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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79화 (79/307)
  • 제79화

    79화

    달라진 토트윈의 위상을 순식간에 체감할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너(Reminiscence)’가 모든 플랫폼에서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와……. 미친.”

    침대와 한 몸이 되어 있던 태현우가 에르제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은우야, 이것 좀 봐.”

    “뭔데?”

    그가 보여 준 핸드폰에는 공식 카페 회원 수가 떠 있었는데, 이번 일이 있기 전보다 무려 2배나 증가한 수치였다.

    태현우가 혀를 내둘렀다.

    “이번 사태가 크기는 정말 컸나 봐?”

    “아무래도 아이돌에 관심 없었던 사람들까지 토트윈을 알게 됐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에르제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제이의 계획은 분명 토트윈의 몰락이었을 텐데, 오히려 날개를 달아 준 격이 아닌가.

    ‘역시 조심해서 나쁠 게 없지.’

    다만 조금 충격이기는 했다.

    일족이 아니라고 해도 같은 뱀파이어라고 생각했던 제이의 행동은 선을 넘어도 많이 넘었으니까.

    ‘인간들을 1회용으로 써먹고 버릴 줄이야.’

    아육시의 PD는 전격 교체되었고, 김지원은 언론에 일절 모습을 보이지 않고 두문불출한 상태.

    ‘……죽이기까지는 하지 않았을 텐데.’

    뱀파리스라면 몰라도, 제이는 뱀파이어니까 그냥 조용한 곳에 살게 두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김지원처럼 악의로 가득 찬 인간이 아이돌을 하는 것보다는 나은 결과였다.

    ‘잘 해결된 거겠지.’

    막상 역경을 극복한 후, 좋은 일들만 생기니 괜스레 불안해진다.

    잡념을 떨치기 위해서 에르제가 고개를 털자, 그에게 코코아톡 하나가 날아왔다.

    [ 음원 1위 축하해요. ]

    발신자를 확인한 에르제의 입술이 꿈틀했다.

    ‘제이?’

    갑자기 이 타이밍에 웬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거지?

    이번에 자신까지 엮어 넣지 못했다고 여유 있는 모습을 보여 주려는 의도인가.

    “…….”

    에르제는 고민하다가.

    [ ㅋ ]

    그렇게 답장을 보내고, 스마트폰을 닫았다.

    뭐가 됐든 이번 일의 승자는 에르제였고, 토트윈이었다.

    제이는 계획에 실패했고, LAK는 토트윈에게 진 선배가 되었으니까.

    그나마 제이가 위안을 삼을 부분은 ‘공정한 심사’를 했다는 인식 정도.

    원래는 제이가 보너스로 가져갈 이미지였겠지만, 지금은 그거 하나 겨우 건진 셈이었다.

    잠깐 제이의 답장을 기다렸으나, 딱히 그럴 생각은 없나 보다.

    “뭐야, 누군데 그렇게 썩소를 짓고 있냐?”

    “제이.”

    “아아, 뭐? 제이? LAK의 제이? 왜?”

    “음원 1위 축하한다는데?”

    에르제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엥?’ 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태현우를 두고 거실로 나왔다.

    곧 점심시간도 끝나 가고, 회사로 가서 안무 연습이나 더 할까 해서였다.

    하지만, 숙소 문을 열고 들어온 이윤 때문에 에르제의 원대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은우야!!”

    “?”

    이윤은 허겁지겁 신발을 대충 벗어 던지고, 에르제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너, 예능 하나 나가자.”

    “갑자기요?”

    “어어.”

    이윤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설명을 이어 갔다.

    “이번에 우리 쪽으로 여론도 좋아지고, 팬들도 많이 늘어서 그런가? 연락이 많이 오더라고. 그런데…… 그중에서 이거.”

    이윤이 스마트폰을 꺼내어 무튜브 하나를 재생했다.

    “이게 ‘알바 몬스터’라는 예능인데, 시즌 1이 초대박이 났던 예능이거든? 그런데 이번에 시즌 2 계획을 하고 있나 보더라고. 여기서 너를 고정으로 쓰고 싶다고 해서.”

    “아!”

    에르제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니까 토트윈의 인지도가 오른 여파가 자신에게도 온 것이다. 녹음본 데이터 값이 알뜰하게 쓰이는 중인 모양이다.

    이윤이 스마트폰을 더욱 가까이 들이밀었다.

    “어때? 괜찮지?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할래? 아니, 그냥 해.”

    “음…….”

    에르제는 잠시 망설였다.

    “다른 멤버들은요?”

    “아! 여기는 애들 전부 나가기는 힘들어서 아마 이번 활동에는 좀 분산이 될 거 같아. 다른 애들도 괜찮은 곳에서 하나씩 들어왔어.”

    “다행이네요.”

    혹시 자신만 예능에 나가게 된다면, 조금 입장이 곤란해질 수도 있었다.

    회사에서 너무 한 사람만 밀어 준다는 얘기가 나오거나, 다른 멤버들의 의욕이 저하될 우려가 있으니까.

    ‘그렇게 되면, 기껏 높이 쌓은 탑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겠지.’

    그래도 여태 일을 잘해 왔던 모카 엔터테인먼트인 만큼, 그 생각을 못 한 건 아닌 듯싶다.

    “지금 물 들어왔잖아. 어서 노 저어야지.”

    이윤이 에르제의 등을 두들기면서 재차 물었다.

    “한다고 한다?”

    “알았어요.”

    에르

    제는 이윤의 손에서 재생되고 있는 알바 몬스터 1화를 바라보다가 딱히 나쁠 것이 없다는 생각에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 *

    아직 예능 방송에 들어가기 전.

    이번 활동 기간에만 벌써 5번째 토트윈의 팬사인회가 열렸다.

    그럼에도 급상승한 인기를 반영하듯, 찾아오는 팬들의 숫자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찾아온 팬들의 얼굴이 매번 다를 정도.

    게다가 이번 일로 인해서 팬들의 결속력은 더욱 단단해졌는지, 삼삼오오 모여서 친목을 다지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헤헤.”

    때문에 토트윈은 피곤함도 잊은 채, 팬들과 즐겁게 소통을 하면서 성공적인 팬사인회를 이어 갔다.

    물론 그날을 떠올리며 울먹거리는 팬들도 있었는데, 그만큼 토트윈을 아껴 주고 있다는 뜻이기에 토트윈은 성심성의껏 그들을 달래 주었다.

    “여러분들 덕분에 괜찮아요.”

    그중에서, 태현우와 에르제의 활약이 독보적이었다.

    “울면 나 마음 아픈데, 내 마음 아프게 할 거예요?”

    태현우는 평소의 장난기 넘치는 표정으로 팬들을 자기 페이스로 끌어당겼고.

    “2번째 팬사인회에 오셨던 분이네요? 혜원 씨, 맞죠?”

    에르제는 사기적인 기억력으로 팬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였다.

    좋아하는 아이돌이 자신의 이름을 기억해 준다는 것이 팬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멤버들이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었고, 그들 역시 평상시처럼 무난하게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사인을 해 주는 시간이 끝나고, 팬들에게 몇 곡 불러 주기 전에 잠깐 쉬는 시간.

    대기실 소파에 앉아 ‘알바 몬스터’ 시즌 1을 보며 공부하던 에르제의 손이 순간 움찔하고 작은 경련을 일으켰다.

    ‘……!!’

    방금 익숙한 기운이 날아왔다.

    상당히 공격적이고 도발적인 기운이.

    빠르게 고개를 들어 대기실 안을 살폈지만, 멤버들을 제외하고 다른 사람은 이윤밖에 없었다.

    에르제의 눈이 천천히 문 쪽으로 향했다.

    지금 저 문밖에.

    방금 자신에게 매혹의 힘을 날려 보낸 뱀파이어가 있다.

    ‘설마?’

    에르제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어디 가?”

    “화장실이요.”

    “갔다가 바로 와라.”

    “노력해 볼게요.”

    이윤의 말에 대충 둘러댄 에르제는 곧바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

    그러나 대기실 앞을 지키고 있던 두 명의 경호원 말고는 복도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스태프 중 하나인가……?’

    갑자기 존재감을 숨긴 뱀파이어 때문에 에르제의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이러면 찾기 힘든데.’

    작정하고 뱀파이어임을 숨긴 거라면 에르제로서는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물론 있는 힘껏 힘을 일으킨다면 찾을 수 있겠지만, 에르제가 뿜어내는 검은 기운을 이곳의 인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넘길 수 있을 리 없었다.

    따라서 에르제는 일단 화장실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었다.

    뒤에 서 있던 경호원 중 하나가 에르제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따라왔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주변에 지나다니는 스태프에게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에르제가 걸음을 딱 멈췄다.

    ‘……아.’

    그러고는 곧 무언가를 깨닫고 몸을 뒤로 돌렸다.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뒤의 경호원이 존재감을 지우고 자신을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완전히 기척을 지우고 존재감을 극한까지 희미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은 분명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에르제는 눈앞의 덩치 큰 경호원을 바라보았다.

    떡 벌어진 어깨, 다리만 한 팔뚝, 각진 턱, 앞이 보이긴 할까 싶은 짙은 선글라스.

    에르제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구나.”

    “…….”

    경호원은 대답 없이 물끄러미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기다리는 모양이다.

    자신이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를.

    “플…….”

    그러나 에르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경호원이 먼저 자세를 낮추며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비대한 근육들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내 이름은 플랑, 네 이름은?”

    이름 불러 주기를 기다린 게 아니었어? 에르제가 황급히 손을 내저었다.

    “잠깐만, 플랑. 나는 네 로ㄷ…….”

    “네로? 들어 본 적 없다. 알겠다.”

    플랑은 에르제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질 않았다. 그냥 곧바로 에르제에게 짓쳐들어올 뿐.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고, 플랑의 주먹이 바로 눈앞까지 순식간에 날아들었다.

    “야, 이……!!”

    에르제가 이를 꽉 깨물며 몸을 틀었다.

    플랑의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에르제의 코앞을 스쳐 지나갔다.

    “잠까…….”

    플랑의 주먹이 빙글 원을 그리며 되돌아왔다. 에르제가 급하게 몸을 숙여 피하자, 그 위를 플랑의 거대한 주먹이 파공성을 내며 지나갔다.

    타닥.

    본인의 공격이 빗나가자, 플랑은 곧바로 거리를 벌리고 다시 스텝을 밟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이 뇌 빼고 사는 놈이!!’

    급하게 힘을 끌어올려 숨이 가빠진 에르제가 예전 플랑의 모습을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에르제의 신변을 경호하던 경호대의 일원 중 하나이면서 완력으로 치면 일족들 중에서는 단연 1등.

    다만 그 반동인지 생각 없이 자기 판단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서 경호 대장까지는 올라가지 못했던 뱀파이어였다.

    다만 그렇다고 해도, 플랑이 현재 자신을 공격하고 있는 이유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유를 캐물어야 하는데.’

    “흐읍……!”

    안타깝게도 한가롭게 대화나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플랑의 주먹과 발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에르제에게 마구 퍼부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좀! 맞아! 라!”

    와중에 모든 공격을 피하는 에르제에게 플랑은 근육을 더욱 크게 키우며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이대로는 끝이 없겠는데.’

    그래도 일족이라 피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는데, 플랑의 체력은 일족 중에서도 단연 발군이었다.

    세리나 때와는 다르게, 인간의 몸이 아니라 뱀파이어의 몸인 것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었다.

    “후우.”

    에르제는 공기를 찢는 플랑의 주먹을 피하고, 그의 무게중심이 옮겨지는 순간에 다리를 휘둘렀다.

    퍼억-!

    뼈가 부러질 정도의 큰 소리가 나더니 플랑의 몸이 공중에서 크게 한 바퀴를 돌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플랑은 손가락 하나만으로 바닥을 짚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정상적으로 착지했다.

    ‘진짜 미친 신체 능력이네.’

    에르제가 혀를 내두르자, 플랑이 바닥에 떨어진 선글라스를 주워서 다시 썼다.

    “제법이구나. 늑대인간.”

    “……?”

    ‘야.’ 에르제는 그렇게 부를 뻔하다가 겨우 참아 넘기고,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인간은 아닌 것 같고, 머리색은 은발이고…… 그래서 그냥 그렇게 생각한 거냐?’

    이제라도 네놈의 로드라고 말을 할까, 하던 에르제는 손바닥에 검은 기운을 끌어모았다.

    아무리 그래도 엄연히 위계질서라는 것이 있다.

    감히 로드인 자신을 공격했으니, 그에 따른 벌을 내려야지.

    절대, 절대로, 늑대인간으로 오해를 받아서 기분이 나빠 그런 건 아니다.

    사가가가각-.

    에르제의 손바닥 위로 집약된 검은색 기운이 붉은색 눈알을 내밀었다.

    “어…….”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플랑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로…… 드?”

    에르제는 검은 기운을 오른손에 골고루 퍼뜨린 후.

    “늦었잖아.”

    그대로 플랑의 머리를 바닥에 꽂아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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