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38화 (38/307)

제38화

38화

뮤직 큐 무대를 마치고 난 다음 날.

음악세상의 무대에 선 토트윈은 이번에는 큰 문제없이 ‘HaLLo’와 ‘Kill Shot’ 노래를 무사히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지나가던 선배 가수 하나가 복도에서 그들을 보고 “이번 주 1등 하는 거 아니야?”라는 농담을 던지고 지나갔다.

“앗, 아닙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겸양을 떨던 윤치우가 그 선배가 지나가자마자 눈빛이 바뀌어서 말했다.

“진짜 1등 꼭 하고 싶다.”

“그러게. 저번 팬싸컷도 100장 찍었다던데……. 이 정도면 할 만하지 않나?”

동발로 나온 가수라고 해 봤자 LAK뿐이었고, 사실상 아이돌계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두 그룹은 아직 컴백 시기가 미지수.

이제 막 신인 아이돌 그룹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시점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어쩌면 지금뿐일지도 몰랐다.

같은 생각을 하던 안단테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제 뮤직 큐에서 점수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았잖아여. 오늘 문투에서 뒤집을 수 있을지도 몰라여.”

“너무 설레발은 치지 말자.”

민주혁이 냉정을 유지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김새는 말이었지만, 멤버들은 그의 생각을 알아차렸는지 동시에 입을 꾹 다물었다.

물론, 에르제는 숨겨진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무대가 있는 동안 대기실에서 대기하던 토트윈은.

“순위 발표 시간입니다!!”

복도를 돌아다니면서 방마다 고지하는 스태프의 말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다시 무대로 향했다.

‘여기에 서면 되나?’

에르제는 무더기로 있는 가수들 뒤편에 가서 섰다.

멤버들도 대충 ‘우린 1위 할 거라고 생각해 본 적 없어요.’라는 얼굴로 에르제 근처에 모여 섰다.

윤치우가 가장 먼저 자리를 잡은 에르제의 옆에 서서 피식 웃었다.

“이런 건 또 눈치가 빠르네.”

“?”

어느 부분에서?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하던 에르제는 처음 순위 발표 무대에 섰던 옛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 분명…… 이 녀석이 그랬었지.’

토트윈의 인지도가 다른 가수들에 비해서 많이 쌓이지 않았고, 그래서 아직은 구석 자리에 설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지금 자신이 이곳에 선 이유도, 그때 윤치우의 말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칭찬에 약한 에르제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런 말 많이 들었어.”

“……그래?”

“응.”

겸양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대답에 윤치우는 쓴웃음으로 응수했다.

에르제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런 칭찬에 자꾸 익숙해지면 안 되는데.’

그렇게 되면 거만해지고 오만해질 테니 말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뱀파이어의 기준이었지만, 윤치우도 에르제도 그 사실을 알지는 못했다.

‘슬슬 시작하려나.’

윤치우와 짧은 잡담을 나눈 에르제는 MC의 말을 기다렸다.

“이번 주 1위 후보 2팀을 발표하겠습니다!”

그 말에 슬쩍 옆을 보니, 다들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첫 1위 후보는 다시 돌아온 발라더! ‘지인혁’ 씨입니다.”

“오오오! 역시.”

그 말대로였다. 역시는 역시다.

왜냐하면, 지인혁이 뮤직 큐에서 이번 주 1등을 차지한 가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음악세상도…… 내일 있을 가요팡팡에서도 이 사람과 1위를 다툴 거라는 이야기겠지.’

만약 오늘 토트윈이 1위를 한다면, 내일은 꽤나 재미있는 그림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굳이 스코어로 본다면 일대일 상황에서 최종 승자를 가리게 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에르제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MC는 어느새 다음 후보를 발표하고 있었다.

“두 번째 후보는 Trick or Treat! ToT-win입니다!”

“…….”

“어디 계시죠?”

MC가 당황해서 묻자, 윤치우가 크게 소리쳤다.

“여, 여기요!”

“아이고, 엄청 뒤에 계시네.”

MC의 말에 관객석에서도 작게 웃음이 터졌다. 간간이 풋풋하다느니, 귀엽다느니 하는 말도 들려왔다.

그리고 곧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

“!”

스윽―.

그들 앞에 있던 가수들이 다들 조금씩 옆으로 비키면서 무대 앞으로 향하는 길을 만들어 준 것이다.

뭔가 그들만을 위한 길 같아서 토트윈 멤버들은 괜히 간질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가, 감사합니다.”

멤버들은 길을 내어준 선배들에게 꼬박꼬박 감사 인사를 하며 지나갔고, 에르제는 가벼운 목례를 하며 고혹적인 눈웃음을 지어 주었다.

그렇게 맨 앞으로 나오자, MC는 기다렸다는 듯이 토트윈을 지인혁의 옆에 나란히 세웠다.

“오케이. 됐습니다, 여러분.”

MC는 그제야 카메라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마이크를 강하게 쥐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 이제 이번 주 음악세상 1위를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꿀꺽―.

그 말에 토트윈 멤버 중 누군가가 그런 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 중 누구도 그 소리를 들은 이는 없었다.

그만큼 지금 이 순간이 몹시 긴장될 수밖에 없었으니까.

곧 룰렛이 돌아가듯 움직이던 숫자판이 멈추고.

“이번 주 1위는!!”

MC의 입에서 결과가 발표되었다.

“ToT-win입니다!!”

“꺄아아악―!!”

“얘들아, 사랑해!!”

그 말과 동시에 토트윈의 팬들이 앉아 있던 자리에서 엄청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

“…….”

그리고 토트윈 멤버들은 멍한 얼굴로 점수판과 객석을 번갈아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에르제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매혹의 힘을 섞은 것이 확실히 도움이 되었겠지.’

그렇기 때문에 타 팬인 객석 쪽에서도 다들 인정하는 분위기이지 않은가.

에르제가 기분 좋은 웃음을 짓자, 지인혁이 먼저 그들에게로 다가와 축하 인사를 건넸다.

“축하해요.”

“아……! 감사합니다!!”

윤치우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지인혁은 첫 1위를 거머쥔 그들에게 질투나 시기심을 내비치지 않은 채 말했다.

“솔직히 토트윈이 1등 할 것 같았어요. 오늘 무대는 저도 정말 즐기면서 봤거든요.”

그는 그렇게 말하며 윤치우의 등을 살짝 떠밀었다.

그러고는 자신은 다른 가수들 틈에 섞여 뒤로 빠졌다.

‘중앙으로 나가라는 뜻인가?’

에르제는 그의 의도를 눈치채고는 곧장 앞으로 떠밀려 나간 윤치우의 옆에 섰다.

그러자 다른 멤버들도 정신을 차리고, 그들 옆에 나란히 자리했다.

MC는 꽃다발을 리더인 윤치우에게 넘기고서는 환하게 웃으며 마이크를 손에 들려주었다.

슬슬 첫 1위를 했다는 현실을 실감했는지 윤치우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울컥했는지 마이크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는 잘게 떨리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이번 활동 마지막 주 음악 방송이었는데, 이렇게 큰 선물을 받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가 꽃다발을 품에 안은 채 허리를 꾸벅 숙여서 인사하자, 에르제를 포함한 다른 멤버들도 눈물을 글썽이는 얼굴로 객석에 인사를 했다.

“팬 여러분…….”

“이브.”

인사를 하고 윤치우가 말을 이어 가려는데, 에르제가 곧바로 수정해 주었다.

자신의 의견으로 정해진 팬클럽명이기에 꽤나 단호한 목소리였다.

“아!”

자신의 실수를 눈치챈 윤치우가 살짝 얼굴을 붉혔다.

“……이브 덕분에 저희가 이렇게 좋은 결과로 활동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앞으로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중간중간 울먹인 덕분에 대사를 까먹은 배우처럼 소감을 말하기는 했지만…….

이어진 다른 멤버들의 소감에 비하면 그래도 가장 나았다.

“감사합니다.”

할 말이 없었던 건지, 아니면 감동받았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였는지…… 민주혁은 다섯 글자로 소감을 끝내 버렸고.

“흐엉……. 끄윽. 더…… 열…… 끅. 열심히…… 하겠…… 흑, 습니다아. 저…… 정말 열……심히 흐으윽, 했어여…….”

이미 펑펑 울고 있었던 안단테는 보고 있는 사람이 측은하게 여길 정도였다.

반면 태현우는 울먹거리기는커녕 평소보다 텐션이 2배는 높았다.

“앗, 마이크에 단테 눈물이 묻었어요!”

그렇게 말을 시작한 태현우는 마이크를 안단테의 옷에다 쓱쓱 닦아 버리고는.

“매일 SNS로 소식도 자주 들려드리고, 앞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도 있으니 조만간 여러분들께 또 얼굴 비치도록 하겠습니다!! 너무 감사드리고 이브 여러분, 사랑해요!!”

차라리 안단테처럼 우는 게 어땠을까?

에르제는 다른 이들의 의사는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태현우의 소감을 들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자체 컨텐츠 때문에 태현우가 한 말이 틀린 건 아니다만.’

혹시나 저번에 라이브 방송 켜는 것을 금지당했을 때 이윤이 말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저런 식의 말은 스포가 될 수 있으니까 입조심하라고 했는데.’

에르제는 숙소로 가자마자 이윤에게 고자질을 해서 잔소리의 타깃을 태현우로 바꾸도록 하겠다는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웠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잔혹한 것 같지만, 다 업보인 거지.’

에르제는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넘어 온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그러고는 객석을 보며, 엷은 미소를 띠었다.

그를 찍고 있던 카메라맨도 순간 손이 흔들렸을 정도로, 매혹적인 미소였다.

붉은 입술이 열리고.

“이지러진 달빛이 그대의 마음에 깃들기를.”

에르제의 짧은 소감이 끝이 났다.

* * *

토트윈의 1위 소식을 가장 기뻐한 것은 당연하게도 이브였다.

그들은 SNS에 1위 소식을 공유했고, 멤버들의 1위 소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 아아, 이 광경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니……. 내가 눈물이 다 난다.

― 덕생 가장 행복한 순간. ㅠㅠ 이대로 신인상까지 가즈아!!

┖ 벌써부터 설레발 ㄴㄴ

― 단테는 왜 이렇게 울어……. 누나 마음 찢어지게.

┖ 열심히 했다는 말이 나는 왜 이렇게 싸하냐;;

┖ 솔직히 윤치우랑 안단테 악플 쩔었잖아. ㅠ 단테 멘탈은 인정해 줘야 한다……. 이번 주 활동 때 단테 진짜 많이 좋아졌어.

┖ 맞아. 노력한 거 진짜 많이 보이더라.

― 그 와중에 달빛좌 컨셉을 놓지 못하는 우리 은우…….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여러분, 달빛은 항상 여러분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답니다.

┖ 미쳤나. 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그 다음 날인 가요팡팡까지 토트윈이 1위를 차지하자, SNS는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 미쳤다, 미쳤어!!

― 2개 방송사에서 1위? 이 정도면 신인상 거의 확정 아닌가!?

┖ 22년 초에 누가 나올 줄 알고? 지금 다른 기획사에서도 신인 그룹 런칭 예정이라던데.

┖ 22년에 토트윈은 논대? ㅋㅋㅋ

― 너무 좋은데……. 정말 너무 행복하고 다 좋은데……. 더 이상 우리 애들을 못 보는 게 슬프다…….

┖ 아……. ㅠㅠ 맞네……. 마지막 음방이었지…….

┖ 데뷔 쇼케에, 음방 활동에, 예능에…… 소속사를 쪼고 싶지만, 얘들도 휴식해야지. ㅠ

― 그래도 현우가 조만간 또 찾아오겠다고 하지 않았나? 기대해 봐도 될 듯.

┖ 예의상 한 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면 좋겠다.

며칠간 1위 축하와, 이제 당분간은 토트윈을 보기 힘들겠다는 사실로 인해 이브들이 울고 웃을 때.

토트윈 공식 계정에 그런 그들의 마음을 달래 줄 공지 하나가 올라왔다.

― 공지 떴다.

누군가의 발견으로 공식 계정에 마구 몰려간 팬들은 공지 제목만 보고도 가슴이 두근두근 떨렸다.

[ 토트윈의 최고 강심장을 가려라! ]

아이돌이라면, 누구나 겪게 된다는 ‘공포’ 테마의 자체 콘텐츠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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