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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51화 (51/307)

제51화

51화

[ 서은우의 요리조리 라이브 / Live On / 실시간 / 지구에 없는 요리 ]

띠링―.

방송 알림 소리가 들리고, 핸드폰을 통해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다행히 장 대표도 휴가 기간을 반납하고 라이브 방송으로 팬들과 소통하겠다는데 굳이 말릴 이유가 없다며 허락해 준 상태.

덕분에 에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에 들어오는 팬들을 바라보았다.

― ?

― 우와, 오빠 요리도 할 줄 알아요?

― 오늘 마트에 서은우 떴다고 해서 뭔 일인가 했는데, 요리 콘텐츠 하려고 장 보고 온 거구나??

┖ 사진이라도 같이 찍으려고 바로 달려갔는데, 이미 가고 없었다는 ㅠㅠ

― 뮤하~~!!

― 와, 조명이 따로 필요가 없네.

방송을 켠 지 30초가량 된 것 같은데, 벌써부터 실시간 채팅이 어질어질할 정도로 마구 쏟아진다.

하지만 몇 번 켜 봤다고, 전처럼 채팅이 아예 안 보이는 수준은 아니었다.

“전직 궁중 요리 주방장 출신입니다. 오늘 여러분께 본 적 없는 새로운 요리를 보여 드릴 생각이에요.”

“네. 변장을 완벽하게 했는데, 많이 알아들 보시더라고요.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뮤하!”

“미의 기준을 조금 더 높여 주세요. 이 정도는 잘생긴 얼굴이 아닙니다.”

마지막 대답에 ‘기만’이니 뭐니 하는 채팅이 장난스럽게 올라왔다가 사라졌다.

― ……사고 치지 마라.

“매니저 형이 사고 치지 말라고 하네요.”

에르제가 어깨를 으쓱하며 ‘Leeyoon’ 닉네임의 채팅을 읽어 주자, 팬들이 ‘ㅋㅋㅋㅋㅋㅋ’로 도배했다.

“사고 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저희 매니저 형이 좀 극성이에요. 약간…… 걱정을 사서 하는 타입?”

― ㅋㅋㅋㅋㅋㅋ 은우, 양심 있지?

― 달빛좌 그는 대체.

“아, 참고로 다른 멤버들은 휴가 받아서 숙소에 없어요.”

그렇게 팬들과 가벼운 소통을 이어 간 에르제는 이내 식탁 위에 얹어 두었던 앞치마를 둘렀다.

― 허억, 나 죽어.

― 아니……. 남자들만 있는 숙소에 분홍색 앞치마가 웬 말이야……!? 그 와중에 햄스터 캐릭터 그려져 있는 건 뭔데? ㅋㅋㅋ

― 은우 오빠, 나중에 이거 단테한테 입혀서 라이브 켜 줘요. 제바류. ㅠㅠㅠ

앞치마의 파급력이 꽤나 셌다.

안단테에게 꼭 입혀 주겠다고 약속한 에르제는 도마 위를 세팅하고 칼을 집어 들었다.

휘리릭, 휘리릭―.

에르제의 손에서 칼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손바닥 위에서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손등으로 올라탔다가 손가락 사이로 뚝 떨어지기도 했다.

위험하다는 말이 쏟아지던 채팅창이 어느덧 “와!”라는 말로 도배될 정도로 화려한 퍼포먼스.

그러나 에르제는 그러거나 말거나 태연한 얼굴로 재료 하나를 꺼내 들었다.

“첫 번째 요리는 ‘티즐 고크드르늘(tjswl gowkdrnr)’입니다.”

선홍빛의 선지인데, 에르제가 칼질을 몇 번 하자 잘게 썰려서 도마 한구석에 자리했다.

‘칼질이 제법인데?’ 같은 채팅이 종종 보이기 시작했다.

“자, 이제 이 친구를 끓는 물에 삶아 주도록 합시다.”

에르제는 그 말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요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선지는 끓는 물에 삶은 후 다른 재료를 꺼내어 손질을 했다.

콩나물, 무, 대파 등을 손질할 때까지만 해도 팬들은 에르제에게 궁금한 것을 묻기도 하고,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칭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에르제가 이어서 꺼내 오는 재료를 보고는 채팅창에 갈고리를 걸리기 시작했다.

― ? 은우야, 잠깐만!

― 그게 왜 선지 해장국에 들어가?

― 선지 해장국에 브로콜리는 좀……?

하지만 에르제는 딱 한마디를 내뱉어 줄 뿐이었다.

“지구에 없는 요리라서 이브 여러분들은 처음 보는 것일 수도 있어요.”

채소 계열로 간택된 브로콜리, 새순, 고수, 거기에 더해 오렌지와 치즈가 도마 위에 올려지자 팬들은 그만 눈을 감아 버렸다.

― 아냐……. 이건 아니야.

하지만 무튜브에서 괴식 콘텐츠가 괜히 조회수가 높은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

팬들은 “으악! 으악!” 하면서도 라이브 방송을 나가지 않았고, 오히려 입소문을 타고 실시간 시청자 수는 자꾸 늘어만 갔다.

에르제는 흐뭇하게 이를 지켜보다가 뻐근한 듯 어깨를 돌렸다.

“이제 이것을 한 냄비에 넣고 마지막으로 끓여 줍니다.”

에르제의 사형 선고가 떨어지고, 이브의 예상대로 선지 해장국은 기괴한 몰골로 재탄생했다.

색은 무슨 색이라고 딱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애매했고, 국 가운데에 위치한 껍질이 까진 오렌지는 그야말로 뜬금없는 모양새.

― 그는 괴식 요리사.

― 지구에 없는 요리를 만든다더니 우주 괴식을 만들어 버렸다.

― 본격 괴식 아이돌…….

― ㅋㅋㅋㅋㅋㅋ 우리 은우 다 잘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의 요리는 구멍이었네. ㅋㅋㅋㅋ

‘괴식?’

에르제는 완성된 요리를 팬들에게 보여 주며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 괴식에 대해서는 학습이 되지 않아서 팬들이 말하는 괴식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느낌상 부정적인 의미인 듯해서 에르제는 괴식이 아닌 요리의 정식 명칭을 다시 한번 힘주어 말했다.

“티즐 고크드르늘을 시식해 보겠습니다.”

― 잠깐만, 그걸 먹게??

― 아냐, 우리가 미안해. 먹지 말고 버려, 제발!

― 오빠!! 먹기 전에 119부터 불러요!!

― OMG, WTH…….

하지만 에르제는 빙긋 웃으며 한 숟갈을 떠서 자기 입에 넣었다.

‘다들 왜 이렇게 호들갑이지.’

자신이 살던 세계에서 티즐 고크드르늘은 굉장히 고급 요리에 속했다.

요리에 필요한 재료들은 일반인들이 구하기 어려운 것들뿐이었고, 요리하는 방식도 굉장히 까다로웠으니까.

‘이곳에서는 최대한 비슷한 재료들을 찾아서 요리를 했으니까 실패할 확률은…….’

에르제가 조심스럽게 혀를 움직이는 순간.

“욱!”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비주얼은 완벽했는데……?’

하지만 맛은 먹으면 정신이 나갈 것 같은 맛이었다.

“우우욱.”

에르제는 황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덕분에 놓친 숟가락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쨍그랑 소리를 냈다.

그렇지 않아도 창백한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왜……. 우욱, 왜……!”

도대체 맛이 왜 이래!!

몸속에 있는 장기가 마구 비명을 질러 대기 시작했다.

‘주인 X끼야, 몸 막 쓰지 마!!’

순간 그런 환청이 들릴 정도였다.

황망한 눈으로 채팅창을 보니, 팬들의 채팅이 무서운 속도로 올라오고 있었다.

― 빨리 뱉어!!

― 몸 괜찮아요!? 지금 헛구역질한 거지? 그렇지?? 아니, 그러니까 그걸 왜 먹어!

― 미치겠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어우; 타 돌은 뭐 하나 싶어서 들어와 봤는데, 이렇게 관종 짓을 해야 살아남는구나.

― 윗분 타 팬이면 나가서 그쪽 돌이나 보세요. 왜 여기 와서 야랄이지.

┖ 그냥 안쓰러워서. ^^

┖ 응. 우리 애들 음방 1위~!

걱정을 하거나 웃거나 시비를 거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2,500년을 넘게 살아온, 위기에 강한 뱀파이어.

에르제는 표정을 급히 바꾸고 굽혔던 허리를 폈다.

“하하, 너무 맛있어요. 역시, 제 입맛에는 이게 딱 맞는 것 같아요.”

웃고 있는 입에서 경련이 일어난 것 같은데, 그건 기분 탓일 거다.

에르제는 오른팔을 들어 자연스럽게 냄비를 옆으로 슬쩍 밀었다.

― 너, 맛없지?

― 맛있다면서 더 안 먹고 옆으로 미는 거 봐. ㅋㅋㅋㅋ 다 티 나요!

팬들은 매의 눈으로 에르제의 행동을 잡아냈지만, 에르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자, 지금까지 티즐 고크드르늘이었습니다.”

그러고는 두려운 눈빛으로 남은 재료를 바라보다가, 그것도 슬쩍 옆으로 치웠다.

카메라 바깥으로 재료가 나가 버리자, 팬들이 ‘ㅋㅋㅋ’을 채팅창에 도배했다.

“오늘 요리는 여기까지! 다음에 또 라이브로 찾아오겠습니다!!”

― 첫 번째 음식이라면서! 왜 다른 요리는 안 해!?

― 아쉽다. 괴식 요리 먹방은 끝인가요?

― So cute :)

―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자, 은우야!! 다른 건 아무것도 안 바란다!!

― 세계 평화를 위해서 요리는 하지 말자, 은우 오빠.

― 사랑해요!!

에르제는 카메라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렌즈 가까이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는데도 잡티 하나 없는 깨끗한 피부가 그대로 송출되었다.

에르제는 조금 전의 추태를 만회하기 위해, 카메라에 가까이 붙어서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잘 자요.”

그렇게 라이브를 종료한 에르제는 멍한 얼굴로 식탁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구에 있는 재료는 대체재가 되지 못하는 건가.

가만히 멍 때리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태현우에게서 온 톡이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진) ]

사진은 오렌지색으로 변해 버린 에르제의 티즐 고크드르늘이었다.

[ 뭐냐, 이거? ㅋㅋㅋㅋ 유황불에 삶아진 지옥의 선짓국? ]

“…….”

곧바로 놀려 먹으려 들다니.

에르제는 티즐 고크드르늘을 냉장고에 넣어 두고는, 태현우가 돌아오면 저것을 강제로 먹여야겠다고 다짐했다.

‘일단…… 먹지는 말고 SNS에 사진이나 찍어서 올리자.’

어차피 비주얼만 본다면, 일족들은 알아볼 만한 수준이니 말이다. 사실 그래서 자신도 방심하기는 했지만.

“큼큼.”

에르제는 남은 재료로 열심히 3가지의 요리를 만들어서 개인 SNS에 업로드를 완료했다.

‘이렇게 해 두면 알아보겠지.’

오늘 라이브 영상도 당분간 무튜브에 떠돌아다닐 테고, SNS의 사진도 여기저기 퍼져 나갈 터였다.

그러나 에르제는 이때까지만 해도 이 요리를 알아볼 수 있는 다른 이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 * *

휴가는 짧았던 만큼 금방 끝이 났다.

그동안 에르제는 요리 사진을 업로드 하면서 라하임의 소재를 찾기 위해 따로 움직여도 보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결국 모든 멤버들이 숙소로 복귀한 날.

에르제는 일단 윤소희 실장에게서 얻어 낸 정보에서 만족하기로 결정했다.

‘그래도 내가 이곳에 오게 된 이유나 의식에 대해서는 알아냈으니까.’

지금은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거기에다 세리나가 일족 하나를 더 찾아낸 것 같으니.’

당분간은 세리나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이 현명할 듯싶었다.

물론 윤소희가 마녀인지 아닌지, 그리고 또 다른 일에 얽혀 있는 것은 없는지 알아내진 못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내용이 그렇게까지 의미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저 윤소희가 마녀라는 사실이 확정되면, 예전처럼 협력 관계만 구축을 해 두려고 했을 뿐이니.

‘그쪽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그 전에 세리나를 찾았으니 대충 효율적인 면에서는 비슷하리라는 생각이었다.

“괴식돌! 오랜만!”

마침 휴가를 끝내고 돌아온 태현우가 에르제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잘 지내고 있었……. 읍.”

이어 안부를 묻던 태현우의 입에 티즐 고크드르늘이 얹힌 에르제의 숟가락이 가차 없이 꽂혔다.

“크으읍……!!”

순식간에 태현우의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그러고는 몇 초 지나지 않아 그는 곧장 화장실로 뛰어갔다.

“웨에에엑……!!”

덕분에.

태현우는 CF 촬영 전에 2㎏을 성공적으로 감량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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