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8화
58화
토트윈이 참석해야 하는 연말 시상식은 꽤 많았다.
3사 지상파 방송국을 포함해서 ‘뮤직 큐’ 음악 방송을 주관하고 있는 ‘쟌넷’, 골든테이프 등등.
오늘 토트윈은 골든테이프 시상식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었다.
“너희들, 선배 아이돌들 시상식 때 봤지? 신인 때 뭐 하디? 그냥 리액션 봇 하면 되는 거야. 박수 열심히 치고, 카메라 나오면 귀염 뽀짝 큐티 섹시 멋짐이 폭발하는 표정도 지어 주고, 알지?!”
그래서인지, 오늘 오랜만에 이윤의 무한 잔소리가 시상식으로 가는 길 내내 이어졌다.
이미 3사에서 하는 시상식은 무사히 끝냈고, 이제는 2022년으로 넘어와서 1월 초에 있는 ‘골든테이프’ 시상식으로 가는 길임에도 말이다.
그 사실을 떠올린 윤치우가 운전대를 힘을 주어 잡고 있는 이윤에게 말했다.
“형,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번에 보니 저희, 카메라에도 많이 잡혔던데요?”
“어휴.”
이윤은 어림도 없다는 눈빛으로 맨 뒷좌석에 앉아 있는 민주혁을 백미러를 통해 흘끗 바라보았다.
“주혁이 표정 좀 봐라. 내가 걱정을 안 하게 생겼나. 쟤, 지금 시상식 도중에 토하러 갈 것 같잖아.”
“…….”
윤치우가 그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민주혁이 오늘 맡은 임무가 꽤나 중대했기 때문이다.
“욱.”
벌써부터 속이 안 좋은지, 차로 이동하는 내내 창백한 낯빛으로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이겨 내.”
에르제는 그런 민주혁을 드물게 격려해 주었다.
“넌 할 수 있어.”
“우욱.”
그의 말에 민주혁이 손으로 입을 막고 다시 한번 헛구역질을 했다.
“막상 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입을 막지 않은 반대편 손엔 팬들이 들 법한 커다란 플래카드가 들려 있었다.
“그……럼 네가 하든가.”
민주혁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에르제를 노려보았으나, 그는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이윤한테 나도 하면 안 되냐고 물어봤는데…….”
“안 돼!! 너는 지금도 너무 과해!”
이윤이 에르제의 말을 바로 끊으며 소리쳤다.
“그렇대.”
에르제가 피식 웃으며 민주혁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냥 자신 있게 카메라를 바라보면서 그거 펼쳐서 보여 주고, 입 모양으로 따라 읽어 주면 끝. 아주 간단하잖아.”
“……제2의 서은우, 이런 소리를 들을까 봐 너무 무섭다.”
“좋은 거 아니야?”
에르제는 고개를 갸웃했고, 민주혁은 의자에 기대어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렇게 해야 더부룩한 속이 조금은 진정될 것 같아서였다.
“……시상식 가기 진짜 싫다.”
하지만 그런 민주혁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이윤의 운전 실력은 아주 훌륭했고, 예상 도착 시간보다 10분 먼저 도착할 수 있었다.
* * *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여!”
“잘 부탁드립니다!!”
토트윈은 대기실 복도를 지나며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가끔 에르제의 품격 넘치는 인사에 거북목을 만드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오오, 후배님들! 반가워요!!”
“노래 잘 듣고 있어요.”
“앨범 판매량 그래프 보니까 장난 아니던데요? 파이팅 해요!”
토트윈에게 불편함이나 적대감을 드러내는 일 없이, 오히려 응원을 해 주었다.
덕분에 훈훈해진 분위기 속에서 조금 껄끄러운 그룹 하나와 마주쳤다.
“아!”
윤치우는 LAK 멤버들을 보자마자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가, 이내 표정을 급히 수습하고는 90도 각도로 인사했다.
뒤의 멤버들도 마찬가지로 LAK에게 인사를 했는데, 토트윈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여타 선배들과 다름없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아니, 오히려 과한 친절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아이쿠, 누가 보면 오해하겠어요. 그냥 악수만 해도 돼요, 악수만.”
“반가워요. 치우 씨, 주혁 씨, 단테 씨, 현우 씨 그리고…… 은우 씨도!”
그들의 표정에는 어색함이 엿보였지만, 토트윈 멤버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 주었을 정도로 호감을 보였던 것이다.
‘……?’
멤버들은 그저 순수하게 얘네들이 왜 이런가 싶어 당황했으나, 에르제는 무언가 위화감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에게 이런 모습을 보여 주어야만 한다는, 어떤 강박감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건 자신에게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고 있는 이채선만 보아도 쉽게 눈치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역시.’
그리고 에르제의 예상이 맞았다는 것이 곧 증명되었다.
“오늘 시상식이라고 좋은 숍에 갔다 왔나 봐요. 의상도 그렇고, 엄청 힘줬는데?”
맨 뒤에 서 있었던 LAK의 리더 ‘제이’가 말하자, LAK 멤버들이 양옆으로 갈라져 자리를 비켜 준 것이다.
제이는 팀의 리더가 아니라 마치 왕 행세를 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제이는 윤치우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이번 시상식 후보에 토트윈은 없던데? 설마 방송국이 어디서 압력 받고 눈치 보며 토트윈 빼 버리고 그런 건 아니죠?”
“아, 아아, 아닙니다. 그런 건 아니고, 저희가 올해 상반기에 같이 묶여서요……!”
“아하.”
다 알고 있을 텐데 제이는 마치 처음 들었다는 듯이 굴면서 얼굴을 살짝 아래로 내려 토트윈에게만 들리게끔 이야기했다.
“혹시나 그런 일이 있으면 말해요. 좋아하고 응원하고 있는 후배님들인데, 곤란한 일이 있을 때 선배가 도와주면 좋잖아요?”
“아…… 네. 감사합니다.”
윤치우가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뭐, 감사할 것까지야.”
민망하다는 듯이 손을 내저은 제이는 굳이 토트윈 사이로 복도를 빠져나가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오늘은 내년 골든테이프 시상식을 미리 경험한다고 생각해요. 아! 그렇다고 너무 마음 놓고 있지는 말고. 카메라에 잡히면 방긋 웃어 주거나 재미있는 표정을 지어 주면 팬들이 아주 좋아할 거예요.”
“네, 조언 잘 새겨듣겠습니다. 선배님.”
“그래요~.”
제이는 온화한 얼굴로 대답하고는, 이내 다른 멤버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 가며 덕담 및 조언을 했다.
토트윈은 한참 후배였기에 불편한 내색도 하지 못하고 그저 대답 봇이 되어 열심히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뭘 노리는 게 있나?’
에르제는 그런 제이의 모습을 보며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왠지 모를 찝찝함이 있었으나, LAK가 토트윈과 적대해서 얻을 이득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이번 시상식에 LAK와 경쟁을 하는 구도도 아니고, 우리한테 못되게 굴어서 좋을 게 없다는 걸 알았을 테니.’
아니면 혹시 그것 때문에 일부러 토트윈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걸까?
최대한 객관적으로 바라본 작금의 상황은, 그것 말고는 LAK에게 이득이 될 부분이 없었다.
그렇게 에르제가 생각에 빠진 채, 이채선의 친한 척을 두 귀로 흘리고 있을 때.
“은우 후배님.”
제이가 이채선을 밀어내고 에르제의 앞을 차지했다.
“?”
에르제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자, 제이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어 내밀었다.
“번호 좀 줄래요?”
“??”
에르제는 대체 뭔 소리인가 싶어서 그를 빤히 바라보자, 제이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선배가 후배 번호 물어보는 거……. 혹시 불편한가요? 이상한 일인가?”
“아, 핸드폰 번호요. 아뇨, 괜찮아요.”
에르제가 그제야 말뜻을 알아듣고 제이의 핸드폰을 받아 드는 순간이었다.
‘잠깐.’
그때 이윤이 귀에 못이 박이도록 했던 잔소리가 떠올랐다.
팬사인회에서 세리나를 처음 만나고, 이윤이 그것에 대해 오해를 했을 때…….
그날 이후, 이윤이 따로 말해 줬던 부분이었다.
‘누구든 내 개인 번호를 물어보는 건 그쪽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했지.’
이윤은 바로 거절을 하거나, 만약 거절하기 어렵다면 이 연락처를 주면 된다고 말했었다.
그러면 알아서 해 줄 거라나.
에르제는 010까지 치고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여 장 대표의 번호를 적어서 제이에게 넘겼다.
“여기요.”
“오케이, 저장 완료.”
제이는 이제 되었다는 듯 핸드폰을 살랑살랑 흔들었고, 에르제는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나머지는 회사에서 알아서 해 주겠지.’
“다음에 또 봐요, 후배님들.”
제이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 * *
골든테이프 시상식은 1월 6일과 7일, 총 이틀에 걸쳐서 진행되었다.
토트윈은 이틀 다 시상식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아쉽게도 그들에게 중간 공연 같은 것은 맡기지 않았다.
토트윈이 데뷔했을 때부터 열렬한 팬이었던 대학생은 그 점이 못내 아쉬웠다.
“차트 2위까지 올라가고 음방에서 1위도 했는데, 이게 말이 되냐고.”
그녀는 소파에 널브러진 채 TV에 토트윈의 모습이 잡히기만을 기다리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내내 브래드보드만 만지다가 오랜만에 토트윈이 나온다고 하기에 기대감은 충만한 상태.
‘제발! 제작진이 생각이 있으면 우리 애들 몇 번은 잡아 주겠지.’
그리고 역시나 시상식이 시작되고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았음에도 토트윈의 모습이 화면에 나왔다.
대학생은 유튜브 동시 송출을 하고 있던 핸드폰으로 재빠르게 스크린 샷을 찍었다.
‘됐다. 우리 은우 사진 건졌어.’
보정 없이도 꽤 괜찮은 사진들이었다.
‘착장이……!!’
서은우는 브이넥에 초커를 착용하고 있었는데, 대학생은 보자마자 입을 틀어막았다.
“미쳤다…….”
유튜브 실시간 채팅에서도 그녀와 같은 생각인지 이브가 아닌 이들도 이와 관련된 글들을 많이 올린 게 보였다.
― 서은우, 초커 엄청 잘 어울리네. 남돌 초커 거부감 있는 편인데 저렇게 잘 어울리면……. 응. 인정;
― 역시 초커 하려면 목이 길고 얇아야 해……. 우리 채선이는 오히려 흑역사. ㅠ
― 근데 토트윈 인물 장난 아니긴 하네요. 다들 귀엽고 잘생겼네.
┖ 다람쥐 안단테(단람쥐), 강아지 태현우(태댕댕), 여우 민주혁(민녀우), 너구리 윤치우(윤구리), 박쥐 서은우(서뱃), 이게 진리입니다.
┖ 뭔 소리임; 애들 판타지 세계관에 있는 게 제일 찰떡인데. 반박 시 님 말이 틀렸음.
“아이고.”
대학생은 동물이니 판타지 캐릭터니 하는 것으로 싸우는 팬들을 보며 혀를 찼다.
그들이 말하는 동물과 멤버들이 닮은 것도 사실이고, 판타지 캐릭터가 찰떡인 것도 사실인데.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데, 어째서 이런 걸로 싸우는 건지!
‘하지만, 뱀파 은우는 진리다. 반박 안 받는다. 무조건 흑발이다.’
그녀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을 되뇌며, 토트윈이 또 등장하기를 기다렸다.
분명 카메라에 잡히지 않아도 신인 아이돌인 만큼 열심히 리액션을 하고 있을 텐데.
그게 TV에 많이 나오지 않는 듯해서, 대학생은 그들을 대신해 속상한 마음이었다.
‘컴백 떡밥도 없어서 슬픈데, 얼굴 보는 것도 이렇게 힘들면 어떻게 해.’
그나마 토트윈이 멤버별로 5개나 되는 자체 콘텐츠를 소화해 줘서 다행이었지, 그게 아니었으면 벌써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할 판이었다.
그렇게 애꿎은 핸드폰 자판만 두들기고 있을 때,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토트윈 풀샷이 잡혔다.
다른 그룹도 없이, 순수하게 토트윈만 잡은 카메라 워킹이었다.
‘드론인가?’
순간 멍 때리며 토트윈 멤버들을 보고 있던 그녀가 재빨리 스크린 샷 버튼을 난타하고 있을 때.
일기토를 앞에 둔 장군과 같은 비장한 얼굴의 민주혁이 손에 들고 있던 정체불명의 플래카드를 들어 올렸다.
“응?”
대학생과 마찬가지로 카메라도 민주혁의 플래카드에 집중해 확대해서 보여 주었고, 민주혁은 플래카드에 쓰여 있는 글자를 입 모양으로 따라 읽기 시작했다.
[ 나는 이세계의 마왕, 검은 불꽃을 두른 자, 먹구름이 낀 날 강림할 지옥의 구원자. 내일 다시 돌아오겠다. ]
“큽.”
대학생은 윗입술이 당겨짐을 느끼며, 그대로 머리를 소파에 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