 오가고, 에르제가 기다리던 장면이 나왔다.

“…이게 뭐죠?”

“서고 청소를 위해서 들어갔을 때 발견해서 훔쳐 온 거예요.”

“뱀파이어로 만드는…… 의식?”

윤소희가 마녀들 대대로 내려왔다고 했던, 의식에 관한 문서는 서은우의 어머니가 준 것이었다.

“이기심…… 이라고 욕해도 좋지만, 은우를 이걸로 뱀파이어로 만들 수는…… 없을까요? 내용을 보니, 100% 확률이라고…… 하던데.”

윤소희는 누가 보지 못하도록 일단 그것을 품에 갈무리한 뒤에 고민했다.

그렇지 않아도 서은우는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에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었고, 녀석이 연습생으로 들어올 때의 목표와도 일치했다.

- 유명해져서, 부모님을 찾고 싶어요.

어쩌면 그런 서은우의 바람을 들어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고민을 마친 윤소희는 “노력해 보겠다.”라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천장과 땅이 뒤집히듯 한 바퀴 돌며, 에르제는 다음 기억으로 이동되었다.

이번에는 윤소희와 서은우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었다.

“……뱀파이어요?”

“응.”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실장님. 저희 그룹이 판타지 세계관이라고 대표님이 새로 주입시키는 뭐 그런 거예요?”

“그런 거 아니야.”

윤소희는 서은우의 어머니에게 들었던 진실을 가감 없이 전달했다.

당연히 인간으로 살아온 서은우는 그 내용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다행히 그 상태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윤소희가 강력한 증거를 들이밀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제이……?”

“네. 이쪽은…… 곧 뱀파이어가 될 분이라고 하면 될까요?”

“……네?”

이미 제이가 뱀파이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윤소희가 서은우의 설득을 위해 그를 데려온 것이었다.

윤소희의 계획대로 눈앞에서 제이가 뱀파이어의 능력을 증거로 보여 주니, 결국 서은우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자신과 윤치우처럼.

‘제이가 내 정체를 어떻게 알고 있나 했더니…….’

에르제는 일련의 기억을 지켜보며 이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윤소희도 제이가 뱀파리스라는 사실까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어.’

하기야 자신도 오늘 뱀파리스가 된 김지원을 보고 나서야 추측한 거니 이 시기의 윤소희가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제이의 몸 속을 대놓고 스캔할 수도 없었고, 그럴 이유도 없었으니까.

결국 뱀파리스가 어떻게 서은우를 인질로 윤소희에게 접근했나 했더니, 그 모든 것들이 제이에 의해서라면 앞뒤가 딱 맞아떨어졌다.

‘그다음은…….’

그렇게 윤소희의 기억은 며칠을 뛰어넘어, 에르제가 가장 궁금해할 부분으로 넘어갔다.

“……가수인 뱀파이어?”

“어쩌면 네게 부족한 재능을 뱀파이어의 능력으로 채울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되면 좋겠네요.”

서은우는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외모를 제외하고는 노래나 춤에서 서은우의 재능은 아이돌이 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그걸 다른 사람, 아니 뱀파이어로서 채우려고 하니 불편한 모양이었다.

“앞뒤 가릴 거 있어? 의식만 성공하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던 부모님도 만날 수 있고, 아이돌로 성공할 가능성도 커지는데?”

“……할게요.”

“지지 마.”

“정신력만큼은 누구한테도 지지 않아요.”

서은우가 동의한 뒤에야 에르제는 의식용 문서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잠깐만.’

그러나 의식은 온통 함정으로 가득했다.

서은우의 몸에 뱀파이어를 불러온다는 것은 윤소희가 알고 있는 그대로였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만이었다.

인간의 언어로 쓰여 있는 것과, 이들이 눈치채지 못한 그림으로 보이는 것. 그건 카테이아 대륙의 언어였고, 인간의 언어로 쓰인 것과는 완전히 의미가 달랐던 것이다.

‘이 둘은…… 불러온 뱀파이어의 영혼과, 서은우의 영혼이 몸을 두고 싸우는 방식이라고 알고 있어.’

게다가 의식에서도 뱀파이어의 영혼을 약하게 만드는 방법이 적혀 있었는데, 이것은 진실을 가리기 위한 함정 중 하나였다.

‘낚일 수밖에 없게 만든 의식이야.’

정확하게는 금기시된 술법으로 알려진 ‘영혼 교환’ 의식이었다. 라하임이 자신을 이곳으로 불러오기 위해 인간의 몸을 제물로 바친 것이다.

서은우의 껍데기에는 에르제의 영혼이 들어가고, 서은우의 영혼은 자신이 살던 차원의 어딘가로 가도록.

‘심지어 반대편 껍데기는 마련되어 있지도 않아.’

카테이아 대륙 어딘가 몸을 찾지 못한 서은우의 영혼이 떠돌고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것까지만이라면…… 어떻게 넘어갈 수 있겠는데.’

문제는 영혼 교환 의식이 금기가 된 이유였다.

이건 자신이 일족을 다른 차원으로 보낸 것보다 훨씬 위험한 술법이었다.

‘내가 한 건 시전자의 목숨을 대가로 취하는 것과, 단순히 차원을 어지럽힐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금기시된 거지만…….’

영혼 교환은, 자신이 한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여파가 컸다.

시전자의 목숨과 같은 ‘대가’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영혼의 무게가 다르기에 등가교환이 성립될 리도 없었다.

‘……무게가 약한 쪽에 더욱 문제가 크게 발생할 텐데.’

게다가 서은우와 자신의 영혼이 묶인 것과 다름없는 상황이라, 나중에 그를 만나게 되었을 때 무슨 일이 발생할지 예측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만약 이 과정에서 신이 개입을 했다면.

‘……만약 그렇다고 하면, 어느 정도 상쇄가 됐을 수도 있긴 한데.’

세리나를 구하고 난 이후, 신과의 소통을 몇 번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기 때문에 이를 확인할 방법은 없었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되고 나니, 또 다른 문제가 머리를 내민다.

‘……서은우의 영혼을 혹시나 만나게 된다면, 한 쪽을 소멸시켜야 끝이 날 수도 있을 텐데.’

에르제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마지막 기억으로 넘어가는 윤소희의 정신 세계를 지켜보며 생각했다.

‘……일단은 진실을 안 걸로 됐다. 당하더라도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 낫겠지.’

그리고.

콰아앙ㅡ!

서은우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윤소희의 마지막 기억은 거기서 끝이 났다.

‘더는…… 없군.’

에르제는 축 늘어진 서은우와, 그 주위로 몰려드는 사람을 바라보다 다시 현실 세계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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