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5화
85화
에르
제가 고정 출연자로 촬영하게 된 ‘알바 몬스터’는 1화부터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그렇지 않아도 직전에 ‘치킨 킹’이라는 새로운 치킨을 만드는 예능이 확 떴던 시기였기에 임 PD가 첫 회로 선정한 요리 연구가 알바 편은 시청자들의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했던 것이다.
요리 연구가는 총 2회에 걸쳐 방송된다고 했는데, 처음에는 요리 수준을 테스트하기 위해 A팀과 B팀으로 나누어 요리 대결을 펼쳤다.
개중에는 오랜 자취 생활을 한 A팀의 박장호와, 괴식 아이돌인 B팀의 에르제가 크게 활약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B팀이 승리하면서 요리 연구가 밑에서 알바를 하기 전 베네핏을 받아 갈 수 있게 되었다.
물 폭탄 벌칙을 피하기도 했고 말이다.
[ B팀! 강보라, 장미영, 서은우! 세 분의 승리입니다!! ]
그렇게 마이너스 점수와 준수한 점수를 받은 두 팀의 대결이 1화의 내용이었고, 2화 예고편으로 나온 것이 직접적으로 요리 연구가의 일을 돕는 장면이었다.
[ ……선배님, 이거 언제까지 까야 하는 건가요? ]
[ 말하지도 말고 시키지도 마. 냄새 들어오잖아. ]
박장호가 양파를 까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는 모습과, 비슷한 꼴을 하고 있는 국민 MC 정원형.
[ 여기서 식초를 넣어서 감칠맛을 추가하는 거지요. ]
[ 오오, 그럼 이제 어떤 걸 하면 될까요? ]
반면 재료 손질이 아니라 본격적으로 그들의 일을 돕고 있는 B팀의 모습까지.
1화에서 공개된 베네핏이 그대로 적용되어 A팀과 B팀의 극명한 대비 상황을 보여 주는 예고편까지 끝이 났다.
그리고 무튜브에 올라온 1화 선공개, 하이라이트, 예고편 등의 영상은 굉장한 조회수를 기록했다.
하이라이트 영상 중 하나는 순식간에 40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렇게 일주일 뒤, 마침내 2화까지 방송되어 ‘요리 연구가’ 편이 모두 공개되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출연자는 단연코 에르제였다.
1화에서는 뛰어난 요리 실력을 선보이며 지난날의 괴식 타이틀을 떼어 내나 싶었는데, 그런 팬들의 기대감을 2화에서 여지없이 무너뜨린 탓이었다.
[ 자, 잠깐만요! 서은우 알바!! 서 알바!! ]
[ ? ]
[ 누가 설탕 대신 초콜릿으로 한답니까!? ]
[ 카카오는 철분과 마그네슘, 칼륨, 포타슘, 인의 함량이 매우 높은 식품으로, 카카오가 많이 들어간 초콜릿은 스트레스 해소에 매우 뛰어난 효과를 지니고 있어요. ]
[ 그…… 건 맞는데, 일단 맛이 제일 중요한 거예요. 맛이 없으면 누가 먹는답니까??? ]
[ 맛있는 찌개에 맛있는 초콜릿을 넣었는데, 맛이 없을 리가요. ]
[ 한번 드셔 보세요. ]
[ 웩-. ]
[ ……. ]
요리 연구가 중에서도 대가라고 불리는 홍혜영이 식겁한 표정으로 ‘서 알바’라고 부르는 장면과, 에르
제가 먹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가는 모습은 1화의 하이라이트 조회수를 가뿐히 뛰어넘어 3일 만에 60만 조회수를 넘겼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괴식 아이돌 클래스, 절대 어디 안 가지.
- ㅅㅂ.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은우, 개웃기네. 진짜.
- 웃을 때가 아니에요, 여러분……. 은우, 괜찮은 거지? 괜찮다고 해 줘. ㅜㅜ
⌎ 아, ㅋㅋㅋㅋ 저걸 보고 어떻게 안 웃느냐고. ㅋㅋㅋㅋㅋㅋ
이미 정신줄을 놓아 버린 팬들과.
- 젊은 청년이 열심히 요리하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 DON’T TRY THIS AT HOME.
- 아이고……. 초콜렛을 찌개에……. ^^ 홍혜영 선생님이 많이 가르쳐 주셔야 할 것 같네요.
위대한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평소 요리 쪽에 관심 있는 사람들까지 ‘알바 몬스터’와 에르제의 존재를 알게 되는 결과를 이끌어 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바로 토트윈의 음원 순위에도 영향을 미쳤다.
“또 1위예여!!”
거실에 모여서 알바 몬스터 2화 재방송을 시청하고 있던 멤버들에게 안단테가 소리를 질렀다.
“5개 플랫폼에서 1위!!”
“오, 진짜?”
“괴식 아이돌 효과가 이렇게 크다고?”
다들 한 마디씩 하면서 본인의 핸드폰을 들어 결과를 확인한다.
그러고는 이내 동시에 고개를 들고 서로 눈을 맞췄다.
“잠깐만, 이러면…… 이번 음방에서 1위 가능한 거 아니야?”
이전에도 음악 방송에서 1위를 한 적이 있기는 하지만, 지금 상황이면…….
“3군데에서 다 1위 찍는 거 아니냐고……!”
태현우가 흥분한 얼굴로 말했고, 다들 그럴 것이라고 직감했는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할 듯여!!”
“그러게. 설레발이 아니라 진짜 기대해 봐도 되겠는데?”
그렇게 신이 나서 행복한 미래를 그리는 멤버들과 다르게, 에르제의 표정은 심각했다.
사실 아이돌 활동에 꽤나 진심인 그도 1위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기쁘기는 했다. 실제로 1등을 하지 못하면 분해하는 타입이기도 했고.
그러나 지금 그에게는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괴식 아이돌이라는 타이틀, 그게 거슬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은 요리를 잘한다. 그냥 잘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잘한다.
멤버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이윤과 장 대표도 자신이 만든 요리를 먹어 보았다.
‘그런데……!!’
어째서 반박 기사를 내지 않는 것인가!
이 세계에 오기 전, 궁중 요리사의 요리장까지 맡았던 자신의 프라이드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하지. 라이브라도 켜서 이 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요리라도 만들어 보여 줘야 하나?’
도대체 임 PD는 왜 신메뉴를 개발하는 콘텐츠를 가져오고, 또 괴식 타이틀을 붙여서 편집을 한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자신의 초콜릿 찌개를 맛본 장미영의 표정도 눈앞에 아른거렸다.
한 입 먹고 난 뒤 죽을 힘을 다해서 겨우 삼킨 장미영이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게 속삭였는데.
- 퀸님……. 원래 요리 잘하셨잖아요?
그렇게 말하고는 온 세상을 잃은 듯한 슬픈 표정으로 자리를 뜨기까지 했다.
심지어는.
- B팀이 이긴 거, 솔직히 그냥 운빨인 듯? 솔직히 그냥 튀기기만 했는데, 맛없을 수가 없잖아. ㅋㅋ
⌎ 토마토 튀김에는 초콜릿 안 넣었잖아. ㅋㅋㅋ
이런 댓글들이 종종 눈에 밟히기도 했다.
그래서 에르제는 완전히 시무룩해져서 시든 이파리처럼 늘어져 있었고, 윤치우가 조용히 다가왔다.
“그래서 이건 너희 종족 요리야?”
“……적혈구 줄까?”
“아니, 미안.”
윤치우가 쿡쿡 웃자, 에르제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리더면 뭐라도 알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이거 괴식 아이돌 반박 기사는 소속사에서 안 내주나?”
“갑자기?”
윤치우가 고개를 갸웃했다가, 이내 에르제가 괴식 아이돌이라는 타이틀에 신경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윤치우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괴식 아이돌로 멤버들 다 엮어서 자체 콘텐츠 하자는 말이나 안 나오면 다행일 것 같은데. 네가 요리하고, 멤버들이 먹고?”
소속사에서 반박 기사를 낼 리가 없다. 적어도 윤치우가 알고 있는 아이돌 세계의 상식에서는 말이다.
“아이돌은 이미지 소비가 제일 중요한 직업 중 하나야. 이미지는 최대한 적게 소비하면서, 대중들에게 계속해서 신선함을 안겨 줘야 하니까.”
그런 의미에서 괴식 아이돌은 팬들에게 꽤나 재미있고 신선한 이미지였다.
무튜브에서는 인기 있는 콘텐츠 중 하나였고, 항상 예쁘고 멋있어야 하는 아이돌에게는 쉽게 적용시킬 수 없는 이미지이기도 했다.
“자주 써먹으면 좀 그렇겠지만, 이렇게 한 번씩 터뜨려서 상기시키는 용도로는 훌륭하지.”
“……하아.”
결국은 바뀌는 게 없다는 이야기였다.
에르제는 착잡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꼬물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윤치우가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래서 3화, 4화 촬영은 뭐로 한대? 처음 시작이 요리니까 그다음은 비슷한 계열 쪽으로 또 가나?”
“아니.”
에르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반쯤 혼이 나간 얼굴로 윤치우를 바라보았다.
“대장장이 한다는데?”
“……뭐?”
* * *
깡! 깡! 깡!
쇳덩이를 내려치는 망치 소리가 달밤에 강원도의 산속을 청아하게 울렸다.
망치를 잡고 있는 근육질의 팔이 땀방울을 흘리며 연신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러기를 30분.
한창 일하고 있는 그의 옆으로, 어린아이가 뒷짐을 지고 다가왔다.
“아니, 네 녀석. 아직도 일하고 있었나?”
“네, 스승님.”
대략 40대로 보이는 털북숭이의 남자가 어린아이를 향해 스승이라고 부르는 장면은 누군가 봐도 굉장히 이상하게 보이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둘은 그 관계가 굉장히 익숙한 듯 보였다.
어린아이가 뒷짐을 진 채로 물었다.
“그래, 진전은 좀 있고?”
“죄송합니다.”
40대 남자가 고개를 푹 숙였다.
하해와 같은 은혜를 입었음에도 자신의 실력은 정체된 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도 10년 넘게.
“흐음.”
어린아이는 있지도 않은 수염을 쓰다듬는 흉내를 내며 말했다.
“내 너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 주겠다고 하였는데, 아직도 국내에서 1등을 다투는 수준이라니.”
“…….”
“네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일지도 모르겠구나.”
“아닙니다. 스승님이 어찌 잘못이 있다고 하시는 겁니까……!”
“내 안목 말이다. 너의 능력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 내 안목.”
“……아!”
그럼 결국 내 잘못이라는 이야기잖아.
40대 남자가 입술을 비죽 내밀자, 어린아이가 빠른 속도로 다가와 손바닥으로 그의 입을 찰싹 때렸다.
“악!”
“어딜 어리광 부리는 표정을 짓는 것이냐.”
그렇게 사제지간의 대화가 오가고 있을 때였다.
사박, 사박.
대장간 밖에서 풀을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40대 남자는 듣지 못했으나, 귀가 밝은 어린아이에게는 확실히 들린 모양이다.
“잠시, 그대로 가만히 있거라.”
“……예?”
“쉿.”
어린아이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고 세운 뒤, 조그만 귀를 쫑긋거렸다.
“저쪽이군.”
그러고는 자세를 낮췄다가 순식간에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스, 스승……. 아오 씨.”
40대 남자는 머리를 헝클어뜨리고는 곧바로 그의 스승이 사라진 곳까지 뛰어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의 스승과 대치 중인 한 남자를 발견했다.
자신도 어디 가면 덩치로는 절대 꿀리지 않음에도 그보다 가히 2배는 크다고 말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덩치의 남자였다.
게다가 밤에도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모습은 이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지?’
40대 남자는 오두막 옆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둘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 최대한 벽에 붙어서 들키지 않게 조심조심 이동했다.
그러자 둘의 대화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그대는 누구지? 어째서 이 밤중에 이곳을 찾은 것인가?”
“음.”
덩치 큰 남자는 선글라스를 벗고 가자미눈을 떴다.
“3일 뒤 이곳에 예능 팀이 온다.”
“그래, 그 이야기는 제자 놈에게 들었다. 내 허락도 없이 몰래 신청을 했더군.”
“그리고 나는 경호원이다.”
“……그래서?”
“경호원의 임무를 하러 왔다. 사전…… 탐사다.”
“사전 답사겠지.”
“그래, 그거.”
덩치 큰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자세를 확 낮추고 두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데 넌 인간이 아니다.”
“호오.”
어린아이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내가 누구겠느냐?”
“드워프.”
덩치 큰 남자는 자세를 낮춘 그대로 말을 이었다.
“목적을 밝혀라. 여긴 로드가 오는 곳. 방해가 된다면 제거한다.”
“푸흐흐.”
어린아이인 드워프는 헛웃음을 흘렸다.
“아서라. 다칠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