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64화 (64/307)

제64화

64화

뮤직비디오와 앨범 예약 판매가 풀리기 전날.

19일은 토트윈 멤버 전원이 하루 동안 휴가를 받았다.

연습은 자율이라 각자 개인 연습을 하고 오기도 했지만, 다들 일단은 휴가라서 마음 편히 하루를 보냈다.

“끄으.”

기지개를 길게 켠 태현우가 거실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드디어!”

“20일이!”

“되었습니다!”

그러고는 안단테와 둘이서 말을 주고받고 잘 논다.

하지만 둘의 말마따나 2집 앨범 ‘Letter’가 5분 뒤에 공개되는 시점이었다.

게다가 오늘은 리얼리티를 겸해 그들의 뮤비 감상 반응까지 찍고 있는 카메라도 준비되어 있었다.

아마 대충 편집해서 20일 낮쯤 공식 계정에 올라가지 않을까 싶다.

에르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안단테가 한 손을 가슴에 올리고 심호흡을 했다.

“후, 두근두근해여.”

에르제의 말 덕분인지 그동안 걱정을 한 움큼 먹고 있던 그의 표정이 어느덧 기대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막상 20일이 되면 또 안단테가 초조해할까 싶어서 노심초사하고 있던 윤치우는 안도하며 에르제에게 조용히 고맙다는 말을 건넸다.

“별말씀을.”

에르제는 별것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이런 종류의 사회생활은 로드였을 때 많이 겪었다.

안단테는 스스로에게 확신을 갖게 하는 것보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인정했다는 사실이 더 필요했고, 자신은 그 틈을 잘 파고들었을 뿐이다.

‘이제 막 인간 기준으로 성인이 되었으니 멘탈이 약할 수밖에 없지.’

어깨를 으쓱하고, 태현우가 책을 읽고 있는 민주혁을 괴롭히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자.

드디어 자정이 됨과 동시에 무튜브와 연결해 두었던 TV에서 그들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로 전환되었다.

“재생한다!”

언제 TV 앞으로 왔는지 태현우가 신이 나서 소리쳤다.

다른 멤버들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태현우가 곧장 영상을 재생했고, ‘MOCHA Entertainment’라는 글자와 함께 화면이 전환되었다.

빈 교실. 책상과 의자들이 맨 뒤로 얼기설기 뒤엉켜 있고, 가운데에는 놓인 빈 책상과 빈 의자 하나만 삐뚤게 위치해 있다.

옆으로 느릿하게 이동하는 카메라를 따라가니 치지직, 하는 노이즈와 함께 책상 위에 놓인 꽃병 하나가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위로 덮이는 것은 ‘그 시절의 너(Reminiscence)’라는 타이틀곡 제목이었다.

DUM DUM DUM.

곧 베이스 리프가 딱 맞춰서 깔리고.

TA DA DA DA!!

그루브 넘치는 드럼의 박자가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시작했다.

동시에 학생들로 꽉 차 있는 화면으로 넘어간다.

연필 사각거리는 소리와, 책 넘기는 소리가 베이스와 드럼밖에 없는 사운드를 채워 가고.

곧장 윙윙거리던 신디사이저 소리가 멜로디 라인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안경을 올려 쓴 채, 범생이 모드인 민주혁이 맨 앞좌석에서 가장 먼저 멜로디에 보컬을 얹었다.

― 그 시절, 그 순간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던 날.

The Memory

운동장에 묻어 둔

흙 묻은 기억.

글자에만 집중하던 민주혁의 눈이 복도 쪽에 나 있는 창가로 지나가는 한 여학생을 따라 이동한다.

그리고 복도로 전환된 화면에는 친구들과 웃으며 떠들던 태현우가 그 여학생을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동시에 피아노가 중음의 화음이 들어오면서 통통 튀는 매력을 더해 준다. 확실히 DnB 성향이 물씬 풍겨 왔다.

― 우주를 봤어.

너의 눈에서

Space or Universe

빠져나올 수 없는

Matrix―!

랩과 보컬의 오묘한 경계에서 민주혁과 태현우의 파트가 끝나고.

프리 코러스에서는 힘이 쭉 빠지며, 완급 조절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때 등장한 것이 윤치우였다.

오렌지색 머리를 휘날리며 수업 시간에 몰래 학 종이를 접고 있었다.

책상 옆에 놓인 통에는 이미 수십 마리의 학이 들어 있었다.

― 어떤 별?

원하는 걸 말해.

모두 따서 너에게 줄게.

부서질 듯, 작은 행성을

조그만 네 손에 쥐여 줄게.

곧 이어 하이라이트 구간으로 넘어오고, 그곳에는 은발 머리를 한 서은우가 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 흐릿해진 시간에

우리의 추억은

희미해져도, 난

내일 그리고 내일 또 내일

그날의 너를 보고 있어

서은우가 시계 초침을 손가락 끝으로 툭 건드리자, 초침이 그대로 빨리 감기를 하듯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를 비추던 카메라가 360도 회전하고.

뮤직비디오 티저에 나왔던 태현우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어느덧 방과 후가 된 교실과, 그의 손가락 위에 앉아 있는 노란 나비.

하지만 교복을 입고 있던 다른 멤버들과 달리, 태현우는 사복 차림이었다.

이미 졸업한 학교에 와서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듯한 모습이었다.

― 반가워, 라고

인사를 하고

어쩌면 네가 이곳

그리움에 이끌렸을까

그래서 다시 찾은 발걸음ㅡ

그의 손을 떠난 노란 나비가 나풀거리며 창가로 날아가고.

2절의 Verse로 넘어감과 동시에, 화면도 축구를 하는 토트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해맑게 웃는 얼굴로 축구를 하고 골을 넣고 좋아하는 윤치우의 포효.

그리고 그늘에 앉아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여학생이 있다.

그런 그녀에게 후다닥 뛰어온 윤치우가 학 종이를 내밀었는데.

― ?!

주변에 있던 모두가 놀라 그를 쳐다본다.

그도 그럴 것이…… 분명 학이었던 것들이 합체라도 한 듯, 꽤나 커다란 용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여학생은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놀라서 이를 받아 들고, 그런 윤치우를 양손으로 밀어 낸 안단테가 Verse를 불렀다.

꽃가루 같은 것이 안단테의 주변에 떨어져 내렸다.

― 그 시절, 그 순간

Ooooh!

후회하고 싶지 않아.

제자리를 빙글빙글 도는 건

이제 그만.

Going High―!

안단테의 손가락 끝을 따라 카메라 화면도 쭉 하늘로 치솟았다.

그렇게 비춰진 옥상에는 5명 멤버 모두가 격한 안무를 선보이고 있었다.

그중 민주혁이 센터로 나오며 기존에 보여 주지 않았던 랩으로 Verse의 B파트를 이어 갔다.

― 그 시절, 그때의 넌

무엇보다 찬란한 빛―.

Beat’s gonna quick.

지금은 No where to find

But in my mind

기억을 뒤지며 찾아낸 sign.

reminiscence.

그리고 다시 코러스로 넘어 오며, 서은우의 파트가 반복되었으나.

이번에는 계란 대신 야구공이었다.

티저에 나온 장면이었는데, 똑같이 멀리 날아간 야구공이 창문을 깨고.

추억에 잠겨 있던 태현우가 놀라서 창가로 뛰어나오며 아래를 내려다보고 짜증을 낸다.

그렇게 자연스러운 화면 전환으로, 2절 하이라이트 파트를 마친 후.

이어서 옥상에서 사탕을 물고 있는 안단테가 등장했다.

브릿지 파트였는데, 드럼 앤 베이스가 기반이 된 상태에서 레트로를 위해 시티팝 감성까지 더해지는 구간이었다.

― 지금 시간은?

기억해

내가 너에게 반한 시간

잠깐 사운드가 빠지는 공백 구간은 누가 보아도 노리는 바가 명백한 편곡이었다.

그렇게 노란 나비를 쫓던 안단테가 옥상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멈추고, 후두둑 떨어지는 사탕과 범생이 민주혁이 다시 등장했다.

그러다가 여자애와 즐겁게 이야기하는 윤치우를 발견하고, 기둥 뒤에 숨어서 못마땅하게 안경을 올려 쓰는 모습.

멜로디는 점점 고조되고, 청량한 서은우의 보컬이 그 위로 쌓인다.

― 조금씩 시간을 돌려

널 향해 가는 길―.

장르상 ‘HaLLo’만큼의 고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높은 음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그보다 높게 태현우가 화음을 쌓으면서 웬만한 아이돌은 씹어 먹을 정도의 성량을 선보였다.

그렇게 노을이 지고 새로 추가된 시티팝 감성에 맞게 어둑어둑해지는 시점.

뮤직비디오의 메인 스토리도 끝을 향해 달렸다.

어느 누구를 선택하지도 않은 채 눈물을 흘리며 멀리 전학을 가 버리는 소녀.

5개로 분할된 화면에는 터덜터덜 걸어가는 멤버들이 보이고, 이윽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텅 빈 교실.

그곳에서 다시 한번 모든 멤버들이 군무를 맞췄다.

여기는 민주혁의 독점 구간이었다.

― Feel so high

너와 있을 때면

그래서 다시 찾은 발걸음

센터에서 군무를 끌어가던 민주혁이 회심의 백 덤블링과 비보잉 기술을 선보이고.

자리를 위해 옆으로 쫘악 물러섰던 멤버들이 손을 앞으로 끌어오면서 무릎을 꿇고 있는 민주혁을 가리고 다시 전면으로 나선다.

곧 서은우가 오른손을 하늘 위로 쭉 뻗으며 달을 잡을 듯 손을 움켜쥐었다.

― 흐릿해진 시간에

우리의 추억은

희미해져도, 난

내일 그리고 내일 또 내일

그날의 너를 보고 있어

― 반가워, 라고

인사를 하고

어쩌면 네가 이곳

그리움에 이끌렸을까

그래서 다시 찾은 발걸음ㅡ

서은우와 태현우의 파트가 번갈아 이루어지며.

― Reminiscence―――.

다같이 화음을 쌓아 보컬 부분이 모두 마무리된다.

남은 것은 Outro.

악기가 하나둘씩 빠져나가기 시작하고, 결국 곡이 완전히 끝났을 때.

저벅, 저벅, 저벅.

누군가 낡은 학교 복도를 걸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얼굴은 일부러 보여 주지 않는 듯, 무릎까지만 화면에 나오는 상태.

그리고 뮤직비디오의 맨 처음 장면이 다시 등장했다.

얼기설기 엉켜 있는 책상들과, 교실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는 책상과 의자.

그 위에 남자의 손이 텅 빈 꽃병을 내려놓는다.

툭―.

그리고 몇천 원짜리 꽃 몇 송이가 꽃병에 꽂혔다.

비로소 완벽하게 처음 장면 그대로의 모습.

남자는 가만히 꽃을 바라보다가 교실 바깥으로 나가고.

사각사각사각―.

연필이 사각거리는 소리와 동시에 화면에 ‘Reminiscence’라는 회색 글자가 하나씩 쓰였다.

그렇게 팟, 하는 소리와 함께 뮤직비디오의 완결이 이루어졌다.

“……!!”

“!!”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뮤직비디오를 숨죽여 바라보던 멤버들은 영상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가슴은 이미 부풀어 올라 터질 듯했는데,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러다가.

“푸하……!”

누군가 확 내뱉어 버린 숨에 멤버들은 너나없이 막힌 기도를 뚫어 내며 서로 시선을 맞췄다.

대충 의미를 눈치챈 에르제가 뒤로 물러나며 양손을 좌우로 뻗었다.

청결을 중요시 여기는 뱀파이어에게 지금의 상황은 아주 기겁하기 딱 좋았다.

“이러지 마.”

하지만 그보다 민주혁의 손이 빨랐다.

우악스럽게 에르제의 어깨를 잡아챈 민주혁이 그를 안쪽으로 끌어당겼고.

“아!! 태현우, 아직 안 씻었잖아아아!!”

강제로 어깨동무를 하게 된 에르제가 바로 옆의 태현우를 보며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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