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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69화 (69/307)
  • 제69화

    69화

    모카 엔터테인먼트는 팬사인회를 앞두고, 상당히 속앓이를 했다.

    김지원의 발언과 모카 엔터테인먼트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을 해명하면서, 또 토트윈의 과거는 깨끗하다는 사실을 계속 어필해야 했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노력에 힘을 실어 줄 수 있도록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따서 기사로 냈다.

    처음 토트윈의 잡지를 만들어 주었던 곳부터 시작해, 출연했던 음악 방송 스태프들 그리고 예능 출연을 했을 때 고정 멤버들이 그 대상이었다.

    직접적으로 학폭과 관련된 이야기는 아니었고…….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 엄청 싹싹하더라고요. 덕분에 촬영장 분위기도 굉장히 즐거웠고, 워낙 성실하게 촬영에 임해서 저희도 덩달아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전형적인 이미지 메이킹 방법이었다.

    좋은 말들 위주로 내보내면서 ‘토트윈은 착하다’라는 예쁜 포장지를 씌우는 것.

    잘못하면 독이 될 수도 있는 방법이었으나, 생각보다 김지원이 만들어 낸 날갯짓의 여파가 커서 이를 잠재우려면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만 했다.

    물론 팬들은 모카 엔터에서 여론을 의식하고 하는 작업임을 눈치챘지만, ‘역시 일 잘하네.’라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방어에 힘썼다.

    다만.

    Q ) 이번 모카 엔터테인먼트에 관한 루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A ) 기업을 오래 운영하다 보면, 사람 보는 안목이 좋아지더군요.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뭐 그런 것들이요. 저번에 CF 촬영장에서 만났던 토트윈은 참 건실한 청년들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Q ) 그럼 지금의 상황이 기업 이미지에는 타격이 없는 건가요?

    A ) 그렇죠. 저희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그겁니다. 그래서 허위 사실 유포와 관련한 문제를 면밀하게 검토할 생각이고요. 거짓말은 하지 마세요, 여러분들 (웃음).

    생각지도 못한 인물의 등장이 토트윈을 멍하게 만들었다.

    “뭐야, 청화 회장님 아님?”

    태현우가 놀라서 기사를 멤버들 앞에 들이밀었다.

    모카 엔터테인먼트에서 인터뷰를 딴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곳에서 한 인터뷰를 담은 기사였다.

    안병인은 청화와 관련한 인터뷰에서 토트윈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며 공식적으로 두둔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덕분에 팬사인회 장으로 향하는 차 안이 시끄러워졌다.

    “엥? 진짜네?”

    다들 “뭐야? 뭐야?” 하면서 서로를 쳐다본다.

    ‘음, 이렇게까지 해 줄 줄은 몰랐는데.’

    에르제도 흥미롭다는 눈빛을 띠었다.

    청화에서는 인터뷰를 통해 토트윈의 이미지를 포장해 준 것뿐만 아니라, 회장의 입을 통해 공식적으로 토트윈을 믿는다는 의중까지 드러냈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아예 문제가 일어날 것을 원천 봉쇄해 버렸다.

    게다가 그 이유를 ‘기업 이미지’ 때문으로 바꿔서 허위 사실 유포에 대한 처벌을 그쪽의 사안으로 가져가 버렸다.

    이렇게 되면 토트윈의 과거를 날조한 행위로 고소를 당해도 억지로 토트윈과 묶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안병인의 봉인된 기억을 풀어 준 게 이렇게 돌아올 줄이야.’

    에르제는 피식 웃으며 민주혁을 바라보았다.

    같은 멤버를 위해 했던 행동이 이번에는 그룹 전체를 위한 보답으로 돌아온 것이다.

    ‘흠, 이쪽도 이미지 포장 중인 건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안병인과 민주혁, 두 사람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싶은 안병인의 의지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진짜 학폭 가해자가 멤버 내에 있지 않는 이상, 거짓으로 선동되는 일은 없겠네.’

    왜, 그런 말이 있지 않은가.

    하나의 거짓을 덮기 위해서는 수십 개의 진실이 필요하다는 말.

    그렇지 않아도 아육시라는 강력한 라이벌이 생긴 시점에서 거짓 루머가 생산되기 시작돼 널리 퍼져 나갔다면 아마 회복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꾸준히 아이돌의 역사를 공부했던 에르제의 기억에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여럿 떠올랐다.

    ‘그리고 오히려 소속사 측에서는 거짓말을 하면 바로 고소하겠다고 말을 못 했을 수도 있겠지.’

    한 발 떨어져 있는 청화에서 나온 말이기에 안티들이 대놓고 설치기에도 명분이 조금 부족했다.

    소속사에서 찍어 누른다는 이미지를 청화에서 대신 짊어져 주었기 때문이다.

    다만 안병인의 행동에 대한 이유를 알고 있는 에르제와는 달리, 멤버들은 의문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윤치우가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근데, 안병인 회장님이 왜 이렇게까지 해 주시는 거지?”

    “그건 그러네. 진짜로 우리 찐팬이신 듯?”

    “명예 이브로 등록해 드려야 하는 거 아니에여?”

    다들 각자의 추측과 감상을 늘어놓았는데, 여전히 의문을 해소할 그럴듯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에르제가 팬사인회로 향하는 내내, 혼자만 진실을 알고 있는 상황을 즐기고 있을 때.

    뜬금없이 윤소희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 너 도대체 뭘 한 거야? ]

    * * *

    [ 뭘요? ]

    에르제가 그렇게 답장을 보냈으나, 이후로 윤소희에게서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뭐지?’

    에르제는 의아해했으나, 곧 있을 중요한 일로 인해서 일단 이에 대한 생각은 접었다.

    2집 앨범으로 컴백하면서 계획되어 있던 팬사인회 때문이었다.

    “여기 앉아 주시면 됩니다!”

    진행 요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착석한 에르제는 기다랗게 이어진 테이블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번이랑 구조 자체는 비슷한 것 같네.’

    일자로 놓인 테이블을 따라 멤버들이 앉았고, 팬들이 그 앞을 지나가는 형식 말이다.

    에르제는 아직 비어 있는 회장 안을 바라보다가, 곧 안단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번 팬사인회에서 잔소리를 했던 안단테는 오늘 팬사인회가 있기 전에 같은 말을 반복했다.

    ‘저번에는 세리나 때문에 까먹었던 거고.’

    오늘은 다를 것이다.

    에르제는 정상적인 팬 응대를 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내비치며, 정신 무장을 완료했다.

    그렇게 기다리고 있자, 곧 줄을 서 있던 팬들이 회장 안으로 들어왔고 내부는 순식간에 꽉 찼다.

    팬들은 교복을 입은 채 앉아 있는 토트윈을 보며 입을 틀어막은 채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미쳤다. 오늘도 교복 입고 온 거야?’

    ‘와……. 와아……! 팬싸 오려고 100장 넘게 샀는데, 하나도 안 아까워……!!’

    팬싸 컷 110장.

    그 위용이 아깝지 않게 한껏 치장을 하고 온 토트윈의 모습이었다.

    교복과 퍼스널 컬러에 맞는 배지 그리고 뮤비에 등장했던 본인들의 소품까지 착용하고 있는 모습.

    에르제 또한 앉아서 야구 배트를 옆으로 기울여 걸쳐 놓은 상태였다.

    때문에 팬들은 설레는 마음을 가득 안은 채 자신의 차례가 오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반가워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나요?”

    그리고 팬들과 마찬가지로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에르제는 오늘 팬사인회의 첫 팬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 저! 안유정이요!”

    팬은 얼굴을 푹 숙이고 대답했는데, 곧 흘긋 에르제를 보며 말을 덧붙였다.

    “오빠가 제 최애예요……!!”

    “그래요?”

    에르제는 최대한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평범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오는 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오는 길에 춥지는 않았어요? 오늘 날씨 꽤 쌀쌀하던데.”

    “밥 먹고 왔어요? 오, 뭐 먹었어요? 맛있었겠네.”

    추가적인 대화뿐 아니라 팬들의 요구도 멤버들에게 전수받은 대로 열심히 들어줬다.

    예를 들어…….

    “오빠, 저……! 깍지 한 번만 껴 주시면 안 될까요?”

    이건 태현우가 자신 있게 알려 준 거다.

    ‘그리고 완벽하게 마스터했지.’

    에르제는 말없이 그윽하게 팬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팬이 움찔하며 머쓱하게 손을 다시 집어넣으려는 타이밍에 손을 꽉 잡아 준다.

    “……!!”

    그리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말을 걸면서.

    “언제부터 저희 팬이었어요? 정규 1집? 아니면 이번 2집 앨범에?”

    그렇게 천천히, 펼친 손가락 사이사이로 손가락을 끼워 넣는다.

    “헉……! 그, 그, 이번에요! 이번 앨범 노래가 너무 좋아서……!!”

    그렇게 당황해서 횡설수설하는 팬에게 앨범 위에 사인을 해 주고 보내 주면 끝!

    하지만, 이어진 팬의 말에 에르제의 기분이 팍 식었다.

    “은발, 완전 잘 어울려요……!!”

    요즘 들어서, 에르제의 최대 고민 중 하나를 건드린 것이다.

    ‘그럴 리가 없어.’

    에르제는 마음속으로 부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

    “진짜로 잘 어울려요?”

    “네!!”

    “……그러면 안 되는데……?”

    “……네?”

    팬이 어리둥절해서 되묻는다.

    근데, 에르제는 은발이 잘 어울린다는 말이 정말 듣기 싫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은발은 늑대인간이잖아요. 저는 은색 털이 제일 싫어요.”

    “……아하?”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은 유명할 정도로 앙숙 관계다. 심지어 지구에서도 그게 알려져 있더라.

    때문에 이번 앨범 콘셉트 때문에 은발로 염색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에르제는 하루 종일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버팅기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런 에르제의 진심은 팬에게는 ‘콘셉트에 진심인 아이돌’로 보였나 보다.

    “그러기엔 너무 잘 어울려요! 사실 저는 흑발보다 은발파이거든요. 이참에 늑대인간이랑 화해하세요. 이건 선물!!”

    팬은 장난스럽게 말하며, 서둘러 옆에 앉아 있던 태현우에게로 이동했다.

    에르제는 곧 시무룩해졌다.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의 유구한 역사를 모르다니…….’

    이렇게 장난스럽게 넘길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다.

    운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몸이, 또 자연스럽게 늑대인간을 마주치게 될까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인간 팬에게 1,000년이 넘는 두 종족 간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나중에 역사를 SNS에다가 올려 볼까.’

    그렇게 에르제가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바로 옆에서 안단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팬과의 대화라고 보기엔 조금 화가 난 듯한 목소리였다.

    “……좋다고 해 주셨어여!”

    “?”

    목소리가 크지는 않아서 안단테의 옆에 있는 에르제만 들은 듯했다. 팬사인회라는 특성 때문에 주변 소음이 컸던 것도 한몫했고 말이다.

    조금 뒤에 떨어져 있는 경호원도 이상한 점을 못 느낀 듯 보였으니, 아마 청력이 인간보다 뛰어난 자신이 아니었다면 절대 듣지 못했을 정도.

    ‘뭐지?’

    얼굴을 구기고 있는 팬을 보니 좋은 상황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글쎄요. 막내니까 그냥 좋다고 해 줬을 수도 있죠.”

    꾸욱―.

    안단테가 책상 밑으로 내린 손으로 주먹을 꽉 쥐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어떻게든 침착하고 어른스럽게 대처하려는 노력이 보였다.

    “저희는 그렇게 대충대충 하지 않아여. 준비도 굉장히 오래 했고, 형들도 그런 이유로…….”

    “SNS나 커뮤니티 잘 안 보시나 봐요.”

    팬은 안단테의 말을 잘라냈다.

    “읏.”

    안타깝게도 많이 보고, 또 봤다.

    그래서 그곳에 간혹 올라오는 글들이 어떤 내용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안단테의 몸이 잠시 움츠러들었다.

    “그래도…… 그게 모든 팬들의 생각이라고 보기에는 표본도 부족하고…….”

    “끝까지 인정을 안 하시네요. 자존심 때문인가. 그럼 뭐 좀 물어봐도 돼요? 왜 하필 DnB로 접근했어요? 뒤에 시티 팝이랑 연결할 생각이었으면, 조금 더 감성적인 장르로 스타트해도 되지 않았을까요? 저는 뭔가…… 이도 저도 아닌 것같이 편곡한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어쩔 수 없나.’

    다른 사람의 차례가 오기를 기대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있다.

    ‘경호원도 눈치 못 챈 것 같고…….’

    그렇다고 안단테가 경호원한테 이 사람 이상하다고 내보내 달라고 말할 수도 없을 듯했다.

    ‘그래도 기특하네.’

    저번에 한 번 멘탈을 잡아 줬더니 꿋꿋하게 좋은 곡이라고 밀고 나가려 노력하고 있지 않는가. 단단한 표정도 그렇고.

    그렇다면 유일하게 안단테의 곤란함을 알고 있는 자신이 조금 도와줘도 괜찮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곤란한 이를 구하는 자비로운 뱀파이어 로드니까.

    “저기.”

    에르제는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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