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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60화 (60/307)
  • 제60화

    60화

    놀랍게도, 에르제에게 거절당한 제이는 토트윈의 숙소로 직접 찾아왔다. 아무래도 카페로 불러내는 것은 포기한 모양이었다.

    “…….”

    “…….”

    잔뜩 경계하는 토트윈 멤버들의 시선과, 못마땅한 표정으로 서 있는 제이. 그리고 그 중심에는 홀로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 에르제가 있었다.

    호로록.

    에르제가 가볍게 한 모금을 마시고, 제이에게 물었다.

    “제가 만나지 않겠다고 말하지 않았나요?”

    “스폰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나요?”

    제이가 에르제의 말투를 따라 하며 대꾸했다. 평온한 에르제의 모습에 그의 이마에는 힘줄이 돋아나 있었다.

    “커피숍에서 보자고 했더니, 이미 혼자서 커피를 마시고 있네요?”

    “아, 커피가 아니고 우롱차예요. 얼굴 톤을 밝게 해 주는, 피부에 좋은 차랍니다.”

    “……차 이름이 묘하게 거슬리는데, 내 기분 탓일까요?”

    “?”

    에르제가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바라보자, 제이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양손을 들어 올렸다.

    “……!”

    제이의 움직임에 반응한 토트윈 멤버들이 전투태세를 취했다. 마치 에르제의 호위 무사를 자처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아니……. 내가 뭘 했다고?”

    제이는 들어 올린 손 하나로 이마를 누르며, 말문이 막히려는 것을 겨우 뚫어 냈다.

    “스폰……. 하, 절대 그런 거 아니고 그냥 은우 씨를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 겁니다.”

    “아하!”

    에르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대부분은 그렇게 말한다고 하더라고요. 무려 88%에 드는 발언이네요.”

    빠득.

    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제이는 꽁꽁 숨겨 두었던 것을 꺼낼 수밖에 없다는 듯 핸드폰을 꺼내어 자판을 두들겼다.

    [ 뱀파이어. ]

    놈이 에르제에게 보낸 문자 내용이었다.

    “!”

    에르제가 놀라서 고개를 들자, 승리의 웃음을 짓고 있는 제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이제야 따라올 마음이 듭니까?”

    “…….”

    이건…… 그래, 인정이다.

    세계관 콘셉트가 뱀파이어라서 제이가 이런 식으로 찔러 봤을 리는 없으니까.

    ‘궁금하게 만들겠다라…….’

    에르제의 머릿속에는 세리나와 다른 일족들의 얼굴이 빙글빙글 맴돌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LAK의 콘서트에서 미묘하게 느껴졌던 낯익은 기운도.

    “갔다 올게.”

    에르제의 발언에 네 사람의 얼굴이 이쪽으로 휙 꺾였다.

    “은우야!”

    윤치우가 가장 먼저 그의 이름을 불렀고, 안단테는 언제 옆에 왔는지 그의 소매를 살포시 붙잡았다.

    검지랑 엄지로 잡고 있었는데, 이게 진정 가지 말라는 의사표시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물끄러미 손가락을 바라보던 에르제가 괜찮다는 듯이 말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게 아닌 것 같아.”

    “……확실해?”

    민주혁이 다시 생각해 보라는 투로 말했지만, 에르제는 확신에 찬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라.”

    태현우가 그렇게 말을 하며, 에르제의 귓가에 손을 대고 속살거렸다.

    “뒤에 몰래 따라 나가서 근처에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양손을 번쩍 들어 올려. 그때…… 우리가 진입한다.”

    어째 멘트가 수상한 것이…… 어제 솜털을 빳빳이 세우고 무튜브 영상을 보고 있더라니, 아무래도 특수부대나 뭐 그런 비슷한 영상을 봤나 보다.

    그러나 이미 마음이 제이쪽으로 떠난 에르제였기에 굳이 토를 달지 않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제야 멤버들과 눈치를 주고받은 태현우가 에르제를 놓아주었고, 그는 제이와 함께 건물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제이가 조금 짜증스럽게 이야기했다.

    “멤버들이 은우 씨에 대한 관심이 많네요. 좀…… 지나칠 정도로?”

    “저희가 좀 끈끈이주걱 같기는 해요.”

    에르제는 아무렇게나 대답하고 제이의 뒤를 따라 걷다가, 문득 든 생각에 제이에게 물었다.

    “아, 혹시.”

    “?”

    “그것도 좀 곤란하긴 한데, 뱀파이어랑 저를 스폰…….”

    “아!! 아니라고!!”

    * * *

    다행스럽게도 제이가 고혈압으로 쓰러지기 전에 그들은 숙소 근처의 카페에 도착했다.

    아담한 카페였는데, 전반적으로 브라운 톤이라 절로 심신이 안정되는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었다.

    “여기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비밀 이야기를 하기 안성맞춤인 곳이죠.”

    그리고 그곳에 먼저 와 있던 존재 하나가 입을 열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제이의 노고를 치하했다.

    “고생했어요.”

    “아닙니다. 믿고 일을 맡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이는 그의 옆에 앉았고, 에르제는 그들과 마주 보는 형태로 의자에 앉았다.

    에르제는 자리에 앉으면서도 그의 정체를 탐색하기 위해 시선을 고정시켜 둔 채였다.

    “하하.”

    그는 선글라스를 벗으며 멋쩍게 웃었다.

    “그렇게 쳐다보면 좀 부담스러운데요.”

    “그러게요.”

    하지만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에르제의 시선은 그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하얀 피부, 나른한 표정과 느긋한 말투, 완벽하게 배열되어 있는 치아…….’

    송곳니까지 보인 것은 아니었으나, 에르제는 눈앞의 남자가 뱀파이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확률이 70퍼센트 이상이야.’

    그리고 남자는 그 사실을 숨길 생각도 없는 듯했다.

    “뱀파이어 동지를 이렇게 만나게 되어서 반가워요. 장진규라고 합니다.”

    “……뱀파이어 동지?”

    당당한 그의 태도에 오히려 에르제가 멈칫했다.

    악수를 하기 위해 내민 장진규의 손이 부끄러워졌다.

    그러나 별로 개의치 않는다는 듯, 장진규는 손을 다시 커피잔으로 가져가며 나른하게 웃었다.

    “하하, 네. 서은우 씨도 뱀파이어잖아요?”

    “……글쎄요.”

    같은 뱀파이어라고는 하지만, 그 속은 뱀파리스일지 아직 모르는 일이다.

    그리고 만약 뱀파리스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일족은 확실히 아닌 것으로 보아 이곳에 먼저 온 일족들에게서 퍼져 나간 뱀파이어일 터.

    ‘아직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 수 없어.’

    때문에 에르제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장진규는 생각보다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에르제의 반응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다들 그렇게 은우 씨처럼 경계를 하더라고요?”

    장진규는 씩 웃으며 품 안에서 명함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로 쭉 내밀었다.

    “저는 이런 뱀파이어입니다.”

    에르제가 명함을 받아 들자, 그곳에는 웬 뜬금없는 회사 이름이 보였다.

    [ 고라니 엔터테인먼트 ]

    ‘……처음 듣는 곳인데?’

    게다가 장진규의 옆에 앉아 있는 LAK의 제이와도 다른 소속사였다.

    에르제가 의아해하며 자세히 살피자, 그 밑에 ‘대표 장진규’라는 글씨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배우 전문 소규모 엔터입니다. 제가 거기 대표이자 소속 배우이기도 하고요.”

    장진규는 눈웃음을 지었다.

    “이래 보여도 꽤 유명한 배우랍니다.”

    “필모그래피를 언급하자면, 첫 데뷔는 ‘금단의 옷장’이라는 스릴러 영화였고, 이후에는 ‘태양의 자손’이라는 드라마와…….”

    “그만. 그렇게까지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장진규가 제이의 말을 끊으며 여전히 웃는 낯으로 에르제에게 말했다.

    “뭐, 어디까지나 그건 위장이긴 합니다.”

    “위장이요?”

    “네. 사실 저희들은 생각보다 여기저기 퍼져 있거든요. 그저 제가 연예계 쪽에서 한 축을 담당하고 있을 뿐이랍니다.”

    “…….”

    위장 신분, 뭐 그런 이야기인가?

    하지만 구태여 뱀파이어임을 숨기고 이렇게 활동하고 있을 이유가 있나?

    에르제가 여러 가지 궁금증을 떠올리고 있자, 장진규가 그의 속마음을 읽었다는 듯이 대답해 주었다.

    “저희는 뱀파이어 동지들을 영입하는 부서라고 생각하면 편할 겁니다. 아무래도 뱀파이어들은 용모가 수려하기 때문에 연예계 쪽에 발을 들이는 경우가 꽤 많거든요.”

    장진규가 제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이 녀석도 마찬가지입니다. 쿼터라서 피가 옅게 섞여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훌륭하게 아이돌로 성공하지 않았습니까? 물론 제게 발견되기 전까지는 본인이 뱀파이어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죠.”

    에르제는 ‘너도?’라는 눈빛으로 제이를 바라보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쿼터, 즉 1/4밖에 뱀파이어의 피가 섞이지 않은 이들이었으나 그들은 흡혈의 권능이 없어 영생을 누리지 못할 뿐 다른 뱀파이어의 능력을 웬만큼 행사할 수 있었다.

    ‘……그럼 LAK의 콘서트 때 느꼈던 그 느낌도 제이가 발산했던 건가?’

    그제야 그날 자신이 뱀파이어의 힘을 느끼고도 어째서 알아채지 못했는지 이해가 간다.

    ‘쿼터라 매혹의 힘이 약해서 그런 거였구나.’

    에르제는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를 툭툭 두들겼다.

    일정한 리듬으로 두들기던 에르제는 대충 상황을 정리하고 장진규에게 물었다.

    “뱀파이어를 찾기 위해서 연예계에 종사하고 있다는 것은 이해했지만, 하나 해소되지 않는 의문이 있네요. 어째서죠?”

    “어째서냐고 묻는 건 동지들을 모으는 이유에 대한 것이겠죠?”

    에르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진규가 깍지를 낀 손을 테이블 위에 얹었다.

    그러고는 그 위로 상체를 숙이고 속삭이듯이 이야기했다.

    “은우 씨는 모르겠지만, 뱀파이어에는 두 종류가 있답니다.”

    “……두 종류요?”

    “네. 뱀파리스라고 불리는 것들인데, 그들은…… 우리와 비슷하면서도 다르죠. 저희는 인간들과 공생하며 삶을 살아가지만, 그들은 인간들을 오로지 먹잇감으로 생각할 뿐이니까요.”

    “……!”

    이들도 뱀파리스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

    ‘……하긴, 안병인과 같은 기업인도 뱀파리스와 관련이 있는데 이들이라고 그들의 존재를 모를 리 없겠지.’

    에르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계속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생각보다 놀라지는 않으시네요. 혹시 이미 알고 계셨나? 그렇다면 예상 밖인데요, 하하.”

    장진규는 멋쩍게 웃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튼…… 뱀파리스들은 사실 뱀파이어이기도 합니다. 저희들 중에서…… 그저 피를 좀 더 갈구하고 인간들에 대한 애정이 없는 녀석들이 뱀파리스의 사상에 쉽게 물들거든요.”

    “……그럼, 그쪽 진영으로 넘어가기 전에 뱀파이어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이해가 빠르시네요. 맞습니다.”

    장진규는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실은 같은 종족이면서 이렇게 갈라져서 서로를 적대하는 꼴이 우습기는 한데……. 그래도 지금의 상황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들 뱀파리스는 이상하리만치 인간들에 대한 증오심이 깊거든요. 우린 그걸 막으려고 하고 있고요.”

    “흐음.”

    이번엔 에르제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식량으로 여기기만 하는 거지 굳이 증오심을 품을 이유는 없을 텐데.’

    뱀파리스의 특성이 이곳에서는 변질되어 있었다.

    인간들도 가축들을 먹이로 볼 뿐, 증오하지는 않지 않은가.

    ‘물론, 어디까지나 이쪽의 말을 믿는다는 전제하에서지만.’

    하지만 만약 장진규가 뱀파리스였다면,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는 않았을 것 같기도 했다.

    굳이 장황하게 두 진영 간의 대립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고, 사실 김지태의 건으로 자신과 뱀파리스는 이미 척을 지고 있으니 말이다.

    ‘오히려 죽자고 달려들었을 확률이 더 높겠지.’

    지금처럼 카페로 부를 게 아니라 숙소를 기습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숙소에도 결계를 쳐 두기는 해야겠네.’

    어쭙잖은 녀석들을 상대하는 건 일도 아니지만, 괜히 멤버들이 휘말리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부평초처럼 떠도는 생각을 하고 있는 에르제에게 장진규가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고 물어왔다.

    “그래서 말인데, 은우 씨.”

    “?”

    “저희 진영에 합류할 생각은 없습니까?”

    “…….”

    말투는 정중한데, 표정은 왠지 살벌하다.

    만약 거절한다면, 뱀파리스 쪽으로 넘어갈 거라고 여기고 살인멸구를 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그리고 역시나,

    “거절하면…… 낮길 조심해야 할 겁니다.”

    제이가 굳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어허.”

    장진규가 제이에게 눈을 부라렸으나, 딱히 아니라고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 모습에 에르제가 그만 실소했다.

    ‘하.’

    한쪽은 인간을 죽이고, 한쪽은 동족 뱀파이어를 죽이려고 하는 꼴이 상당히 거슬린다. 이들이 인류를 지키기 위해 동지를 모으고 있다는 사실도…… 설득을 위한 거짓일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에르제는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그럼 물러설 이유가 없지.’

    그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새빨갛게 물들었다.

    “그쪽 머리가 누굽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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