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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36화 (36/307)
  • 제36화

    36화

    토트윈의 마지막 주 음악 방송은 3군데에서 진행하게 되었다.

    모두 각 방송사에서 제일 유명한 가요 프로그램들이었다.

    토트윈이 처음 음악 방송을 시작했던 뮤직 큐, 그리고 음악세상과 가요팡팡까지.

    팬들은 일주일 동안 3번이나 토트윈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행복해했다.

    그들은 이번 토트윈의 마지막 음악 방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최근 그들 사이에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것들도 빼놓지 않고 언급했다.

    개중에서 단연 최고의 화제는 역시 팬클럽명에 대한 것이었다.

    ― 이번에 채택된 팬클럽명 은우가 낸 아이디어라던데, 개인적으로 정말 맘에 들어!

    ― 오늘은 ‘뮤직 큐’ 하는 날! 그리고 ‘음악세상’ 이브임!

    ┖ ㅋㅋㅋㅋ 이브 아무 데나 다 갖다 붙이는 것 봐.

    ┖ 아~, 우리는 이제 이브라고~.

    ― 투표할 때 졸라에 투표수 올라가는 거 보고 식겁했잖아. ㅠ 그래도 다행히 정의가 승리한 듯.

    ┖ 솔직히 찐팬들 중에서 졸라에 투표한 애들이 있을까? 내가 볼 땐 팬클럽명 졸라로 되면, 조리돌림을 하려고 타 팬들이 엄청 투표한 것 같음.

    ┖ 이게 맞다.

    ― ??? : 졸라 사랑해요, 여러분!!

    ┖ ㅋㅋㅋㅋ ㅁㅊ.

    ┖ 아, 개싫어 진짜. ㅠ

    ― 솔직히 이건 소속사에서 후보 자체를 잘못 뽑았다고 본다. 대체 졸라가 왜 6개 후보에 뽑혔냐고?

    ┖ 그게 아니면 진짜 쓰레기 같은 것밖에 없었을 수도;;

    ┖ 이게 사실이면 팬인 우리가 반성해야 할 듯…….

    거의 모든 팬들이 ‘이브’라는 팬클럽명을 마음에 들어 하기는 했지만, 또 다른 후보였던 ‘졸라’에 대해서 합리적인 의심을 하며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그리고 그중 몇 개는 ‘X소’라면서 소속사에 대한 공격도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정화 작용이 되어 뮤직 큐 생방이 시작될 때쯤에는 클린한 댓글 위주로 많이 달리기 시작했다.

    ― 이브들 문투 준비됐지?

    ― 마지막 활동인데, 1위까지 가즈아~~~.

    최근 토트윈의 ‘HaLLo’ 음원 순위가 3위에서 요지부동하다가 현재 2위까지 올랐기에 미리 설레발을 치는 팬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런 팬들 못지않게, 토트윈도 1위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다.

    팬들의 댓글을 읽고 있던 윤치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꼭 뮤직 큐가 아니더라도 오늘 잘하면 내일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최선을 다하자.”

    “그래여!”

    “다들 컨디션 괜찮아 보이네.”

    그는 활기찬 멤버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핸드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평상시에는 맏형 역할을 한다면서 멤버들의 사소한 부분까지 챙겨 주기에 바빴는데, 오늘은 왠지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은 마지막 음방 일정이라고 잔뜩 긴장했는지 그런 윤치우의 상태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양.

    ‘무슨 일이라도 있나?’

    하지만 에르제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그는 핸드폰을 꼭 붙잡은 채 조그맣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나만 잘하면 돼, 나만 잘하면 돼.”

    나만 잘하면 된다니? 뭐를?

    에르제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마른세수를 한 윤치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으로 향했다.

    “치우 형, 어디 가?”

    “화장실 좀 다녀올게.”

    민주혁이 묻자, 윤치우가 단답을 하곤 대기실 문을 열고 나갔다.

    ‘……낌새가 좀 이상한데.’

    에르제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혹시?’

    그리고 윤치우가 조금 전까지 보고 있었던 커뮤니티 사이트에 들어갔다.

    그의 근처에 앉았기에 뛰어난 시력으로 무엇을 보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몇 페이지를 넘기며 보던 에르제는 이내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서 문제될 만한 건 없어 보…….’

    그러다가 어느 글 하나를 발견하고 그만 손을 멈췄다.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 이번에 1위 못 하면 무조건 츄 때문임. ]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글을 클릭해서 들어가자, 그곳에는 윤치우에 대해서 신랄하게 써 놓은 글이 있었다.

    [ ……그렇지 않아? 토트윈 내에서 츄가 하는 게 대체 뭐야? 춤도 그냥 그렇고, 노래도 솔직히 3등 아니야? 리더 명함 달고 있으면 뭐 하냐고. ㅋㅋㅋ 솔직히 썬이 메보 아니면 리드 가져가야 하는 수준이던데. 썬이 얼굴 천재라서 비주얼 센터를 한다고 쳐도, 츄보다 노래 잘하는 애들 많을 텐데;; 토트윈 진짜 다 좋은데, 그 ‘누구’ 때문에 볼 때마다 짜증……. ]

    악마도 이 글을 보았다면 울면서 지하로 내려갈 정도의 악의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

    그렇지 않아도, 윤치우가 최근 이것 때문에 엄청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멤버 전원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윤치우가 그런 여론을 뒤집기 위해서 미친 듯이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안단테도 마찬가지고.’

    그러나 그들은 그런 노력과 윤치우의 심정을 잘 알지도 못한 채 그저 비난만 하고 있었다.

    ― 진짜 내 마음이랑 똑같다. 우리 애들 츄 때문에 피해 보는 것 같아서 맴찢임.

    ┖ ㅠㅠㅠ 멤버 교체 이런 거 안 해 주나?

    이런 식의 악의적인 댓글도 그 밑에 주르륵 달려 있었다.

    당사자가 아니어도 읽고 있으면 기분이 더러운데, 당사자인 윤치우의 심정은 어떨까.

    윤치우 때문에 조용해진 대기실을 둘러보던 에르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화장실 좀.”

    에르제는 멤버들의 대답도 듣지 않고 서둘러 화장실로 향했다.

    윤치우의 상태도 상태였지만, 이대로 그가 무너져서 토트윈 활동에 지장을 받는 것은 곤란했다.

    ‘자칫하면 더 큰 문제가 될 수도 있고.’

    가뜩이나 장 대표의 별명이 ‘마이너스의 손’이지 않은가.

    그렇게 되면 그의 목표인 일족을 찾는 일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 자명했다.

    에르제는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화장실에 들어가 굳게 닫혀 있는 문 앞에 섰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잠시 기다리던 에르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윤치우.”

    “…….”

    대답이 없다.

    “윤치우? 안에 있어?”

    “…….”

    손가락으로 똑똑 노크를 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도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순간 좋지 못한 생각이 들어서 에르제는 재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는 문고리를 강하게 붙잡았다.

    꽈드드득―.

    마치 꽈배기가 비틀어지듯 쉽게 부서진 쇳덩어리가 챙그랑 소리를 내며 화장실 바닥에 떨어졌다.

    쾅!

    잠금 장치를 악력만으로 부순 에르제는 거칠게 문을 열어 젖혔다.

    그 안에는 새우처럼 몸을 웅크린 채 쓰러진 윤치우가 있었다.

    “……윤치우!!”

    에르제는 빠르게 그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나오지도 않는 구토를 하다가 그대로 정신을 잃고 쓰러진 모양이었다.

    “119…….”

    빠르게 구급차를 부르려던 에르제는 이내 핸드폰을 다시 껐다.

    전에 골목길에서 쓰러진 남자를 마주쳤을 때와 상황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건 안 돼.’

    에르제는 일단 다시 바닥에 윤치우를 눕혀 놓고는 눈을 꾹 감았다.

    당장 30분 뒤면 무대에 올라가야 할 시간인데, 구급차를 부르게 되면 무대에 오르는 게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분명 이 일 때문에 윤치우를 물어뜯을 사람들이 더욱 늘어날 것이 뻔했다.

    ‘어쩔 수 없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윤치우를 위해서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에르제는 다시 눈을 뜨고 눕혀 놓은 윤치우의 가슴팍에 손바닥을 올렸다.

    반대편 손톱으로 자신의 손등을 살짝 긁어내자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스으윽―.

    그러나 피는 윤치우의 옷 위로 흘러내리지 않고, 그대로 그의 몸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에르제는 그것을 보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재생 능력으로는 안 돼.’

    현재 윤치우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고 기력을 잃어서 혼절한 상태였기에 물리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 아니었다.

    차라리 원기를 회복시켜 주는 편이 나을 터.

    그래서 에르제는 자신의 ‘생명력’ 자체를 조금씩 윤치우에게 불어넣어 주었다.

    사각, 사각, 사각.

    갉작거리는 소리가 화장실 벽에 부딪혀 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으으…….”

    윤치우의 입에서 작은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다.

    “으……. 누……?”

    그가 새는 발음으로 입을 열자, 에르제가 다른 손으로 입을 막았다.

    “쉿!”

    지금 입을 열면 기껏 채워 넣은 생명력이 새어 나간다.

    윤치우는 입이 막힌 채 눈만 껌벅거렸다.

    그러나 무언가 따뜻해지고 차분한 기분이 들자, 햇살을 맞고 있는 강아지처럼 가만히 눈을 감았다.

    대략 5분 정도 시간이 더 흐른 뒤.

    아예 잠에 빠져 버린 윤치우를 보고 에르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에르제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그는 지친 얼굴로 바닥에 앉은 채 머리를 벽에 기댔다.

    ‘도대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길래.’

    생명력이 이렇게까지 떨어져 있을 줄이야.

    그런데 이제는 반대로 자신의 기운이 바닥까지 떨어진 기분이다.

    아마도 이런 상황이 오늘만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어쩐지 최근에 계속 화장실을 들락거리더라니.’

    에르제는 숨을 고른 뒤에 잠에 빠진 윤치우를 등에 업고 다시 대기실로 돌아갔다.

    “……!! 치우 형!!”

    그리고 멤버들은 그런 윤치우를 소파 위에 눕히고 안절부절못했다.

    에르제가 그런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야 안정을 찾고 잠이 든 거야. 그렇게 소란 피우지 마.”

    “…….”

    태현우가 그의 말에 빠르게 다가와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그의 입장에서는 다분히 당황스러운 상황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냥 1위가 가시권에 들어오자, 긴장이 되어서 화장실에 세수라도 하러 간 거 아닌가 여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윤치우가 기절한 것처럼 에르제의 등에 업혀서 대기실로 들어왔으니 말이다.

    만약 에르제가 윤치우의 뒤를 따라 화장실에 가지 않았다면…….

    거기까지 생각한 태현우가 눈을 꽉 감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주먹이 새하얗게 질리며 부르르 떨렸다.

    꽈악―.

    그런 태현우의 주먹 위를 에르제의 커다란 손이 감쌌다.

    “별일 아니야.”

    “…….”

    태현우는 다시 에르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조금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분노의 대상은 자기 자신이었다.

    “저게 어떻게 별일이 아니야! 내가…… 내가 치우 형을 여태 신경 못 써 준 거고, 멤버로서의 책임이…….”

    “정신 차려.”

    에르제는 거의 울먹거리기 시작하는 태현우의 어깨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그러고는 대기실 한쪽에 걸려 있는 시계를 보고 말했다.

    “우리가 무대에 올라갈 때까지 시간 얼마 안 남았어.”

    “……지금 무대가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

    에르제의 말에 언제 다가왔는지 민주혁이 대답했다.

    그는 물끄러미 에르제를 바라보며 말했다.

    “치우 형도 치우 형인데, 너도 지금 안색이 엄청 창백해.”

    민주혁은 손등을 들어 에르제의 이마에 가져다 댔다.

    “심지어 몸도 엄청 차고. 태현우.”

    그가 손등을 올려 둔 채로 태현우를 돌아보았다.

    “윤이 형한테 말해서 치우 형이랑 은우 빼고 무대에 올라가는 걸로 하자. 그게 불가능하면, 뮤직 큐 무대는 빠지는 걸로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래, 주혁이 말이 맞아. 내가 윤이 형한테 전화해 볼게.”

    태현우가 에르제의 대답도 듣지 않고 핸드폰을 꺼내려고 하자, 에르제가 그것을 빠르게 낚아챘다.

    ‘멀쩡한 뱀파이어한테 무대를 쉬라니.’

    그렇게 생각하면서 무대에 오르겠다고 말하려고 했던 에르제의 시야가 기울어졌다.

    바닥이 벽이 되고, 벽이 바닥이 되는 것처럼.

    “은우야!!”

    태현우의 외침과 함께, 에르제의 의식이 그대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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