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화
35화
투표는 공식 카페를 자주 방문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고려하여 총 7일간 진행되었고.
결정이 나기 직전, 최종적으로 20퍼센트 이상의 투표수를 보인 것은 2개의 이름이었다.
하나는 에르제가 의견을 냈던 ‘이브(EVE)’였고, 나머지 다른 하나는 팬들이 냈던 의견인 ‘졸라(JOLA)’였다.
투표 마감까지 남아 있는 시간이 3시간 정도 되었기에 팬들은 서로의 의견을 전개하며 공식 카페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만, 분위기는 그렇게 평화롭지만은 않았다.
― 아니, 졸라는 좀 아니지;;
― JOL이 잭오랜턴의 약자인 거까지는 인정한다고 해도, 굳이 졸라로 만들겠다고 A를 억지로 끼운 건 나도 아니라고 봄.
┖ 그럴 거면 더 좋은 의견을 내셨어야죠.
┖ 네, 냈는데 후보에도 못 끼었어요. ^^
똑같이 토트윈을 좋아하는 입장이다 보니, 서로 말을 조심하는 모양새이기는 했지만.
‘토트윈이 내일 오렌지 주스를 마실까, 애플 주스를 마실까?’ 같은 토론과 비교하자면 ‘팬클럽명’을 정하는 일은 훨씬 더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 솔직히 졸라 찍은 사람들, 토트윈의 팬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 좌표 찍힌 거 아니야?
┖ 그럴듯한데?
┖ 아, 좀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 애들아. ㅠ
개중에는 음모론까지 등장하면서 많은 추천수를 받기도 했다.
― 어차피 이브가 훨씬 어감도 좋고, 예뻐서 투표율로 밀릴 일도 없을 듯. 지금도 이브가 40퍼대고, 졸라가 20퍼댄데 어케 역전행.
그러나 어느 한 팬이 쓴 댓글처럼, 사실 졸라가 이브를 이길 가능성은 낮기는 했다.
다만, 진짜로 타 팬이나 그냥 토트윈을 싫어하는 이들이 꼬이기는 했다.
최종 결정 30분 전.
졸라가 이브와의 차이를 10% 미만까지 줄인 탓에, 이브를 지지하는 팬들의 심장이 쫄깃쫄깃해졌다.
그리고 그런 현황을 토트윈 멤버들도 지켜보고 있었다.
“진짜로 졸라가 되는 거 아니야?”
“졸라 여러분~~~, 졸라 좋아해요~~~~!”
윤치우가 걱정스러운 투로 말하자, 태현우가 거실을 빙글빙글 돌면서 그의 속을 긁었다.
“태현우!”
윤치우가 쏘아보자, 태현우는 찔끔하며 빠르게 자리에 앉았다.
“아~, 왜? 재밌기만 하구먼.”
“그래도 진짜 졸라가 되면 팬들을 어떻게 불러.”
“그렇기는 해. 괜히 악편 당하기 딱 좋은 말이기도 하고.”
윤치우의 말에 민주혁이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태현우가 이번에는 에르제를 물고 늘어졌다.
“은우야! 너는 어때? 이브가 좋아, 졸라가 좋아?”
“흠.”
에르제는 팔에 달라붙는 태현우를 밀어내며 대답했다.
“이브는 내가 낸 의견인데.”
“아!”
그제야 그 사실을 깨달은 태현우가 소파 위에 엎어졌다.
“단테……. 너도……?”
“당연한 얘기 아니에여?”
오히려 안단테는 한심하다는 듯이 그를 보며, 에르제 옆에 딱 달라붙었다.
“나는 은우 형 아이디어가 제일 좋아여.”
“박쥐다!!”
태현우가 배신감에 물든 눈빛을 꾸며 내며 말하자, 안단테가 웃음을 빵 하고 터뜨렸다.
그리고 그 와중에 에르제는 ‘박쥐’라는 말에 흠칫해서 태현우를 바라보았다.
‘괜히 신경 쓰이네.’
그날 밤 이후로, 에르제는 태현우를 은근히 신경 쓰고 있었다.
혹시나 들었는데 모르는 척하는 건 아닌지, 아니면 진짜 모르는 건지 의심스러워서였다.
하지만 평상시에 자신의 속을 잘 드러내지 않는 녀석이라 그걸 확인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에르제는 이제는 우는 척을 하고 있는 태현우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리 세계에서 태어났으면, 분명 배우를 했을 거야.’
그가 보기에 태현우는 가수보단 배우가 더 잘 어울리는 듯했으니까.
항상 웃는 얼굴에 쾌활한 분위기였지만, 결코 남에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 보이는 타입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오히려 저쪽이 제일 솔직한 편이지.’
에르제는 민주혁을 보며 피식 웃었다.
저쪽은 오히려 감추려고 하는데, 잘 감추지 못하는 타입이었다.
보이는 것과는 다른 둘의 모습을 관찰하던 에르제는 안단테의 말에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결과 떴어여!!”
“오! 뭔데?! 졸라?”
“……최악은 아니었으면 하는데.”
다들 안단테에게로 시선을 모으자, 안단테가 “오!”라고 외치며 거실 한복판으로 나갔다.
“형들한테 이런 관심……. 오랜만이에여!”
왠지 뼈 있는 말에 민주혁은 피식 웃었다.
“내 핸드폰으로 직접 확인할까?”
“앗, 아녀! 아녀, 아녀!”
안단테가 급하게 대답했다가 이내 민주혁을 보고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나빴어여.”
“주혁이 정체는 마왕이야……!!”
태현우가 속삭이는 척하면서 다 들리게 말하자, 옆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분위기가 잠깐 어수선해지려 하자, 윤치우가 급히 정리했다.
“자, 우리 팬클럽명 발표는 단테가 하는 걸로! 공개해 주세요, 안단테 씨!”
윤치우가 말하자, 안단테는 의기양양하게 핸드폰을 들어 올렸다.
“최종적으로 결정된 팬클럽명은……!!”
안단테가 말을 길게 늘어뜨리자, 태현우가 입으로 “두구두구.” 하는 소리를 내며 맞장구를 쳐 주었다.
에르제도 재미있어 보여서 손바닥으로 탁자를 두들겨 주며 호응했다.
“60초 후에……. 으억!!”
광고 후에 돌아오겠다는 흔한 멘트를 치려던 안단테는 참다못한 태현우에게 이단 옆차기를 당했다.
물론 세게 찬 것은 아니고, 가볍게 툭 민 정도였지만 말이다.
그러나 안단테는 과장하며 넘어지고는 엎어진 채로 말했다.
“팬명은…… 이……브.”
무슨 다잉 메시지를 전하듯 죽어 가는 목소리로 말한 안단테는 핸드폰을 툭 떨구며 눈을 감았다.
“어…… 어어…….”
태현우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축 늘어진 안단테를 들어 올렸다.
“다…… 단테야…….”
그러고는 울컥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고개를 천장을 향해 들어 올렸다.
“안단테에――――!!”
남은 3명은 둘의 명연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 주었다.
덜컹―.
그때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야! 단테가 왜!!”
태현우의 외침을 들었는지, 이윤이 황급히 거실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쓰러져 있는 안단테와 울부짖던 태현우를 발견하곤 그대로 몸이 굳었다.
“……무…… 뭐야, 단테야!!”
이윤이 재빠르게 다가와서, 태현우의 손에서 안단테를 빼앗아 갔다.
안단테는 이대로 죽은 척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벌떡 일어나야 하는지 인생 최대의 고민에 빠졌다.
‘……?’
그리고 에르제는 그런 이윤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다 같이 연기하는 시간인가?
옆을 돌아보니 다들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에르제는 순간, 좋은 생각을 떠올렸다.
꼭 이런 상황에 등장하는 역할이 기억이 난 것이다.
최근 영어 공부를 하면서 보았던 ‘FBI’의 장면 말이다.
에르제는 대충 눈에 보이는 노트를 하나 집어 들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병원으로 가야 하는 건가, 하고 고뇌에 빠진 이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피해자의 발견 시간이 어떻게 됩니까?”
“……뭐? 피해, 뭐?”
이윤은 에르제를 마치 미친 사람 바라보듯 보았으나, 에르제는 꿋꿋하게 자신이 맡은 역할에 충실했다.
“현장을 보존해야 하니 더 이상 주변 현장을 훼손시키지 마시고 자리를 비켜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피해자를 발견한 시간은?”
“…….”
이윤이 멍한 얼굴로 에르제를 보고 있자, 실눈으로 모든 상황을 보고 듣고 있었던 안단테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큽…….”
그리고 그것이 웃음소리임을 깨달은 이윤은 그만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서 소리쳤다.
“야!!”
* * *
이윤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자신에게 몰래카메라를 하려고 했던 것도 아니고, 그냥 장난을 치던 순간에 자신이 나타나서 생긴 일이라 뭐라고 욕을 할 수도 없었다.
그 탓에 안단테를 붙잡고 안절부절못하던 자신의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져서 연신 한숨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윤에게 에르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윤은 이런 거에 약하네요.”
“뭐가?”
퉁명스럽게 묻자, 에르제는 기억하기 싫은 기억을 후벼 팠다.
“저번에 녹음실에서 귀신 사건 때도 그렇고, 오늘 일도 그렇고…….”
“야, 그 이야기 하지 말랬지. 바닥 보려고 했다니까.”
“아하.”
에르제가 하나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아하.”라고 하니, 이윤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됐다.”
이윤은 손을 내저으며, 자신이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꺼냈다.
“아무튼, 너희도 그럼 다 확인한 거지? 최종적으로 팬클럽명은 은우가 냈던 ‘이브’로 확정됐어.”
“넵.”
“좋아여.”
다들 수긍하자, 이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획 파트 쪽에서 공지할 거니까 일단 그렇게 정해졌다는 것만 알고 있으면 돼.”
그러나 그의 말에도 멤버들은 뒷말을 기다렸다.
이런 이야기는 톡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내용이었으니, 당연히 이곳을 방문한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고 추측한 것이다.
이윤도 그런 멤버들의 모습을 눈치챘는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제 음방 일정도 4주 차 끝나면 없고, 다음 앨범 전까지 딱히 특별한 일정은 없잖아?”
“그렇죠?”
“네.”
“그래서 대표님께서 그 시기에 자컨을 진행해 보는 건 어떤지 물어보시더라고.”
“자컨이요?”
태현우는 생각지도 못한 말에 입을 벌리며 물었다.
“자체 콘텐츠?”
“어어.”
이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멤버들을 하나씩 바라보았다.
“보통 음방 일정이 끝나면 여기저기 행사 다니는 게 일반적이기는 한데, 대표님이 반대하셨거든. 돈보다는 일단 최대한 팬덤의 크기를 키우자고 하시더라.”
“저는 찬성이요.”
민주혁은 현실적으로 고려해 보다가 그 의견이 마음에 들었는지 손을 들고 찬성했다.
“저두여!”
그리고 안단테도 재미있을 것 같다면서 따라서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이윤이 남은 3명을 바라보자, 윤치우와 태현우도 곧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괜찮아요.”
그리고 에르제도 마지막으로 동의했다.
뭐가 어찌 되었든 인지도를 올리고 팬덤의 크기를 키우겠다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모두의 동의를 얻은 이윤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고, 그 모습을 본 민주혁이 입을 열었다.
“윤이 형, 그런데 다음 앨범 나올 때까지 시간이 꽤 남았을 텐데…… 그게 자컨 하나로 커버가 될까요?”
“아.”
이윤은 그제야 손가락을 튕기며 입을 열었다.
“그거 너희가 각자 1개씩 아이디어를 내서 할 거야.”
“……? 그럼 5개를 하겠다고요?”
“응.”
이윤은 태연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각자 아이디어 낸 걸로 5개 진행할 거야. 영상은 편집 완료되는 대로 바로바로 올라갈 거고.”
“허어.”
태현우는 미래를 생각하며 소파에 축 늘어졌다.
분명 컴백 준비를 하면서 자체 컨텐츠를 같이하게 될 텐데.
역시 모카 엔터에서는 주가가 오르기 시작한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태현우는 떨리는 눈동자로 이윤을 바라보며 물었다.
“저희 휴가도 없는…… 건가요?”
“음……. 아마 일정이 빡빡할걸. 컴백 전에 이틀 정도는 날지도?”
이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 밖으로 나가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일단 마지막 음방이 제일 중요하니까 자체 컨텐츠는 아이디어만 생각해 놓고 있다가 이후에 제출해.”
쿵―.
문이 닫히고, 소파에 늘어져 있던 태현우가 중얼거렸다.
“내 자컨은 ‘하와이에서 휴가를 즐기는 토트윈’으로 할 거야.”
윤치우가 그런 태현우를 토닥이며 말했다.
“그래, 그래. 그때 가서 하고 싶은 거 다 하는 걸로 하고, 일단 마지막 생방부터 잘 마무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