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화
44화
에르제가 맹활약하는 장면을 끝으로, 결국 1팀과 2팀 모두 흉가 탈출에 성공하면서 영상이 종료되었고.
팬들은 더 보고 싶은 마음에 아쉬움을 감추고 열심히 댓글을 달았다.
― 재밌었다, 얘들아! 또 해 줘!!
― 시간 순삭……. 영상 보면서 먹으려고 시켰던 순살 치킨도 순삭…….
― 두 겁쟁이의 흉가 모험기. ㅋㅋㅋㅋ
그리고 팬들도 재미있게 봤는지, 실시간 댓글 내용도 전반적으로 나쁘지는 않았다.
― 민주혁 놀라는 장면 누가 빨리 GIF 파일로 만들어 줘. 소장각이야, 이건. ㅠㅠ
― 서은우 장꾸 표정 짓는 거 나만 설레나? 나도 귀신 역할 잘할 수 있는데. ㅠ
┖ 자고 일어나면 바로 귀신 분장인데, 지원 못 하나.
나중에 반응캠 영상까지 올라가면, 팬들에게 이야기할 거리를 더 던져 줄 수 있을 듯했다.
그렇게 흉가 탐험 모니터링이 끝이 나자, 안단테가 손을 번쩍 들었다.
“이제 제 차례예여!!”
멤버들별로 하나씩 자체 콘텐츠를 기획하는 것이다 보니 순서가 정해져 있었고, 안단테의 말대로 이번에는 녀석의 차례였다.
“단테가 가져온 기획이 보드게임이었지?”
“네!”
“오늘 그것도 바로 찍어 둘까?”
“네!!”
겁쟁이 2였던 과거는 벌써 잊었는지, 보드게임을 할 생각에 단테는 아주 신이 난 모양이다.
‘……진짜 요정 놈들 생각이 나네.’
에르제는 안단테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가 살던 세계의 요정들이 딱 저랬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항상 신이 나 있었고 종족을 불문하고 장난을 치는 것을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던 것이 ‘내기’와 ‘게임’이었는데, 안단테가 들고 온 ‘보드게임’은 딱 그것에 부합하는 콘텐츠였다.
“가지고 올게여!”
“우리는 카메라 세팅 해 둘게.”
안단테가 보드게임을 가지러 가자, 나머지 멤버들은 책상을 정리하고 총 3대의 카메라를 거실에 설치했다.
간단하게 보드게임 하는 것을 찍는 거라서 회사에서는 ‘너희들이 찍어서 보내라.’라고 했던 것이다.
‘편집만 그쪽에서 하는 건가.’
뭐가 됐든, 보드게임에서는 악령에 씐다든가 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을 테니 딱히 걱정될 일은 없었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보드게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에르제는 걱정거리가 없다는 말을 30분 만에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아하하하학!! 서은우 또 꼴찌야!!”
“…….”
“너무 못한다, 은우야.”
참다못한 윤치우가 그렇게 말할 정도였으니, 그 처참함은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가 없었다.
에르제는 파산해 버린 자신의 상태를 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어째서.”
허망한 표정으로 에르제가 중얼거렸다.
“내가 못하는 게 있었을 줄이야.”
“어어, 자아도취 서은우 등장!”
태현우가 또 말꼬리를 잡으며 폭소했다.
그의 앞에는 에르제에게서 뜯어 간 돈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나 팀 바꿔 주면 안 되겠니?”
“안 돼여. 둘이 짜고 몰카했잖아여.”
“맞아. 벌이야.”
윤치우가 잠깐 꿈틀거렸지만, 어림도 없었다.
‘3게임이나 꼴찌를 할 줄이야.’
에르제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얼굴로, 안단테가 꺼내는 다른 게임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곧 화색이 되었다.
‘카드!’
드디어 주 종목이다.
그래, 솔직히 자신에게 서은우의 기억이 남아 있었다면 이까짓 보드게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카드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원래 살던 세계에서도 카드 게임엔 일가견이 있었으니까.
뚜두둑―.
에르제는 고개를 돌려 목을 풀고는, 매서운 눈빛으로 안단테를 바라보았다.
“어이, 패 돌려.”
“오오, 꽤나 도박장에서 구른 듯하구먼.”
태현우가 기대된다는 듯이 대꾸했다.
“어디 실력 좀 볼까?”
“얼마든지.”
‘꾼’의 기세를 뽐내며 에르제가 패를 받아 들었다.
세븐 포커라는 게임이었는데, 룰은 그가 하던 카드 게임과 비슷했다.
‘어차피 숫자와 모양으로 패를 만드는 건 비슷할 테니까.’
게다가 카드 게임은 흔히 운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베팅이 없을 때의 이야기!
‘운칠기삼이다.’
무려 30%나 차지하는 기세의 영역은 이런 애송이들과 자신을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하프!”
“콜!”
“하프! 하프! 하프!”
순식간에 몇 게임이나 지나갔다.
“푸하하하하!!”
그리고 또다시 에르제의 앞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
이놈의 몸은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느낀 거지만, 운이라고는 쥐뿔도 없다.
* * *
멤버들의 자체 콘텐츠 기획은 다양했지만, 대부분은 간단한 것들이 많았다.
아마도 후딱 해치우고 휴식 기간을 길게 가져가고 싶은 마음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리라.
가장 스케일이 컸던 것이 태현우의 흉가 탐험이었고, 이어진 다른 멤버들의 자체 콘텐츠는 짧은 시간 내에 끝낼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안단테가 들고 왔던 보드게임을 시작으로.
민주혁은 다른 가수의 콘서트장 2군데 방문하기였고, 윤치우는 멤버들과 다같이 사주와 타로를 보는 것이었다.
이 3명의 자체 콘텐츠 촬영은 고작 일주일 만에 끝났고, 12월 초부터 중순까지 차례대로 공식 계정에 방영되었다.
당연히 이브는 행복사하기 직전이었다.
― 흉가가 끝이 아니었어……?
┖ ㅠㅠㅠ 우리 애들 쉬지도 못하고 떡밥을 계속 주는 거니. ㅠㅠㅠ
― 우리는 정말 좋은데…… 진짜 좋은데, 꼭 건강 챙기고 무리하지 마.
┖ 저 그래서 홍삼 박스로 보냈어요. ㅠ
┖ 저도요! 비타민 보냈어요. ㅠㅠ 애들 걱정돼서.
에르제는 팬들의 반응을 보다가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서 따로 확인했다.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것들이 있어서였다.
― 서은웈ㅋㅋㅋ ‘내가 못하는 게 있다니!’ ㅋㅋㅋㅋㅋ
┖ 아니, 근데 운이 없는 건지 게임을 못하는 건지. ㅋㅋㅋㅋ
┖ 부루마블 할 때가 제일 웃겼음. ㅋㅋㅋㅋ 맨날 다른 사람 땅만 밟앜ㅋㅋ
┖ 겨우 빌딩 세웠는데, 바로 다음 턴에 울면서 팔더라. 큐 ㅠㅠㅠ
― 근데 점집에서 서은우 보고 왜 그렇게 놀란 거임? 갑자기 막 벌벌 떨지 않았나.
┖ ㅁㄹ 좀 이상하기는 했음.
― 그래도 애들끼리 궁합 잘 맞아서 다행이다. 미신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아니라고 하면 찝찝해.
┖ 보면서 조마조마…….
┖ 아니, 그래서 은우 뭐냐고;;;
역시.
에르제는 보드게임과 관련된 댓글을 보며 입술을 씹었다.
이렇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 주게 될 줄이야.
“하아.”
스튜디오의 소파에 앉아 있던 에르제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점집에서 있었던 일이야…… 별거 아닌데.’
점쟁이라는 사람이 자신을 보고 놀라긴 했는데, 그것보다는 팬들이 자신의 보드게임 실력에 의문을 갖는 것이 매우 불만스러웠다.
결국 에르제는 오늘까지 총 5번의 재대결을 요청했으나, 아직까지 오명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아니, 오히려 더욱 심해졌다고 할 수 있었다.
몇십 판은 한 것 같은데, 단 한 번도 승리를 하지 못했으니 말이다.
특히나 부루마블이라는 게임은 어찌나 악랄한지 주사위만 굴렸다 하면 남의 땅을 밟게 만들고, 황금 열쇠 칸에서는 ‘다음 통행세가 2배!’라는 발칙한 벌칙이 나온다.
‘다음번에는 꼭…… 무조건 꼭.’
그렇게 에르제가 전형적인 도박 중독자의 행태를 보이는 사이, 화장실을 갔던 민주혁이 스튜디오로 돌아왔다.
이로써 마지막 자체 콘텐츠이자 에르제가 기획한 것을 촬영할 준비가 끝이 났다.
“흐음.”
모카 엔터 프로듀서인 최광수는 토트윈이 모두 모이자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팬송을 만들고 싶다는 거지?”
“네.”
에르제는 최광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 같이 하는 거로요.”
사실 토트윈의 팬들은 예전 에르제가 갑자기 라이브 방송을 켰을 때 불러 준 노래를 팬송으로 알고 있었다.
물론 에르제는 그런 의도가 아니긴 했으나, 팬송이라는 여론에 무난하게 올라타려는 생각이었는데.
대표가 아예 그 곡을 다음 컴백 앨범에 포함시킨다고 했으니, 에르제는 멤버들과 다 같이 새로운 팬송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당시 팬들의 반응에 기분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번에는 ‘뱀파이어 에르제’로서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였다.
“그래……. 너희들 세계관 콘셉트로 팬송 만들어서 주는 건 좋아. 멜로디도 좋고, 다른 애들의 가사도 다 좋기는 한데…….”
최광수는 손가락으로 이마를 툭툭 치다가 에르제가 작사한 부분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은우 가사는 좀…….”
“왜요?”
“……이걸 팬들이 좋아할 것 같니?”
“유혹하는 건데요?”
“과하잖아.”
최광수는 손가락으로 가사를 짚으며 말했다.
“대놓고 ‘널 유혹하겠어’나 ‘목덜미’, ‘다 내 거’……. 이런 것들은 좀 과해.”
하지만 뱀파이어에게는 아주 당연한 말들이었다.
역시 인간들이라 그런지 뱀파이어의 감수성이 너무도 부족하다.
‘일족을 찾으려면 이런 가사들이 직빵인데…….’
세리나처럼 자신을 금세 알아본다면 좋겠지만, 아직까지 긴가민가하는 일족들에게 제대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가사였다.
팬송이라는 취지인데, 어째서 과하게 유혹하는 것이 안 된다는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에르제는 순순히 물러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음원으로 내는 것도 아니고 무튜브 공식 계정이나 SNS에 올라가는 것이기에 방송 심의를 들먹일 수도 없을 터.
프로듀서인 최광수만 설득한다면, 자신이 쓴 가사 그대로 팬송을 들려줄 수 있었다.
‘직접 들어 보면 생각이 달라지겠지.’
에르제는 최광수에게서 가사지를 받아 들곤 한 차례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최광수를 바라보았다.
“?”
“널 유혹하겠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