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81화
국민 여동생, 차세대를 이끌 스타,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여배우 ‘장미영.’
그 외에도 그녀를 수식하는 말들은 많았지만, 장미영이 가장 좋아하는 수식어는 ‘매력적인 배우’였다. 그녀의 종족 값에 걸맞은 수식어였으니 말이다.
‘정신없네.’
그런 그녀는 현재 ‘알바 몬스터’ 시즌 2의 고정 출연진으로 촬영 현장에 와 있는데, 그녀를 제외한 나머지 출연진들도 상당히 이름값이 높았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배우이지만 훨씬 선배로 예능에서도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양태구’, 개그맨 출신으로 여러 프로그램에서 MC를 맡고 있는 ‘정원형’, 마찬가지로 현재 개그맨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녀와 같이 막내 포지션을 맡고 있는 ‘박장호’, 그리고 정원형과 같이 이번에 공동 MC를 맡은 아나운서 출신 ‘강보라’까지.
모두 예능 혹은 다른 분야에서 상당히 유명한 인기인들이며, 그녀가 프로그램을 촬영하면서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장미영은 자신 또한 프로그램에 충분히 기여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었고, 또 그럴 자신도 있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다.
이번 예능의 플롯도, 같이 출연하게 된 사람들까지도.
다만 딱 한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여기가 어디라고 아이돌이 기어 들어와?’
그것도 1군급이 아닌 그 밑이라는 것도 그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보나마나 소속사에서 돈 좀 꽤나 써서 밀어줬나 본데…….’
장미영은 이쪽으로 느긋하게 걸어오는 에르제를 보며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물론 자신 또한 신인이나 다름없지만, 그래도 토트윈과 비교하면 대중들에게 알려진 수준이 달랐다.
‘필모만 비교해도 완전 내가 이길걸.’
그러나 뭐 어쩌겠나.
이미 내부적으로 다 결정된 사항이고, 한낱 배우인 자신에게는 그런 것까지 바꿀 힘이 없는데.
‘……그래도 잘생기기는 했네.’
잘생긴 얼굴로 유명한 배우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외모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아이돌이 된 것도 다 저 외모 덕분일 거고, 그 외에는 아무런 능력도 없겠지.
토트윈과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지도 않았고, 딱히 관심도 없었기에 내릴 수 있는 결론이었다.
장미영은 다른 출연진들과 악수를 나누는 에르제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편집으로 가리는 것도 한계가 있을 거야.’
그렇게 조금씩 쌓이다 보면 결국 자연스럽게 하차 이야기가 나올 거고, 그때 맛있어 보이는 인간이 들어오길 희망하는 수밖에.
장미영은 에르제와 악수를 하는 박장호를 흘끗 바라보았다.
‘첫 번째 타깃은 저 녀석으로 할까.’
끝나고 연락 몇 번만 해 줘도, 부르면 바로 나올 것 같았다.
진수성찬은 아니어도 든든한 국밥 정도는 되겠지.
장미영은 저도 모르게 혀로 입술을 핥다가 갑자기 훅 들어온 에르제에게 놀라서 한 걸음 물러섰다.
“까, 깜짝이야.”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는데, 미안해요.”
에르제는 싱긋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장미영도 팔짱을 풀고 손을 맞잡았다.
“응?”
그러자 에르제가 고개를 갸웃하며 장미영을 바라보았다.
“왜요? 뭐 묻었어요?”
의미심장한 눈빛에 장미영이 역으로 날카롭게 응수했다.
뻔한 수작이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접근한 사람이 얼마나 있었는지 아니?’
그렇게 말하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누르고 있자, 에르제가 손을 놓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뭐야.’
아름다움이 묻어 있네요, 뭐 그런 대사를 칠 타이밍 아니었어?
오히려 싱겁게 밀어내니, 장미영이 되레 당황했다.
“그…… 래요.”
진짜로 뭐가 묻었나.
장미영은 메고 있던 가방에서 작은 거울을 꺼내 자신의 얼굴을 살폈으나, ‘매료’ 말고는 딱히 묻었다고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우씨.’
괜히 신경 쓴 것 같아서 장미영은 짜증스럽게 구두 끝으로 바닥을 찼다.
파삭.
돌바닥이 살짝 파였다.
‘아차.’
힘 조절에 실패했다.
그녀는 파인 부분 위로 슬쩍 몸을 움직여 가리고는, 이곳으로 오는 PD 쪽으로 시선을 돌리게 했다.
“PD님!”
PD는 장미영의 격한 인사에 호응해 주면서, 손에 든 대본을 두 MC에게 넘겼다.
“오늘 이대로 진행해 주시면 되고…….”
정원형, 강보라 두 MC와 PD의 촬영 논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진행되었고, 장미영은 당초의 계획에 따라 박장호의 곁에 가서 섰다.
“어때요? 긴장되지는 않아요?”
“아, 장미영…… 씨.”
“편하게 말을 해도 되는데요, 오빠.”
장미영이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박장호의 눈동자가 살짝 분홍색으로 변했다가 금세 돌아왔다.
‘아직은 모자라나.’
그 변화를 감지한 장미영이 아쉬움을 삼켰고, 박장호는 크흠, 하고 헛기침을 뱉었다.
“아직은, 네. 큼큼, 일단 촬영하고…….”
“네에.”
장미영은 말을 길게 늘어뜨려서 대답하다가 “촬영 시작합니다!”라는 말에 박장호의 팔을 툭 쳤다.
“가요.”
“그, 그럴까요.”
그래도 벌써부터 말을 더듬다니 ‘매료’의 효과가 확실히 드러나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졌다.
저쪽에 혼자 멀뚱멀뚱 떨어져 있는 아이돌이 조금 전에 보인 행동 때문에 나빠졌던 기분이 덕분에 금세 회복되었다.
‘흐음~, 아이돌이라고 해도 나한테 관심이 없지는 않을 텐데.’
소속사에서 연애 쪽으로 철저히 관리해서 면역이 좀 생긴 건가?
뭐 그래도 어차피 시간문제다. 박장호도 그렇고 저 아이돌도 그렇고, 자신의 매료를 이겨 내기란 결코 쉽지 않을 테니까.
특히 박장호는 손쉽게 요리할 수 있을 듯했다.
‘서은우 쪽은 별로 메리트가 없지만.’
아까 악수를 나누었을 때 느꼈지만, 그에게는 영양가 있는 양분이 별로 없었다.
나중에 후식 정도로 남겨 두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그렇게 우선순위를 정하던 장미영은 이내 이러고 있는 자신에게 괜한 허탈감이 밀려왔다.
‘하아-, 그냥 퀸님이 다시 돌아오시면 이럴 일도 없을 텐데.’
장미영은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서큐버스 전체를 통솔하던 서큐버스 퀸이 사라지고 난 뒤, 그들 종족은 다음 퀸을 뽑기 위해 서른 명의 후보를 선출했는데, 장미영은 그중 하나로 뽑혀 많은 인간들을 매료시켜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저 퀸을 섬기며 좋아하는 배우 일이나 하고 싶었던 그녀에게는 지금의 상황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물론 그녀가 유독 전대 퀸을 친언니라고 생각하며 잘 따랐던 것도 지금의 허탈감에 한몫을 했다.
‘정말 돌아가신 걸까……?’
그렇게 한숨을 푹푹 내쉬던 장미영은 PD가 전체적인 촬영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올렸다.
“우선 2팀으로 나눌 예정이고, 팀장은 두 분 MC가 각각 맡아 줄 겁니다.”
이미 예능 플롯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임 PD는 혹시 몰라서 그런지 다시 한번 설명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알바 몬스터’는 예능 제목 그대로, 알바라는 명목으로 일을 하는 콘셉트의 예능인데.
그 알바라는 게 말만 아르바이트였지, 사실은 다양한 직업을 체험하는 데에 의의를 두고 있었다.
특히나 대중들이 쉽게 접하지 못하는 직업들 위주로 선정이 되었는데, 그들의 일을 돕는 알바로서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촬영할 예정이라고 한다.
때문에 대부분 큰 틀에서만 대본이 정해져 있고, 나머지는 애드리브로 자유롭게 행동하면 된다고 했다.
“오늘은 아무래도 첫 회이다 보니까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분야로 스타트를 끊을 겁니다.”
장미영은 임 PD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반적인 스튜디오에서 오늘의 촬영이 진행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요리.’
그렇지 않아도 요리 관련 예능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만큼,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것으로 일단 이목을 끈 뒤 점차 흥미로운 소재를 풀겠다는 뜻.
‘원래 창작이라는 게 익숙한 것에 새로운 것을 조금 첨가하는 거니까.’
특히나 배우 일을 하면서 많이 느낀 부분이었다.
드라마나 영화도 얼핏 보면 비슷비슷해 보이는 작품들이 막상 맛을 보면 약간씩 다르지 않나. 그렇기에 시청자들도 TV나 무튜브 앞을 떠나지 못하는 것일 테고 말이다.
‘그렇다는 건 평범한 요리로 가지는 않겠다는 건데.’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것을 선택한 건 좋은 방법이나, 거기에 ‘신선함’이 없다면 오히려 최악의 선택이 된다.
그것도 예능계에서 유명한 임 PD가 기획한 예능이라면 더더욱.
그래서 기대감에 찬 모습으로 임 PD의 말을 기다리고 있으니, 그가 출연진들을 둘러보며 씩 웃었다.
“오늘은 유명 셰프가 아니라 요리 연구가분들의 일을 도와드릴 겁니다.”
“요리 연구가요?”
“예. 총 2분의 유명 요리 연구가분들이 오실 예정인데, 각 팀은 그분들이 내린 미션을 완수하고 최종 평가를 받아서 승리 팀이 선택될 겁니다.”
“아하.”
“재미있겠는데요?”
다들 흥미로운 표정으로 주절거렸다.
장미영도 마찬가지였다. 요리 연구가라면 ‘신메뉴’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최근 요리 예능 트렌드가 유명 셰프들이 요리해 주는 맛있는 음식을 보며 대리 만족을 느끼는 것이라면, 이번 1회 차의 ‘알바 몬스터’는 다른 의미로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을 듯했다.
‘괜찮은데?’
그렇게 결론을 내리니 촬영은 이미 임 PD의 설명부터 시작되고 있었는지, 곧 요리 연구가 2명이 뒤에서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입장했다.
미리 뒤에 준비되어 있던 요리 재료에 이물질이 들어갈까 싶어서 ‘폭죽’ 같은 환영 인사는 CG로 대신하지 않을까 싶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두 요리 연구가는 자상한 표정으로 다가와서 이내 출연진들 사이에 자리했다.
그러고는 각자 팀장인 두 사람에게 미션을 주는 것으로, 본격적인 촬영에 돌입했다.
* * *
요리 재료는 평상시 자주 사용하는 것부터 좀처럼 접하기 힘든 것들까지 아주 다양했다.
내부 정보를 조금 더 자세히 알고 있는 그들의 팀장 ‘강보라’의 말에 따르면, 구하기 어려운 재료는 요리 연구가분들이 제공해 줬다고 한다.
“으음.”
강보라는 팀원인 장미영과 에르제를 불러 모으고는 난감하다는 듯이 신음을 뱉었다.
“우리 팀이 받은 미션은 토마토를 이용한 신메뉴 개발이에요.”
“토마토요?”
장미영이 되묻자, 강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면, 찌개 등 종류는 전혀 상관없으니 그냥 메인 재료가 토마토면 된다고 하셨어요.”
강보라가 그렇게 말하며, 두 명의 팀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좋은 의견 있을까요?”
장미영은 에르제가 먼저 입을 열기를 잠자코 기다렸다.
‘토마토…….’
아무리 생각해도 과일을 메인으로 한 요리가 딱히 떠오르지는 않아서였다.
‘그나마 접근할 수 있는 건 디저트 쪽일까?’
토마토 케이크나 토마토 맛 쿠키 같은 게 있나 인터넷에 검색해 봐야 할 듯했다.
그러나 에르제는 그런 그녀의 생각을 무참히 짓밟는 의견을 내놓았다.
“토마토를 활용한 요리는 여러 가지 떠오르는 게 있어요.”
‘뭐?’
평상시에 요리라도 많이 하는 건가?
하긴, 아이돌들은 숙소에서 생활한다는데 거기서 요리 당번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건 평범한 요리를 할 때고, 지금은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는 건데…….’
장미영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자, 에르제가 잠시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토마토를 튀겨 보는 건 어때요?”
“튀겨?”
강보라가 그의 말에 솔깃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물론 그냥 토마토만 튀기는 건 아니고 신메뉴라고 하셨으니 새로움을 더 해야 하겠지만요.”
“으음, 새로움이라.”
강보라가 진지하게 고민하자, 말을 꺼냈던 에르제가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거렸다.
“……지구의 형태로…… 가능…….”
워낙 작게 중얼거려서 제대로 들리지는 않았으나, 아마 제대로 들었다고 해도 그 의미를 알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지구의 형태로 가능하다니,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이윽고 생각을 정리했는지 에르제가 자신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떠오른 배합이나 조리법이 있는데, 제가 주도해서 해도 괜찮을까요?”
“그래도 될 것 같네요. 어차피 아이디어도 은우 씨 아이디어고.”
강보라가 옆에는 들리지 않도록 작게 속살거렸다.
“어차피 진짜 요리사들 데리고 와서 경연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한테 엄청나게 맛있는 수준의 요리를 기대하지도 않을 테니까요.”
그러자 그녀의 말에 장미영이 멈칫했다.
“잠깐만요.”
장미영의 마음이 다급해졌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일단 저 아이돌의 의견이 채택되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게다가 요리 자체를 주도하겠다니?
‘첫 회부터 주도권을 뺏길 수는 없어.’
어디까지나 이번 예능은 그녀의 배우 인생과 ‘그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발판이었다.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킬 발판.
그래서 장미영은 에르제의 팔을 붙잡아 자신 쪽으로 돌렸다. 그러고는 그와 눈을 맞췄다.
벌써부터 이렇게 하기는 싫었지만, 필요하다면 뭐든 해야 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게 어때요? 나는 다른 아이디어가 없나 고민을 해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
“…….”
“…….”
…….
“둘이 뭐 해?”
“……어?”
강보라의 말에 장미영의 입에서 당황스런 말이 튀어나왔다.
응? 왜지?
‘뭐야, 왜 안 통해? 그럴 리…….’
그렇게까지 생각하던 장미영의 기억이 중간을 잘라 낸 필름처럼 뚝 끊겼다.
어?
‘이건…… 상위 매료?’
서큐버스 내에서 서른 명의 후보에 들 정도로 강력한 자신의 매료를 이렇게 쉽게 찍어 누를 수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었다.
‘퀸님?’
에르제를 보는 장미영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