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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68화 (68/307)
  • 제68화

    68화

    이번 분기의 첫 활동을 마치고 온 토트윈의 숙소는 그 어느 때보다 고요했다.

    아육시의 첫 방송 때부터 조짐을 보였던 내용이 둘째 주 방영분이 나가면서 완전히 시한폭탄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윤치우는 심각한 얼굴로 소파에 앉아서 입을 열었다.

    “내가 코코아톡에 띄운 링크들……. 다들 봤지?”

    “……응.”

    “봤어여.”

    토트윈 멤버들은 그의 말에 답하면서 침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우려했던 일이 터지기는 했어.”

    윤치우는 덤덤하게 말하려 애쓰면서 말을 이어 갔다.

    “커뮤니티 팬들 사이에서는 김지원이 우리 엔터 연습생이었다는 사실이 이미 다 알려진 것 같은데, 그 이후로 말도 안 되는 루머가 퍼지고 있어.”

    “……진짜 짜증 나여.”

    평소 밝고 긍정적인 안단테의 입에서 어울리지 않는 말이 나왔다.

    “분명 그 사람들, 이브 아니에여.”

    “나도 그렇게 생각해.”

    윤치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지금의 말도 안 되는 루머를 만들어 퍼뜨리고 있는 것이 이브일 리 없었다.

    “이브였으면, 우리가 욕먹는 거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겠지.”

    에르제는 윤치우의 말에 그가 코코아톡에 띄워 주었던 몇 개의 글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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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모카 엔터 직원이었음.

    김지원이 말하는 거, 나도 엄청 충격적인 사건이라 기억이 나서 여기 글 쓰러 옴.

    나름 XX 그룹 성덕으로 입사했는데, 거기에 학폭 가해자가 있어서 폭파됐단 말이지.

    기자가 갑자기 터뜨린 거라 그냥 그 멤버를 욕하면서 덕질 포기했었고.

    근데 지금 보니까 그게 아닌 듯. 대충 방송 보니까 김지원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모카 엔터에서 정말 몰랐을까?

    김지원 데뷔조에서 잘린 것도, 그 사실 알고 있는 관계자들 다 회사에서 내보낸 거일 수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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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며 모카 엔터를 저격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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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마이너스의 손 클래스.

    이거 솔직히 토트윈도 조사해 봐야 하는 거 아님?

    내가 볼 때는 김지원이 아픈 과거를 딛고 TV에 나온 게 토트윈에 관한 내용을 용기 내서 폭로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토트윈도 김지원 있을 때 연습생이었을 것 같은데?

    결국 김지원이 데뷔 못 한 것도 모카 엔터에서 횡포를 부렸다고 생각함.

    보니까 성격도 좋아 보이는데, 토트윈 멤버 중 몇몇이랑 친하게 지내다가 과거를 알게 되었을 수도 있지 않나?

    나는 그래서 비밀을 알고 있는 김지원을 모카 엔터에서 손절했다고 생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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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의 말로 김지원과 토트윈을 엮어 가려는 짓까지.

    보고만 있어도 짜증 나는 글밖에 없었다.

    ‘오래 산 나도 보기 좋지는 않네.’

    에르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이어질 윤치우의 말을 기다렸다.

    “윤이 형은 우리는 뭐 걸릴 것도 없고 클린하니까 루머 따윈 신경 쓰지 말고 활동에 집중하라고 얘기하긴 했어. 이런 것들은 회사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신경 쓰지 말라고 했거든. 근데…… 솔직히 나는 화가 많이 나기는 해.”

    윤치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멤버들의 얼굴을 찬찬히 보았다.

    “나도 너희처럼 착한 아이들이 어디서 사고를 치고 다녔을 것 같지는 않거든. 그래도…… 일단은 내가 리더니까 어찌 되었든 토트윈의 맏형이니까.”

    윤치우는 지금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자신이 싫다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혹시라도 그런 게 있으면 솔직하게 말해 줬으면 해. 나중에 걸려서 불명예스럽게 해체되는 것보다…… 차라리 먼저 밝히고 사과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하니까.”

    “…….”

    “…….”

    멤버들은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아무도 그런 일이 없었다고 대답했다.

    “저는 없어여. 오히려…… 큼큼, 괴롭힘 당하는 쪽이었는데.”

    안단테가 부끄럽다는 듯이 손을 들며 말했고, 민주혁은 손에 쥐고 있던 책을 들어 올렸다.

    “나는 책을 읽거나 공부하는 것 말고는 딱히.”

    “어……. 나도!”

    태현우가 그렇게 말하자, 멤버들은 은근히 긴장이 풀렸는지 풉 하고 웃었다.

    “거짓말하지 마여. 형이 무슨 공부야?”

    “진짜거든?”

    태현우는 억울하다는 듯 가슴을 쿵쿵 때렸다.

    “나 반에서 맨날 5등 안에 들었어!”

    “아하.”

    민주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 5개를 펴 보였다.

    “반 인원이 5명이었나?”

    “얀마!”

    태현우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받아쳤다.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태현우 덕분에 분위기가 한결 누그러졌다.

    윤치우는 다행이라는 듯이 멤버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에르제에게서 시선이 멈췄다.

    “은우는 기억 안 나지?”

    기억이 안 나는 게 아니라 기억에 없지만,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여 답해 주었다.

    서은우의 영혼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으면 뭐라도 답했을 텐데, 에르제 본인의 기억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윤치우도 내가 뱀파이어인 걸 알고 있으니까…… 딱히 더 묻지는 않는 것 같고.’

    다만 윤치우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 상태.

    때문에 태현우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토닥거렸다.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너랑 친했잖아. 너는 그럴 애가 아니야. 그리고 기억도…… 금방 돌아올 거고.”

    “맞아여. 은우 형은 착해여. 뱀파이어 아니고, 천사예여.”

    저번에 기운 내라고 몇 번 토닥토닥해 줬더니, 이 자식이 중요한 종족의 정체성을 확 바꿔 버리네.

    좋아해야 하는 건지 아닌 건지 고민하는 에르제에게 태현우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음, 오히려 기억을 잃고 덜 착해졌지.”

    그 말에 에르제가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지금 그 말은 서은우보다 자신이 덜 착하다는 말이 아닌가.

    ‘……뭐, 인간 기준으로는 뱀파이어가 덜 착하기는 할 수도.’

    나름대로 납득하려던 에르제는 진지하게 궁금해지기는 했다.

    그로서는 서은우의 진짜 과거에 대해 알지 못하니 혹시,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진짜 그런 일은 없었겠지?’

    저번에 김지원의 인터뷰 이후에 학폭에 관해 인터넷을 열심히 뒤진 에르제였다.

    때문에 대한민국 사회에서 아이돌이 학폭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이슈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럼 은우는 걱정 없겠고, 나도 그런 일 없으니까…… 나머지는 회사에 맡겨 보자.”

    윤치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이 허탈하게 웃었다.

    ‘음……. 이대로 끝내는 게 맞으려나?’

    에르제는 의문이 들었다.

    그저 멤버들의 과거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한 절차에 불과하다.

    실제로 며칠 전에도 회사에서 따로 멤버들을 비슷한 뉘앙스로 추궁하기도 했고.

    ‘…….’

    하여 에르제는 잠시 고민했다.

    현재 그들이 이번 앨범 타이틀곡의 콘셉트로 잡은 것은 학창 시절과 그때의 감성이다.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학폭과 같은 루머가 토트윈을 덮친다면, 그 부정적인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그럼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에르제는 손가락으로 소파를 툭툭 두들겼다.

    ‘보니까 커뮤니티에서도 말 같지도 않은 글 때문에 팬들의 화력도 밀리는 것 같고…….’

    그렇다면 그것을 역으로 이용해 보면 어떨까?

    오히려 정면으로 맞서서 우리는 당당하다! 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생각을 마친 에르제는 고개를 들어서 윤치우에게 방금 계획한 일을 말했다.

    “좋은데?”

    “뭐야. 은우, 생각보다 생각이 깊은데? 생강 줄까?”

    “라임 좋았다.”

    “찬성이여!!”

    이야기를 들은 멤버들이 만장일치로 찬성했고, 곧장 행동에 들어갔다.

    “다 갈아입었지?”

    윤치우는 무대 의상으로 협찬 받은 교복을 입은 상태였고, 마찬가지인 모습의 다른 멤버들을 훑어보았다.

    “오케이!”

    윤치우는 확인을 마치고, 멤버들의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단체 사진과 몇몇이 재미있게 노는 장면들을 찍은 후 올리기 괜찮은 사진들을 골라냈다.

    이후 대충 어플로 보정을 한 뒤에, 토트윈 공식 계정에 글을 올렸다.

    [ 짜잔! 이브들을 위한 깜짝 선물이 도착했어요!

    ( 태현우가 안단테와 서은우의 볼을 잡아당기며 낄낄 웃는 사진 )

    ( 창가에 걸터앉아 책을 보는 민주혁과 그 뒤로 몰래 접근하는 태현우 사진 )

    ( 다 같이 어깨동무를 한, 졸업식 분위기의 사진 )

    이번에 저희 곡은 다들 들어 보셨나요?

    저희들도 더 좋은 무대를 위해서 열심히 연습하고 있답니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 타이틀곡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자의 학창 시절 이야기가 나왔지 뭐예요!

    덕분에 다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었어요!

    그래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교복 입고 찍은 사진들을 올려 봅니다.

    p.s. 사랑하는 이브님들! 곧 팬사인회에서 뵈어요!! ]

    그렇게 사진을 올리고 나니, 다들 후련한 표정이었다.

    “이브들의 화력이 엄청 올라가겠는데?”

    태현우가 이를 드러내며 웃고는, 에르제에게 엄지척을 해 주었다.

    “좋았다?”

    에르제는 민주혁을 따라 하며, 머리칼을 옆으로 슥 넘겼다.

    “별거 아니야.”

    “……!”

    그 사실을 깨달은 민주혁이 얼굴을 붉혔고, 숙소에서는 오랜만에 시원한 웃음소리가 자리했다.

    그리고.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의 상황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달아도 밀리던 이브들이 토트윈이 올린 글과 사진을 보고 힘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 과거가 찔리는 애들이었으면, 절대 저런 글 못 올림. ㅋㅋㅋㅋㅇㅈ?

    ― 우리 애들이 누구 괴롭히게 생겼냐. ㅠㅠㅠ 세상 사랑스럽기만 한데.

    ┖ 관상만 보고, 가해자 피해자 정하나 봄?

    ┖ 진짜 지긋지긋하네. 그렇게 근거도 없이 까내리는 인성 클래스;; 솔직히 말해 봐. 니가 학폭 가해자 출신 아님?

    ┖ 아닌데;;;

    ┖ 오, 아까 올린 글 보니까 아니라고 해도 믿어 주면 안 된다고 철저히 진상 규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던데. 너도 아닌데만 쓰는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증거를 가지고 와야지?

    ― 생각을 좀 해라, 얘들아. 만약 찔리는 게 있으면 무조건 가만히 있는 게 상책인데, 이렇게 커뮤니티에 학교 관련 언급을 할까? 아무리 타이틀곡 콘셉트가 있다고 해도, 굳이 저럴 이유는 없지.

    ┖ ㅇㅈ 솔직히 학폭 사실 밝혀졌을 때 리스크만 ㅈㄴ 늘어나는 건데, 저걸 무슨 깡으로 언급해.

    ― 솔직히 토트윈 팬이고 엄청 아끼기는 하지만, 만약 학폭 관련 일이 있으면 솔직하게 말하고 사과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

    ┖ ㅅㅂ 팬인 척, 선비인 척 역겹네;; 너 커뮤에 우리 애들이 올린 글도 안 보고 왔지? 그러면서 아낀다는 소리를. ㅋㅋㅋㅋ

    ┖ 뭔 소리; 보고 왔음.

    ┖ 응, 헛소리. 그랬으면 그딴 소리 못 하죠? 지금 토트윈 겁나 당당한 스탠스죠?

    ┖ (삭제된 댓글입니다.)

    ┖ ㅋㅋㅋㅋㅋㅋㅋ 지우고 튀는 것 봐라.

    에르제가 제안했던 일이 확실히 효과를 발휘했다.

    다만 생각보다 민감한 사안이라 그런지 쉽게 여론이 잠재워지지는 않아서 이브들은 치열하게 힘 싸움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화르륵 타오르는 커뮤니티의 상황 속에서 토트윈 2집 앨범 첫 팬사인회가 개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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