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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61화 (61/307)

제61화

61화

“이게 뭐 하는……!!”

장진규가 기함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 했으나, 제이를 포함한 둘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크윽……!!”

“윽.”

뒤늦게 제이도 자신의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낮은 신음 소리를 내뱉었다.

‘협박을 좀 섞을까.’

에르제는 스산한 얼굴로 냉소를 지었다.

“음, 가장 먼저 대답하는 분만 살려 주는 걸로 할까요?”

미동도 없이 둘을 노려보던 에르제는 다시 목소리에 힘을 주어 물었다.

“그쪽에서 가장 높은 사람이 누구죠?”

“…….”

“…….”

두 뱀파이어는 서로 눈치를 본다.

힘에서 차이가 나니 직접적으로 반발하지는 못해도 선뜻 먼저 대답을 하겠다고 나서는 이는 없었다.

“왜 아무도 말이 없죠?”

에르제가 이마를 찌푸렸다.

“의리라도 지키고 싶은 건가요? 아니면…… 의리가 아니라 그냥 오기일까요?”

“……당신, 으윽, 도대체 누굽니까?”

에르제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었으나, 장진규가 먼저 입을 열기는 했다.

“크…… 으, 이 정도 힘을 가지고 있는…… 뱀파이어는, 아니 그런 뱀파……이어가 왜?”

“하고 싶은 말이 뭔가요?”

말이 늘어지기 시작하자, 에르제가 속박하고 있는 힘을 조금 약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제야 조금 숨을 쉬기 편해졌는지 장진규가 숨을 몰아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왜 이런 힘을 숨기고 고작 아이돌을 하고 있는 겁니까? 아니, 아니지. 그렇게 인간들 사이에서 살아가면서 어째서 뱀파리스 같은 악독한 놈들의 편에 서려는 겁니까?!”

말을 하면서 악에 받쳤는지 말투가 거칠어진다.

하지만, 냉철한 판단을 하기에는 지금의 상황이 당황스러웠는지 내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이 정도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다면, 뱀파이어들의 부흥에 힘을 쓰지 않고 어째서……!”

“잠깐만.”

에르제는 더는 못 들어 주겠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뱀파리스의 편에 서겠다고 말한 적이 없어요. 그냥 한 가지만 물었을 뿐입니다. 당신들을 통솔하고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게 누구인지에 대해서요.”

에르제가 손가락을 세웠다.

“한 명만 살려 주겠다고 했을 텐데, 목숨이 아깝지 않은가 봐요? 그냥 빨리 불고 목숨을 부지하는 편이 좋을 텐데.”

“……모릅니다.”

에르제의 말에 대답한 건 장진규가 아니라 제이였다. 일단은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보이지 않아 체념한 듯한 모습이었다.

“장진규 팀장님도 모르실 겁니다. 저희에게 명령이 내려오는 방식이…… 조금 옛날 방식일지는 모르지만 쪽지로 오니까요.”

“쪽지?”

“……네. 쪽지를 박쥐 다리에 매달아서 옵니다. 핸드폰을 통해서 연락을 하는 건 혹시 문제가 생겼을 때 기록도 남고 법적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면서…….”

그 말에 에르제는 가만히 팔짱을 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긴 한데.’

만약 거짓말을 하려고 했다면, 굳이 더 의심스럽게 만들 이유는 없었으니 말이다.

‘박쥐 다리에 쪽지라니.’

만일 사실이라면, 이들의 우두머리는 상당히 조심성이 많은 모양이다.

‘일단 그냥 내 직감일 뿐이니까.’

이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조금 떨떠름한 짓을 해야 할 듯싶었다.

‘남의 머릿속을 헤집는 건 기분이 썩 좋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지.’

다만, 조금 걱정인 것은 정신 지배를 사용했을 때 서은우라는 인간의 껍데기가 버틸 수 있느냐가 문제.

그러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기에 에르제는 장진규 쪽을 바라보았다.

“일단 대답이 늦은 건 장진규 씨라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예?”

장진규가 당황하여 되물었으나, 이미 결심이 선 에르제는 지체 없이 그의 정신을 장악해 나가기 시작했다.

“허억.”

장진규의 허리가 뒤로 젖혀지고, 에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이마를 붙잡았다.

“뭐, 뭐 하는 겁니까! 이런 장소에서 죽이기라도 했다가는……!!”

제이는 꼼짝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황망한 눈빛을 띤 채 에르제에게 소리쳤으나.

“쉿.”

에르제는 눈을 감은 채 장진규의 이마를 잡은 상태로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그렇게 손과 턱이 덜덜 떨릴 때까지 장진규의 의식을 읽어 내던 에르제는 이내 땀범벅이 된 채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커륵, 으르륵.”

곧 장진규가 입에서 거품을 쏟아 내며 눈을 까뒤집은 채 그대로 테이블 위로 엎어졌다. 제이는 그 과정을 입술을 꽉 깨문 채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에르제는 둘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은 채 중얼거렸다.

“1급 기밀이라도 되는 건가.”

장진규의 표층 의식을 지배하고 기억을 읽어 내는 데는 성공했으나, 누군가 인위적으로 지워 버린 듯 기억의 공백이 많았다.

형형색색의 기억들 속에 새하얗게 텅 비어 버린 기억들은 마치 그림 위에 떨어진 흰 물감 덩어리 같았다.

‘그럼 저 녀석도 마찬가지겠지.’

장진규보다 서열이 낮은 제이가 더 많이 알고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게다가 장진규 하나만으로도 몸이 겨우 버텨 낸 상태라 제이의 기억까지 읽어 내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였고 말이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장진규의 몸에 ‘우혈충’을 심어 두기는 했으니 조만간 필요한 정보를 보내올지도 몰랐다.

‘당분간은 지켜보는 쪽으로 정할까.’

장진규와 제이가 속해 있는 곳은 일견 겉으로 보기에는 자신과 같은 뱀파이어들로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에르제가 선뜻 그곳에 들어가겠다고 하지 않고 이들의 우두머리를 알아내려고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장진규나 제이 그리고 그 외의 다른 뱀파이어들은 세대를 거치며 피가 옅어진…… 일족이 아닌 뱀파이어이지만.

혹시 이들을 이끌고 있는 게 자신의 일족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낮지도 않아.’

쪽지를 받았을 때의 기억 그리고 그들 세력을 유추할 만한 기억을 모두 지워 버렸을 정도의 힘 때문이었다.

물론 일족들과 비슷한 힘을 가진, 진한 피의 뱀파이어일 가능성도 있긴 했으나.

‘일족일 가능성까지 전혀 배제할 필요는 없지.’

그렇기에 기억이 지워지지 않을 우혈충을 심어 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이들에 관한 내용들을 더 많이 알게 될 수 있을 터.

‘당분간은 정보를 수집하고 일족들과 연관이 있다면 이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으로 해야겠어.’

생각을 정리한 에르제는 장진규와 제이를 속박하고 있던 술법을 풀어 주었다.

장진규는 여전히 테이블에 머리를 박은 채로 기절해 있었고, 제이는 손목을 주무르며 꺼림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제이가 장진규와 자신을 번갈아 바라보았기에 에르제는 설명을 해 주었다.

“죽이지는 않았어요. 그냥 기억만 읽은 것뿐입니다.”

그의 말에 제이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그래서 알아낸 것이 있습니까?”

“글쎄요.”

기억이 지워져 있었다는 것까지 말해 줄 필요는 없었다.

“대충은?”

에르제는 의미심장하게 대답을 하고는, 장진규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뱀파이어니까 인간처럼 정신이 망가지거나 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음……. 장진규 씨가 팀장이라고 했나요? 며칠 요양하고 나면 괜찮아질 겁니다. 선배가 잘 보살펴 주세요.”

“……이 상황에 선배는 무슨.”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제이에게 에르제가 테이블 위를 손가락으로 두들기다가 마지막으로 경고를 남겼다.

“저도 뱀파리스들을 싫어하고 꽤…… 그들과 복잡하게 엮여 있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쪽 사상에 동조할 생각은 없어요. 따로 해야 할 일도 있고, 제 목표는 하나니까요. 그러니까 앞으로는 이런 식으로 찾아오거나 연락하지 말았으면 해요. 필요한 일이 있으면 제가 먼저 연락을 드릴 테니까.”

“……그 생각이 꼭 바뀌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뱀파리스에게 밀리면, 당신이 아이돌 활동을 하는 것도 아무 소용이 없어질 겁니다.”

그의 말에 에르제는 피식 웃었다.

“선배는 아이돌을 계속하려고 뱀파리스랑 싸우려는 거예요?”

“…….”

제이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고, 그 모습에 에르제는 다시 한번 실소를 했다.

에르제가 이들을 피가 옅어진 뱀파이어라고 분류하는 이유가 이런 것 때문이었다.

‘피가 옅을수록 자신의 가치에 광적으로 집착했었지.’

그가 원래 살던 세계에서도 일족에 포함되지 못한 뱀파이어들이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일족으로 받아들일 수준이 되지 않는 이들.

그들은 뱀파리스들처럼 인간을 가축 취급 하지는 않았으나 딱…… 그 정도뿐이었다.

인간들과 자신들은 신분이 다르다고 여겼고, 그들을 노예처럼 부리는 일에 아무 거부감도 없었으니까.

덕분에 씁쓸한 기억 하나가 문득 떠오른 에르제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오히려 이들과 뱀파리스들 간의 싸움에 무고한 인간들이 휘말릴 가능성만 높아. 두 세력 모두 그걸 방관할 테고.’

그렇기에 이들을 이끄는 이가 자신의 일족이기를 바랐고, 만약 아니라면 최대한 빨리 일족들을 다시 끌어모으는 수밖에 없었다.

더욱 강한 힘으로 분란을 잠재우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원래 있던 세계에서 하프나 쿼터 뱀파이어들이 멋대로 활개를 치지 못했던 것도, 에르제 자신이 이끄는 일족의 힘이 그들을 억누를 정도로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인간들에 대한 그의 생각은 미친 황제에게 짓밟히고 난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소수로 다수를 판단할 수는 없으니까.’

오히려 그들 일족을 숨겨 주고 도와주다가 미친 황제에게 목숨을 잃은 인간들의 수도 적지 않았고 말이다.

‘그것 때문에 원로들과 다투기도 했지만.’

뭐 어쩌겠나. 그것이 뱀파이어 에르제의 본질이었다.

우혈충으로부터 좋은 소식이 있기를 바라며, 에르제는 할 말을 다했다는 듯이 기지개를 켰다.

“으음……!”

힘을 과도하게 쓴 탓에 온몸이 찌뿌둥했다.

‘그래도 저번에 신이 한 번 도와주고 난 뒤로, 가용할 수 있는 힘의 범위가 늘어난 것 같기는 하네.’

당시 김지태를 압도적으로 찍어 누를 수 있었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는데, 그릇이 커진 만큼 가용가능한 힘의 범위도 같이 늘어난 형태였다.

‘나중에 어느 정도까지 힘을 쓸 수 있는 체크는 해 봐야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에르제가 꽤 오랫동안 기지개를 켠 손을 다시 내리자, 갑자기 옆에서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

“??”

제이와 에르제가 동시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어정쩡하게 서 있는 2명이 보였다.

“윤치우? 태현우?”

에르제가 그들의 이름을 부르자, 태현우가 눈을 부라리며 제이에게 말했다.

“우리 은우한테 대체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예?”

제이가 멍청한 얼굴로 되물었고,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에르제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려!

……지켜보고 있겠다더니 진짜였냐.

아무래도 창가에 앉았던 것 때문에 그들에게 이쪽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던 모양이다.

‘이러면 내가 장진규 머리를 붙잡고 있던 것도 봤을 텐데.’

근데, 그때는 왜 가만히 있었지?

왠지 모를 찝찝함을 느끼며, 에르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제이를 바라보았다.

“아무튼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을 거라고 믿어요. 아, 그리고 혹시나 그쪽 윗선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시고요.”

“…….”

제이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에르제는 멤버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좋은 윤치우와 태현우의 호위를 받으며 카페 밖으로 나갔다.

* * *

그렇게 에르제가 완전히 밖으로 나가고 난 뒤.

“……하.”

제이는 헛웃음을 흘리며 장진규의 등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기절했던 장진규가 제이가 내어준 힘을 받고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제이님.”

조금 전까지 팀장이라 불리던 장진규가 감사하다며 제이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조금 이질적이었다.

“쯧.”

“…….”

제이가 혀를 차자, 장진규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런 그의 등을 어루만지던 제이의 손이 어느 곳에서 멈췄다.

“우혈충까지 심어 뒀나.”

“예?”

장진규가 멍청하게 되물었으나, 제이는 에르제가 심어 둔 우혈충을 가사 상태에 빠뜨리며 손을 뗐다.

‘죽여 버리면 티가 날 테니.’

그냥 정보만 전달하지 못하게끔 막아 두기만 하면 된다.

제이가 손을 탁탁 털어 내자, 장진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 서은우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글쎄.”

제이는 피식 웃으며 허리를 젖혔다.

“녀석의 힘이 강하기는 한데, 그 힘을 과신해서 그런가, 한 가지 재미있는 정보를 흘렸거든.”

해야 할 일, 목표.

강력한 힘을 가진 뱀파이어가 굳이 토트윈에서 아이돌을 하고 있는 이유는…… 그가 말한 목표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그럼 녀석한테 토트윈을 빼앗으면 어떻게 될까?’

목표를 포기할까, 아니면 목표를 위해서 다른 동굴로 옮길까.

박쥐들은 늘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지금의 상황을 꼭 영입 실패로 볼 필요는 없었다.

‘아육시에서 보자.’

제이는 보기 흉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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