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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82화 (82/307)

제82화

82화

이번 아육시에서 일어났던 일이 전화위복이 되었고, 장 대표가 원하는 대로 순풍을 타기 시작하면서 에르제는 최근 멤버들과 함께 작은 술 파티를 했다.

어디 나가서 먹은 것은 아니고, 소주와 맥주를 사 오고 안주는 배달을 시켜서 그냥 5명이 모여서 먹었다.

하지만, 그때 에르제는 안주로 왔던 튀김을 먹고 충격을 받았다.

원래 살고 있던 세계에서도 튀긴 음식들이 많았지만, 이곳의 재료는 남달랐기 때문이다.

특히나 채소를 튀긴 것들이 입에 잘 맞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오늘 토마토가 메인 재료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한번 튀겨 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강보라 말대로 우리에게 전문적인 요리 수준을 원하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예능의 목적이니 오히려 비주얼과 맛 모두 실패하는 것을 은근히 기대하고 있을 거다.

제작진 측에서는 최악과 차악, 그중에서 이기는 것이 차악이라고 여기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에르제는 상당히 자신이 있었다.

저번 티즐 고크드르늘처럼 원래 세계의 음식을 재현하려는 것이 아닌, 그냥 지구에서 먹었던 맛을 새롭게 표현하려는 시도이니까.

‘그리고 이번에도 원래 세계의 음식을 재현하려다가 또 괜한 놈들한테 어그로가 끌릴 수도 있고.’

다만, 문제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강보라는 자신의 의견에 찬성해 주었으나, 다른 팀원인 장미영이 반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는 더한 짓도 서슴지 않았다.

‘매료라.’

자신에게 ‘매료’를 걸어서 장미영의 의견대로 따르도록 만들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상위 매료’를 써서 손쉽게 파훼를 하기는 했지만…….

하지만 그녀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이상, 머리가 좀 아팠다.

‘도대체 이 나라는 왜 이렇게 종족이 다양해?’

자신을 제외하고 특수한 종족들은 없는 줄 알았는데, 어쩌다 보니 만나는 이들마다 뱀파이어에다 뱀파리스에다…… 심지어 서큐버스인 장미영까지 만나게 됐다.

원래의 세계에서 ‘미친 황제’가 즉위하기 전까지 다양한 종족들이 모여 살던 ‘자유 도시 국가’가 문득 떠오를 지경이었다.

‘설마 드워프 같은 종족들도 있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드워프는 자연적으로 발생할 종족도 아니었으니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마음을 다독였다.

‘음…….’

에르제는 최근 자신을 영입하러 왔던 뱀파이어를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래서 장진규가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뛰었던 거였나?’

아무래도 대중의 관심, 사랑 등을 필요로 하는 만큼 연예계는 뱀파이어를 위시한 종족들이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기는 했다.

그와 비슷할 정도로 유리한 곳이 정치계였으나, 현재 그와는 관련이 없으니 일단 패스.

그렇기에 에르제에게 연예계는 ‘자유 도시 국가’와 비슷하다는 감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후우.”

에르제는 옆에서 열심히 튀김 반죽을 주무르고 있는 장미영을 흘긋 바라보았다.

‘아마 본인의 능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깨달았을 텐데.’

뭐……. 사실 그것만이면 다행이겠지만, 괜한 경쟁심 때문에 ‘상위 매료’로 찍어 눌렀다는 사실을 눈치챘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고 매혹의 힘을 쓸 수도 없고.’

그렇다면 본인이 뱀파이어라는 사실이 금세 들킬 것이다.

‘매료에 당해 줄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신경이 아예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니어서 에르제는 요리를 하는 내내 그녀의 눈치를 은근히 볼 수밖에 없었다.

“서은우 님! 이건 어떻게 하면 될까요?!”

묘하게 적극적인 장미영의 태도가 신경에 거슬렸다.

장미영의 머릿속에서 자신에 대한 평가가 도대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불안한데.’

뱀파이어 로드로서의 예리한 감이 경종을 울린다.

……싸늘하다.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아.”

그렇게 실없는 명대사를 떠올리고 있던 에르제는 토마토를 썰다가 자신의 손가락을 베었다.

‘피 아깝게.’

생각이 쓸데없이 너무 많았다.

장미영이 신경 쓰인다고 해도 일개 서큐버스인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다고.

저번에 뱀파리스들의 기억을 뒤졌을 때에도 장미영의 존재는 없었다. 그러니 그쪽에 붙었을 리는 없지 않나 싶기도 했고.

‘고작 서큐버스 하나에 대한 기억을 애써 지울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

그쪽과 관계만 없다면 별로 상관없을 터.

‘일단은 예능에나 집중하자.’

어차피 일족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널리 알리기 위해 이곳에 나온 것이 아닌가.

아이돌은 몰라도 예능에 관심 있는 인간들은 훨씬 많으니 말이다.

최근 플랑도 완벽한 ‘머글’이었음에도 자신을 찾아왔으니 이런 예능 하나하나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괜한 생각을 빠르게 정리한 에르제가 피 묻은 손가락을 어떻게 처리할까 궁리하던 찰나.

“킁킁.”

옆에서 장미영이 냄새를 맡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자신의 손가락에서 나오는 피 냄새를 맡은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낌새가 심상치 않다.

‘그냥 휴지로 빨리 닦아 내자.’

하지만 에르제보다 장미영이 피의 근원을 찾아내는 것이 빨랐다.

덥석, 하고 에르제의 손가락을 양손으로 꽉 붙잡은 장미영의 눈이 연분홍색으로 변했다.

“하아.”

그러고는 에르제에게만 들릴 정도로 낮게 숨을 뱉어 내고는 연분홍색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내며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피를 나눠 주세요. 퀸님.”

“자, 잠깐.”

퀸? 퀸님??

“제가, 제가 할게요!”

에르제는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손가락을 빼내며 휴지고 뭐고 빠르게 피를 옷에 닦아 버렸다.

퀸님, 퀸님, 퀸님, 퀸님, 퀸님.

장미영이 말한 단어 때문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내가 왜…….’

“칫.”

아쉽다는 듯이 돌아서서 입을 뾰로통하게 내민 장미영은 계속 이곳을 힐끗힐끗 보며 다시 요리를 재개한 모습이었다.

‘도대체 내가 왜 퀸님이야……?’

덕분에,

조금 전에 예능에 집중하자고 했던 에르제의 말은 금세 무색해졌다.

* * *

토마토 튀김을 베이스로 한 신메뉴 개발은 겨우 정신을 차린 에르제의 지휘 아래 힘겹게 이어졌다.

종료 시간 30초를 남기고 겨우 플레이팅까지 끝마친 그들은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두 심사위원을 바라보았다.

“저쪽 요리는 일단 뭔지 겉으로 봐선 모르겠네요.”

뭔가 샐러드 쪽으로 가닥을 잡고 간 것 같기는 한데……. 정체를 알 수 없는 형태였다.

플레이팅도 괴상했고, 옆에서 잠깐 맡았던 냄새도 고약했다.

역시나 그들의 요리를 앞에 둔 요리 연구가 둘은 표정이 심각했다.

“이거 먹어도 죽지는 않는 거죠?”

그들이 겉모양을 보고 내뱉은 첫 마디가 이 말일 정도였다.

“일단…… 리코타 치즈가 너무 과하게 들어갔네요. 그래서 냄새가 너무 강해요.”

“앗.”

“그, 그래도 맛은 다를지도 모르니까요……!!”

옆 팀이 간절한 기도를 올렸으나, 결국 평가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쿨럭.”

그중 한 요리 연구가는 휴지에 음식을 뱉어 내고는 기침까지 했다.

그러고는 제작진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울상을 지었다.

“이거 다 먹어야 하는 건 아니죠?”

그녀의 장난스러운 말에 제작진을 포함해서 한바탕 폭소가 터졌다.

그렇게 공개된 A팀의 최종 점수는 마이너스 73점.

‘어차피 망할 것이다’라는 베이스를 깔고 시작한 신메뉴 개발이었기에 예능적인 요소로 마이너스 점수도 있었고, A팀에게 그대로 -40점, -33점이 직격했다.

그래서 그런가, 강보라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우, 우리는 괜찮을까?”

“당연하지요. 누가 낸 아이디어고, 누가 만든 요리인데.”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장미영은 1초도 되지 않아 긍정했다.

그리고 에르제도 같은 생각이었다.

끓는 물에 데쳐서 껍질을 벗기고 씨를 빼고 소금과 후추를 이용해 간까지 맞췄다.

‘원래의 세계에서는 다른 향신료를 썼지만, 비슷한 걸 썼으니 괜찮을 테고.’

그 외의 조리 방식은 원래 세계에서 요리사로 일했을 때의 기억에 의존했다.

만들 수 없는 것을 억지로 만들었던 ‘티즐 고크드르늘’ 때와는 다르게, 이번 요리는 최대한 이 세계에 맞추어서 조리했다.

‘변수는…… 없다.’

지금까지의 조리 과정을 떠올린 에르제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보기에도 더 낫고 맛도 괜찮을 거예요. 어……. 물론 여러분이 실수를 하지 않았다는 가정하에?”

그렇게 그들이 밑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요리 연구가의 시식이 끝나기를 기다리자, 곧 그들의 음식에 대한 평가가 시작되었다.

“음, 일단은 ‘신메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는 살짝 아쉬운 부분은 있네요.”

그녀의 말에 따르면, 토마토 튀김이란 것이 없는 음식은 아니라고 한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그 사실을 알고 이렇게 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타르타르소스도 그렇고 다양한 시도를 하려고 한 노력은 엿보여요.”

A팀 것을 그냥 예능용으로 혹평한 것과는 다르게, 에르제가 속해 있는 B팀의 평가는 꽤나 전문적인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녀는 겉 튀김만 부숴서 입에 넣고는 이내 살짝 인상을 썼다.

“반죽은 누가 했나요?”

“아, 제가 했습니다!”

장미영이 손을 들었는데…… 혼이 났다.

“튀김 자체는 굉장히 바삭바삭하게 잘 익혔고, 내용물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간이 좀 안 맞네요. 밀가루 양이 좀 많은 것 같아요.”

이에 다른 연구가도 평을 내렸다.

“그래도 전체적으로 맛은 괜찮았어요. 소스도 잘 만들었고, 토마토 씨를 빼고 간을 맞춘 판단도 좋았고요.”

“감사합니다.”

강보라가 대표로 감사 인사를 하자, 곧 점수가 공개되었다.

결과는 67, 58점이었다.

총점 125점과, 마이너스 73점.

승자는 당연히 B팀이었다.

“와!!”

“역시! 서은우 님!!”

“다행이네요.”

얼싸안고 한바탕 축제 분위기인 B팀과 다르게, A팀은 축 늘어졌다.

대망의 벌칙 ‘물 폭탄 맞기’는 A팀의 차지였다.

그렇게 첫 촬영을 마친 뒤, 물에 빠진 생쥐가 된 A팀 3명은 옷을 갈아입으러 이동했다.

에르제도 마찬가지로 짐을 챙겨서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대기실로 향했다.

‘생각보다 힘들었네.’

과거 요리사로서의 경력이 있기는 했지만, 역시나 익숙하지 않은 재료로 요리를 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처음 보는 재료가 어느 온도에서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익는지는 직접 여러 번 시도해 봐야 알지 않겠나.

요리 연구가들이 예능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전문가의 입장에서 점수를 줬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다음에는 더 잘해 보자.”

방송으로 조금 더 컷이 많이 잡히게끔. 원래 세계의 경험을 더욱 끌어올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다짐하며 대기실 문고리를 열고 들어갔을 때.

“어서 오세요.”

어디로 갔는지 이윤은 보이지 않았고, 장미영만 혼자 에르제의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장미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배꼽에 손을 모으고, 황송한 표정을 지으며 인사했다.

“퀸님이 행차하기를 기다렸답니다.”

그 모습에 에르제의 다리가 되돌리기를 하듯 뒤로 돌아갔다.

“……퀸님?”

당혹감이 섞인 장미영의 목소리가 따라왔다.

쾅.

에르제는 복도에서 대기실 문을 재빨리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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