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화
39화
“아아아, 싫어어어여어어!!”
차를 타고 흉가로 향하는 내내, 안단테는 몸을 꽈배기처럼 배배 꼬며 차창을 부여잡았다.
어떻게든 이곳에서 탈출하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이는 행동이었다.
“소용없다.”
태현우가 근엄한 얼굴로 안단테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러고는 준엄하게 꾸짖었다.
“이미 모든 것이 결정되었거늘!”
“으윽……!!”
안단테는 그런 태현우를 노려보다가 이내 그의 멱살까지 틀어쥐었다.
“어허! 놓지 못할까!”
“나 죽으면 형이 책임져야 해여!!”
태현우는 고개를 반대로 돌려 먼 산을 바라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공포 테마는 첫 자체 콘텐츠 제안자인 태현우가 낸 의견이었으니 말이다.
귀신의 ㄱ 자도 싫어하는 안단테로서는 지금의 상황은 그야말로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무서울 게 뭐가 있다고.’
그러나 에르제는 그런 안단테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윤도 그렇고, 안단테도 그렇고……. 귀신을 왜 이렇게 무서워하는지 모르겠다.
‘직접적으로 손을 대지도 못할 텐데.’
그가 있던 세상에서 흔히 ‘고스트’ 계열로 분류되는 그들은 산 자에게 아예 접촉도 할 수 없었다.
모습을 드러내거나 말을 거는 것 정도는 가능했지만,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건 불가능하단 의미였다.
‘……물론 악령은 다르지만.’
애초에 그건 고스트가 아닌, 악마에 가까운 존재이니 이곳에서 귀신이라고 불리는 것과는 다른 존재일 터.
에르제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안단테의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괜찮아. 어차피 서로 만지지도 못해.”
“……아……!! 제발 그런 말 하지 말라고여……!!”
에르제의 말이 오히려 더 무섭게 들렸는지, 안단테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꿈이면 좋겠다…….”
그렇게 한참 고속도로를 달려갔고, 드디어 그들은 경기도의 어느 곳에 위치한 흉가에 도착했다.
실제로 버려진 흉가였는데, 사실 흉가라고 하기에는 대저택이어서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때문에 토트윈은 어마어마한 저택의 모습을 보고 차에서 내리자마자 움찔했다.
“으스스한데…….”
“…….”
윤치우와 민주혁은 대화를 주고받으면서도 은근히 무서워하는 티가 났고.
안단테는 눈을 꽉 감은 채 흉가 쪽에서 아예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이 중 가장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제안자인 태현우와 에르제뿐이었다.
“오……! 장난 아닌데?”
태현우는 먼발치에서 흉가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그리고 촬영팀은 벌써부터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재미있는 그림이 나오겠는데?”
“귀신 역할을 맡은 스태프들한테 더 진짜같이 해 달라고 연락 넣어 놔.”
“특히 안단테 들어갈 때.”
뒤에서 이런 사악한 이야기들이 오가는 것을 모르는 토트윈은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흉가 앞에 자리했다.
가까이서 보니 더욱 으스스하고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먼저 들어갈 조 정할게요~.”
스태프가 들어갈 순서와 조를 정하는 동안, 에르제는 찬찬히 흉가를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살짝 눈가를 찌푸렸다.
‘왜 내가 살던 곳의 냄새가 나는 거지?’
가까이서 보니, 그 추측은 더욱 확실해지는 것 같았다.
에르제는 조 짜기에 열심인 멤버들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기분 탓인가.’
안 그래도 무서워하고 있는데, 굳이 수상하다는 말을 덧붙여 줄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팔짱을 끼고 있자, 일대일로 인터뷰를 따려는 듯 카메라를 든 사람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 물었다.
“은우 씨는 무섭지 않으신가요? 혼자 태연한 얼굴이에요.”
“아.”
하긴 태현우는 태연하다기보단…… 그냥 신난 얼굴이다.
납득한 에르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저는 무서움을 잘 타지 않거든요.”
“그렇구나.”
에르제는 자체 콘텐츠의 재미를 위해서 카메라맨에게 친절하게 조언까지 해 주었다.
“저보다는 다른 멤버들 위주로 찍는 게 좋으실 거예요.”
여기서도 카메라에 많이 잡히면 좋겠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놀라는 척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예능 때와는 달리, 이번에 카메라에 담기는 것은 같은 팀 멤버들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번에는 충분히 양보해 줄 의향이 있었다.
‘대범한 면모도 보여 줘야지.’
그렇게 카메라맨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조 짜기가 완성되었는지 윤치우가 그를 불렀다.
“거기서 뭐 해? 은우야, 이쪽으로 와.”
에르제가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자, 최종적으로 완성된 조가 눈에 들어왔다.
1팀 : 윤치우, 서은우
2팀 : 민주혁, 안단테, 태현우
아무래도 공포 체험이다 보니 5명이 한꺼번에 들어가는 것은 피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안단테 쪽에 2명을 더 붙였네.’
제일 무서워하는 안단테에다 신난 태현우를 붙인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대충 보니, 영상은 2팀에서 최대한 뽕을 뽑겠다는 의지인 듯했다.
무섭지 않은 척할 것이 뻔한 민주혁.
무서워 죽으려는 안단테.
그런 둘을 더욱 놀려 먹을 것 같은 태현우까지.
재미는 그쪽에서 뽑고……. 1팀에서는 오히려 공포에 둔감한 모습을 보여 주려는 듯했다.
“…….”
아니, 윤치우도 무섭지 않은 척하는 쪽인가?
“치우 씨랑 은우 씨는 곧 입장할게요.”
1팀이 탈출에 성공하고 그다음에 2팀이 들어가는 것이 아닌, 시간차를 두고 입장시키려는 모양이다.
‘카메라맨이 따라 들어가지는 않나 보네.’
그렇다는 건 흉가 내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뜻.
‘……그리고 이쪽에도 셀프캠을 부착하려나.’
아니나 다를까, 스태프는 윤치우에게 조그만 카메라를 내밀었다.
한 손에 쥐고 있을 정도의 사이즈였다.
“이제 1팀 들어갈 건데요. 치우 씨가 이걸로 찍으면서 이동해 주시면 돼요.”
“알았어요.”
고개를 끄덕이며 카메라를 받아 든 윤치우가 슬쩍 에르제의 뒤로 빠졌다.
최대한 무섭지 않은 척하더니, 선뜻 자신에게 선봉을 맡기는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찝찝하긴 한데, 별일은 없겠지.’
에르제는 잠시 고민하다가 곧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같이 가!”
윤치우가 빠르게 발을 놀려 그의 뒤로 바싹 따라붙었다.
‘……어둡네.’
내부는 조명을 거의 꺼둔 듯 상당히 어두웠다.
자신은 훤히 다 보이지만 인간들 기준으로는 가시거리가 1m는 겨우 될까 말까 한 정도.
에르제는 길게 뻗어 있는 어두컴컴한 복도를 바라보며 윤치우에게 물었다.
“부적을 찾아야 한다고 했지?”
“으응.”
윤치우가 에르제의 팔을 꼭 잡으며 대답했다.
‘마지막쯤에 있겠지.’
당연히 초반에 발견할 수 있는 장소에 부적을 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쪽은 그리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아도 될 터.
“들어가죠.”
“흐읍, 후우우. 오케이, 준비됐어. 가자.”
윤치우가 심호흡을 마친 후 둘은 조심스럽게 복도를 따라 걸었다.
대략 3m가량 나아갔을 때쯤.
복도에 걸려 있던 액자 하나가 툭 하고 소리를 내며 45도로 기울어졌다.
“……!!”
기겁하는 윤치우와 함께, 에르제는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액자가 돌아가서 보이게 된 벽에는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끼히히히히―!!”
그곳에서 기괴한 웃음소리가 나오자, 윤치우는 에르제의 뒤로 후다닥 숨었다.
뒤로 고개를 돌리자, 쭈그리고 앉아서 눈을 감고 손으로 귀를 막고 있는 윤치우가 보였다.
“흐읍…….”
비명을 지르지 않으려고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그 모습에 에르제는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어차피 티 날 것 같은데.’
손에 들려 있는 카메라 영상이 뜬금없이 천장을 잡고 있으니 이를 보는 팬들은 윤치우가 겁먹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에르제는 카메라에 얼굴을 비추어 손으로 브이 자를 그리고는, 윤치우에게 말했다.
“저기 구멍으로 귀신 얼굴도 보이는데, 한번 볼래?”
“……!”
그 말에 재빨리 일어난 윤치우가 복도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한없이 느린데, 또 다급함이 느껴지는 걸음걸이다.
‘저러다 다치겠어.’
에르제는 여전히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채 걷는 윤치우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악!!”
도와주려고 갔는데, 그게 오히려 윤치우를 놀라게 만든 모양이다.
윤치우가 그대로 주저앉으며, 에르제를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놀랐잖아……!!”
“그렇게 걸으면 위험해.”
그러거나 말거나 마이페이스로 대답한 에르제는 그를 일으켜 세워 주고는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중간중간에 이렇게 함정을 장치해 둔건가?’
그때마다 윤치우가 이렇게 놀란다면, 이 흉가 체험 콘텐츠의 진행 속도가 꽤 늦어질 듯했다.
어깨를 살짝 으쓱한 에르제는 다시 윤치우와 함께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그래도 안단테 정도로 겁이 많은 것은 아닌지, 윤치우는 조그만 함정에는 조금씩 적응을 해 나갔다.
거침없이 나아가는 에르제의 뒤를 잘 따라오는 모습.
‘좋아.’
서서히 스피드가 붙어서 에르제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을 때였다.
오싹―.
순간, 에르제의 뒷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잠깐만!”
에르제는 팔을 뻗어 윤치우의 움직임을 제지하고는, 앞을 노려보았다.
‘뭐지?’
방금 굉장히 수상한 기운이 느껴졌는데.
에르제가 팔을 뻗은 채로 가만히 있자, 윤치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래? 뭐 있어?”
“……방금 못 느꼈어?”
“뭐를?”
윤치우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묻자, 에르제의 낯빛이 변했다.
‘인간은 느끼지 못한다는 건.’
유령이나 귀신같은 존재는 아니라는 뜻.
‘……악령?!’
하지만 겉에서 보았을 때도, 그리고 이곳에 들어오고 나서도 악령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어째서 지금이지?’
가만히 서서 생각하던 에르제는 예전에 라하임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악마 종이 탄생하게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번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무(蕪)에서 탄생한다고 했었지…….’
다양한 감정의 잔여물이 한곳에 고이게 되면, 그게 뭉치고 뭉쳐서 악마 종이 탄생한다고 했다.
그리고 이곳에 고여 있는 감정은…… 당연하게도 ‘공포.’
에르제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필 타이밍이 그렇게 된 건가?’
굳이 따지자면 운이 나빴다는 게 맞겠다.
악령이 탄생하기 위해 남아 있던 소량의 공포심이 윤치우에 의해서 채워졌다는 뜻이었으니까.
‘인간들을 해치지 않는다면 모르겠지만…… 그럴 확률은 낮겠지.’
좋은 감정을 먹고 태어난 것은 우호적이기도 했으나, 지금은 부정적인 감정을 먹고 태어난 녀석이다.
생각에 빠져 있던 에르제는 이내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잠깐만, 단순히 운이 나빴다고?’
그건 그냥 생각하기 귀찮아서, 아무렇게나 결론을 내린 멍청한 추론이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에르제는 곧바로 고개를 뒤로 돌렸다.
“……윤치우.”
에르제는 불안해하고 있는 윤치우에게 몸을 돌려, 그의 어깨를 꽉 잡았다.
“여기 잠깐만 가만히 있어.”
“뭐?”
“절대, 절대로 움직이지 마.”
에르제는 그런 말을 남기고는, 윤치우의 대답도 듣지 않고 곧장 그들이 들어온 입구 쪽으로 뛰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