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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70화 (70/307)
  • 제70화

    70화

    곧장 안단테의 앞에 있는 ‘금발 팬’에게 말을 거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니, 예의가 아니라고 해야 하나.

    아직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르제는 금발 팬을 직접 노리는 것을 포기했다.

    “저기.”

    에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으로 테이블을 짚고 그대로 그 위를 뛰어넘었다.

    인간의 신체 능력을 뛰어넘은 행동에 멤버들과 팬들이 저도 모르게 그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어…… 어?”

    물론 제일 당황한 것은 에르제의 앞에 앉아 있던 팬이었다. 갑자기 이야기를 잘하다가 자신의 옆으로 테이블을 뛰어넘어 온 것이기 때문이다.

    “에?”

    그러나 에르제는 팬에게 싱긋 웃어 주며, 일부러 안단테 쪽 방향에 가서 섰다.

    “…….”

    거리가 훨씬 가까워지니 안단테와 금발 팬은 더 이상 대화를 이어 나가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

    원하는 대로 되자, 에르제는 입고 있던 교복 재킷을 벗어 허공에 몇 번 털었다.

    탁! 타악!

    “됐나?”

    그러고는 팬의 뒤로 간 후, 그 앞에다 재킷을 천천히 둘러 주었다.

    남청색 교복 재킷이 팬의 치마 위로 덮였다.

    “치마가 너무 짧은 것 같아서요.”

    “앗, 저……!!”

    “괜찮아요.”

    에르제는 놀라서 달려온 경호원을 손을 들어 제지하고는, 팬의 옆에 쪼그려 앉아서 물었다.

    “이렇게 얘기해도 돼요?”

    에르제가 일부러 머쓱하게 웃었다.

    “넘어올 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다시 넘어가려니까 좀 무서워서.”

    “저는 조, 좋아요……! 무조건 좋아요……!!”

    팬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있을 때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 있겠다는데 그 누가 마다하겠는가.

    허락을 받은 에르제는 흘긋 안단테 쪽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금발 팬의 목적이 단순히 안단테에게만 있었는지, 못마땅한 표정으로 테이블만 노려보고 있었다.

    ‘이 정도면 눈치챘겠지.’

    에르제는 당황한 표정에서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는 안단테를 보다가 다시 자신의 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팬은 치마 위에 덮인, 에르제가 입고 있던 교복을 손으로 조심스럽게 쓸어내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춥게 입고 왔어요. 감기 걸리면 어떻게 하려고?”

    “흡.”

    숨 참는 소리가 들렸다.

    “안 되겠다.”

    에르제는 아래로 늘어져 있는 재킷의 팔 부분을 하나씩 손에 들고, 팬의 허리 쪽으로 해서 묶어 주었다.

    “나갈 때는 이렇게 나가면 좀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여기 있을 때만 이러고 있어요.”

    “네……!!”

    팬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 매니저님을 통해 돌려드릴게요!”

    “그냥 가져요.”

    “정말요?!”

    그렇게 이후로도 대화를 더 주고받고 있으니.

    “이동할게요.”

    이윤이 고나리를 은근슬쩍 주러 에르제가 있는 곳에 왔다.

    아무래도 여기서 시간이 좀 끌리기는 했나 보다.

    에르제는 근엄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팬에게 말했다.

    “완전 밉죠.”

    “네!”

    팬이 0.1초 만에 대답했다. 거의 생각과 동시에 말이 나온 느낌.

    “야…….”

    이윤이 얼빠진 표정으로 말하자, 에르제는 팬과 같이 낄낄대다가 테이블을 빙 돌아서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

    “다음에 또 봐요!”

    에르제는 옆자리로 넘어가는 팬을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고, 팬은 그 손에다가 하이파이브를 하고는 옆으로 넘어갔다.

    이윤이 그런 에르제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저거 협찬 받은 건데, 멋대로 그렇게 주면 어떻게 해?”

    “어차피 청화 계열사에서 협찬 받은 거잖아요.”

    “그러니까.”

    “괜찮아요.”

    에르제는 피식 웃었다.

    “거기는 이제 제 거라서.”

    “……응?”

    “아니에요.”

    에르제가 어깨를 으쓱하자, 이윤은 ‘원래 이런 놈이었지.’라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나중에 이야기하자.”

    그렇게 말하고는, 가장 맨 오른쪽에 앉아 있는 태현우 쪽으로 걸어갔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에르제는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앞에는 예의 그 금발 팬이 앉아 있었다.

    에르제는 그녀에게 CD에 사인을 해 주면서 빠르게 생각했다.

    ‘원래 음악은 호불호가 갈리는 법이야.’

    자신과는 다른 정서와 감성을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은 법이니까.

    그래서 아이돌과 같은, 다수를 상대하는 직업에서는 ‘대중성’이라는 요소를 빼먹을 수가 없다.

    호불호에서 ‘호의 비율’을 높이는 것이 작곡을 하는 입장에서 특히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

    따라서 불호인 팬에게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토트윈이 좋아해서 낸 노래가 아니라,

    “이번 앨범은 팬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대중성을 인정받은 노래로.

    “저번에 ‘HaLLo’는 차트 등반하는 게 쉽지 않았는데, 이번 곡은 며칠 안 됐는데 벌써 모든 장르 부문 7위에 올랐거든요.”

    에르제는 말문이 막힌 금발 팬을 보며 말을 이어 갔다.

    “평론가분들이 이지 리스닝이면서 캐치함을 놓지 않은 곡이라고 평가를 해 주시기는 했는데, 사실 그것보다는 팬분들이 좋아해 주시니까 행복해요.”

    에르제는 그렇게 말하며, 비밀이라는 듯 손을 입에 가져가며 작게 말했다.

    “사실 비밀인데, 이번 곡이 좋아서 팬이 되셨다는 분들이 오늘 엄청 많이 오셨어요. 신기하죠?”

    에르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이번 안단테의 곡이 별로라는 말을 꺼내지 못할 것이다.

    대중성도 갖췄고 심지어는 이걸로 입덕한 팬들이 많았다는, 팩트 기반의 자료를 무기로 꺼내 들었으니까.

    여기서 더 반박했다가는 ‘혼자 별로인 걸 가지고 시비 거는 팬’이라는 이미지가 될 수도 있었고 말이다.

    “아…… 네. ‘가사’는 좋더라고요.”

    딱 이 정도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발이었을 터.

    ‘이 정도면 됐겠지.’

    에르제는 그렇게 생각하며, 대화의 말꼬리를 잡아 그쪽 방향으로 이야기를 텄다.

    “제가 멤버들 가사 하나하나 다 검수했어요. 그리고 그중에서 민주혁이 제일 못 써 와서 아주 특단의 조치를 취했는데…….”

    그렇게 이번 앨범에 관한 여러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 주니.

    “아, 그래요?!”

    금발 팬은 어느새 에르제의 이야기에 맞장구까지 치고 있었다.

    ‘내가 이상한 건가?’라는 생각을 심어 주고, 그 이후로는 이번 곡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고뇌’가 들어가 있는지.

    그것을 공유하고 공감시키는 방법으로 에르제는 깔끔하게 곡에 대한 비난을 원천봉쇄했다.

    “…….”

    급격하게 생각이 많아진 금발 팬의 표정을 보니, 실시간으로 안단테에 대한 평가가 수정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덧 주어진 시간이 끝나고, 옆으로 이동하게 되었을 때.

    “……이번 노래 많이 들을게요.”

    그녀는 에르제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이야기하고, 옆으로 넘어갔다.

    에르제는 그 말에 문득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팬사인회에 올 정도라면 토트윈에 애정이 많은 팬이라는 증거겠지.’

    그리고 그런 시각에서 본다면.

    이번 에르제의 행동은 코어 팬을 내치지 않고 더욱 안으로 끌어들인…… 굉장히 성공적인 대처라 할 수 있었다.

    * * *

    마지막으로 타이틀곡과 수록곡, 총 2곡을 공연으로 보여 주면서 이번 활동의 첫 사인회는 깔끔하게 마무리되었다.

    저번처럼 특별한 이벤트 같은 게 있지는 않았으나, 보다 원활한 진행과 멤버들의 성장한 모습 덕분인지 팬사인회의 평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이었다.

    ― 이번 당첨 인원 120명이었는데, 2시간 훌쩍 넘김;; 실환가.

    ┖ ㅋㅋㅋ 애들이 손잡고 안 놔 주더라…….

    ┖ ㅅㅂ 부럽…….

    ― 오늘 스윗 은우 본 사람……?

    ┖ 포상 아니냐고. ㅠㅠㅠ

    ┖ 뭔데, 무슨 일이었는데?

    ┖ 은우가 팬보고 치마 짧은 거 아니냐면서 춥게 입지 말라고, 입고 있던 옷 벗어서 덮어 줌;;;

    ┖ ㅁㅊ 스윗함 뭐야? 치사량이잖아.

    ― 오늘 현우한테 선물 줬는데, 대기하던 매니저가 대신 받아 갔단 말이야. 근데 현우가 “제 거예요!” 하면서 다시 뺏어 가는 거 보고 눈물 쏟을 뻔.

    ― 오늘 토트윈 작정한 거 같던데. ㅋㅋㅋ 최대한 오래 이야기해 주려고 하고, 그 뭐지. 누가 주혁이한테 오글거리는 말 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저번에 시상식에서 보여 줬던 멘트 읊어 줬대. ㅋㅋㅋ 주혁이 수치사 직전이었다던데.

    ┖ 아육시 때문에 마음 좀 급한 듯? ㅋ

    ┖ 방송 보니까 토트윈 발끝도 못 따라가던데, 뭘. ㅋ

    ┖ ㄹㅇ ㅋㅋ

    “…….”

    솔직히 아육시 신경 쓴 거 맞다.

    오늘 팬사인회 시작하기 전에 멤버들이 다 같이 모여서 ‘나대지 마! 심장아!’를 외치면서 마음을 다잡기까지 했으니까.

    에르제는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을 읽으며 가볍게 턱을 괴었다.

    ‘혹시나 오늘 일족 중 하나가 또 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던전에서 보물 찾는 것도 아니고, 몇 달간 일족이라고는 세리나 하나밖에 못 봤다니.

    ‘……이제는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은데.’

    세리나의 움직임도 뱀파리스들 때문에 제약이 생겼고, 언제까지고 TV에 얼굴을 비추는 것으로 일족들을 오게끔 만들 수는 없다.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기는 한데.’

    그리고 이왕이면 도와줄 사람이 있으면 좋고 말이다.

    ‘내 정체를 알고 있는 윤치우한테 부탁을 해 볼까.’

    공동묘지나 박쥐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는 곳을 좀 조사해 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안단테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은우 형.”

    “?”

    에르제는 몸을 돌려서 방 안으로 들어오는 안단테를 마주 보았다.

    “그, 오늘 감사했어여.”

    “오늘?”

    아, 팬사인회에서의 일을 말하는 건가.

    에르제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너한테 곡 안 좋다고 그러는 것 같던데?”

    “……맞아여.”

    안단테는 그렇게 말하며, 포스트잇을 내밀었다.

    그곳에는 ‘회사 내 작곡가한테 맡기세요.’라는 뉘앙스의 글이 적혀 있었다.

    “그 사람이 앉자마자 이거 내밀더니 곡 별로라고 하더라고여.”

    “음.”

    “죄송해여……. 그러면 안 되기는 했는데, 화가 너무 났어여. 제가 곡을 잘 만들어서가 아니라…… 형들이 좋다고 해 준 곡인데, 타이틀곡에 쓰자고 말해 준 곡인데 그걸 안 좋다고 말을 하니까…….”

    안단테는 팬과 말다툼을 했던 본인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굽히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도 형처럼 그렇게 넘겼어야 했는데.”

    그러다가 또 자책하는 모드로 돌아온다.

    에르제는 느릿하게 다리를 꼬았다.

    “그건 자만이야.”

    “……네?”

    “네가 쓴 곡을 우리가 좋아했다는 것뿐이지, 그게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뜻은 아니잖아.”

    단순히 과거의 기억에 비춰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주변 국가까지 음유시인 ‘에르제’의 명성이 널리 퍼졌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쓴 곡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어떤 때는 인간의 왕이 싫어하는 바람에 그 나라에서 활동을 아예 못 했던 적도 있었고 말이다.

    ‘심지어 그 녀석의 아비였던 전 왕은 내 노래를 좋아했는데도 말이지.’

    피식 웃은 에르제는 말을 이었다.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겠다는 생각은 버려. 그냥 네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해.”

    에르제는 본인이 그래 왔던 것처럼, 안단테에게 조언했다.

    “이번에 성적 좋잖아? 앞으로도 네가 곡을 쓰는 일은 더 늘어날 텐데, 그때마다 오늘 일을 떠올리면 작곡 못 한다.”

    “…….”

    에르제는 안단테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고는 침대로 가서 걸터앉았다.

    “그냥 더 노력해. 더 많이 공부하고,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곡이 나올까 고민해. 그리고 곡이 공개되었을 때는 그 과정 모두를 버려. 사람들은 네가 거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았는지 관심이 없어. 그냥 ‘좋다’, ‘나쁘다’ 그게 다야. 결과가 과정을 설명하고 증명해.”

    “……네!”

    힘찬 안단테의 말에 에르제가 볼을 긁적였다.

    음, 조금 흥분했나.

    이제 막 인간 기준으로 성인이 된 녀석에게 너무 깊은 이야기를 한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녀석의 의지 가득한 눈빛을 보니, 꼭 그렇지도 않은 듯했다.

    ‘이어지는 발걸음은 본인이 밟아 나가야지.’

    아마 본인도 오늘 많은 생각을 할 거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조언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안단테도 그 사실을 인지했는지 혼자 고개를 끄덕이다가 방문을 벌컥 열었다.

    “아육시 타도에 최선을 다할게여.”

    그렇게 말하고는 후다닥 밖으로 나간다.

    앞으로 안단테가 어떻게 변할지는 두고 보면 알겠지.

    에르제가 그렇게 생각하며 침대에 벌러덩 누울 때였다.

    지이이잉―.

    핸드폰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누구지?’

    에르제는 손만 뻗어서 핸드폰을 들고 와 발신자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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