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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42화 (42/307)
  • 제42화

    42화

    ― 아아, 이 향긋하고 맛있는 냄새!

    서큐버스 퀸은 옥좌에서 일어나 날개를 파닥거리며 공동 천장의 근처를 빙글빙글 맴돌았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나?’

    하지만 에르제는 강력한 힘을 가진 서큐버스 퀸을 앞에 두고도 태연한 얼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서큐버스는 대대로 뱀파이어를 섬기는 종족.

    그 대상이 서큐버스의 수장인 퀸이라고 하더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자신은 뱀파이어 중에서도 정점에 위치한 ‘로드.’

    자신을 보고 곧바로 무릎을 꿇지 않는 것은 자신의 정체를 모르고 있어서라고 여긴 것이다.

    ‘혈기를 발현하지 않았으니 모를 수도 있겠지.’

    현재 자신이 들어와 있는 것은 평범한 인간의 몸.

    착각 정도는 너그럽게 용서해 줄 수 있는, 하해와 같은 마음을 지닌 자신이니 이렇게 한 발 물러서는 수밖에.

    “내려와라. 정신 사납다.”

    에르제는 그렇게 말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어쩌면 악령보다 이쪽이 상대하기 더 쉽겠군.’

    힘의 차이보다 종족간의 지위 차이가 더 효과적이었으니 말이다.

    심지어 이건 인지도를 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일지도 몰랐다.

    이윤이 얘기했던 ‘스폰.’

    서큐버스 퀸을 권속으로 들여 마족을 생산하게 해 주고, 방법은 잘 모르겠지만 그들로부터 인지도를 얻어 내면 되니까 말이다.

    ‘언제 한번 서큐버스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이렇게 되는군.’

    에르제는 피식 웃으며 서큐버스 퀸이 있는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그만 파닥거리고 내려와.”

    ― 싫사와요.

    하지만 서큐버스 퀸은 매혹의 힘이 담겨 있는 에르제의 목소리에도 거부 의사를 표했다.

    “……?”

    에르제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자신의 힘을 느꼈다면, 절대 저렇게 대답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 오호호호호!! 당황했나요?

    “……내가 누구인지 모르나?”

    에르제가 다시 한번 힘을 주어 말했으나, 서큐버스 퀸은 깔깔깔, 웃어 대며 말했다.

    ― 물론 알고 있사와요.

    서큐버스 퀸은 공중에서 배꼽을 잡고 웃는 시늉을 하다가 이내 옥좌 근처로 내려와 무언가를 집어 들었다.

    툭―. 데구르르.

    “?”

    에르제는 자신의 발밑까지 굴러온 두 개의 두개골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게 뭐지?”

    평범한 두개골 같은데, 이걸 굳이 자신에게 들이미는 이유를 알 수 없었웠다.

    그러나.

    “……!!”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는 부분을 발견한 에르제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두개골을 집어 들었다.

    “……송곳니.”

    두 개의 두개골 모두 그가 잘 알고 있는 형태였다.

    그야 유일무이한 뱀파이어의 특징인 송곳니 때문이었다.

    단순히 뾰족하고 길게 난 송곳니가 아니라, 피를 빨기 위해 최적화 된 흡혈 문양까지 달려 있는 송곳니 말이다.

    “……너.”

    두개골을 바닥에 내려놓은 에르제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려 서큐버스 퀸을 바라보았다.

    “내 일족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 후후후.

    그녀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대답했다.

    ― 맛있는 영양분이었사와요.

    “……죽이고, 흡수했다?”

    ― 알면서 자꾸 물어보시는 건 소녀에게 큰 실례랍니다.

    서큐버스 퀸은 또다시 깔깔거리며 말을 이었다.

    ― 카니발을 거쳤다고 해도, 이미 몇 세대나 거치면서 약해진 피. 소녀에게 이런 애송이들은 아무것도 아니었사와요.

    “…….”

    ― 언제까지 저희들이 약하디약한 뱀파이어들을 모실 거라고 생각한 건가요?

    서큐버스 퀸은 허공에 붕 떠오른 채, 허공에 손을 내저었다.

    ― 손님이 오셨잖니, 얘들아.

    그러자 그녀의 손길을 따라 그들을 계속해서 따라오던 고스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모습이 변형되면서 서큐버스들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변형 능력이었나.”

    변하고 싶은 대상으로 변하는 능력인데, 사람들의 꿈속에 침투해야 하는 서큐버스들의 종족적 특성 중 하나였다.

    에르제는 공동 안을 꽉 채우고 있는 것들을 바라보며 느릿하게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니까 너는, 내가 뱀파이어임을 알고 던전화를 시켰다는 거군.”

    ― 제 영역에 들어오자마자 눈치챘사와요.

    그녀는 혀로 입술을 할짝거리며 소리쳤다.

    ― 순순히 제 힘이 되기를!

    하지만, 그녀의 명령에 의해 에르제를 공격했어야 할 서큐버스들은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 ?!

    서큐버스 퀸이 당황해서 고개를 휙휙 돌리자, 에르제가 그녀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째서 서큐버스들이 뱀파이어의 하위종이 되었는지…… 그새 까먹었나? ……원한다면 권속으로 받아 줄 생각이었는데, 내 사람을 건드린 대가는 응당 치러야겠지?”

    은혜는 은혜로, 원수는 원수로.

    신사적인 뱀파이어는 은원을 확실히 하는 법.

    서큐버스 퀸에게 죽은 녀석들은 지구에서 태어난, 자신과 관련이 없는 일족이었을지 모르지만.

    동족의 죽음을 보고 그 원수를 그냥 지나칠 만큼 마음이 넓지는 못했다.

    ― 뭐, 뭘 하려고 하시는 겁……!!

    하지만 그녀의 말은 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슥―.

    “먹어 치워.”

    에르제의 발밑에서부터 솟아난 검은색의 마력이 그에 의해 움직임이 멈춘 서큐버스들을 집어삼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각, 사각―. 까드드득.

    마치 검은 마력은 살아 있는 듯 무방비 상태의 서큐버스들을 집어삼켜서 그것들을 다시 에르제의 힘으로 치환시켰다.

    ― 따닥, 따닥.

    공포에 절은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녀석은 이빨을 부딪치며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 거, 거짓말이야.

    “순혈도 아닌 뱀파이어 2명을 잡아먹었다고, 본인이 종족적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했나?”

    고블린은 아무리 발악해도 고블린일 뿐이다.

    아무리 특별한 개체가 나오더라도 혼자서 오크를 이길 수는 없는 법.

    지금도 마찬가지다.

    덥석―.

    에르제의 손이 우악스럽게 서큐버스 퀸의 목을 틀어쥐었다.

    꾸드드득, 소리를 내며 서큐버스 퀸의 목이 졸리기 시작했다.

    “인지도는 어디에 있지?”

    ― 켁, 켁 모…… 몰……라요. 제발 살…….

    에르제의 눈은 빨갛다 못해 타오를 정도였다.

    “모른다라. 그렇다면 일족의 힘은 다시 거둬 가마.”

    서큐버스 퀸은 채 5초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목이 꺾여 즉사했다.

    그리고 그 시체는 흔적도 없이 마력으로 변해 에르제의 몸속에 들어왔다.

    “……후우.”

    일족의 복수는 했지만, 기분은 굉장히 더러웠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여기서 죽었을 일족들을 자신이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때, 내가 한 선택이 옳은 것이었을까.’

    일족들을 살리기 위해 다른 차원으로 보냈지만, 결국 그곳에서의 생존은 그들의 역량에 맡겨 버렸다.

    결국, 그들의 죽음을…… 또 다른 것들에게 맡겨 버린 꼴이 되었으니.

    ‘도피…… 한 셈인가.’

    에르제는 주먹을 꽉 쥐었다.

    어쩌면, 그들과 함께 죽음을 맞이했어야 옳았는지도 모른다.

    로드로서, 그들의 죽음까지 책임을 지면서.

    ― 정신 차리십시오.

    자신이 이럴 때마다 충고를 아끼지 않던 라하임의 얼굴이 문득 떠올랐다.

    ‘……보고 싶네.’

    오늘따라 라하임이 더욱 보고 싶어졌다.

    * * *

    “끝……난 거야?”

    윤치우는 무사히 구출된 스태프들을 보고 에르제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에르제는 여전히 쓸쓸한 표정이었는데, 대답은 꼬박꼬박 해 주었다.

    “응. 던전화도 곧 풀릴 것 같아.”

    에르제는 핸드폰을 꺼내어 그들이 들어온 뒤로 흐르지 않은 시간을 확인했다.

    “바깥에서는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았을 거야. 이곳이 던전화가 되면서 너랑 나는 완전히 다른 시간대에 있다가 온 개념이니까.”

    “……그……렇구나.”

    윤치우도 자신의 핸드폰으로 멈춰 있는 시간을 확인하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마 던전에 관한 것부터 시작해 자신이 서은우가 아닌 진짜 뱀파이어라는 사실까지 그의 머릿속은 지금 굉장히 복잡할 것이 분명했다.

    에르제는 입구 쪽에서 부서진 카메라를 발견하고는 집어 들었다.

    “다시 밖에 나가면, 나는 평범한 아이돌로 시간을 보낼 거야.”

    “…….”

    “그러니까 하던 대로 해. 무슨 의미인지 알지?”

    “……알아.”

    윤치우는 힘겹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절해 있는 스태프들을 흘긋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

    그런 윤치우의 생각을 읽은 듯, 에르제가 그를 안심시켰다.

    “아마 정기를 조금 빨린 것 말고는 별문제 없어 보여. 곧 던전화가 풀리면서 깨어날 거야.”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도 하지 못할 테니 저들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서큐버스에게 당하면 꿈이라고 여기니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면 돼.”

    “알았어.”

    곧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던전화가 풀리기 시작했다.

    귀신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는 여전했지만, 숨이 막힐 듯한 칙칙한 공기의 농도는 확실하게 사라져 있었다.

    “……끝난 것 같네.”

    에르제는 완전히 안전해졌다고 판단한 뒤에야 윤치우와 함께 그들이 들어왔던 입구로 나왔다.

    “엥?”

    “뭐예여? 왜 다시 나왔어여?”

    “벌써 끝까지 갔다 올 시간은 아닌데.”

    그러자 입구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머지 토트윈 3명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진짜네.”

    윤치우는 그런 그들의 반응에서 에르제의 말이 진짜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에르제는 박살이 난 카메라를 내밀며 말했다.

    “갑자기 귀신이 튀어나왔는데, 윤치우가 놀라서 깨부쉈어요.”

    “……야!”

    윤치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에르제를 바라보았지만, 곧 입을 다물었다.

    그러고는 빠르게 허리를 숙여 촬영진 쪽을 향해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너무 놀라서 떨어뜨렸는데, 그대로 밟아 버렸어요.”

    “아하하하. 괜찮아요, 괜찮아.”

    PD는 전혀 괜찮지 않은 얼굴로, 새로운 카메라를 내밀었다.

    꾹―.

    에르제가 그것을 받아 가려 하자, PD가 카메라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이번에는 꼭 조심해서…….”

    “걱정 마세요.”

    에르제는 싱긋 웃었다.

    “이번에는 제가 들고 있을 거니까요.”

    “흐흠……!”

    PD는 그제야 카메라를 잡은 손을 풀었다.

    “뭐예여.”

    “치우 형 은근 겁쟁이네~.”

    안단테와 태현우가 다시 들어가는 윤치우를 놀렸지만, 그는 다시 리더의 모습으로 돌아와 밝은 미소를 지었다.

    “너희들도 들어가면 카메라 부수지 않게 조심해. 갑자기 튀어나오고 그러더라.”

    “우우, 변명이다. 변명 치우다~. 변명 치우우우우~.”

    “아하하.”

    윤치우는 멋쩍게 웃고는, 에르제와 다시 흉가 안으로 들어갔다.

    스태프들은 자신들이 깜빡 졸았다고 여겼는지 다시 제정신을 차리고 배정 받은 자리에서 귀신 역할을 하려고 하는 모양.

    윤치우는 완전히 문이 닫히고, 에르제에게 속삭였다.

    “애들 들어갈 때 그런 일은 또 안 일어나는 거지? 그…… 던전 같은 거.”

    “이젠 괜찮아.”

    에르제의 확신 어린 어조에 윤치우가 그제야 안심하는 태도를 보였다.

    “자체 콘텐츠인데 살리기는 해야지. 적당히 놀라고, 적당히 도망가 주자고.”

    에르제는 그렇게 말하며 이번에도 성큼성큼 안으로 먼저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윤치우는 깊게 차오른 숨을 내뱉었다.

    “……도대체 그러면.”

    에르제가 진정이 되었다고 여긴 윤치우의 마음속은 여전히 복잡하게 꼬여 있는 상태였다.

    “진짜 은우는 어디에 있는 거야?”

    서은우의 몸을 차지한 뱀파이어에게 영혼이 먹힌 것이 아니기를 윤치우는 간절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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