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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40화 (40/307)

제40화

40화

에르제는 굳게 닫힌 문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덜컹덜컹!

뱀파이어의 힘으로도 절대 열리지 않을 만큼 굳게 닫힌 문.

처음 이 대저택을 보면서 느꼈던 찝찝함이 눈앞에서 현실이 되고 있었다.

지금 윤치우와 둘이 들어와 있는 곳은 던전.

대저택 그리고 흉가라는 이름으로 위장된 던전이었다.

‘……이윤의 말이 사실이었나.’

전에 세리나와 처음 만나게 된 날, 이윤이 스폰 어쩌고저쩌고 하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도 분명 던전과 관련된 이야기였으니 말이다.

‘……아무래도 나를 노린 거겠지.’

아마 민주혁, 태현우, 안단테가 먼저 들어왔다면 던전화가 진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혈기나 정기일 테니까.

‘윤치우에게는 미안하게 됐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던전주의 힘이 그리 강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정도.

‘아까 느꼈던 거라면, 고작해야 악마 하위종인 악령 정도야.’

그렇다면, 나가는 게 귀찮아졌을 뿐 던전에서 잡아먹힐 일은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윤치우를 지켜 가면서 말이다.

‘일단 돌아가자.’

그가 윤치우보고 움직이지 말라고 했던 곳은 던전 초입이니, 그곳은 일단 안전지대에 가까운 곳.

역시나 빠르게 걸음을 놀려 아까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자, 윤치우는 얌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은우야!”

그는 에르제를 발견하자마자 황급히 달려왔다.

“나 두고 혼자 어딜 간 거야……!!”

조금 화가 난 모양인데, 주변이 어둡고 그래서 무서웠기 때문인 듯했다.

하지만 에르제는 살짝 한숨을 내쉬며, 조용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아마 이 안에 스태프는 없을 거야.”

“뭐?”

“던전주에게 인질로 잡혔을 가능성이 높다고 해야 하려나.”

“그게 무슨……. 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윤치우는 에르제의 현실 감각이 없는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냐.”

에르제는 속으로 기분을 착 가라앉혔다.

이 이상 윤치우에게 설명해 봤자, 알아듣지도 못할 것이 뻔했다.

이윤이 던전에 대해서 아는 것 같길래 은근슬쩍 던전 이야기를 꺼낸 것인데, 모든 지구인들이 다 아는 건 아닌 모양인지 윤치우는 영문을 몰라 하고 있었다.

“쯧.”

가볍게 혀를 찬 에르제는 한쪽 팔로 윤치우를 자신의 등 뒤로 밀었다.

“절대 내게서 떨어지지 마. 멋대로 행동하면 목숨은 책임 못 져.”

“목숨? 거, 겁주지 마……!!”

에르제가 일부러 그런다고 생각했는지, 윤치우가 카메라를 든 손을 벌벌 떨면서도 강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에르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그에게서 카메라를 빼앗아 갔다.

“여기선 이런 거 필요 없어. 그리고 찍히면 안 될 것도 있고.”

콰직―.

그러고는 그대로 카메라를 밟아서 부숴 버렸다.

“!!”

이제는 더 이상 무슨 짓이냐고 따질 의욕도 없는지, 그저 멍한 표정으로 에르제를 바라볼 뿐.

에르제는 그런 윤치우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 주었다.

“최악의 경우 목숨이 위험한 건 맞는데, 일단 정력은 기본적으로 빼앗길 거야.”

“……담력이 아니고, 정…… 정, 정력?”

“응. 치우. 정력은 지켜야지. 그렇지?”

“그……렇기는 한데.”

“그럼 절대 떨어지지 마.”

“어…… 어어.”

매혹의 힘을 약간 섞어서 달래듯이 말하자, 그제야 말을 조금 듣는 윤치우였다.

그러나 자신의 말을 믿는 눈치는 확실히 아니었다.

“……정력……?”

여전히 그 부분에 얽매여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뭐 빼앗겨 보면 뭔지 알 거다.

‘……물론 그런 일이 없도록 해야겠지만.’

괜히 자신과 같이 들어오는 바람에 이런 일에 휘말리게 한 것 같아서 에르제는 최선을 다해서 윤치우의 정력을 지켜 주리라고 다짐했다.

“네 정력은 내가 지킨다.”

“……고……마워.”

에르제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서 안심을 시켜 주고는, 저벅저벅 앞으로 나아갔다.

“끼히히히히히!”

“이히힛? 인간이네? 인간이네?”

얼마 나아가지 않았음에도, 벌써 고스트 계열의 몬스터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히익! 저, 저건 또 뭐야. 제작진이…… 준비한 거야……?”

윤치우는 에르제의 옷자락을 꽉 잡은 채로 그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제작진은 아니야. 그리고 걸음 멈추지 마.”

에르제는 그런 윤치우에게 단호하게 말하며 더욱 깊숙이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

“……공기가 달라졌네.”

그렇게 15분쯤 들어왔을까, 에르제의 걸음이 처음으로 딱 멈췄다.

끈적한 공기의 농도가 에르제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이미 인간 몇이 당했나 본데.’

아마 인질로 잡아간 스태프들은 아닐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기에는 이미 던전주의 힘으로 치환된 냄새가 났으니까.

‘나는 상관없는데.’

다만 문제는 윤치우가 평범한 인간이라는 것.

“우욱.”

역시나, 윤치우는 구역질을 하면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하악, 하악……. 뭐야? 여기는 대……체……. 욱, 뭐야.”

“…….”

에르제의 눈동자가 짜게 식었다.

일부러 노린 건가.

그것도 아니면, 지구인들이 대부분 평범한 인간이다 보니 그들을 효율적으로 잡기 위해 설치한 함정인 건가.

뭐가 되었든, 지금 상황에서 썩 좋은 흐름은 아니었다.

‘……던전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아서 모르는 채로 탈출시켜 주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그 계획은 폐기해야 할 듯싶다.

어쩔 수 없다고 판단한 에르제는, 윤치우의 곁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윤치우, 네가 믿든 말든 그리 중요한 건 아니지만 일단 여기는 던전 안이야. 마물이나 마족 등이 자리를 잡고 먹잇감을 사냥하는 곳.”

“……욱, 흐으……. 던……전?”

“그래.”

“그…… 게임…… 같은…… 그런 거야?”

말하기도 힘겨워 보이는 상태로 윤치우가 물었다.

“흉……가는?”

“겉으로 보기에는 흉가인데, 들어와 보니 알겠더라고.”

아직까지도 믿지 못하는 눈치이길래 에르제는 멀리 떠다니는 고스트 하나를 목표로 삼았다.

‘인간과 고스트는 서로 만질 수 없지만.’

뱀파이어는 마족 계열이다.

‘직접 보여 주면 되겠지.’

혈기를 손에 담아 뻗은 에르제는 끼히힛, 웃음소리를 내면서 돌아다니는 녀석 하나를 잡아 윤치우에게 들이밀었다.

“……악……!!”

윤치우는 깜짝 놀라서 뒤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봐.”

그러나 에르제는 그런 그에게 더욱 녀석을 가까이 들이밀었다.

“끼힛? 인간이? 인간이 어떻게?”

녀석은 그렇게 소리치면서, 에르제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다.

불투명한 비닐처럼 생긴 것이 그러고 있으니 윤치우의 눈에는 공포심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치…… 치워! 치워 줘!!”

“진정해.”

에르제는 고스트를 잡고 있지 않은 손을 윤치우의 어깨에 얹었다.

힘을 조금 불어넣어 빠르게 흐르는 혈류를 진정시켜 주자, 그제야 윤치우의 얼굴이 차분해졌다.

“하악, 하악.”

“이건 고스트야. 보통 던전에 들어오면, 이렇게 중간에 만나는 녀석들로 던전주의 특징을 파악할 수 있어.”

“고……스트? 던전주는…… 또…….”

윤치우가 혼란스러운 눈으로 고스트와 에르제를 번갈아 바라보며 되뇌었다.

“단순해. 그냥 지금 네 눈앞에 보이는 것을 믿어.”

“이, 이런 걸?”

윤치우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한참 동안이나 눈앞의 고스트를 바라보았다.

“만질 수…… 있는 거야?”

“나만.”

“…….”

윤치우는 주변에 떠다니는 고스트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벽면을 살폈다.

“네 말…… 믿을게.”

“좋아.”

“……그럼 그때 그것도 꿈이 아니었나…….”

“?”

에르제가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바라보자, 윤치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이었지만, 일단 고스트를 눈앞에 들이민 덕분인지 지금이 현실이라는 사실은 인정하려는 듯했다.

“던……전이라니, 어쩌다가…….”

하, 하고 허탈한 숨을 내뱉은 윤치우는 이내 에르제와 시선을 맞추었다.

이제는 아까보다 눈동자가 덜 동요하고 있었다.

‘……전에 마지막 음방 때도 그랬는데, 정신력은 확실히 좋아.’

짧은 감상을 마친 에르제는 이내 심호흡을 하고 윤치우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의 손에 붙잡혀 있던 고스트는 일부러 놓아준 뒤였다.

“현재 이곳 공기에는 마기가 많이 섞여 있어. 인간들이 들이마시면 역겨움을 느끼는 동시에 구역질이 날 거야.”

그 때문에 일반 모험가들은 마족들을 퇴치하는 의뢰를 꽤 힘들어했었다.

접근조차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성직자가 있다면 성기(聖氣)의 힘으로 이겨 내는 방법도 있었고, 최악의 선택이지만 같은 마족의 힘을 받는 방법도 있었으니까.

“전에 네가 쓰러졌을 때 했던 거니까 편안하게 받아들여. 괜찮으니까.”

“뭐, 뭘 하려고?”

윤치우가 살짝 뒤로 물러났지만, 에르제는 손바닥을 이미 그의 가슴에 올려 둔 상태였다.

“네게는 성기가 없으니까 다른 방법을 선택하는 거야.”

“……!! 이, 있어!!”

“응? 없는데? 전혀 느껴지지 않아.”

“확실히 있거든?”

“그럴 리가. 기분 탓이겠지.”

“이게 기분 탓일 수가 있냐!?”

극구 부인하는 게 이상하긴 했지만, 없는 게 확실했다.

애초에 그게 있었다면 저번에 쓰러졌을 때 자신의 생명력을 받아들이는 순간 거부반응이 일어났을 테니까.

“그렇게 착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긴 한데.”

“착각 아니라니까!?”

“쉿.”

에르제는 더 이상 윤치우의 항변을 들어 주지 않고, 가슴팍에 올려 둔 손에 생명력을 약하게 흘려보냈다.

저번처럼 의식을 잃으면 안 되니 딱 윤치우가 공기 중의 마기를 버텨 낼 정도로만 말이다.

‘야!’라고 소리치려던 윤치우는 몸속으로 이상한 힘이 들어오는 것을 느끼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그러다가 힘을 발현하고 있는 에르제의 눈이 붉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

그렇게 10초 정도 생명력 전달식이 끝이 나고, 에르제는 손을 툭툭 털었다.

“어때?”

“……숨쉬기 한결 편해졌어.”

윤치우가 놀란 음성을 뱉으며 코를 킁킁거렸다.

“구역질도 안 나고.”

“다행이네.”

윤치우가 괜찮다는 제스처를 보이자, 에르제는 다시 그를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다.

고스트 하나가 에르제의 손에 붙잡혔다는 소문이 벌써 퍼졌는지, 가까이에서 괴롭히던 녀석들은 더 이상 다가오지 않고 멀리서만 왕왕거렸다.

“아학학!! 무서운! 무서운 인간!”

청각이 조금 괴롭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성큼성큼 걸어가는 에르제의 뒤에서 한참이나 말이 없던 윤치우가 입을 열었다.

아마 이곳까지 걸어오는 내내,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생각에 빠져 있었던 모양.

“그런데…… 은우야.”

“응?”

에르제가 돌아보자, 윤치우는 걸음을 멈춘 채 바닥을 보고 있었다.

대저택의 바닥이라고 하기에는 검은색의 이상한 물체들이 꾸물거리고 있었다.

“너는…… 너는 이런 것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이런 거?”

“던전……이라거나 던전주 같은 거……. 그리고 이런 이상한 것들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게…….”

“그야 내가 던전주였던 적도 있었으니까.”

에르제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리고 그의 대답에 더욱 확신을 얻었는지, 윤치우는 한 발 다가오며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솔직하게 말해 줘.”

그에게는 더 이상 이곳이 던전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은 듯 보였다.

“너…… 누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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