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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73화 (73/307)
  • 제73화

    73화

    대학생이 참담한 심정이 되기 며칠 전.

    장 대표는 직접 토트윈의 숙소까지 찾아와 그들의 의중을 물었다.

    “진짜 너희들은 괜찮다고?”

    “네.”

    “꿀릴 것도 없고, 오히려 그룹의 입장에서 보면 좋은 기회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장 대표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래도 아육시에 너희들이 출연한다는 게……. 차라리 심사위원으로 나가면 모를까, 그런 것도 아니잖아. 다른 아이돌 그룹이랑 직접 비교되는 자리에 ‘굳이’ 나서는 거라고.”

    “뭐, 심사위원을 하려면 LAK 정도는 해야죠.”

    “실력으로는 너희들이 위니까 LAK 따위한테 꿀릴 거 전혀 없지.”

    장 대표가 은근한 자부심을 담아서 말하자, 토트윈 멤버들이 멋쩍게 웃었다.

    그에 따라 너털웃음을 터뜨린 장 대표는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아무튼, 이거 기획 의도 자체는 뻔해. 팬들도 너희들이랑 아육시 경쟁 구도를 의식하고 있는데, TSN에서 그걸 모를까. 분명 이슈화해서 지들 프로그램에 뽕을 뽑아 먹으려는 게 분명하거든.”

    “저희도 그렇게 생각해요.”

    “으음.”

    장 대표는 팔짱을 낀 채 빠르게 이해득실을 따졌다. 결론은 역시나 같았다.

    “솔직히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희들이 나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도대체 왜 하고 싶다고 하는 거야?”

    그는 답답한 얼굴로 대답할 틈도 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나야 최대한 너희들의 의견을 존중하려고 하니까 일단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여기 오긴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게 좋은 결정 같지가 않거든. 일단 김지원이 참가자로 있는 거 자체가 너무 큰 불안 요소야. 괜히 아육시 나갔다가 긁어 부스럼 만드는 꼴이 될 수도 있고.”

    장 대표가 팔짱을 풀면서 이내 그들의 옆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의 목소리는 이제 달래려는 투로 바뀌었다.

    “솔직히 토트윈이 이제는 인지도가 그렇게까지 필요한 그룹은 아니잖아. 굳이 다른 아이돌 그룹이랑 경쟁할 이유도 전혀 없고. 거기다 진짜 천에 하나, 만에 하나 패배라도 해 봐라. 그거 가지고 기자랑 팬들이 얼마나 떠들어 댈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냐?”

    “음…….”

    장 대표의 말이 길어지기 시작하자, 윤치우가 에르제를 보며 말했다.

    “저희도 처음에는 안 나갈 생각이었어요. 거기서 제안한 것도 썩 마음에 드는 방식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데?”

    “은우가 말한 게 마음에 와 닿았어요.”

    윤치우가 그렇게까지만 말하고 에르제를 바라보자, 다른 사람들의 고개도 에르제에게로 향했다.

    ‘……장 대표랑 이윤한테 한 번 더 설명해 달라고 했지.’

    에르제는 지금인가 싶어서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떼었다.

    “우선…… 이건 장 대표나 이윤의 생각이 궁금한데요. 두 분은 김지원이 이대로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김지원이?”

    장 대표가 이마를 잔뜩 찌푸리며 잠깐 생각했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김지원이 더 걸고넘어질 게 있나?”

    “없으면 만들어 내겠죠.”

    “……TSN에서 그걸 요구할 거라고?”

    “김지원은 한 번 써먹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패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인간들의 싸움은 항상 그랬다. 이곳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이미 확인했고.

    누군가의 악의를 아무렇지도 않게 이용해 먹는다. 그로 인해 피해를 볼 사람보다 그것으로 자신이 얼마나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을지만 따진다.

    ‘그렇게 생각하면 TSN이 김지원을 일회용으로 써먹고 끝내지는 않을 것 같아.’

    에르제는 장 대표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방송국은 시청률을 제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던데, 제가 비교해 보니까 김지원의 인터뷰 이후 회차의 시청률은 소폭 하향을 했더라고요. 아무래도 안병인 회장이 한 인터뷰 때문에 불씨가 사그라들었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오히려 김지원 인터뷰와 그와 관련된 회차는 재방 시청률이 더 높아졌고요.”

    윤치우가 조심스럽게 말을 보태자, 장 대표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더불어 이윤의 표정까지도.

    “……근데 그렇다고 달라질 건 없지 않아? 우리의 입장에서는 그쪽에서 뭘 또 터뜨리면 막기나 하는 거지 먼저 나서서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

    “대신 미리 눈치채 볼 수는 있죠. 대비도 더 확실하게 할 수 있고.”

    에르제가 손가락을 세웠다.

    “적은 가까이에 두는 법.”

    “으음……. 솔직히 그렇게 설득되는 느낌은 아니다?”

    장 대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자,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건 그렇긴 하지.’

    이걸 얘기했을 때 멤버들의 반응도 미적지근했으니까.

    이유야 간단했다.

    만약 제이가 속해 있는 뱀파이어 진영이 뱀파리스 쪽과 비슷한 수준의 세력이라면, TSN에서 토트윈을 출연시키려는 제안에 분명 제이의 입김이 닿아 있었을 터……. 그러나 에르제는 그 사실을 털어놓을 수 없었다.

    ‘무슨 꿍꿍이인지 알아내기는 해야 하는데.’

    따라서 에르제가 아육시에 나가기 위해서는 멤버들과 소속사를 설득할 다른 명분이 필요했다.

    저쪽에서 맛있어 보인다고 여길 먹잇감이.

    “확실하게 짓밟아 주고 오려고요.”

    “……어?”

    에르제는 대답 대신 현재 4회 차까지 진행된 아육시 반응을 보여 주었다.

    ― ㅁㅊ 이번 연도 박 터지겠다. 얘네 중 누가 데뷔할지는 몰라도 토트윈 좀 쫄리겠는데?

    ― 토트윈이랑 은근 콘셉트가 비슷하다? 얘네도 판타지 쪽 세계관을 끌고 오는 것 같은데. ㅋㅋㅋ 점점 미션 곡도 그런 분위기로 내주는 것 같고.

    ┖ 나는 대놓고 토트윈 저격하는 것 같음. TSN도 아는 거지. 22년도에 토트윈을 찍어 눌러야 1군으로 직행할 거라는 거.

    ― 솔직히 온갖 수식어를 가져다 붙여 놓기는 했는데, 그냥 대놓고 용사 파티 아니냐? 마왕 민주혁과 그 부하들을 잡으러 가는, 아육시 용사 파티. ㅋㅋㅋㅋㅋ

    ┖ ㅋㅋㅋㅋㅋ 항상 용사가 정의의 승리를 거두는 법.

    ― 토트윈이랑 어떻게든 비벼 보려고 하는 거 좀 역겹네;; 급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것 같은데…….

    ┖ 응. 김지원 보컬 실력만 해도 윤치우랑 안단테급은 압살~.

    ┖ 여기서 데뷔하는 애들이 7명인데, 쪽수에서부터 밀려 버리죠? ㅋㅋ

    TSN에서 대놓고 밀고 있는 서사와 콘셉트 그리고 참가자들의 역량. 아육시 팬들은 그런 것들을 늘어놓고, 현재 핫한 루키인 토트윈과 직접적으로 비교하고 있었다.

    “흠.”

    장 대표는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이건 윤이랑 나도 모니터링 하고 있어서 알고 있는 건데, 솔직히 그렇게 신경 쓰고 있지는 않아. 너희 정규 2집 반응도 워낙 좋고, 아육시 팬들이 저러는 것도 거의 물밑에서만 일어나는 반응이니까.”

    “나도 대표님이랑 같은 생각이야. 그리고 올해 하반기에 정규 3집 내고, 단콘 진행하면 충분히 찍어 누를 수 있다고 생각해.”

    둘이 그렇게 말했으나, 에르제는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성적으로 이기고 싶은 게 아니에요. 우리가 가장 참기 힘든 게 실력으로 밀린다는 얘기들이라서요.”

    “…….”

    에르제의 말에 장 대표와 이윤이 입을 꾹 다물었다.

    뭐,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그거다. ‘소속 아티스트의 자존심’이 상했다는 거.

    “그리고 성적으로 누른다고 해도 대중이 인정할지 어떨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실력은 아육시가 더 뛰어난데, 토트윈이 조금 먼저 데뷔한 효과를 누렸다, 소속사의 능력 차이다 등등 온갖 말이 다 붙을 거고, 거기에다…… 김지원이 또 트롤링을 한다면.”

    “무슨 말인지는 이해했다.”

    장 대표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고는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지금까지 남자 아이돌 그룹을 론칭하면서 적어도 실력이 부족한 놈들을 내보낸 적은 없었어.”

    그건 데뷔조에 겨우 뽑혔던 김지원이 아육시에서 준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니까 너희들의 실력을 의심하지 않아. 하지만 그날 컨디션이 안 좋다거나…… 하는 여러 가지 불안 요소가 있으니까 도박을 하고 싶지 않은 거지.”

    “…….”

    “…….”

    “하아, 거기다가 다른 아이돌 팀까지 와서 팀 대 팀으로 붙는 거잖아. 아육시 애들 수준 차이로 지더라도 욕은 너희들이 먹게 될 가능성이 높아.”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꿋꿋한 윤치우의 말에 장 대표가 쯧 하고 혀를 찼다

    “진짜 이길 수 있겠냐?”

    “네.”

    “무슨 일이 있어도여.”

    “저희를 믿어 주세요.”

    “어휴.”

    멤버들이 번갈아 가면서 대답하자, 장 대표는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너희들 맘대로 해라. 대신 지고 오면 지옥 훈련을 할 거야.”

    “네!!”

    장 대표의 허락에 멤버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동안 커뮤니티 반응을 보며 받았던 스트레스를 합법적으로 풀 수 있는 기회를 맞아 흥분한 모양이다.

    결국 태현우가 그런 기분을 주체 못 하고 외쳤다.

    “크으……!! 나대지 마!!”

    “심장아아아아!!”

    에르제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다시 한번 정신 무장을 하는 모습.

    “저건 또 뭐냐.”

    옆에서 장 대표가 기겁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가만히 소파에 앉아서 원하는 그림을 그린 에르제는 다리를 꼰 채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절대 질 리가 없어.’

    멤버들은 본인 실력에서 비롯한 자신감이겠지만, 자신에게는 여차하면 ‘매혹’의 힘이 있으니 말이다.

    ‘최대한 매혹의 힘을 자제하고 이기면 좋겠지만.’

    그래도 안전장치가 있고 없고는 큰 차이니까.

    ‘딱 좋아.’

    이번 토트윈의 참가는 에르제에게 아주 호재였다.

    안병인과 윤소희의 움직임에 시간을 벌 수 있도록 시선을 끌 수 있었고, 또한 대중 노출도가 높아진 덕에 토트윈을 함부로 건드리지도 못할 터.

    에르제는 제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우리를 초대한 값은 제대로 받아 간다.’

    * * *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복도를 지나 남자는 거대한 알현실로 들어섰다. 그는 제이였다.

    제이는 이번 활동에 맞춰 암갈색으로 염색한 머리를 휘날리며 빠른 걸음으로 주단 위를 걸었다.

    알현실 또한 복도처럼 햇살 하나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어둠이 지배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횃불이 밝혀져 있어 앞을 분간하는 데에는 별지장이 없었다.

    벽에 늘어서 있는 고가의 미술품들을 감상하는 데에도 문제없는 수준이었다.

    다만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존재를 생각하면, 한가롭게 미술품이나 감상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지만 말이다.

    착―.

    제이는 진홍색 비단길 끝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올렸다. 그를 부른 이가 앉아 있는 곳이 높아서 고개를 꽤 들어야만 했다.

    “부르셨나이까.”

    이윽고, 제이의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가느다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어?”

    웃음기가 섞여 있는 목소리는 방정맞은 느낌이 강했지만, 그럼에도 그 안에 섞여 있는 힘은 범상치 않았다.

    ‘……그때 본 서은우의 힘마저도 압도하는 힘.’

    단순히 음성을 들었을 뿐임에도 솜털이 쭈뼛 솟은 제이는 저도 모르게 주먹을 꾹 쥐며 대답했다.

    “예, 로드.”

    로드라고 불린 그녀의 실루엣이 상체를 앞으로 숙여 왔다.

    “이번에 꽤 말아먹은 것 같던데?”

    “……죄송합니다.”

    “뭐가 문제였을까.”

    말에 담긴 웃음기가 조금 더 진해졌다.

    “너에게 시킨 내 계획이 좋지 못했던 건지, 아니면 네가 제대로 수행을 못 했던 건지 모르겠네?”

    “……전적으로 제 판단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사가가각―!

    그녀가 손가락을 아래로 쭉 내리자, 그대로 늘어뜨려 놓았던 제이의 오른팔이 바닥에 툭 하고 떨어졌다.

    “……!”

    끔찍한 고통이 밀려들었지만, 제이는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은 채 그대로 부동자세를 유지했다.

    “치료는 이곳을 나가는 대로 하도록 해.”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로드.”

    “으음~.”

    키가 그리 크지 않은 탓에 옥좌에 앉아 닿지 않는 발을 공중에 버둥거리던 로드는 다시금 턱을 괴었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겠지? 다음번엔 조금 더 고통이 길 거야.”

    “…….”

    솔직하게 말해서, 로드가 어째서 서은우에게 이렇게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뭔가 이유가 있긴 하겠지만.

    ‘……워낙 종잡을 수 없는 분이니 거의 흥미 본위로 움직이는 걸 수도 있고.’

    어쨌거나 자신은 그저 명령을 수행할 뿐이다. 제이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다시 한번 김지원을 이용해서 토트윈을 밑바닥까지 떨어뜨리려 합니다.”

    제이의 목소리에 확신이 어렸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제 발로 절 찾아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믿어도 되겠니?”

    “예, 맡겨 주십시오. 로드.”

    제이가 힘을 주어 대답하자, 로드가 손을 휙 내저었다.

    “좋아. 나가 봐.”

    “편히 쉬십시오.”

    제이는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잘린 오른팔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이곳에 왔을 때처럼, 빠른 걸음으로 알현실을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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