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76화 (76/307)

제76화

76화

WOOOOOOOO-----.

찌르르 공기가 진동하고, 순간적으로 소름이 끼치는 듯한 울음소리가 뒤를 따랐다.

앞 무대의 여운을 한 방에 날려 버리고, 그들은 마치 뮤지컬처럼 각자의 파트에서 한 명씩 무대 위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 쌀쌀한 바람에

밀려나는 구름

첫 스타트는 에르제와 같이 이번 무대의 주인공이 된 김지원이었다.

토트윈에서 주연 2명을 맡지 않고,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의 참가자가 배제되지 않도록 정한 구성이었다.

- 산 위를 걷는 발걸음에

바스러지는

그리고 에르제가 파트를 이어받아, 김지원과 함께 화음을 쌓아 나갔다.

- 주황빛, 노란빛

낙엽.

아직까지는 원곡에 충실한 발라드였으나, 여전히 첫 여우 울음소리의 긴장감이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그 긴장감이 사라지기 전에 정확히 지금.

파앗-!

으스스하게 느껴지는 푸른색과 백색 조명이 희미하게 무대 위를 비추고.

후두두둑-.

뒤에 보이는 커다란 VCR 화면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어서 울리는 북소리가 그런 분위기를 더욱 스산하게 고조시켰다.

마치 리와인드가 되듯 테이프 감기는 소리와 함께 빠른 비트가 더해졌다.

- 쌀쌀한 바람에

밀려나는 구름-!

첫 파트를 다시 김지원과 에르제가 같이 부르고,

- 산 위를 걷는 발걸음에

바스러지는

주황빛, 노란빛

낙엽.

뒤의 가사는 민주혁과 다른 참가자가 같이 부르면서 무대 위로 올라왔다.

똑같은 가사였으나, 훨씬 빠른 템포였다.

둥! 둥! 울리는 북소리도 양손으로 내리치는 듯 빨라졌고, 거문고 소리도 현란하게 박자를 타며 멜로디를 쏟아 냈다.

조명 또한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번쩍였다.

지이이이잉--.

여기에 일렉트릭 기타까지 합류했으나, 깔끔한 편곡 덕분에 동양과 서양의 소리가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한복 정장을 입은 9명의 모습이 곡의 분위기와 묘하게 잘 어울렸다.

그리고 동시에 칼같이 움직이는 군무도 마찬가지였다.

탕!

동시에 바닥을 차고 공중으로 높이 뛰어올랐다가 몸을 납작 엎드리기도 한다.

덩실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비보잉 스킬처럼 보이기도 했다.

춤마저도 동양과 서양의 조화로움을 담기 위한 노력이 엿보였다.

- 가을에 내리는 비는

마치, 마치, 마치

원곡보다 빨라진 템포에 맞춰서 반복적인 구절을 만들어 주고, 부드러운 춤선은 예민하게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관객들의 머릿속에서는 LAK 팀이 보여 주었던 강렬한 무대는 이미 지워져 있었다.

- 그대를 생각한 밤에

내리는 비, 비, 비.

VCR에서는 음울한 느낌을 살리는 영상이 계속해서 흘러나왔고, 9명은 마치 한 사람이 춤을 추는 것처럼 완벽한 합을 보여 주었다.

처음 만들어 두었던 오묘한 긴장감이 마치 가느다란 실처럼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하이라이트 구간으로 접어들었을 때.

타다다다닥-!

군무 속에서 뒤로 살짝 빠져 있던 민주혁이 앞으로 달려 나왔다.

뒤이어 태현우와 윤치우가 각자 하나씩 내민 손바닥을 밟고, 공중으로 높이 날아올랐다.

파라라락! 하는 소리와 함께 공중에서 민주혁의 도포가 휘날렸고, 그 바로 밑으로 재빠르게 김지원과 내성적인 참가자가 앞으로 뛰쳐나왔다.

1초도 되지 않는,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 어디에, 있나

어디로, 가야 하나.

분명 구름 하나 없는

맑은 하늘이었는데.

전통 악기 소리가 더욱 강하게 밀려들어 왔다.

거세진 비처럼, 파도처럼 물밀듯이 무대에서 관객석 쪽으로 쏟아졌다.

- 내리는 비, 비, 비

- 내리는 가을비, 비, 비-!

원곡의 감정을 그대로 살리면서 더욱 풍부하게 만든 사운드로 강렬함을 더해 갔다.

민주혁의 공중제비로 달아올랐던 현장의 분위기에 호응하듯 관객석에서 큰 함성이 터져 나왔다.

“아아아악!!”

그들이 내는 함성 소리마저도 하나의 악기가 되어 무대에 입체감을 더해 주었다.

- 끝내 나를 떠나갔나.

그대는, 가을비처럼.

그렇게 곡의 고조감이 극에 달했을 때.

“…….”

“…….”

마치 거짓말처럼 고요한 적막이 찾아왔다.

자신을 떠나가 버린……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울부짖던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처럼.

- 아니, 다시 나를 향해

내리나, 가을비처럼.

현란하게 쏘아 대던 조명도 차분해지고, 다시 처음처럼 푸른색과 백색 조명만이 희미하게 비췄다.

마지막 클라이맥스.

그들이 만든 서사에 드디어 끝맺음을 할 때였다.

주연배우인 김지원과 에르제, 둘의 서사 말이다.

7명은 뒤쪽으로 빠져서 어둠 속에 묻히고, 김지원이 오른편으로 돌아 나와 손을 뻗었다.

- 가을비, 비, 비.

그리고 왼편에서 돌아 나온 에르제가 바닥을 내려다본 채로 서글프게 노래를 받았다.

- 내리는 비, 비 비.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 듯이, 둘의 화음이 애절한 감정으로 이어졌다.

김지원이 한 걸음씩 에르제를 향해 걸음을 내디디고.

- Woo, oooh, ooo…….

에르제는 가만히 선 채, 구슬픈 울음소리를 내었다.

맨 처음 냈던 여우 소리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멜로디를 넣어 곡의 마무리를 지어 갔다.

마침내 김지원이 에르제의 근처까지 다가왔을 때.

그제야 조명이 에르제의 전신을 비추었다.

그의 머리에는 조금 전 춤을 출 때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여우 귀가 달려 있었다.

- 비처럼

왔다가, 떠나가네.

마지막 가사와 함께 에르제는 무대에서 완전히 빠졌고, 김지원은 혼자 허공에 손을 뻗으며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

“…….”

끝난 건가? 하는 생각이 들 때쯤 되어서야, 모든 멤버가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냈고, 조명도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감사합니다!!”

9명이 동시에 입을 맞춰서 감사 인사로 무대가 끝났음을 알리자, 그들이 서 있는 곳으로 엄청난 박수 소리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때까지 이어지던 긴장감의 실이 그제야 툭 하고 끊어져서 후련한 기분이었다.

‘후.’

에르제는 이마에 흐른 땀을 손등으로 닦아 내며 밝은 웃음을 지었다.

“와……!!”

그렇게 토트윈과 4명의 참가자가 감격에 겨워하고 있을 때, MC가 탄성을 내뱉으며 다가왔다.

“‘가을비’가 이렇게 바뀔 거라고 생각도 못 했네요!!”

“아하하.”

언제부터 마이크를 들고 있었는지 김지원이 멋쩍게 웃었다.

“정말 대단한 무대였습니다. 마치…… 한 편의 뮤지컬 같기도 했고요. 저는 숨을 꾹 참고 지켜봤습니다.”

MC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지 아주 놀랐다는 눈빛으로 심사위원석을 바라보았다.

“그럼, 이번 무대에 대한 심사위원님들의 평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심사위원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무대 연출부터 곡의 구성, 편곡, 센스 있는 개사, 가창, 군무…….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아주 좋았습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런 완성된 무대를 볼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역시 상위권 참가자들은 저력이 있네요.”

그렇게 좋았다는 심사평이 이어지고, 에르제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LAK 팀 쪽을 바라보았다.

‘저쪽도 나쁘지는 않았는데.’

가창이나 춤에서 LAK 팀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오히려 디테일적인 부분은 그들의 연차와 경험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누가 더 ‘무대’를 잘했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이쪽이 더 우위였다.

“두 팀 중에 승자를 골라야 한다는 게 무척 고심되기는 하지만…… 저는 결국 아이디어가 좋았던 팀의 손을 들어 줄 수밖에 없겠네요.”

실제로 심사를 끝내며 심사위원의 점수가 공개될 때마다, 토트윈 팀의 점수가 조금 더 높게 책정되고 있었다.

‘시청자 투표도 마찬가지겠지.’

다만 한 가지, 아직까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어째서 김지원은 무대를 지게끔 방해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제이는 다른 이들의 심사평을 듣고도 왜 아직 저렇게 여유로운 모습인가.

저번에도 느꼈던 위화감이 지금 이곳 스튜디오에서도 팽배해 있었다.

‘……슬슬 패를 까야 하지 않나?’

그렇기에 에르제는 마지막 심사평을 하기 위해 마이크를 집어 드는 제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제이도 그런 에르제의 시선을 느꼈는지, 그를 마주 보며 싱긋 웃었다.

“훌륭한 무대였습니다.”

“…….”

좋은 평가로 시작한다. 하기야 여기서 갑자기 초를 칠 수는 없겠지.

‘……갑자기 이쪽에 0점을 줘서 평균 점수를 떨어뜨리는 미친 짓을 하지는 않을 테고.’

적당히 트집을 잡아서 1점 차이 정도로 지게끔 하려는 것도 큰 의미가 없었다.

시청자들의 선택이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하니까.

그러나 제이는 무슨 생각인지 이쪽 팀을 까는 일 없이 계속 칭찬만을 늘어놓았다.

“저도 LAK에 소속된 아티스트지만, 심사는 공정하게 하기로 PD님과 약속을 해서요.”

제이의 말에 쿡쿡 웃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미 다 앞에서 하셔서 굳이 덧붙일 건 없을 것 같고……. 다만, 한 가지.”

에르제를 바라보던 제이의 시선이 김지원에게로 옮겨 갔다.

“아까 VCR 영상을 보니까 이번 무대의 전반적인 아이디어가 김지원 씨에게서 나온 것 같던데요?”

“??”

당황한 토트윈 멤버들이 에르제와 김지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리고 에르제도 마찬가지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들의 모습은 화면에 전혀 잡히지 않았고, 카메라는 오직 김지원만을 클로즈업하고 있었다.

김지원은 민망하다는 듯이 볼을 긁적이며 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무래도 서바이벌이다 보니 무대 한 장면, 한 장면에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무리……한 아이디어도 있었고, 네. 반려도 많이 됐지만…… 그래도 그것 때문에 오늘의 무대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이 많아진 표정으로 대답하는 김지원의 모습.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인가 싶어서 가만히 듣고 있으니, 둘의 티키타카가 이어졌다.

“저는 개인적으로 김지원 씨가 이번 무대에서 오디션 참가자의 모습을 완벽하게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동료애, 무대에 대한 열정 그리고 오늘 보여 준 퍼포먼스까지. 원래도 실력 있는 참가자였지만, 오늘 드디어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낸 것 같네요.”

“아……. 감사합니다.”

인터뷰로 인해 처음부터 동정 여론도 있었던 김지원이었다. 거기에 더해 제이의 심사평에 눈물까지 글썽이며 고개를 푹 숙이자, 관객석에서는 격려의 박수까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그의 옆에 서 있던 참가자들은 괜히 김지원의 어깨를 한 번씩 토닥거리기도 했고 말이다.

“…….”

왠지 토트윈만 뚝 떼어다가 외딴 섬에 놓아 둔 기분.

하지만 아직까지는 제이와 김지원이 뭘 노리고 있는지 헷갈렸다.

아이디어? 솔직히 이 프로그램의 주인공은 저들이다.

토트윈이 아니라 김지원이 모든 아이디어를 냈고, 이번 무대를 만들어 냈다고 조작을 해도 별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좀 열 받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우리가 했어요!’라고 말할 분위기도 아니었고, 또 이 정도면 제이가 판 함정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약했다.

‘……애초에 그냥 이 정도로만 이용해 먹으려고 한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승자는 토트윈 팀입니다!!”

굳이 LAK까지 끌고 와서 이렇게 순순히 패배시키는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팬들은 LAK와 토트윈의 대결 구도를 보고 싶어 했고, 결과적으로는 토트윈이 LAK를 이겼다는 인식이 생겼으니까.

“…….”

두 팀의 무대가 끝이 나고 인터뷰를 따겠다고 김지원과 다른 참가자들을 데려갔을 때만 하더라도 에르제의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여전히 위화감이 남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와, 이 X끼들 진짜 미친 거 아니에여!?”

오늘 무대를 재방송으로 시청한 뒤, 토트윈은 비상이 걸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