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65화
개강을 앞두고 한창 우울해 있던 대학생에게 이번 토트윈의 컴백은 한 줄기 희망과도 같았다.
‘그 시절의 너(Reminiscence)’라는 타이틀곡을 내세운 이번 앨범은 오늘 2월 20일 자정에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고, 서둘러 예약 판매를 마친 그녀는 조금 늦게 무튜브를 켰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조회수가 몇만 회를 육박했다.
“와!”
바로 어제 티저 영상에서도 느꼈지만, 새삼 토트윈의 팬덤이 얼마나 커졌는지 조회수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다만 영상을 누르자마자, 베스트 댓글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는데.
― 학창 시절 소환 완료!
라는 댓글이 어째서 베스트 댓글인지 궁금해지는 그녀였다.
‘이상한 건 아니겠지……?’
살짝 불안감을 느낀 그녀는 지체 없이 뮤직비디오를 틀었고.
“아…….”
곧 중, 고등학생 시절을 회상하는 듯 스마트폰을 들고 잠시 멍을 때렸다.
전체적인 뮤직 비디오의 영상미와 가사를 보고 있으니, 강제적으로 추억 소환이 된 모양이었다.
“앗,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정신을 차린 그녀는 댓글 창을 열어 마우스를 쭉 내렸다.
하지만 같은 나라 사람을 찾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언제 외국인 팬이 이렇게 늘어났지?”
무튜브는 영어 댓글이 제일 위로 올라오니, 이브를 찾아내는 일이 귀찮았다.
‘그냥 한국어로 쓰라고 좀.’
투덜대던 그녀는 곧 자국민을 발견하고 흐흐 웃으며 댓글을 읽어 나갔다.
― 내 첫사랑, 잘 지내고 있지……?
― 나도 오랜만에 모교 찾아가볼까?
┖ 예전에 타임 캡슐 묻어놓은 거 있는데, 아직 그거 있는 지 나도 조만간 가볼 예정ㅋㅋㅋ
― 오늘부터 은우 은발파 모집합니다. (1/100000)
┖ (2/100000)
┖ 무슨 소리야? 흑발이 최고지.
┖ 저번에 끝난 줄 알았는데, 머리 색깔 가지고 또 싸우고 있네. 둘 다 예쁨.
― 아, 근데 이거 작사는 멤버들이 하고 작곡은 안단테임. 슬슬 토트윈 이쪽도 개척하는 거임?
┖ 그러네? 단테 곡 잘 뽑았다. 이 정도면 소속사에서 푸시 더 해 줘야지! 데뷔 때는 왜 이렇게 안 함?!
┖ 그거야 내부 사정이 있었겠지. 왜 이렇게 열을 내? 앞으로 애들이 곡 잘 뽑아서 내주면 되는 걸.
대부분 가사나 멤버들의 외양, 그리고 작사 작곡과 같은 부분을 화제로 삼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댓글을 구경하던 그녀는 이내 뒤의 은발, 흑발 논란을 발견하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왜 또 이걸 가지고 싸우고 있어? 흑발이랑 은발 둘 다 사랑인데.’
그들의 말에 공감도 하고 또 댓글을 보고 속으로 욕도 하던 대학생은 문득 든 생각에 고개를 갸웃했다.
‘뮤비 떡밥에 대한 해석은 없나?’
대충 봐도 수미상관으로 이루어진 뮤직비디오 형식이나 이것저것 분석할 것들이 꽤 있어 보이는데 말이다.
슥, 슥.
그래서 댓글을 더 내려 보니, 그곳에 그녀가 원하는 것들이 있었다.
― 일단 내가 찾아낸 거 정리해 봄.
가사랑 마지막에 여자애 떠나는 거 보면 학창 시절 좋아했던 애가 있는데 결국 만나지 못했고, 그 시절이 그리워서 폐교된 학교를 다시 찾아온 듯함.
티저에는 나왔는데, 뮤비에는 윤치우가 지갑 보는 장면 안 나옴. 그때 꽃집 보는 장면 나오는데, 마지막에 꽃 꽂는 사람 나오잖아? 그거 윤치우인 것 같음……. 근데 여기서 왜 윤치우인지는 잘 모르겠음.
학 종이가 용이 되는 거, 은우가 달 움켜쥐는 거, 안단테 주위에 반짝거리는 거 등등 애들 세계관 컨셉도 어느 정도 끌어와서 맞춘 듯함.
…….
그렇게 10문항가량 길게 쓰여 있는 댓글이었는데, 사람들은 이에 공감을 해 주면서도 자기 의견을 추가로 달기 시작해서 어느덧 대댓글 숫자가 100개를 넘어가고 있었다.
“분석 글 보고 뮤비 한 번 더 봐 줘야지.”
어차피 그 뒤로도 계속 스트리밍을 할 테지만, 해석본을 보고 난 이후에 뮤비를 정독하는 것은 필수였다.
“…….”
그렇게 여러 가지 떡밥을 찾아내며 다시 뮤직비디오 감상을 마친 대학생은 입가에 웃음기를 지우지 못한 채 침대를 뒹굴었다.
“아으, 약간 오글거리는데 너무 좋아.”
풋풋하면서도 그게 또 그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듯해서 재미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뮤직비디오에서는 여학생을 향한 가사로 보였지만, 이게 또 은근히 팬들을 저격한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앨범 제목도 ‘Letter’이고, 은우가 팬송 불러 줬을 때랑 감성도 비슷하고.’
심지어는 ‘지금은 몇 시?’라고 해 놓고 노골적으로 멜로디 공백을 만들어 두지 않았나.
다분히 팬들에게 ‘몇 시!!’ 하고 외치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뻔하기도 하고 너무 대놓고 요구하는 것 같기는 한데, 사실 그게 또 귀여웠다.
막상 그것 때문에 음방이나 콘서트가 기대되는 것은 그녀가 어쩔 수 없는 이브라는 증거였다.
그렇게 댓글을 읽어 보기도 하고, 커뮤니티와 SNS에서 다른 이들과 토트윈에 관해서 소통을 하는 사이.
토트윈 공식 계정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 이브들 방가방가! 하이루!
오늘의 영상은 뮤직비디오 모니터링 리얼리티!
‘ㄴr는 ㄱr끔 뮤비를 보며 눈물을 흘려…….’
음악만이 유일하게 허락된 마약이니까……!
재미있게 봐주세요!
p.s. 조만간 TV에서 또 보r요! ]
마치 옛날 X이월드나 X디X디를 연상케 하는 토트윈의 글이었다.
그 밑에는 뮤직비디오를 보는 토트윈의 모습이 담겨 있었는데, 대학생의 눈에는 그들이 하나같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각자 캐릭터 잠옷을 입고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뮤직비디오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게 마치 이번 설에 만난 어린 조카들 같아서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씻지 않은 태현우 때문에 다시 샤워하러 들어가는 서은우의 쓸쓸한 뒷모습까지.
‘은우, 귀여워……!’
짧은 영상이긴 했지만, 팬들을 위한 용도로서는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한 것이다.
‘근데, TV에서 또 보자는 건 뭐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던 대학생은 마지막 추가 문구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대학생이 그 의문을 해소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며칠 뒤.
[ 토트윈의 첫 CF. 파트너는 청화 계열사인 그곳? ]
한 기사를 시작으로, 토트윈의 화장품 CF와 관련된 기사들이 퍼져 나갔다.
청화보다는 모카 엔터 측에서 적극적으로 바이럴 마케팅을 시도한 덕분이었는데, 대기업과 CF를 찍었다는 사실을 어필하면서 토트윈의 입지를 높이기 위한 방법이었다.
― 누가 보면 CF가 아이돌 순위 지표인 줄? ㅋ
― ㅋㅋㅋㅋㅋ X소라 그런지 바이럴 오지게 하네.
― 이러다 매출 떡락하면, 바로 CF 탓 하면서 토트윈 야리돌림 당할 텐데 그런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타 팬 및 안티들이 극성을 부리는 걸 보니 모카 엔터에서 마케팅에 성공했다는 증거였다.
물론 이브들 중 몇몇은.
― CF 찍는 거 좀 성급하게 한 것 같아서 괜히 불안해. ㅠ
― 머글들한테 인지도가 높아야 먹힐 텐데, 괜찮을까?
그런 우려를 표하기도 했는데, 현 토트윈의 입지를 냉정하게 따져 보면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완벽하게 1군 아이돌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상을 받은 적도 없었고 데뷔 앨범도 음원 2위까지 오른 게 1곡뿐.
일반인들에게 ‘토트윈’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고 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단순하게 1군 아이돌의 한 축인 LAK만 보아도, 일반인들이 그들의 곡은 몰라도 얼굴이나 그룹 이름 혹은 멤버 몇몇은 알고 있을 정도로 TV에 얼굴을 많이 비쳤으니 말이다.
그들과 비교하면, 토트윈의 노출이 지금까지는 적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장 대표가 토트윈이 LAK에 절대 꿀리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장 대표는 이윤과 토트윈의 스케줄을 조율하면서 입을 열었다.
“이번 앨범은 잘될 수밖에 없어. 곧 아육시 시작이지? 그럼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는 토트윈이 계속 비교당하고 매체에 소환당할 게 뻔하거든. 결과가 좋든 나쁘든 오디션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계속 노출이 될 거라는 얘기야.”
“그러네요. 아육시를 꼭 나쁘게 볼 필요도 없겠네요. 그리고 아육시 참가자들은 쉽게 시도할 수 없는 콘셉트로 저희 앨범이 나오기도 했고요.”
“바로 그거지. 음……. 그리고 윤아, 우리 애들 최고 장점이 뭐라고 생각하냐?”
“장점이요?”
이윤은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실력 아닐까요?”
“실력이다?”
“예. 애들이 일단 기본기가 탄탄하고, 주혁이 춤 실력이나 은우랑 현우의 보컬 실력이야 웬만한 아이돌은 거의 씹어 먹는 수준이니까요. 게다가 단테는 이번에 뛰어난 작곡 능력도 보여 줬고, 치우도 노력 엄청 해서 지금은 구멍 소리도 거의 안 나오고요.”
장 대표가 미묘한 느낌을 풍기며 대꾸했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지.”
“이거 아니었어요?”
이윤이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자, 장 대표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얘기했잖아. 틀린 말은 아니라고. 근데 그게 CF랑 관련이 있을까? 애들이 CF에서 노래 부르거나 춤을 추는 것도 아닌데. 끽해 봤자 연기 실력이나 좀 보이려나?”
“그러면…….”
“당연히 얼굴이지, 얼굴.”
장 대표가 자신의 사무실에 대문짝만하게 걸어 둔 토트윈의 포스터를 가리켰다.
“웬만한 아이돌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이잖아.”
그의 눈은 어느덧 서은우의 얼굴에 멈춰 있었다.
“특히 은우는…… 일단 풍기는 분위기부터가 다르고.”
“사람을 홀리는 매력이 있죠.”
이윤이 드물게 서은우의 칭찬을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대답에 장 대표는 청화 쪽에서 주었던 CF 견본을 떠올리며 입꼬리를 올리고 웃었다.
“수출? 이번에 오히려 아육시로 아이돌에 입문하는 사람들 죄다 끌어와 보자고.”
장 대표는 더욱 본격적으로 토트윈의 활동에 열을 올리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
“일단 이번 음방 활동부터 스타트 잘 끊어서 이지 리스닝 음원들이랑 타이틀곡 순위권에 올려놔 보자.”
장 대표는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이번에 그의 눈길이 머무른 곳은 바로 내일 방영되는 아육시 첫 방송 날짜가 표시되어 있는 달력이었다.
“아육시가 배에 탄 우리에게 역류이긴 하지만 괜찮을 거다. 노 젓는 녀석들이 워낙 튼튼하니까.”
다만 장 대표가 역류하는 물길이 생각보다 거세다는 것을 깨달은 건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