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5화
45화
“미치겠네.”
멍하니 노래를 끝까지 듣고 난 뒤, 최광수는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의 눈은 방금 에르제가 부른 노래의 가사지를 노려보면서도 극도의 혼란에 빠져 있었다.
“왜……. 어째서.”
최광수는 머리를 감싸 쥐고 있던 손으로 자신의 머리카락을 잔뜩 헝클어뜨렸다.
“왜 좋지?!”
최광수의 목소리는 혼란에 가득 차 있었다.
“막, 어? 막 유혹되고, 왜 그런 감정이 드느냐고!”
산발이 된 머리로 최광수가 다른 멤버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제발 내가 이상한 거라고 해 줘라, 얘들아.”
“……솔직히 저도 좋았어여.”
“저도.”
“목덜미 내어줄 뻔했는데요.”
하지만 여론은 최광수의 감정과 동일했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이미 최광수와 똑같은 일을 숙소에서 겪었다.
에르제의 가사를 보고 기겁한 멤버들이 이렇게 쓰면 안 된다고 말렸으나 그때도 에르제가 직접 노래를 불러 주었고, 그대로 설득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 캐릭터 콘셉트도 잘 살린 가사이고, 괜찮지 않을까요? 어차피 수익용도 아니고, 무료로 사클에 푸는 거니까.”
윤치우가 조심스럽게 운을 떼었다.
결국 에르제의 노래에 설득되어 버린 최광수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일단 녹음부터 한번 해 보자.”
그의 말에 멤버들은 하나씩 녹음실로 들어가서 각자가 쓴 가사를 토대로 녹음을 진행했다.
에르제의 가사가 워낙 강렬했을 뿐이지, 다른 멤버들의 가사도 일반적인 노래의 가사는 아니었다.
다들 각자의 콘셉트를 잘 살리기도 했고, 실제로 판타지스러운 느낌이 물씬 났으니 말이다.
물론, 이에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에르제였다.
‘다들 몰입을 아주 잘했군.’
에르제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체 콘텐츠로 팬송을 기획할 때부터, 에르제는 미리 한 가지 준비를 해 두었다.
바로 짤막한 종족들에 대한 지식이었다.
이걸 어떻게 알고 있냐는 질문에 책에서 본 것들을 취합했다고 둘러댔기 때문에.
― 너 완전 진심이구나?
멤버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다만.
에르제를 포함한 모두의 녹음이 끝났을 때, 작은 문제가 발생했다.
최광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이거…… 너희들 그냥 다 따로 자기 파트만 부를 생각이야?”
“아?”
그의 말에 다들 그제야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캐릭터가 정해져 있다 보니, 다들 자신의 것만 생각했던 탓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광수가 이 팬송 콘셉트 자체는 마음에 들어 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가 더 적극적으로 나설 정도로.
“같이 상의를 한번 해 보자. 조금 더 너희들 사이에 유기성도 높이고, 같이 부를 파트도 만들면 좋을 것 같아.”
“네! 좋아여!”
“재미있겠다.”
최광수가 적극적으로 바뀌자, 멤버들도 그에 편승해 기세를 더욱 끌어올렸다.
“좋아. 모여!”
금세 팬송 제작이 가속화되었다.
* * *
세리나는 에르제의 명령을 받들어 악마와 계약한 자 그리고 마녀에 대해서 조사를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현재 그녀가 있는 곳은 악마와 관련이 있다는 한 단체였다.
악마 숭배 단체라고 하기에는 사이비 종교에 가까워 보였고, 신도 수가 그리 많지는 않은 듯했다.
‘경비를 보는 인간도 별로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천천히 벽을 따라서 이동했다.
“아…… 여…… 다……!!”
제단 안쪽에서 인간들이 주문 비슷한 것을 외우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세리나는 최대한 숨을 죽인 채, 제단이 보이는 곳까지 이동했다.
“!”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미친 인간들!’
그들은 모두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쿵!
쿵!
그들이 대리석에 이마를 찧을 때마다, 조금씩 붉은 피가 묻어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그들은 아픔을 느끼지도 못하는지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있었다.
“이 땅을 구원할 지배자이시여.”
“아아……!!”
그들은 광신도처럼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진짜 악마와 관련이 있는 걸까.’
세리나는 이 기괴한 광경에 눈을 떼지 않은 채 지켜보았다.
로드의 은총을 받아 다시 뱀파이어가 된 지금, 저들을 제압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지만.
그렇게 되면 중요한 단서를 얻지 못할 수도 있었기에 지켜보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15분가량 지켜보고 있자, 그들의 이마에서 흐른 피가 천천히 중앙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
세리나는 놀란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피가…….’
그러나 광신도들은 이미 익숙한 일인지 오히려 희열에 찬 얼굴로 양손을 하늘로 뻗었다.
“오오……!!”
“오신다……!! 그분이 오셨다!!”
피가 가운데로 모여드는 것이 그 지배자인지 절대자인지 하는 놈이 오는 신호인 듯했다.
좁은 문틈이었지만, 그래도 중앙 제단이 보이는 자리였기에 세리나는 다른 자리로 이동하지 않고 이를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진짜로 악마가…… 나오는 건 아니겠지?’
만약 거대한 힘을 지닌 악마가 나온다면, 그녀로서는 그 존재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전파도 터지지 않는 곳이라서 로드한테 바로 연락을 할 수도 없는데…….’
세리나가 고민하는 사이, 의식이 계속해서 진행이 되고 있는지 피가 모여드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기 시작했다.
강렬한 피 냄새에 세리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전에 에르제를 찾아갔을 때 말했던 것처럼 갈증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피를 보면 반사적으로 나오는 행동일 뿐.
츠츠츠츠츠―.
광신도들의 전율에 찬 소리와 함께, 피는 시냇물이 되었다가 이내 공기 중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마치 새빨간 구름처럼 보일 정도였다.
‘모습을 드러내라.’
이를 보던 세리나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의식은?”
“진행 중입니다.”
“오늘은 꼭 오신다고 했으니 만반의 준비를 갖춰라.”
“알겠습니다.”
복도 끝 코너 쪽에서 인기척과 함께 인간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
저 미치광이 행위에 참여하지 않은 인간들이 있었나?
대화의 내용으로 보면, 의식을 주관하는 고위 인물임이 틀림없었다.
‘숨을 곳이……!’
세리나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안전한 장소를 찾았지만, 그저 길게 뻗은 복도에 그런 곳이 있을 리가 없었다.
창문을 깨고 도망칠 수는 있었지만, 그 소리가 상당히 클 것이라는 것은 어린아이라도 알 수 있었다.
‘방법이 없어.’
어차피 저 인간들의 눈만 피하면 된다.
파드드득―!
세리나는 곧장 박쥐로 변해서 복도 천장에 매달렸다.
사이즈가 작은 편은 아니었으나, 인간들은 천장을 잘 올려다보지 않으니 괜찮을지 모른다.
‘창문을 깨고 나간다고 하더라도 이 상태로 나가는 게 더 낫겠지.’
누군가 이 의식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만 들키지 않으면 되니까.
“스으으읍, 하아. 언제 맡아도 참 달콤한 냄새야.”
세리나는 마치 뱀파이어와 같은 말을 하면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인간 둘을 바라보았다.
하나는 마치 사제처럼 흰색 로브를 입고 있는 자였고, 또 다른 하나는 평범한 옷을 입고 있었다.
‘흰색 로브 쪽이 고위 인물인가. 나이가 꽤 있어 보이는데.’
인간의 기준으로 40에서 50 정도는 되어 보이는 외모였다.
“안으로 들어가서 함께하지.”
흰색 로브를 입은 인간이 그렇게 말하며, 의식이 진행되는 곳의 문을 열려는 순간.
“잠깐만.”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남자와 세리나의 눈이 마주쳤다.
“박쥐?”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있던 세리나를 찬찬히 살폈다.
‘내 기척을 읽었다고?’
쿵쿵, 세리나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박쥐가 왜 여기에 있지?”
“글쎄요…….”
그의 말에 옆에 있던 남자가 쩔쩔맸다.
“아무래도 산속에 있다 보니…… 동굴에서 나온 거 아닐까요?”
“……건물이 꽤 깊은데, 용케도 이 안까지 들어왔군.”
그는 의심이 잔뜩 담긴 음성을 내뱉었다.
“그냥 쫓아내면 되지 않을까요?”
“글쎄, 왠지 찝찝한 기분이 든단 말이지.”
잠시 고민하던 그가 결론을 내렸다.
“괜히 그분에게 책잡힐 이유는 없지. 처리해 두는 것이 낫겠군. 박쥐……는 위험하니까.”
“부교주님이 직접 하시게요?”
“그럼 자네가 할 건가? 무슨 수로 저 위에 있는 놈을 잡으려고?”
“……아닙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세리나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인간 주제에 나를 죽이겠다고?’
평범한 박쥐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의 말마따나 천장에 있는 자신을 무슨 수로 죽이려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이유조차도 가당찮다. 찝찝해서라니?
그러나 남자가 곧이어 외우기 시작하는 말에 세리나의 얼굴이 굳었다.
“djenadldu, rnjsthrdprp…….”
‘말도 안 돼.’
부교주에게서 나오는 말은 그녀가 있던 세계의 언어였다.
‘게다가 이곳의 인간이…… 영창까지 한다고?’
몸 안의 마력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의 손에 모이기 시작한 것은 마력이 틀림없었다.
‘다음을 기약해야겠어.’
세리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고는, 천장을 붙잡고 있던 발가락에 힘을 풀었다.
뱀파이어 형태로 돌아간다면 상대하는 게 어렵지는 않으나, 여러모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일단 정체를 들키는 것은 물론이고, 저 광기의 의식 끝에 무엇이 튀어나올지도 모르니 말이다.
촤악―.
아래로 떨어지는 그녀의 위로, 부교주가 쏜 마법이 직격했다.
마법에 맞은 천장이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산성 마법……. 보통 이런 마법은…….’
“한낱 피조물 주제에 피했다고?”
세리나가 마법을 보며 생각하는 사이, 자존심이 상했는지 부교주가 다시 한번 영창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 악마와 관련이 있나.’
의식과 마족들이 사용하던 종류의 마법. 그래도 소득이 꽤 있었다.
‘다시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탈출해서 이 사실을 로드에게 전하는 것이 최우선. 게다가 그사이에 보험도 들어 두었으니, 당분간은 지켜보면 될 것이다.
세리나는 미련 없이 떨어지던 힘 그대로 가속해서 창문을 부수고 밖으로 나갔다.
밤하늘로 날아오르자, 창문가에 붙어 자신을 노려보는 부교주의 모습이 보였다.
‘……뭔가 눈치챈 건 아니겠지.’
괜히 박쥐 하나를 죽이기 위해 마법까지 사용하는 걸 보니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애써 아닐 거라고 생각하며 꽤 오랜 시간을 날아가자, 드디어 전파가 잡히는 곳까지 올 수 있었다.
‘됐다.’
숲속 적당한 곳에서 다시 뱀파이어 형태로 돌아온 세리나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잠입해 있었는지, 부재중 연락이 꽤 쌓여 있었다.
‘어디…….’
김미영 팀장에게서 온 문자가 2개, SNS의 DM이 40개, 그리고 토트윈 공식 계정 알림 1개가 와 있었다.
DM의 대부분은 그녀가 운영하고 있는 서은우 홈마 계정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녀는 ‘에르제’의 사진을 달라고 하는 사람들 것만 따로 분류해 둔 뒤, 공식 계정에 올라온 알림을 확인했다.
[ ToT-win ― Hallow’eve ]
“할로…… 이브?”
웬 노래 하나가 토트윈 공식 계정에 올라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