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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67화 (67/307)
  • 제67화

    67화

    김지원의 예상 트롤링이 아직 시작되기 전.

    토트윈은 이른 새벽부터 숍에 들러 오랜만에 수수한 메이크업을 받았다.

    아무래도 학생 콘셉트로 나온 타이틀곡이라 메이크업을 진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윤이 요청한 것은 ‘풋풋하고 청소년의 매력이 강하게 살아 있으면서 절대 과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그만하자. 밑도 끝도 없이 긴 요구에 숍에서도 진절머리를 쳤으니까.

    하지만 유명하고 실력 있는 숍인 만큼 적당히 원하는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이윤도 만족한 얼굴로 모든 멤버들과 주먹을 맞부딪쳤다.

    “다 부수고 와라.”

    컴백 쇼케이스는 무사히 잘 마무리됐으니, 이제 남은 것은 음악 방송에서의 무대다.

    각자의 방법으로 정신을 무장한 멤버들은 곧 그리웠던 무대로 향했다.

    백스테이지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니, 곧 MC 둘이서 토트윈을 소개하는 차례가 다가왔다.

    [ 이번 무대는 개학을 맞아 학교로 돌아온 학생들의 무대라고 하는데요! ]

    [ 어머! 설마 이번에 컴백하시는…… 그분들? ]

    [ 맞습니다!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는 토트윈의 무대, 함께 만나 보시죠!! ]

    그리고 이어지는 커다란 함성 소리.

    태현우는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데뷔 때랑은 확실히 다르네. MC님들이 소개해 주는 멘트도 2배는 늘어났다?”

    “오오.”

    안단테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조그만 주먹으로 가슴을 쿵쿵 쳤다. 덕분에 그쪽에 달려 있던 배지가 짤랑거리며 소리를 냈다.

    긴장을 해소하려는 듯한 그의 모습에 에르제는 몰래 안단테의 뒤로 이동해서 목소리를 흉내 냈다.

    “나대지 마, 심장아. 무대만 보면 흥분하다니 나 원 참, 너도 어쩔 수 없는…….”

    “아, 형!”

    안단테가 고개를 휙 뒤로 돌리며 소리쳤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빨개졌다.

    하지만 에르제는 피식 웃으며 손가락으로 안단테의 이마를 밀었다.

    “이런 걸로 부끄러워하면 우리 타이틀곡 어떻게 소화하려고 그래? 내 말 따라서 한 번 해 봐.”

    “아, 큼. 크흠.”

    안단테가 과하게 헛기침을 하며, 다시 심장을 쿵쿵 때렸다.

    “나…… 나대지 마, 심장아.”

    태현우가 옆에서 낄낄댔다. 민주혁도 고개를 돌리고 억지로 웃음을 참고 있는 모습.

    그러나 윤치우만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다가 멤버들을 한가운데로 모았다.

    “좋아, 이번 앨범 구호는 이걸로 가자.”

    “……예?”

    “뭘?”

    멤버들이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으나, 윤치우의 표정은 한없이 진지했다.

    “무대에서 팬들한테 최고의 순간을 선사해야지. 민망함에 미리 익숙해지고 올라가자. 얼른 털어 내고 가자고.”

    윤치우는 원을 그린 멤버들 사이에서 먼저 가슴을 주먹으로 쿵쿵 때렸다.

    “나대지 마.”

    그렇게 이야기하고 기다린다.

    “…….”

    “아 씨.”

    멤버들은 서로 타이밍을 눈치 보다가 동시에 가슴에 주먹을 올리고 크게 외쳤다.

    “씸장아아악!!”

    그 모습에 인사를 하러 왔던 선배 그룹 하나가 조심스럽게 뒷걸음질로 사라졌다.

    “가자!”

    그리고 토트윈은 완벽하게 정신 무장을 하고, 곧장 무대 위로 올랐다.

    “와아아아아아―!!”

    토트윈의 등장에 팬들이 크게 함성을 지른다.

    호박 그림을 그려 넣은 주황색 풍선이 한쪽 면을 꽉 채운 채 흔들거리고 있다.

    하지만 ‘언제 그룹 컬러가 주황색이 됐지?’ 따위의 생각을 할 틈이 없었다.

    ‘이번 안무는 어려워.’

    데뷔곡과는 다르게 격한 동작이 많아서 재빠르게 정위치에 서야 했으니 말이다.

    민주혁의 아크로바틱한 동작 말고도, 에르제를 위시한 다른 멤버들의 춤도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드럼이 들어올 때부터.’

    에르제는 머릿속에 단단히 안무를 집어넣고는, 팬들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고양감이 밀려왔다.

    쿵, 쿵.

    진짜로 자신의 심장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DUM DUM DUM DUM.

    베이스 리프가 박동 소리에 맞춰서 울리고, 곧 드럼 소리가 경쾌하게 들어왔다.

    ― 그 시절, 그 순간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던 날.

    푸른색 교복을 입은 민주혁이 센터로 팟, 하고 튀어나오며 스타트를 끊었다.

    뒤에 선 멤버들이 원을 돌며 빠르게 자리를 스위칭했다.

    사방을 찌르는 손동작과 쉴 틈 없이 움직이는 발.

    ― 우주를 봤어.

    너의 눈에서

    팬들이 흔드는 주황색 풍선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진다.

    토트윈의 왼쪽 가슴에 달린 배지들이 짤랑거리며 내는 소리가 더욱 커진다.

    TA DA, DA DA DA…… DA!

    리듬이 비틀리고, 안무가 힘차게 바뀌었다.

    뮤비에서 나왔던 축구 장면처럼, 멤버들의 동선이 수시로 바뀌면서도 학창 시절의 감성을 놓지 않았다.

    ‘오…….’

    그리고 에르제는 자신의 파트가 오기 전부터, 열심히 군무를 추면서도 눈길은 객석에 머물러 있었다.

    전에는 각양각색의 응원봉들만 보였다면, 오늘은 확실히 통일감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고양감이 올라왔다.

    ― 흐릿해진 시간에

    우리의 추억은

    희미해져도, 난

    조금 느릿하게, 풍선이 에르제가 부르는 박자에 맞추어 천천히 흔들렸다.

    ― 내일 그리고 내일 또 내일

    그날의 너를 보고 있어

    그렇게 가수와 팬이 하나가 되어 가고.

    애초에 곡을 만들 때부터 팬의 합류를 노린 구간에서는.

    ― 지금 시간은?

    “6시 17분!!”

    사탕 소품을 꺼내 입에 문 안단테가 민망함을 내던진 채 손가락을 들어 객석을 가리켰다.

    ― 기억해.

    내가 너에게 반한 시간

    “아아악!”

    주황색 풍선이 다시 한번 크게 일렁였다. 잭오랜턴들의 물결이었다.

    에르제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신난다.’

    예전에 마법 아카데미나 검술 아카데미에 다니던 학생들을 부러워했었는데.

    워낙 마법 결계가 많아서 자신이 뱀파이어라는 걸 들킬까 봐 접근조차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라도 학생 기분을 내니 기분이 새로웠다.

    ‘……어쩌면 이곳에서는.’

    에르제는 가볍게 미소를 지은 채, 마지막 안무를 소화하며 무대를 마쳤다.

    팬들에게 열심히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에르제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꼿꼿하게 섰다.

    “……!”

    그러고는 주먹을 쥔 손을 등에 붙이고, 반대편 손은 정확히 원을 그리며 아래로 내렸다.

    인간들에게 건넬 수 있는 최고의 존중을 담은 마무리 인사였다.

    ‘처음이야.’

    새삼 깨달은 사실에, 에르제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그에게 있어 오늘의 무대는 처음으로 단 한 번도 매혹의 힘을 섞지 않은 무대였다.

    오늘은…… 그냥 그럴 필요가 없었다.

    * * *

    토트윈의 데뷔곡인 ‘HaLLo’가 멤버들의 캐릭터와 세계관을 입히는 초반 작업이었다면, 이번 2집 앨범의 역할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녹이는 것이었다.

    세계관의 색채가 너무 과하게 묻어나지 않도록, 그리고 팬들이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윤활유의 역할처럼 말이다.

    때문에 학교와 학생이라는 친근한 콘셉트를 채택했고, 거기에 토트윈만이 할 수 있는 오글거림을 양념으로 추가함으로써 시선을 분산시켰다.

    또한, 뮤직비디오 중간중간에 토트윈의 세계관 색채를 집어넣어, 팬들이 무의식적으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이번 첫 음악 방송 활동은 그것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 ㅁㅊㅁㅊㅁㅊ 개좋아.

    ― 파란 교복, 진짜 잘 어울린다. ㅋㅋ 말썽꾸러기들만 한 교실에 몰아넣은 기분임. ㅋㅋㅋ

    ┖ 선생님들 막 그 반 들어가기 싫어하고. ㅋㅋㅋㅋ

    ┖ 아, 뭔지 알지. ㅋㅋㅋㅋ

    ― 안무를 누가 짰는지는 모르겠는데, 감사합니다.

    ― 직캠 좀! 제발 직캠 좀!!

    ― 은우랑 현우 비슷한 은발로 염색하고, 안무 좌우로 나뉘어서 하는 거 보니까 약간 라이벌 느낌도 나는 것 같아. 뮤비에서도 은우가 창문 깨 버리자나.

    ┖ 맞네. 갑자기 왜 흑발에서 은발로 바뀌었나 싶었는데, 그거 때문인 듯.

    ┖ 밑에 있던 댓글 똑같이 퍼 왔네;;

    ┖ 이거 그거임. 봇으로 돌려서 계정 팔아먹는 거.

    ┖ ㅈㄴ 싫다. 왜 우리 애들 영상에 와서 난리.

    ― 난 치우 갠팬이긴 한데, 서은우 미모 실환가 싶다;; 비주얼 센터의 센터 아니냐 이 정도면.

    ┖ 나 왜 저기에 없어? 나 왜 저기에 없어? 나 왜 저기에 없어?

    음악 방송이 나가고 난 직후, 팬들은 뮤직비디오 내용까지 끌어오며 다양한 감상평을 내놓았다.

    주제도 워낙 다양해서 댓글창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서로 하고 싶은 말을 쏟아 내는 분위기.

    제이의 홈마는 내내 내려가지 않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열심히 댓글을 달았다.

    본진은 제이의 홈마이지만, 같은 급으로 서은우의 홈마도 자처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서은우의 잘생김을 널리 전파해야 했다.

    ― 은우 보러 오세요!

    그녀는 보정 작업을 끝마친 사진들을 계정에 올려 두고, 포토 카드를 전시해 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서은우와 제이, 두 사람의 포토 카드밖에 없었는데, 특별한 배열 없이 마구잡이로 올려놓아 순서가 뒤섞여 있었다.

    제이의 홈마는 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턱을 괴었다.

    ‘처음에는 철새 짓만 안 하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솔직히 자신의 본진이 누구인지 헷갈린다. 누구에게 마음이 더 끌린다기보다 그녀에게는 둘이 똑같았다.

    어쩔 수 없었다.

    ‘데뷔 쇼케에서 은우를 직접 봤을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그들이 풍기는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눈이 마주치면 그냥 숨이 턱, 하고 막히면서 한 점으로 빙글빙글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또 다른 1군 아이돌한테서는 그런 게 별로 느껴지지 않는단 말이지?’

    둘만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인 것 같았다.

    ‘둘은 아이돌 행성에서 지구로 뚝 떨어진 게 분명해.’

    제이의 홈마는 머릿속에서 주책을 부리다가 이내 다른 방향으로 생각이 옮겨 갔다.

    이번에 방영을 시작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에 관한 것이었다.

    ‘아직 제이가 심사하는 모습이 안 나오기는 했는데, 그래도 예고에 멋있게 나오긴 했지.’

    역시나 LAK 쪽 커뮤니티에 들어가니, 다들 제이의 심사위원에 관한 화제가 대부분이었다.

    다만 아직 분량이 많이 뽑히지는 않아 아쉬워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육시 포맷 자체는 재미있어 보이던데.’

    무엇보다 시청자가 직접 참여하는 형태라 그곳에서 탄생할 새로운 아이돌 그룹의 서사에 한 발 걸쳐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해지기도 했다.

    여기서 생길 새로운 아이돌이 장래 토트윈을 위협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어서였다.

    LAK는 이미 입지가 굳건해서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을 듯하지만, 토트윈은…… 냉정하게 아직 서사가 부족했다.

    그냥 연습생 생활을 하다가 데뷔한 그룹이니까.

    그나마 장태수 대표의 트레이드마크, 마이너스의 손이 언제 발동할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있기는 했지만……. 그게 다였다.

    ‘앞으로 서사를 쌓아 갈 토트윈이랑 이미 충분한 서사를 쌓아 놓고 데뷔할 신생 그룹…….’

    벌써부터 그들의 팬들과 부딪힐 것을 예상하니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차라리 토트윈이 아육시에 나와서 다 찢어 놓고 가면 좋을 텐데.’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생각하던 그녀의 눈에 문득 어떤 팬이 남긴 글이 하나 보였다.

    [ 김지원 참가자, 모카 엔터 연습생이라고 하던데? ( 인터뷰 내용 ) ]

    “뭐?”

    그녀는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우고는 조심스럽게 본문을 읽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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