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6화
66화
장 대표의 예상대로, 이번 2집 앨범의 상승세는 거침이 없었다.
예약 판매로만 10만 장이 넘게 팔려 나갔고, 회사 내부에서 추측하기로는 초동 판매량이 저번보다 2배는 더 늘어날 거라고 봤다.
이윤은 신이 나서 그 사실을 떠들다가, 지금 그들의 상승세에 제약을 걸 만한 것을 떠올리고는 손바닥을 부딪쳤다.
“야, 주혁아! TV 좀 빨리 켜 봐라. 아육시 시작하겠다.”
애초에 오늘 이윤이 찾아온 것은 앨범 판매량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사실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을 토트윈과 함께 시청하기 위해서였다.
“TSN이었죠?”
민주혁이 채널을 돌리자, 딱 맞춰서 프로그램이 시작하고 있었다.
이윤과 토트윈은 곧 집중하기 시작했다.
[ 당신이 선택하는 아이돌! 당신이 키우는 아이돌! ]
[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
TSN에서 공을 많이 들였는지, 초장부터 화려한 효과와 함께 유명 MC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와 함께할 심사위원들을 소개합니다! ]
심사위원은 총 6명이었는데, 면면이 꽤나 쟁쟁했다.
먼저 오디션 심사위원계의 거장이자 대형 기획사 수장인 남진영, 류희원 등이 등장했고, 이후로 유명 가수들과 프로듀서 몇몇을 지나 마지막 심사위원이 등장했다.
[ 마지막 심사위원은 현 아이돌이자 남성 아이돌 그룹에서 최고 중 하나인 팀의 리더 제이입니다! ]
“제이?”
“제이가 나온다고?”
토트윈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놀란 눈을 했으나, 이윤은 팔짱을 낀 채 어깨를 으쓱했다.
이미 회사 내부적으로 소문이 돌았기에 그에게는 전혀 새로운 소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제이면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위원으로 꽤 적합한 편이지. 대중한테도 익숙하기도 하고…… 일단은 천상계잖아. 제이는 그중에서도 실력으로는 발군이고.”
이윤의 말에 다들 수긍은 하면서도 LAK와 얽힌 일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이윤도 왠지 모르게 불편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오히려 장 대표는 제이가 심사위원을 맡는 것에 찬성인 입장이었다.
그래야 그들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토트윈이 자극을 받아 더욱 열심히 할 거라면서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됐다.
“다큐도 1번밖에 안 찍지 않았나?”
“맞아. 대상도 몇 번 못 받았잖아.”
“올해의 앨범상도 2번밖에 못 받았고, 고작해야 신인상에 각종 음원 사이트 1등 쪼~금 했고.”
각자 LAK의 업적을 떠들다가 생각보다 많아서 시무룩해지기도 했는데, 그래도 멘탈들이 강해서 금방 딛고 일어나 전의를 불태웠다.
“까짓것, 우리는 올해 그거 다 하면 되지.”
“맞아. 내년에 아육시 2 하면 심사위원은 내가 할 거임.”
윤치우와 태현우가 큰 포부를 밝혔고, 안단테는 옆에서 열심히 끄덕끄덕 봇을 발동했다.
“그 정도는 별거 아니야.”
이어서 민주혁이 무심하게 툭 던졌고, 분위기에 이끌린 에르제가 볼을 긁적이며 방점을 찍었다.
“나는 1등 아니면 안 하는데.”
뭐랄까. 에르제의 말은 목표나 의지라기보다는 진심 같았지만 말이다.
“그래, 그래. 너희들이 최고야.”
이윤은 덩달아 흥겹게 어화둥둥을 해 주고는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새 심사위원과 기본적인 아육시 포맷 설명이 끝이 나고, 몇몇 참가자들의 인터뷰가 나오는 시점이었다.
“재미는 있겠네. 시청자 참여율에 따라서 거의 결정되는 것 같은데?”
“그니까여. 심사위원 점수가 30퍼센트밖에 안 되여.”
멤버들은 참가자의 포부를 들으며 떠들어 댔다.
‘확실히 시청자들이 몰입하기는 좋겠어.’
에르제도 그들의 말에 동감했다.
시청자의 투표에 따라 당락이 결정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보고 싶은 장르나 팀 조합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아마 육성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빠르게 팬층을 확보한 참가자는 열렬한 지지자들에게서 그 라운드에 유용한 아이템까지 얻을 수 있었다.
‘무대 장치나 소품 같은 것도 투표 순위에 따라 결정이 된다라…….’
에르제는 나중에 토트윈 자체 콘텐츠나 무대에서 써먹으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커뮤니티에 팬들의 투표로 멤버들의 의상을 정하거나, 서로 파트를 바꿔서 부르는 등의 이벤트를 하면 말이다.
그렇게 에르제가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떠올리던 사이, 이윤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졌다.
“뭐야?”
그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하고, 뭔가 이상을 감지한 멤버들도 그를 따라 한 참가자를 유심히 살폈다.
그는 준수한 외모에 말하는 것만으로도 목소리가 좋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는 참가자였는데, 심지어 사연도 구구절절했다.
[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던데? ]
[ 데뷔를 코앞에 두고 팀에서 잘렸거든요. 벌써…… 한 3년 됐네요. 최종적으로 데뷔할 멤버가 정해지고, 저도 그 팀에 뽑혔었는데…… 갑자기 짐을 싸라고 하시면서……. ]
[ 충격이 컸던 모양. 한동안 울컥해서 말을 하지 못하는데……. ]
[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제가 뭘 잘못했는지……. ]
적절한 자막과 구구절절 이어지는 사연에 절로 몰입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윤을 포함해 윤치우는 생각이 다른 모양인지, 얼굴이 새빨갛게 변해 있었다.
“X발, TSN 새끼들 어쩐지 우리한테 참가자 명단을 꽁꽁 숨기더라니.”
“……형, 저 사람?”
“어, 맞아. 하……. 저 새끼가 무슨 낯짝으로 저길 나와? 뭘 잘못 했는지 모르겠다고?”
윤치우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이윤을 바라보자, 그는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짜증 섞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이러고 모니터링을 어떻게 하라는 건데.”
다만 무슨 일인지 모르는 나머지 4명은 벙찐 표정으로 있었다.
“하! X 같네, 진짜.”
이윤은 몇 번 더 욕설을 내뱉다가, 어리둥절한 다른 사람들을 발견하고 손바닥을 내밀었다.
“……미안하다, 얘들아.”
이윤은 이미 그 참가자가 화면에서 사라지고 난 뒤였음에도 평정심을 유지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했다.
멤버들은 괜찮다고 하면서도 이윤의 이런 모습은 처음 보았기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근데 뭐 때문에 치우 형이랑 둘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거예요? 설마 저 사람이 데뷔조에서 잘린 게 우리 회사예요?”
“응.”
이윤은 태현우의 질문에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다시 그때를 떠올린 이윤은 거칠게 말했다.
“저 X끼 때문에…… 우리 그룹을 두 개나 말아먹었거든.”
그의 말에 멤버들이 멈칫했다.
“저 사람 때문에 그룹이 두 개나…… 망했다고요?”
태현우가 놀라서 되물었고, 이윤이 짜증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저 X끼가 먼저 데뷔한 그룹 멤버 하나를 학폭 가해자라고 기자한테 찔렀거든.”
“어……. 어어.”
그럼 당연히 그 뒤에 오는 의문은 ‘왜?’다.
같은 회사의 연습생이 먼저 데뷔한 동료를 칼로 찌른 거니까.
학교 폭력은 날이 양쪽으로 나 있는 칼과 같아서 진실의 유무를 떠나 그룹 이미지가 폭발하게 되어 있다. 기자에게 그 사실을 흘렸다는 것 자체만으로 악의가 있었다는 뜻.
게다가 기자가 기사를 썼다면, 어느 정도 증거까지 확보되었다는 뜻이 된다.
대충 멤버들의 의문을 눈치챈 이윤이 씁쓸하게 말했다.
“이유야 당연히 질투 때문이지.”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심지어 연습생 때는 둘이 제법 친했나 보더라. 그래서 증거라고 나온 것도 본인이 직접 털어놓은 걸 녹음한 내용이더라고.”
“……그럼 의도적으로 접근했을 가능성이 높겠네요. 만약 진짜 친한 사이였다면, 데뷔하기 전에 대표님한테 먼저 얘기했을 테니까요.”
태현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은근히 이윤을 압박했다. 설마 회사에서 눈감아 준 건 아니겠지, 라는 눈빛으로.
다행히도, 이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는 아무 이야기도 못 들었어. 심지어 그 새끼는 기사만 터뜨리고 제 발로 소속사도 나갔거든. 덕분에 걔가 데뷔조로 속해 있었던 그룹도 데뷔가 흐지부지됐고.”
이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덕분에 사과문에 뭐에…… 난리도 아니었다. 정작 그 사달을 일으킨 놈은 나가고 없고……. 하, 미리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솔직히 학폭 가해자인 건 피해자가 나오지 않는 이상 미리 알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
이윤은 고개를 흔들며 놈에 대한 정보를 더 풀어 주었다.
‘그래서 두 그룹을 말아먹었다고 한 거였나. 그런데…… 데뷔조였다면 본인도 데뷔할 수 있었던 거 아닌가? 뭐 하러 그런 짓을 벌인 거지? 회사에 들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에르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순수한 악의로 그런 것일 수도.’
본성이 그렇다면, 여러 이유를 가져다 붙일 필요도 없다.
놈은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거였을지도 모르니까.
게다가, 지금 TV에 나와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꼴을 보니 더욱 그럴 가능성이 높아지는 듯했다.
‘이름이 김지원이라고 했나.’
에르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아육시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이윤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저기서 잘하든 말든 상관없으니까 그냥 우리한테 피해만 안 줬으면 좋겠다. 근데 저거 인터뷰 내용이 은근 사람 불안하게 만드네……. 후우.”
“괜찮을 거예요.”
윤치우가 걱정으로 가득한 이윤을 위로해 줬으나, 그렇게 큰 효과를 보진 못했다.
해서 윤치우는 에르제 쪽으로 고개를 돌려 도와 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음.”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에르제는 이윤의 옆에 털썩 앉았다. 그러고는 정제되지 않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김지원은 무조건 사고 칠 거예요.”
“?”
“아육시가 시청자들에 의해서 순위가 정해지는 거라고 했죠? 실력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해도 김지원이 가지고 있는 썩은 인간성은 보일 것 같은데. 그렇게 되면, 시청자들의 손으로 빨리 떨어뜨리지 않을까요?”
그렇게 말하던 에르제는 문득 든 생각에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카메라의 천사 편집이 없다는 가정하에……?”
말을 그렇게 하기는 했지만, TSN 같은 곳에서 고작 김지원을 위해 그렇게까지 해 줄 이유가 있나 싶었다.
‘굳이……?’
그들도 김지원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다 보면 알 것이다. 얘를 데뷔시키면 데뷔 후에 뭔가 문제를 일으키긴 일으킬 거라고.
‘최소한 멤버 간의 불화설은 뜰 것 같은데.’
때문에 그 부분은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TSN이 그렇게 멍청한 짓을 할 곳도 아닐 테고.
‘뭔가 외부의 개입만 없다면.’
에르제는 스스로 질문과 대답을 한 뒤에, 이윤을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때 망했던 그룹과 관련된 악의적인 인터뷰는 아마 막기 어려울 거예요. 오늘도 그걸로 초반 분량을 꽤 잡아먹었고요.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겠죠. 저런 이야기는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기 딱 좋은 떡밥이니까.”
“……그건 그렇겠네.”
이윤은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 듯 보이더니, 곧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 아육시가 아직 끝나기 전이었다.
“모니터링은 너희들끼리 하고 나중에 의견 취합해서 알려 줘. 나는 대표님 만나서 예상되는 트롤링이랑 대처 방법 좀 알아봐야겠다.”
이윤은 서둘러 신발을 신다가 조금 멈칫했더니,
“은우 땡큐!”
그렇게 말한 후 문을 쾅 닫고 나가 버렸다.
에르제는 피식 웃고는 ‘어때?’ 하며 윤치우를 바라보았다.
에르제는 팔짱을 끼고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나, 이제는 이쪽 세계에 대해 좀 잘 아는 듯?”
고작 데뷔 6개월 차 아이돌의 짬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