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59화
민주혁의 멋진 중2병 멘트는 다음 날에도 계속되었다.
제작진 측에서도 민주혁이 어김없이 플래카드를 들고 오자, 카메라를 더 자주 비춰 주었다.
“어제 어그로는 끌었으니까 오늘은 조금 늦게 보여 주는 걸로 하자.”
그리고 윤치우의 의견에 따라 민주혁이 밀당을 했고, 덕분에 토트윈은 어제보다 2배의 분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시상식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은 한 사람만 빼고 모두 흥겨운 분위기였다.
“채팅도 우리 이야기가 제일 많아여!”
“그러게. 주혁이 인기 스탄데?”
“부럽다, 부러워~. 제2의 서은우라니 주혁이 출세한 거 아니야?”
멤버들의 영혼 없는 축하 속에서 민주혁은 그만 울상인 채로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인생무상…….”
민주혁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김이 서린 창문에 손가락으로 낙서를 하고 있을 때.
에르제는 매일 하나씩 오고 있는 세리나의 안부 문자를 확인하고 있었다.
‘오늘도 문제는 없어 보이네.’
웬만한 존재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의 강한 결계를 쳐 두었으니 세리나가 안전하다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화시켜도 될 듯했다.
‘앞으로 3일 정도만 더 지켜볼까.’
에르제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다시 넣고, 멤버들과 함께 숙소로 들어갔다.
앞으로 남은 일정은 처음 듣는 이름의 무슨무슨 차트 뮤직 어워드에 참석하는 것 말고는 없었다.
즉, 온전히 컴백에 집중해야 할 때라는 뜻이다.
‘민주혁도 오늘까지 잘 해냈으니 각성했겠지.’
어째서 멀쩡한 멤버들까지 중2병에 감염시켜야 하는 건지 모르겠으나, 팬들의 반응을 보면 대충 뭘 노리는지 예상은 갔다.
― 아닠ㅋㅋㅋㅋㅋ 뱀파 은우에 이어서 마왕 주혁이도 캐릭터와 일심동체 모드 하는 거? ㅋㅋㅋㅋ
― 솔직히 이런 건 토트윈 아니면 절대 못 한다. ㅋㅋㅋ 물론 선두 주자는 서은우. ㅋㅋㅋ
― 달빛좌에 이은 먹구름좌……. 토트윈은 하늘을 지배할 것이니!
┖ ㅁㅊ. ㅋㅋㅋㅋㅋㅋ
― 첫날도 웃겼는데, 두 번째 날은 진짜 배꼽 잡고 웃었다. ㅠㅠㅠ 혼절할 뻔.
― 근데 선생님들 마지막 문장 있잖아. ‘나는 다음에 다시 돌아온다.’ 이거 뭔가 떡밥 냄새 나지 않음? 나만 그렇게 생각하나?
┖ ?? 무슨 떡밥?
┖ 컴백 앨범 중2병 컨셉으로 나오는 거 아닐까?
┖ 끔찍한 소리 하지 마요……. 저렇게 장난치고 노는 거랑 앨범은 전혀 다른 이야기지.
┖ 왜? 나는 괜찮을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말이다.
‘팬들이 예측하게 만들고 기대감이나 관심을 증폭시키는 노림수인가.’
에르제는 비로소 회사에서 자신의 의견을 받아 준 이유를 깨달았다.
자신은 민주혁의 부끄러운 감정을 없애 주고자 한 것이었으나, 회사에서는 그것을 바이럴 마케팅으로 사용한 것이 틀림없었다.
‘하여간 장 대표도 은근히 능구렁이야.’
에르제는 뱀파이어 일족의 원로 한 명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일족들에 관한 안건들을 처리할 때 그에게 꽤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장 대표의 일 처리 방식이 그와 꽤 비슷했다.
‘이 정도로 머리가 잘 돌아가면, 토트윈 전에도 남자 아이돌들을 성공시키는 게 맞았을 텐데…….’
그래서인지 문득 지금까지 남자 아이돌 그룹이 다 망한 이유에 대한 생각까지 미쳤다.
지금까지의 장 대표를 보면, 그가 무언가를 잘못했을 것 같지는 않아서였다.
‘처음에도 잡지사랑 연결시켜서 데뷔 홍보도 잘했고, 팬사인회도 초동이 높게 잡히게끔 시기를 아주 잘 잡았지.’
그 이후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컴백 앨범 콘셉트도 아육시를 견제하기 위해 괜찮은 아이디어를 내놓았으니 말이다.
‘……이윤은 멤버들이 잘못했다고 했는데.’
도대체 어떤 잘못들을 저질렀기에 망하기까지 했을까?
‘나처럼 잘하지는 못해도 내 반만큼만 했어도 그렇게 되진 않았을 텐데.’
에르제는 혹시나 그들을 만나게 된다면 따끔하게 한 소리 해 주겠다고 생각하며, 차분히 자신이 씻을 차례를 기다렸다.
그렇게 한 10분 정도 지났을까.
안단테와 태현우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을 때,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
딱히 연락 올 곳이 없는데.
‘설마 세리나인가?’
혹시나 세리나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에르제는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어 내용을 확인했다.
그러나 문자를 보낸 것은 세리나가 아닌, 번호도 저장되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그 내용은 모르는 사람이 보냈을 것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 내가 우스워요? ]
“…….”
에르제는 심각한 표정으로 문자를 바라보았다.
‘잘못 보낸 건가?’
가끔 전화도 잘못 오는 게 있는데, 문자라고 그런 경우가 없을까.
에르제가 깔끔하게 무시하려던 차에 문자가 하나 더 날아왔다.
[ 선배를 이런 식으로 무시하는 건가요? ]
선배라는 단어에 절로 눈썹이 찡그려진다. 고개를 갸웃하던 에르제는 답장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 잘못 보내신 것 같아요. ]
답이 곧장 돌아왔다.
[ ……서은우 씨 핸드폰 아닌가요? ]
[ 아, 맞는데요! ]
이번에는 답장이 바로 오지 않았다. 그 대신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는 얼어 죽……. ]
상대는 화를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일부러 그러는 겁니까? 서은우 씨 때문에 제가 얼마나 당황했는지 알아요? 번호 달라고 했더니, 장태수 대표님 번호를 주면 어떻게 합니까? ]
“아.”
에르제는 그제야 통화 상대가 누구인지 깨달았다.
“제이?”
[ ……이제는 이름도 함부로 부르네요. ]
함부로 부른다는 말에 에르제는 목소리를 깔고 최대한 나긋나긋하고 정중하게 다시 이름을 불렀다.
“제에이이?”
[ ……욕을 예쁘게 꾸민다고 욕이 아닙니까……? ]
제이는 수화기 너머로 들릴 정도로 큰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 됐습니다. 아무튼, 제가 번호를 달라고 한 건 대외적인 부분도 있고 따로 할 말도 있고 해서 그랬습니다. ]
‘설마 스폰에 관한 이야기인가.’
그러나 스폰에 관한 이야기라면 장 대표나 이윤의 선에서 깔끔하게 정리되었어야 할 텐데.
[ 장 대표님이 전화를 받아서 놀랐는데, 그래도 서은우 씨 번호를 여쭈어보니 바로 알려 줘서 다행이네요. ]
하지만 저 말을 들어 보면, 장 대표가 허락을 해 주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제이 정도면 괜찮다는 뜻인가.’
에르제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물었다.
“그래서, 할 말이라는 건 뭐예요?”
[ 아, 내일 낮 2시 정도에 시간 됩니까? ]
“2시요?”
안무 연습은 오전에 있고, 오후에는 특별히 정해진 스케줄이 없었다.
스케줄 표에는 간단하게 ‘자기계발’이라고 적혀 있었고 말이다.
“자기계발을 해야 하는 시간이네요.”
[ 별거 없다는 얘기군요. 그럼 그때 숙소 근처로 갈 테니 카페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으면 하는데. ]
“음……. 매니저한테 물어봐야 해요.”
또 말없이 나간다면…….
“안 그러면 삐쳐서.”
[ ……삐쳐? 매니저님이? ]
“네. 습관성 삐침 증후군인 것 같아요.”
대충 인터넷에서 본 그럴듯한 병명을 주워 담자, 제이가 살짝 머뭇거리다가 이내 알겠다고 대답했다.
[ 그럼 내일 2시, 장소는 도착하기 전에 말해 줄게요. ]
“알았어요.”
에르제가 전화를 끊자, 옆에 앉아 있던 태현우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어왔다.
“뭐야, 누구야?”
“제이.”
“제이? LAK의 제이? 그 사람이 너한테 왜 전화를 해?”
“저번에 번호 물어봤었잖아. 시상식 복도에서.”
“아아, 맞네.”
당시의 상황은 꽤 충격적인 일이라 토트윈 멤버들이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멤버들의 번호는 물어보지 않고 에르제에게만 번호를 요구했던 것도 그렇고, 원체 제이가 후배와 교류가 많지 않은 점도 한몫했다.
“흐음, 수상한데.”
태현우가 손가락을 들어 자신의 턱을 톡톡 두들겼다.
평소 장난기 가득한 얼굴이 드물게 심각해진 모습이었다.
“너한테 막 이상한 거 요구하고 그러는 거 아니겠지? 아니면 협박을 하거나…….”
“아닐걸.”
에르제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 스폰 관련인 것 같은데, 장 대표님이 허락하신 거 같더라고.”
“……뭐?”
태현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그의 입은 크게 벌어지다 못해, 얼굴도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다.
“선생님……. 스, 스폰이요?”
“응. 왜?”
“너…… 스폰이 뭔지는 알고 있는 거지?”
에르제가 알고 있다고 대답하려 했으나, 태현우의 말이 더 빨랐다.
그리고 이윤과 서로 오해를 했던 스폰의 정의가 아닌, 연예계에 암약하는 진짜 스폰에 관한 내용을 듣게 되었다.
“…….”
에르제는 정신이 멍해진 상태로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런 뜻이었어?’
그제야 이윤이 기를 쓰고 자신을 닦달했던 이유를 깨달았다.
‘허어.’
참……. 거참.
‘장 대표…….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어떻게 뱀파이어를 인간과 엮을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것도 소속 아이돌을?!
에르제가 허탈함에 중얼거리고 있자, 태현우가 다른 멤버들한테 언제 말했는지 다른 녀석들까지 와서 그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그러면서 한 마디씩 하는 걸 잊지 않는다.
“은우 형, 이건 아닌 것 같아여.”
“그래. 우리 그룹의 성공을 위해서 네가 희생하겠다는 의지는 알겠는데……. 그래도 아닌 건 아닌 거야. 발 빼.”
“…….”
“뭐야, 민주혁 말도 없이 이 시간에 어디 나가?!”
“춤 연습하러.”
태현우가 결연한 표정으로 나가려는 민주혁을 끌고 다시 돌아왔다.
거실로 다시 질질 끌려 돌아온 민주혁은 에르제의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고작 그런 오글거리는 거 못 하겠다고 추태를 보여서. 나는…… 네가 토트윈에 얼마나 진심인지도 모르고 여태…….”
그러면서 입술을 꽉 깨문다. 덩달아서 다른 멤버들도 숙연해지는 분위기.
“……?”
아마 에르제가 심각한 표정으로 있던 것이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고민과 선택의 기로에 처한 사람처럼 보였나 보다.
‘그런 거 아니야.’
하지만 그렇게 말할 틈도 없었다.
안단테가 곧장 에르제의 품으로 뛰어들어 눈물을 왈칵 쏟았기 때문이다. 아직 어려서 감수성이 제일 풍부하기 때문인가.
“흐어엉!! 더 열심히 할…… 끄윽 게여……! 노래도…… 춤도……!!”
저도 모르게 에르제가 안단테를 토닥거리고 있자, 민주혁은 이를 바라보다가 씁쓸한 표정으로 방으로 들어가 버렸고, 태현우는 무릎을 모아 얼굴을 올려 둔 채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지어 윤치우도 얼굴을 옆으로 돌린 채 가만히 팔짱을 끼고 있는 상태.
‘……너는 내가 뱀파이어인 거 알고 있지 않니?’
그런데 왜 너까지 그러고 있냐.
아무래도 윤치우마저 자신이 스폰이란 단어를 잘못 알아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결국 에르제는 이들을 달래고, 그런 게 아니라고 어필하기 위해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어차피 뱀파이어와 인간은 그래서 안 되기도 하고.’
그것은 금기의 영역이니까.
에르제는 고개를 가로젓곤 제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스폰, 정중하지 않게 거절할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