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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74화 (74/307)
  • 제74화

    74화

    [ ToT-win,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에 등장? ]

    [ 아이돌 지망생과 아이돌,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 ]

    마지막 후보였던 토트윈까지 아육시에 출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기사들이 우후죽순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쪽에 관심이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육시와 토트윈의 미묘한 경쟁 구도를 눈치채고 있었기에 바이럴 마케팅은 확실하게 먹혔다.

    TSN뿐만 아니라, 모카 엔터테인먼트도 마찬가지였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토트윈이 나왔던 CF 빈도수를 더욱 높인 것이었는데.

    그쪽 계열사의 말에 따르면, 빈도를 높인 비용보다 광고 효과로 벌어들이는 돈이 훨씬 많다고 하더라.

    그렇게 일반인들과 아육시 시청자들은 흥미로운 요소에 기대감이 높아졌으나, 이브들의 입장은 달랐다.

    ― 굳이? 진짜로 굳이? 왜? 나만 이해가 안 가는 거임?

    ― 이거 아육시 빠들 말대로면, 굳이 마왕이 용사 파티한테 나서 주는 거 아니냐고.

    ┖ 진짜 가만히만 있어도 알아서 지쳐 나가떨어질 수준인데……. 솔직히 아육시에서 데뷔해 봤자 우리 애들 커리어 따라올 수가 있겠냐고? 이번에 음원 1위로 도장까지 박았는데――

    ― X소 진짜 제정신인가 싶다.

    ┖ 장태수잖아…….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됐다고 생각한다…….

    ┖ ㅅㅂ 진짜 마이너스의 손. 낄 때, 안 낄 때 구분을 못 하네.

    공식 팬카페부터 시작해 커뮤니티는 거대한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 대부분 심각한 반응을 보였다.

    아육시 녹화 방송분 촬영을 위해 촬영장을 찾은 토트윈은 그 때문에 꽤나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팬들 반응이 세여.”

    “나 같아도 그랬을 것 같기는 해. 우리가 대놓고 ‘아육시 짓밟으러 갑니다’라고 할 수도 없잖아.”

    “아무래도 팬들은 불안해하실 만도 하지.”

    “…….”

    “…….”

    “잘하자.”

    결국 별다른 말 없이 윤치우가 마무리했다.

    ‘다 때려 부수겠다!’라는 생각으로 오기는 했지만, 막상 도착하고 이곳의 분위기를 보니 왠지 걱정이 앞서기는 하는 모양이다.

    ‘뭐 패배를 아예 염두에 두지 않을 수도 없으니까.’

    그래도 오늘 당장 경연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의 시간이 주어지니 결과는 그때 가서 보면 될 거고…….

    에르제는 고개를 슬쩍 들어 촬영장 안에 흩어져 있는 다른 인간들을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아이돌 팀과, 모니터링 할 때 봤던 몇 명의 아육시 참가자들.

    ‘오늘 이 중에서 같은 팀과 붙을 팀이 정해진다고 했지.’

    오늘 먼저 녹화를 따고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경연에 앞서서 영상을 틀어 준다더라.

    그리고 에르제는 같은 팀이 될 몇몇과 붙게 될 팀이 누구인지 벌써 감이 왔다.

    ‘김지원은 무조건 이쪽에 붙여서 티가 안 날 정도로만 우리를 괴롭히도록 할 거고, 상대로는…….’

    지금 이쪽으로 싱글벙글하며 걸어오는 ‘LAK’로 정해져 있을 것이 분명했다.

    “반가워요, 후배님들~.”

    역시나 저쪽도 알고 있는지 반가운 척을 하긴 하는데, 눈동자에는 악의가 가득 담겨 있다.

    ‘솔직히 우리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말이지.’

    보나마나 제이가 팀 내에서 작업을 해 둔 결과물이겠지만.

    피식 웃은 에르제가 손을 내미는 이채선의 손을 붙잡았다.

    “반가워요, 선배님들.”

    이채선의 말을 따라서 대답하자.

    “이게 얼마 만에 보는 거죠? 하하하, 시상식 때 보고 그 뒤로는 못 봤죠?”

    LAK의 다른 멤버들도 어색하게 남은 토트윈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진짜로 반가운데요, 서은우 씨?”

    꾸욱―.

    이채선이 끊어 말하며 은근슬쩍 악수를 하는 손에 힘을 줬으나, 에르제는 눈도 깜짝하지 않은 채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러니까 아주 약간만 세게.

    “흐엇! 억! 어어억!!”

    이채선의 오른팔이 낙지처럼 팔딱거렸다.

    지구에는 없는, 고위 귀족만의 악수법이 이곳에서 부활하는 멋진 장면이었다.

    털썩―.

    에르제는 처참하게 바닥에 쓰러져 버린 이채선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치, 치워!”

    방금 공포의 악수 때문에 저도 모르게 한 행동이었으나, 그게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였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하 씨.”

    이채선은 본인의 실수를 깨닫고 짜증스러운 얼굴로 에르제를 노려보았다. 예나 지금이나 참 한결같은 사람이다.

    에르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제이가 이용해 먹기 참 좋은 놈들로 팀을 골라 놨네.’

    이제는 제이의 정체를 알고 있으니 LAK라는 팀 자체가 어떻게 굴러가는지가 대충 보인다.

    이번 아육시에 LAK가 제이를 빼고 경연에 참가한 것도 토트윈을 짓밟으라는 제이의 명령 때문이겠지.

    ‘……뭐 사회성이 애송이인 것 빼고 실력이야 확실하긴 하니까.’

    아무리 제이라도 LAK를 입맛에 맞는 인간들로 대충 만들지는 않았다는 소리다.

    춤, 노래, 작사 작곡, 프로듀싱 능력 등등.

    LAK에 속해 있는 인간들은 확실히 실력까지도 갖추고 있었다.

    괜히 1군 아이돌에 한자리를 걸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소리다.

    ‘팬들이 LAK랑 붙는다는 걸 알면 아주 난리가 나겠는데.’

    그리고 제이가 리더이자 비주얼 멤버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LAK에서 제이가 심사위원으로 빠졌다고 해서 그룹의 힘에 마이너스가 되는 점은 없을 듯싶었다.

    그렇기에 제이가 이런 수를 둔 것일 테고 말이다.

    ‘뭐 생각처럼 잘되지는 않겠지만.’

    제이는 토트윈을 확실하게 자신의 그룹으로 찍어 누르려는 생각이겠지만……. 글쎄.

    ‘반대가 되었을 때의 대처 방안은 생각해 뒀으려나?’

    에르제는 곧 자리를 떠나는 LAK를 보며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렸다.

    이후의 상황은 역시나 에르제가 속으로 예견했던 방향대로 흘러갔다.

    “참가자들은 차례대로 나와서 각자 함께할 선배 아이돌을 뽑도록 하겠습니다!”

    MC는 그렇게 말하고는, 역시나 김지원을 꽤 초반에 호명했다.

    명목은 저번 경연의 성적순이라고는 하는데, 그 성적순이라는 것을 당최 믿을 수가 있어야지.

    ‘오디션 프로그램의 맹점이구나, 이게.’

    에르제는 재미있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김지원이 뒤집어져 있는 카드를 뽑는 것을 지켜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아! 김지원 참가자는 토트윈과 함께하게 되었군요!”

    김지원은 이쪽 팀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 뒤로 토트윈에 배정된 다른 참가자들의 면면이 아주 화려했다.

    아직 방송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가장 많은 안티팬을 보유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성격 더러운 참가자.

    노래 최하, 춤 하, 그나마 편곡 능력 덕분에 아직까지 살아 있는, 실력이 떨어지는 참가자.

    실력은 준수한데 방송 내내 다른 사람들과 거의 소통을 하지 않는 내성적인 참가자까지.

    김지원을 차치하고도 실로 조합이 아주 끝내줬다.

    ‘……이거 우리가 없었으면…….’

    방송 내내 불화만 일으키는 실력 없는 팀으로 낙인찍혔을 것 같다.

    ‘이렇게까지 심하게 팀 배정을 해 줄 줄이야.’

    그렇게 짧은 감상평을 내리고 있자, 마지막으로 서로 붙게 될 팀이 정해졌는데.

    “토트윈과 상대할 팀은……!!”

    MC가 빙글빙글 넘어가는 전광판을 손으로 가리키고 있었는데, 에르제의 동체 시력에는 그 과정이 뻔히 보였다.

    LAK, ‘더 보이즈’, LAK, ‘ROBBIN’, LAK…….

    한 팀 걸러서 LAK가 계속 보인다. 물론 인간들의 눈에는 무슨 알파벳인지도 안 보이겠지만 말이다.

    결국 룰렛이 멈추고 나온 것은 LAK였다.

    MC가 호들갑을 떨었다.

    “LAK입니다!! 핫한 루키 토트윈과 그들을 격려하며 친하게 지내던 선배 아이돌 LAK의 맞대결! 이야, 벌써 가슴이 두근두근해지는 매치업이네요!”

    언제부터 격려해 주고 친하게 지냈지?

    팬들도 속지 않을 멘트를 치는 MC는 얼굴에 철판을 깐 듯 아무렇지도 않게 멘트를 이어 나갔다.

    “그럼 두 그룹이 각자 대결할 음악을 뽑게 되는데요. 과연, 그들의 운명을 결정지을 선곡은 어떻게 될는지!”

    돌림판이 또 돌아가고 LAK의 선곡이 먼저 등장했다.

    그들은 1세대 아이돌 중 한 곡이 걸렸다.

    안단테가 입술을 비죽 내밀며 투덜거렸다.

    “에이 씨, 저쪽은 괜찮은 거 걸렸네여.”

    “그래?”

    “네. 베리에이션 할 것도 다양하고, 매시업 하기에도 좋은 곡이라서여. 그리고 일단 저게 가장 크져. 퍼포먼스 하기 좋게 곡 중간중간이 비워져 있다는 거여.”

    “안단테, 똑똑하네.”

    “헤헤.”

    작곡에 일가견이 있는 에르제도 안단테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LAK가 추구하는 음악성과도 맞닿아 있는, ‘운 좋은’ 선곡이었으니까.

    에르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곡까지 손댔을 줄은 몰랐는데.’

    이건 좀 치사하지 않나 싶었는데, 저쪽은 어지간히도 진심인 모양이다.

    “토트윈 팀은…… 아……! 7080의 대표 발라드곡 중 하나죠! ‘가을 비.’ 이 곡을 과연 어떻게 트렌디하게 바꿀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하, 하.”

    노련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MC도 순간 당황할 정도의 선곡이 당첨되었다.

    “우와!”

    옆에 서 있던 안단테가 저도 모르게 그 말을 뱉었다. 그러고는 서글픈 표정으로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형, X 된 것 같은데여.”

    * * *

    방송 녹화가 끝난 것은 저녁 7시가 되었을 즈음이었다.

    각자 저녁을 해결하고 온 뒤 토트윈과 4명의 참가자는 우울한 얼굴로 연습실에 모였다.

    주어진 시간이 일주일밖에 없어서 일단 첫 회의를 하기 위해 집에 가지 않고 바로 모인 것이다.

    “…….”

    “…….”

    한동안 침묵이 감돌았기에 일단은 먼저 데뷔한 토트윈이 리드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옆에서 퇴근하지 못한 불쌍한 영혼이 카메라를 들고 찍는 중이라 빨리 마무리 짓는 게 좋을 듯해서 말이다.

    때문에 윤치우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자, 우선 노래부터 같이 들어 볼까요?”

    끄덕끄덕.

    참가자들이 고개를 끄덕이자, 윤치우가 ‘가을비’를 틀었고, 3분 30초가량의 곡이 끝났을 때 분위기는 더욱 침울해졌다.

    에르제는 참가자 4명을 돌아보며 물었다.

    “먼저, 여러분의 의견이 궁금해요.”

    김지원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저는……. 글쎄요. 이호진 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김지원이 은근슬쩍 대답을 회피하며 옆으로 넘겼다. 이호진은 작곡과 편곡 실력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참가자였으나, 그 또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발라드 장르라 바로 떠오르는 게 없네요. 일단은 파트를 나눠 보고 그럴듯하게 바꾸는 방향으로 생각을 해 보는 게…….”

    “일단은 미션 자체가 트렌디한 아이돌 분위기로 바꾸라는 거니까 생각을 그쪽으로 하기는 해야 할 텐데…….”

    일단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가해서 지금까지 살아남았다 보니, 생각의 전환은 빠른 듯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적극적인데.’

    김지원의 태도가 뜻밖이었다.

    분명 훼방을 놓거나 비협조적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말이다.

    ‘……일단은 카메라가 돌고 있어서 이미지 관리라도 하는 건가.’

    하긴 김지원은 달콤한 보상을 약속받고 제이의 명령을 수행하고 있을 터. 그리고 그 보상은 이 프로그램, 혹은 그쪽 회사에서의 데뷔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일까.

    김지원에게 내재된 악의는, 편집의 힘인지 아직까지 방송에서 드러나지 않기도 했다.

    ‘그렇다고 하면 이해가 가기는 하는데.’

    에르제는 눈을 가늘게 뜬 채 김지원의 행동을 유심히 살폈다.

    “그러면 처음에는 록 발라드 느낌으로 편곡해서 느낌만 볼까요? 선배님들의 생각은 어떠세요?”

    “글쎄요.”

    잠시 고민하던 윤치우가 그렇게 대답했고, 김지원은 금세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아……. 그럼 다른 거 생각해 볼게요.”

    그러다가 지금.

    ‘뭐야.’

    에르제는 아주 조금…… 위화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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