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41화
에르제는 윤치우의 질문에 순간 움찔했다.
‘누구냐니.’
아무래도 자신과의 대화에서 그쪽까지 생각이 미쳤던 모양이다.
‘하지만 곧이 곧대로 대답할 필요는 없겠지.’
에르제는 태연한 얼굴로 대꾸했다.
“서은우인데.”
“…….”
윤치우는 어이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내 질문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윤치우는 땀이 차는지 손바닥을 쥐었다 폈다 하며 말했다.
“……네 정체가 뭐냐는 뜻이야.”
“그야, 당연히 아이돌이지.”
“……던전을 알고, 던전주였던 적도 있는데……. 아이돌이라고?”
“맞아.”
에르제는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진실이니, 윤치우로서는 더욱 미궁에 빠지는 기분일 터였다. 그게 바로 에르제가 노리는 바였고.
그는 윤치우에게 간단명료하게 말을 덧붙였다.
“서은우, 20세, 미혼, 아이돌, 던전 지식 해박함 이상.”
“미혼……. 아니, 아니.”
에르제의 말에 정신이 혼미해지던 윤치우가 고개를 빠르게 털었다.
이 이상 휘말리면 안 되겠다고 여겨서였다.
마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역겨움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럼……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윤치우는 입을 꾹 다물었다가 다시 열었다.
“이게…… 미친 소리로 들릴 수 있다는 건 아는데. 솔직하게, 진짜 솔직하게 대답해 줘.”
“내가 솔직함 빼면 늑대인간이야. 뭔데?”
아예 물어보지 말라고 원천봉쇄를 하면 그게 더 이상해 보일 수도 있었기에 에르제는 흔쾌히 물어보라고 허락을 해 주었다.
‘지금처럼 적당히 진실을 섞어 주면 되겠지.’
에르제는 가만히 기다렸다.
윤치우는 말할 내용을 머릿속에서 정리하다가 이내 속에 있는 질문을 꺼냈다.
“혹시…… 혹시 말이야. 너 다른 세계에서 왔어?”
“!!”
확실히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라 에르제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런 건…… 누군가 눈치를 채도 그게 태현우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녀석은 이쪽 방면으로 이상하리만치 눈치가 빠르니 말이다.
에르제는 놀라움을 감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인간도 아니고?”
“응.”
에르제는 솔직하게 대답하며 토트윈의 세계관을 떠올렸다.
핼러윈 이브를 맞아, 아이돌이 되기 위해 지구로 넘어온 뱀파이어.
‘그렇게 둘러대면 되겠지.’
당장은 윤치우의 뜬금없는 의심을 약화시키는 것이 우선이었다.
던전주를 처리하고 탈출하는 과정을 겪다 보면, 그런 의심을 할 정신은 없어질 테니까.
하지만, 윤치우에게는 그의 대답이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저번에 쓰러졌을 때와 역겨운 공기 때문에 에르제가 조금 전에 그에게 주었던 기묘한 힘. 때마침 그럴 때마다 빨갛게 변했던 눈.
그리고 서은우가 언젠가 자신에게 했던 이야기.
“……설마설마했는데.”
윤치우는 아까처럼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럼…… 은우가 진짜로…… 윤 실장님이랑 그 의식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윤치우의 말을 듣고 이번엔 에르제가 흠칫했다.
‘의식?’
분명 그렇게 말했다.
‘……확실해.’
게다가 윤소희 실장까지 엮여 있는 것으로 보아, 이전에 의심했던 퍼즐이 맞춰지는 기분이었다.
‘의식…… 그리고 마녀……. 내가 이 몸에 들어오게 된 이유를 알 게 될 수도 있어.’
에르제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고는 조금 전의 생각을 철회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결국 대답을 듣기 위해서는…… 이쪽도 진실을 까는 수밖에 없나.’
아직 토트윈 세계관을 들먹이지는 않았으니 기회는 있었다.
생각이 많아진 얼굴로 멍하니 있는 윤치우에게 이번에는 에르제가 먼저 다가가 물었다.
“의식? 윤소희 실장이랑? 자세히 이야기해 봐.”
“…….”
멍한 윤치우의 눈이 에르제에게로 향했다.
“아직…… 내 질문 안 끝났는데.”
하지만 에르제도 순순히 물러서지는 않았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어야지?”
“……그렇게 말해도, 안 돼.”
윤치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냐고 묻는 에르제에게 그가 설명을 덧붙였다.
“내 질문이 끝나야 지금 하고 있는 의심이 사실이 되니까. 나도…… 그냥 말해 주고 싶지만, 아직은 심증뿐이라서.”
어깨를 으쓱하며 말하는 윤치우가 얄미웠으나, 에르제는 한 발 물러서기로 결정했다.
‘내 대답이 필요조건인가.’
윤치우가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뭘 듣고 싶은데?”
“네 정체. 물론 아이돌 말고.”
“…….”
한 발 물러서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질질 끌려 다닐 생각은 없었다.
에르제는 모든 정보를 공개하기보단 일단은 최소한의 정보만 대답해 주었다.
“다른 세계에서 온, 인간이 아닌 존재.”
“그건 아까 한 대답이랑 똑같잖아.”
“……뱀파이어.”
“뱀파이어?”
윤치우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러고는 곧 수긍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그래, 그랬던 거였어.”
윤치우는 씁쓸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럼…… 기억상실도, 뱀파이어인 네가 은우의 몸속에 들어와서 그랬던 거였고?”
“맞아.”
“그렇다면…… 증명해 봐.”
“뭘?”
“지금 네가 한 말. 뱀파이어라는 거 증명할 수 있어?”
윤치우는 마음을 굳게 먹은 표정이었다.
그로서도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이왕 정체를 밝힌 거, 확실하게 보여 주는 게 맞겠지.’
뱀파이어라고 말을 했는데, 그걸 증명하지 못한다면 결국 도돌이표가 된다.
‘카메라는 없는 것 같으니.’
주위를 살핀 에르제는 손톱으로 손바닥 위를 그었다.
짧게 잘라 놓은 손톱임에도 마치 칼에 베인 듯 손바닥 위에 길게 상처가 났다.
에르제는 손바닥 위로 새어 나오는 피를 윤치우가 볼 수 있도록 구슬 형태로 뭉쳐 공중으로 띄웠다.
“혈구(血球)라고 불러. 구 형태의 피. 붉은 색이라서 적혈구라고 부르기도 하고.”
“큼, 크흠. 그……렇구나?”
윤치우로서는 예상치 못한 이름이라 그는 사레가 들려서 헛기침을 했다.
곧 윤치우가 진정을 하자, 에르제는 그것을 윤치우에게 내밀었다.
“이 이상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더 확실한 걸 원한다면 방법은 있어.”
에르제는 손 위에서 혈구를 빙글빙글 돌렸다.
“이걸 네가 먹으면 돼.”
“……먹으면 어떻게 되는데?”
“뱀파이어가 되겠지.”
에르제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그것만큼 확실한 게 더 있을까 싶은데. 물론 확률은 30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30퍼센트라는 말에 윤치우가 헛웃음을 흘렸다.
“……실패하면 뭐, 죽기라도 해?”
“차라리 죽는 게 나을걸. 이지를 잃은 괴물이 되니까.”
“…….”
윤치우는 심각한 표정으로 피의 구슬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알겠어. 네가 뱀파이어라는 말, 믿을게.”
그의 말에 에르제는 피의 구슬을 손바닥에 난 상처로 다시 빨아들이고는 재생 능력을 이용해 자신의 상처를 치료했다.
확실히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능력에 윤치우가 긴장했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이제 내가 대답을 들을 차례야.”
에르제는 표정을 굳히며 윤치우에게 말했다.
“아직도 의심에 대한 확신이 필요해?”
그 말에 윤치우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충분해.”
윤치우는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고 말을 이어 갔다.
“네가 정말로 다른 세계에서 온 뱀파이어라면…… 너도 이것에 관해 들을 자격이 있는 거니까. 어쩌면…… 다시 은우를 데려올 수 있을지도 모르고.”
* * *
던전주를 처리하러 가는 길 내내, 에르제는 윤치우에게서 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서은우.’
모든 것은 녀석에서 시작했고, 녀석으로 끝이 났다.
자신이 서은우의 몸에 들어온 것도, 지금 녀석의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모두 다.
‘의식 때문이라는 거지.’
윤치우에게 들었던 ‘의식’이라는 것은 에르제의 세계에서도 꽤나 빈번히 일어났던 일이었다.
영혼을 바치고, 소원을 들어주는 것.
자신의 세계에서는 ‘악마와의 계약’이 그러했고, 이곳에서는 ‘의식’이라고 간단히 부르는 모양이었다.
“은우는 춤 실력도, 노래 실력도 없이…… 그저 얼굴만으로 아이돌이 되는 일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여겼고.”
“하지만…… 너도 들었겠지만, 은우는 그렇다고 아이돌을 포기할 수가 없었거든. 어떻게든, 어떻게든 춤과 노래 실력을 연습을 통해 끌어올리는 수밖에 없었지.”
“……그런데 그때 접근한 게 윤소희 실장이었다고 했어. 영혼을 팔아서라도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아이돌이 되고 싶은지 물었대.”
그리고 그 당시, 정신력이 거의 벼랑 끝까지 몰려 있었던 서은우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던 모양이다.
맨 정신이라면 허무맹랑한 소리라고 여겼을 말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으니 말이다.
에르제는 병원에서 처음 숙소에 왔을 때 보았던 것을 떠올렸다.
뱀파이어 인형과 오컬트 도구들이 있었던 서은우의 책상.
‘……그게 의식을 위한 도구였을 줄이야.’
윤치우도 당사자가 아니었기에 자세한 것은 알지 못했고, 결국 에르제가 윤치우에게서 들었던 것은 이 정도뿐이었다.
심지어는 아무도 모르게 홀로 의식을 진행했던 서은우가 갑자기 겁에 질려서 윤치우에게 일정 부분을 털어놓지 않았다면 이마저도 알지 못했을 뻔했다.
“……쯧.”
에르제는 걸음을 옮기다가 그만 혀를 찼다.
영혼을 바치는 일인데, 윤치우가 들었던 대로 고작 그 대가가 ‘실력 향상’일 리가 없다.
악마들은 영혼과의 저울질을 정확하게 하는 족속이었으니 말이다.
‘그만큼…… 서은우의 영혼만큼 더 큰 대가를 얻었어야 하는데.’
일단 윤치우에게서 들은 내용으로는 유추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설마 진짜 내가 천년만년 아이돌을 해야 하는, 그런 건 아니겠지.’
순간 소름이 돋은 에르제는 고개를 휙휙 젓고는, 곧 발길을 멈췄다.
일단 서은우와 의식에 대해 생각하는 건 여기까지.
‘서은우의 영혼은 소멸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굳이 해 줄 이유가 없으니.’
그건 괜한 호의가 될 듯했다.
지금은 자신을 노리고 있는 던전주와 한바탕 전투를 해야 하는 시간이었으니 말이다.
“윤치우, 너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 왜?”
“안에 있는 건 네가 감당할 수준이 아니니까. 그리고 방해만 돼.”
“…….”
방해가 된다는 말에 자존심이 조금 상한 모양이지만, 괜히 토트윈의 리더가 아니라는 듯 그는 빠르게 상황을 이해하고 수긍했다.
“알았어. 잘 숨어 있을게.”
“금방 끝날 거야.”
에르제는 그렇게 말하고 날개 문양이 박혀 있는 문을 강제로 열었다.
‘어째서 이곳까지 오는데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고작해야 귀찮게 하는 함정과 고스트가 전부였으니까.
‘그만큼 본인의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거겠지.’
에르제는 피식 웃으며 거대한 공동 안으로 들어섰다.
‘곧 그 판단을 후회하게 되겠지만.’
에르제는 뚜두둑 소리를 내며 목과 팔을 풀었다.
어쩌면 혈기가 아니라 육탄전을 하게 될 수도 있으니, 미리 몸을 풀어 두는 것이다.
하지만.
― 오호호호호홋!!
곧 공동에 울리는 소리를 들은 에르제는 눈을 크게 뜨고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 반갑사와요!
던전주는 악마 하위종인 악령이나 하급 마족이 아니었다.
조그만 박쥐 날개에다 옥좌 비슷한 것에 앉아 몸을 배배 꼬고 있는 자태하며 기다란 보라색 손톱까지.
“서큐버스 퀸?”
에르제는 뜬금없는 종족의 등장에 그만 헛웃음을 흘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