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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77화 (77/307)
  • 제77화

    77화

    PD가 김지원과 모종의 눈빛을 주고받은 뒤에 그의 지휘 아래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이번에 승자 팀이 되면서 다음 라운드에 진출하게 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사위원들의 칭찬 일색인 심사평뿐만 아니라 시청자 투표에서도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셨는데요. 지금 기분을 말로 표현해 본다면?”

    “하하……. 당연히 기쁘다고 말씀드려야겠죠. 조금 얼떨떨하기도 합니다. LAK 선배님들의 무대도 정말 훌륭했는데, 저희 무대도 그만큼 좋게 봐주신 것 같아서 팬분들께 정말 감사드리고요.”

    그렇게 가벼운 축하 인사로 시작한 인터뷰는 단순한 우승자 소감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길었다.

    물론 그에 대한 이유가 있었다.

    인터뷰를 포함한 이번 방송에서 ‘토트윈 팀’은 ‘김지원 팀’으로 예쁘게 포장되어 나왔다.

    어떻게든 승리를 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김지원과, 소문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그를 괴롭히는 토트윈의 모습으로 방송에 나간 것이다.

    “토트윈 선배님들께 더 좋은 생각이 있으셨던 것 같았는데, 다행히 제 아이디어로 좋은 성적이 나와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 잘 안 됐다면…….”

    “그래서 그런지, 김지원 씨에 대해 팬들의 성원도 꽤 많은 듯합니다.”

    김지원에 대한 응원뿐만이 아니었다. 현재 방송국 게시판 및 커뮤니티에는 토트윈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지원은 그렇게 인터뷰를 마치며,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카메라가 모두 사라지고 난 뒤에야 그는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 있었다.

    “으흐흐.”

    누군가가 보았다면 비열하다고 할 만한 웃음소리였다. 그러나 김지원은 곧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X발……. X발.”

    일단 어떻게든 해냈다는 감상과 다르게, 제이의 얼굴을 떠올리니 욕부터 나온다.

    ‘또 이런 짓이라니.’

    지금 자신에게 따 간 인터뷰를 끝으로, 아마 방송에서 토트윈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일은 그만해도 될 듯싶었다.

    이번 인터뷰의 내용도 최대한 숨겼지만, 미묘하게 티가 나게끔 대답했으니 말이다.

    제이…… 라는 놈이 자신에게 바란 것은 단 하나였다. 그의 목소리가 다시금 머릿속에 왕왕 울리는 듯했다.

    - 나머지는 PD가 편집으로 알아서 해 줄 거야. 그러니까 닥치고 시키는 일이나 제대로 하도록 해.

    저번에 소문으로 토트윈의 이미지를 깎아 먹겠다는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후, 상당히 신경질적으로 변한 제이의 다음 명령이었다.

    “……X발.”

    다시 욕을 내뱉은 김지원은 무릎을 끌어당겨 소파에 앉았다.

    ‘데뷔만 할 수 있으면 뭔 짓을 못 하겠어.’

    그래서 친한 친구였던 녀석의 뒤통수를 쳤다. 자신이 들어갔어야 할 자리를 빼앗고 들어갔던 놈의 뒤통수를 말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엿 같은 기분도 한순간일 뿐이다.

    그냥 대상이 또 ‘모카 엔터테인먼트’라는 사실 때문에 기분이 더러운 거겠지. 아니, 어쩌면 제이라는 악독한 이에게 이용당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냥 또 학폭으로 망하기나 하지.’

    왜 끈질기게 버텨서 지금과 같은 상황을 초래하는 건지.

    김지원은 실소를 짓고는, 핸드폰을 꺼내어 아육시 시청자들의 반응을 확인했다. 그들은 자신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글들을 양산해 내고 있었다.

    - 와, 이번 무대 김지원이 다 아이디어를 낸 거였어? 난 토트윈이 그래도 먼저 데뷔했으니까 이끌어 준 건 줄 알았는데.

    ┖ 토트윈 컨셉은 판타지 쪽이잖아. 아무래도 동양풍은 생각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긴 함.

    - 아이디어도 아이디언데;; 참가자들 챙기는 게 김지원밖에 없다는 게 소름이네. 토트윈은 바쁘다는 거 너무 티 내는 거 아님? 연습도 거의 참가 안 했네;

    ┖ 그러니까 ㅋㅋㅋㅋ 첫날도 팀 결성되고 회의해야 하는데, 밥이나 먹고 그냥 가려고 한 것 같음.

    ┖ 중간중간에 참가자들 연습 힘들어하고 그러는 거, 김지원이 죄다 케어했다. ㄷㄷㄷ

    ┖ 근데 TSN 이거 괜찮나? 너무 빠꾸 없이 다 보여 주는 거 아니야? ㅋㅋㅋ

    ┖ 뭐래, 오히려 이게 공정한 거지.

    - 제일 소름인 건 지원이가 내는 아이디어를 다 무시하는 토트윈이다……. 우리 지원이 마상 심했겠는데. ㅠㅠㅠ

    - 아……. 알겠습니다. 이게 지원이가 제일 많이 한 말임.

    ┖ 근데 그 와중에 동양풍이랑 소품 아이디어, 퓨전으로 하는 거……. 진짜 이번 무대 대부분을 뚝심 있게 잘 밀었네. 토트윈도 카메라 의식해서 이거까지는 반박 못 한 듯? ㅋㅋ

    - 김지원, 진짜 열심히 하더라. 솔직히 토트윈이 무대 잘한 건 인정하기는 하는데 김지원도 그에 못지않았다고 봄.

    자신에 대한 평가는 끝없이 올라가고 있었고, 반대로 토트윈에 대한 평가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중이었다.

    자신은 그저 명령 받은 대로 대사를 치고 행동했을 뿐인데, 편집을 거치니 ‘소년 가장’ 이미지로 아주 기가 막히게 포장되어 있었다.

    게다가 ‘학폭’과 관련한 것도 진실과는 다르게.

    - 회사를 믿을 수 없어서 아이돌을 포기하더라도 직접 내부 폭로를 한 거라는데?

    무슨 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처럼 아주 아름다운 이야기로 포장되어 있었다.

    그리고 토트윈은……. 그러니까 모카 엔터테인먼트는 그런 김지원을 방송 내내 적대하는 것처럼 비쳐졌고 말이다.

    아마 진지하게 파고들었다면, 모카 엔터테인먼트나 토트윈이 이렇게 멍청하게 자신을 적대시할 리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겠지만.

    ‘……뭐, 토트윈이 만인한테 사랑 받는 아이돌도 아니고.’

    거기다 장래에 다른 아이돌을 위협할 스타성이 풍부한 만큼, 작은 조약돌에도 커다란 파문이 일어나는 거다.

    아육시 같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는 특히나 팬들끼리의 이런 결속이 강한 편이기도 하고 말이다.

    “……악마 같은 놈들.”

    진실의 여부와 상관없이 토트윈이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우리는 그런 적 없어요! 방송국에서 악마의 편집을 한 겁니다!’라고 아무리 외쳐 봤자, 이에 대한 증거가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증거…… 없겠지?’

    김지원은 내심 불안한 마음을 숨기며 천천히 끌어모았던 무릎을 폈다.

    발이 바닥에 닿자, 심란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는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을 팔아먹긴 했지만, 그래도 이번 방송으로 자신의 인지도는 끝없이 올라갔다.

    이제부터 데뷔까지는 그야말로 탄탄대로일 것이 분명했다. 데뷔 후에도 실력으로 모자람이 없는 자신이기에 계속해서 승승장구할 것이 뻔했고.

    ‘그렇게 되면…… LAK도.’

    손에 닿게 되겠지. 더 이상 제이 같은 놈에게 끌려 다니는 일도 없을 것이다.

    “흐흐…….”

    그렇게 즐거운 상상을 하던 김지원은 ‘달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겨우 차분해진 마음이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 때문에 다시금 들끓었다.

    “제이……. 제이님……!”

    김지원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서 허리를 반으로 접었다.

    아마 조금 전 인터뷰를 마치고 나간 PD와 이야기를 하고 왔으리라고 추측됐다.

    그리고 역시나,

    “이번엔 잘해 줬어.”

    “가, 감사합니다.”

    제이에게서는 따뜻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연기 잘하던데? 편집하기 편했다고 하더라.”

    “아…….”

    욕지거리가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고, 김지원은 허리를 더욱 숙였다.

    어느새 다가온 제이의 손이 한껏 숙인 그의 등을 툭툭 두들겼다. 포식자를 앞에 둔 초식 동물처럼 김지원의 몸은 절로 굳어졌다.

    “이번에 좋은 이미지도 많이 쌓았고, LAK까지 꺾었으니까……. 뭐 데뷔까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제이가 보라색 눈을 번들거리며, 손가락 끝으로 김지원의 턱만 잡아서 올렸다.

    겁을 잔뜩 집어먹은 김지원의 동공이 파르르 떨리며, 그런 제이의 얼굴을 담아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기이하게 일그러진 제이의 얼굴을.

    “으…… 으.”

    제이의 손가락을 따라 올라간 김지원의 목이 뽑힐 것처럼 위로 높게 들어 올려졌다. 절로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제는 제이의 머리카락은커녕 천장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 그의 귀로, 섬뜩한 제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까?”

    “……무, 무슨 말을 하시는…….”

    낮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자진 하차해. 잠깐 바람 좀 쐬고 오자?”

    “그…… 그러면.”

    이게 무슨 소리야. 그럼 내 데뷔는? 아육시에서 성공적으로 데뷔하는 거 아니었어?

    혼란스러운 김지원의 눈빛을 읽은 제이가 피식 웃으며, 품 안에서 A4 용지 하나를 꺼냈다.

    “이거 그대로 옮겨 적어. 네 필체로.”

    제이가 그것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 ‘고라니 엔터테인먼트’의 명함을 같이 두었다.

    “이번 일을 성공적으로 마치면, 네 데뷔는 여기서 하게 될 거다. 아육시에서 성공하는 것보다 훨씬 나을 거야. 지원도 빵빵할 테고.”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누구의 입에서 나온 명령인지가 중요했다.

    ‘약속…… 조차 받아 낼 수가 없었어.’

    결국, 김지원의 시선이 천천히 테이블 위로 향했다.

    A4 용지를 집어 드는 그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 * *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장 대표는 요 며칠 사이 사람이 변한 듯이 수척해져 있었다.

    “……김지원, 이 미친 새끼.”

    가뜩이나 토트윈과 모카 엔터테인먼트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던 여론이 김지원의 자진 하차로 더욱 악화되었던 것이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도대체 김지원은 모카 엔터테인먼트에 왜 이렇게까지 적대적인 건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이유를 모르겠다.

    게다가 김지원의 필체로 적힌 글이 현 상황에 제대로 불을 붙여 놓았다.

    [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하면서 너무 많은 회의를 느끼고 자진 하차를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

    그 뒤로도 비슷한 뉘앙스의 글이 이어졌으나, 기자들은 이미 좋은 미끼를 물었다는 듯 모카 엔터와 토트윈을 무작정 김지원과 엮고 있었다.

    [ 회의를 느낀 것은 토트윈의 갑질 때문? ]

    [ 과거 모카 엔터테인먼트 데뷔조에서 잘렸던 김지원, 그의 정의감은 이번에도 무너질 뻔했다. ]

    [ 모든 것을 가감 없이 내보낸 TSN ‘아육시’의 용기에 박수를 ]

    [ 김지원의 자진 하차, 그리고 그가 남긴 글의 의미는? ]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들이 양산되고, 또 퍼져 나가는 중이었다.

    “아아.”

    장 대표는 허탈하게 웃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고, 어디서부터 해결을 봐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처음 TSN에서 김지원의 인터뷰와 악마의 편집을 통해 마치 토트윈이 갑질을 했다는 식으로 방송을 내보냈을 때만 해도 장 대표는 일단 반응하지 않았다.

    반박할 증거도 없었고, 일단 그대로 두면 들끓었던 여론도 금세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팬들이 일방적으로 떨어져 나가는 것까지는 막지 못하겠지만, 최소한 코어 팬들이 남아 준다면 2집 활동과 더불어 충분히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고 희망적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나 뜬금없는 타이밍에 김지원이 자진 하차를 해 버렸다.

    그것도 훌륭한 무대의 발의자가 되어서……. 게다가 아육시 팬들의 지지도 많이 얻은 상태에서.

    “하아.”

    때문에 지금 모카 엔터와 토트윈은 역대급 비난의 화살을 맨몸으로 맞고 있는 중이었다.

    “……진짜 남돌만 내면 왜 이런 일이……. 진짜 내 업보인가.”

    무심코 속마음을 내뱉은 장 대표가 책상 위에 얼굴을 파묻었을 때.

    대표실의 문이 노크도 없이 열렸다.

    이윤인가, 싶어서 장 대표가 슬며시 상체를 들어 올렸다.

    그런데 그곳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인물이 서 있었다.

    “얼굴이 반쪽이 됐네. 아! 다이어트 중이에요?”

    여전히 이상한 소리나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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