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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72화 (72/307)

제72화

72화

“싫은데요.”

에르제는 0.1초 만에 대답했다.

“……싫어?”

윤소희는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왜?”

윤소희는 젓가락을 책상 위에 탁! 하고 내려놓았다.

“네가 지금 김지태 하나 잡았다고 기고만장한 것 같은데, 지금 그렇게 호기롭게 여길 상황이 아니거든. 우리 쪽도 혹시나 싶어서 엄청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고. 뱀파리스가 또 노리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에르제는 숨을 훅 뱉으며 손을 책상 위로 올렸다.

그러고는 윤소희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 생각에는 윤소희 실장이 잘 모르는 게 있는 것 같은데……. 서은우와 의식으로 데려온 게 음유시인? 뱀파이어? 제가 딱 그 정도로 보여요?”

사각, 사각, 사각.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검은색 기운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에르제의 주위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너…….”

당황한 윤소희가 손바닥을 바닥에 짚으며 멀어졌고, 안병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검은 기운이 넘실거리는 것도 위협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제일 섬뜩한 것은 에르제 본인이었다.

뱀파이어와 뱀파리스를 몇 명 만나 보았던 윤소희도 순간적으로 손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

“뭐, 뭐 하는…….”

그러나 에르제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윤소희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

사가가가각―.

움직이는 것은 그저 검은 기운뿐이었다.

악의도 선의도 느껴지지 않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의 덩어리.

그냥 무심코 바라보고 있으면 계속해서 빨려 들어가게 만드는.

“으…… 으으.”

숨이 꽉 막혀 오는 듯한 기분에 윤소희는 이내 눈을 감아 버렸다.

더 이상 저것과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만…….”

“그럴까요?”

에르제가 한순간에 검은 기운을 흩어 버리자, 룸 내부를 장악하고 있던 압박감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악, 하악.”

에르제가 일부러 힘을 윤소희 쪽에 집중시켰기 때문에 윤소희만 거친 숨을 뱉어 냈다.

에르제가 턱을 괴며 그런 그녀에게 물었다.

“보셨나요?”

“……뭐……를요?”

윤소희가 저도 모르게 존대를 하고 말았다.

“아이돌에 대한 제 진심이요.”

에르제는 그렇게 말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제가 정말 뱀파리스 따위를 무서워할 거라고 생각해요?”

* * *

아이돌을 그만둔다? 게다가 숨어서 지낸다?

‘어림없지.’

에르제의 입장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돌 활동은 현재 에르제에게 일족들을 찾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다.

물론 장진규나 제이 그리고 어디에 퍼져 있는지 모를 뱀파리스들. 그런 걸리적거리는 것들이 주변에 산재해 있지만, 자신은…… 뱀파이어 로드였다.

어쭙잖은 것들이 감히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그러다가 에르제는 최근 음악 방송에서의 일을 떠올리고는 피식 웃었다.

‘……뭐 음유시인의 활동이 재미있기도 하고.’

그래서였다.

“아이돌은 절대 포기 못 합니다.”

에르제는 다시 한번 힘을 주어 말했다.

“차라리 흡혈을 포기하고 말죠.”

“…….”

에르제는 이미 축복을 받았던 김에 던진 말이었으나, 윤소희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다르게 들렸다.

뱀파이어에게 흡혈을 포기한다는 것은 종족의 아이덴티티를 포기한다는 말과 같았으니까.

그녀에게는 에르제가 그 정도의 의지를 내비친다는 뜻으로 들렸다.

그리고…… 조금 전에 보였던…… 그 힘도. 지금까지 몇 번 보았던 그들이 완전 아이처럼 보일 정도였다.

윤소희는 숙였던 고개를 들어 에르제에게 물었다.

“진심이야?”

“네.”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보셨을 텐데요. 제 의지는.”

“……하아.”

윤소희는 머리가 지끈거린다는 듯이 손을 이마에 가져가서 문질렀다.

“그럼 넌 어떻게 하고 싶은데?”

“음. 이제야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시네요.”

에르제는 씩 웃으며 턱에 괴고 있던 얼굴을 들어 올렸다.

오늘 에르제가 이곳에 나온 이유는 첫째로 안병인에 대한 피아 식별을 하기 위해서였고, 만약 아군이라면 두 번째로 윤소희와 안병인을 더욱 확실하게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을 좀 이용하고 싶은데.”

“예?”

“이용?”

안병인과 윤소희가 놀라 되물었다.

“물론, 두 사람이 전적으로 내 사람이 된다는 전제하에서요.”

“내 사람…….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말하는 거야?”

윤소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고?”

“마녀잖아요.”

“그러니까.”

윤소희가 한숨을 푹 내쉬며 손가락으로 자기 자신을 가리켰다.

“내가 ‘어떤 마녀’인지는 알고 얘기하는 거냐고?”

“……선량한 아이돌 몸에 의식으로 뱀파이어를 불러오는…… 피도 눈물도 없는 마녀?”

“야!”

에르제의 대답에 윤소희가 눈을 흘기며 혀를 찼다.

“어차피 다 오픈된 마당에 말해 줘도 상관없겠지.”

그렇게 말한 윤소희는 거만한 태도로 팔짱을 꼈다.

“서울, 경기도 그리고 충청도까지. 대한민국 3곳 지부장이고, 게다가 순혈 직계.”

그러고는 상체를 살짝 숙이고, 에르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내가 그 정도의 마녀라고. 날 이용해 먹겠다는 건 어마어마한 숫자의 마녀들을 써먹겠다는 거랑 같은 이야기야.”

“잘됐네요.”

장황한 윤소희의 설명과는 다르게, 에르제의 대답은 놀라울 정도로 싱거웠다.

“더 써먹기 좋겠어요.”

“……내가 이상한 건가?”

윤소희가 허탈하게 중얼거렸지만, 에르제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했다.

“여러분들도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었으니 저도 아이돌을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말하는 게 맞겠죠.”

그러고는 윤소희와 안병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일족들을 찾고 있어요. 윤소희 실장이 나를 이곳으로 불러왔듯이…… 제가 이곳으로 보낸 녀석들을요.”

책임을 지는 척하면서 사실은 무책임하게 각자 알아서 살아가도록 보내 버린 일족들을 말이다.

“다시 찾아서 지난 과오를 청산하고 싶거든요. 앞으로의 미래도 마찬가지고.”

에르제의 표정이 순간 쓸쓸해졌으나, 금세 원래대로 돌아왔다.

“아무튼 그래서 말인데, 두 분이 해 줬으면 하는 일들이 있어요.”

에르제는 그렇게 말하고는, 오늘 오기 전에 생각해 두었던 것을 이야기했다.

“오늘부터 뱀파리스 쪽 동향은 잘 파악해서 알려 주세요. 특히 뱀파이어와 관련된 부분은 무조건 전달해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에르제 님.”

“그리고 윤소희 실장은…… 뱀파이어 하나 좀 찾아 주세요.”

“누구?”

“마녀 쪽에 날 불러오는 의식을 알려 줬다는 녀석.”

에르제가 피식 웃었다.

“이름은 라하임, 일족 중 하나예요. 일단은 지구에 있다는 게 확실한…… 유일한 일족이기도 하고요.”

“……라하임.”

윤소희는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하아, 일단 오케이. 알았어.”

윤소희는 그렇게 말하며 마른세수를 했다.

“어차피 그쪽이랑은 더 이상 거래를 이어 나갈 필요도 없고. 나도 너한테 용건이 있는 만큼…… 널 도와줄 수밖에 없으니.”

“원래 마녀는 뱀파이어와 한편이에요.”

“그래, 그것도 뭐 유구한 역사지. 그렇게 생각하면 네가 은발 머리하고 그러고 있는 것도 웃기지만.”

“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사실을 떠올리게 만들다니.

에르제가 얼굴을 구기며 은발을 헝클었다.

“마녀는 마녀네요.”

“뭐.”

피식 웃은 윤소희가 이제 정리하자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챙겼다.

“대충 서로 하고 싶은 말은 다 한 건가?”

“…….”

말없이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던 에르제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그녀에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요.”

윤소희가 문 앞에서 뒤돌아섰고, 에르제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었다.

“날 지키려고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예요?”

윤소희가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비밀.”

“……그럴 줄 알았어요.”

에르제는 쿡쿡 웃었다.

‘말해 줄 리가 없지.’

그리고 먼저 룸을 나서는 윤소희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분명 서은우랑 윤소희, 둘이서 무슨 꿍꿍이가 있었을 테니까.’

그래서였다. 윤소희까지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것은.

‘무슨 독을 품었는지 모를 미래의 적은 가까이에 두는 것이 현명한 법.’

안병인과 윤소희가 먼저 나가고 난 뒤, 혼자 가만히 서 있던 에르제는 이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 * *

한동안 큰 소란 없이 시간이 흘렀다.

토트윈은 몇 번의 음악 방송에 더 나갔고, 이후로 팬사인회도 1번 더 연 상태.

그리고 드디어 토트윈과 이브가 그토록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왔다.

[ ToT-win – ‘그 시절의 너(Reminiscence)’ / 1위 ]

가장 사람들이 많이 듣는 플랫폼에서 드디어 음원 1위를 차지한 것이다.

대학생은 기쁜 소식에 거실을 배회하며 스멀스멀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헤헤.’

서은우를 특히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올팬에 가까웠던 대학생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아, 좀 정신 사나우니까 그만 앉으라고.”

결국 그녀의 오빠가 짜증스럽게 한 마디를 던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흐.”

대학생은 실없는 웃음을 지으며 소파에 털썩 앉고는, 일부러 어플을 껐다가 다시 켰다.

껐다가 다시 켜 봐도,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여전히 1위에는 토트윈의 이름이 떡 하니 박혀 있었다!

그렇다 보니, 대학생은 다른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졌다.

‘최근까지 김지원 그 X끼 때문에 학폭이다 뭐다 말이 많았는데…… 좀 정화됐으려나?’

그것 때문에 한동안 무튜브 댓글이랑 커뮤니티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좀 꺼져 줬을까 싶기도 하고.’

“흠.”

고민하던 대학생은 결국 본능을 이기지 못하고 공식 팬카페를 들어갔다.

[ 더뱡라―ㅇ느리ㅏ너라ㅣ벚[email protected]#[email protected]# 토트윈 음원 1위!! ]

시작부터 정신없는 글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뭐, 밑으로 내려가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신났네.’

하긴, 자신이 인터넷 활동을 조금 더 열심히 하는 쪽이었다면, 분명 저 대열에 끼어 있었을 것이다.

토트윈이 다른 팬들에게 매번 까이던 이유가 무엇 때문이던가.

― 그래서 님들 ㅋ 음원 1위 해 봄?

― 차트에서 10위 안에 간신히 턱걸이 하는 것 같던데~.

― 음원에서는 토트윈이 밀릴 수밖에 없기는 해. 나도 몇 번 듣다 보니 금방 질리더라고. ㅋㅋ 토트윈 팬들은 이걸 어떻게 숨스 하는지 모르겠네.

┖ 잘 때 소리 다 꺼 놓고 하면 됨. ㅎㅎ

논리에서 밀리면, 꼭 저렇게 댓글을 달고 튀는데 어찌나 분하던지. 아마 이브라면 다들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반동이 지금의 커뮤니티 상황일 테고 말이다.

[ 이건 은발 은우가 캐리한 게 분명하다. ]

[ 음방에서 찢고 음원에서 찢고 난리 났다~. 오늘은…… 치킨을 허락한다. 나 자신에게. ]

새로 고침을 할 때마다 새로운 글이 수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대학생은 흐뭇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쥔 손에 꾹 힘을 주었다.

‘이번에는 진짜로 마이너스의 손이 아닌 것 같아.’

그동안 모카 엔터테인먼트에서 데뷔시킨 남자 아이돌 그룹이 매번 그녀의 취향을 저격했으나, 또 매번 온갖 다양한 이유로 사라져 버리지 않았던가.

하지만 토트윈은 사건 사고 없이 현재까지 잘 왔다.

그렇기에 대학생은 이번만큼은 완전히 덕질에 빠져도 되겠다고 여겼지만…….

방금 막 새로 올라온 글 제목에 그녀는 눈을 비빌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글을 클릭해 본문을 읽었고, 점점 입이 벌어졌다.

“……어딜……?”

그렇게 중얼거리는 그녀의 표정은, 조금 전 괜히 설레발을 쳤다는 후회가 잔뜩 묻어 있었다.

대학생은 양손에 얼굴을 파묻으며 걱정스러운 한숨을 내뱉었다.

“……토트윈이 아육시에 나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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