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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34화 (34/307)

제34화

34화

최근 토트윈과 관련해서 SNS 등과 같은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화제 중 하나는 ‘공식 팬클럽명’이었다.

소속사에서 공식 팬클럽명을 정하는 방법은 꽤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이번에 장 대표가 선택한 방법은 그것 중 2가지를 합친 것이었다.

즉, 회사에서 정해서 투표에 붙이는 것과, 팬들에게서 공모를 받는 것.

장 대표는 회의실에 모인 이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일단 회사 내에서 4개의 후보를 정하고, 팬들에게서 2개를 선정하여 총 6개의 팬클럽명 중 어느 것이 좋을지 투표에 부칠 겁니다.”

“6개면 조금 많지 않을까요?”

A&R 쪽에서 나온 의견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장 대표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왕 하는 거, 후보군도 최대한 많이 만들어 놓자고. 우리보다는 팬들의 의견을 최대한 많이 반영해서.”

‘그렇게 할 거면 공모전에서 4개를 뽑아야 하는 거 아닌가?’

에르제는 장 대표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가 결정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기에 그냥 가만히 돌아가는 모습을 관망했다.

“아무리 이상한 게 나와도 뭐라고 하지 않을 테니까 기탄없이 이야기해 보세요.”

장 대표가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며 말하자, 다들 고민에 빠졌다.

이런 거 할 거면 미리 생각할 시간이라도 좀 주든가.

‘참신함’과 ‘번뜩임’ 같은 것을 얻겠다고, 사전 공지도 없이 회의를 진행해 버리니 다들 침묵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침묵이 10분 넘게 이어지자, 장 대표가 토트윈이 앉아 있는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희들은? 뭐 생각나는 거 없어?”

“음…….”

윤치우가 고민을 하다가 대답했다.

“저희 세계관이랑 연관을 지어서…… 판타지아 같은 느낌은 어떨까요?”

“판타지아라……. 나쁘지 않네. 또?”

“아니면 잭오랜턴 같은 것을 넣는 건 어떨까여?”

안단테의 의견에, 이번에는 다들 흥미가 생긴 듯한 눈빛을 보였다.

“토트윈의 뜻이 Trick or Treat이니까 들어가도 괜찮은 것 같네. 잭오랜턴도 핼러윈의 필수 소품 중 하나고. 다들 그쪽으로 머리를 굴려 보는 것도 좋겠어.”

“그러네요. 좋은 방향인 것 같습니다.”

다들 동의를 하는 모양새가 되자, 안단테가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확실한 방향이 잡혀서 그런지, 그 뒤로는 꽤나 많은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건 별로인 것 같은데요.”

“왜요? 충분히 직관적인 것 같은데.”

“딱 이거다! 하는 느낌이 들지 않잖아요. 직관적이라기보단 너무 노골적이에요.”

“아니, 이 양반이……! 그럼 당신이 의견을 내든가! 여태 의견 하나도 안 내놓고 왜 아까부터 계속 태클만 겁니까?”

“생각 중이잖아요, 생각 중! 그런 의견을 낼 바에야 차라리 말을 안 하는 게 낫지!”

물론 그게 꼭 순탄했다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직 어려서 미성숙해.’

에르제는 외모적으로는 그의 나이의 적어도 2배는 될 것 같은 이들을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들 나이면, 그의 종족 기준에서는 거의 갓난아기 수준이니 그렇게 생각할 만도 했다.

‘최소한 500년은 살아야 이제 말 좀 뗐구나, 하는 거지.’

그렇게 한참을 인간들의 싸움을 구경하고 있다가 에르제는 윤소희 실장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왜인지 자신을 쳐다보면서 눈웃음을 짓고 있었다.

‘…….’

왠지 쳐다보는 시선이 꺼림칙해서 에르제가 인상을 찌푸리자, 그녀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은우는 아직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데, 뭐 좋은 의견 없어?”

그녀의 말에 다른 이들도 시끄럽게 떠들다 말고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개중에는 ‘뭘 그런 걸 서은우한테 물어봐’라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지만.

오히려 지금껏 에르제가 쳤던 사고들을 생각하면서 뭔가 재미있는 의견이 나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에르제는 이런 시선이 익숙한지 그다지 부담스러워하는 낌새는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무덤덤한 표정으로 책상 위에 핸드폰을 올렸다.

“제가 핼러윈에 대해서 핸드폰으로 좀 찾아보았는데요.”

그러고는 간단한 설명을 이어 갔다.

“핼러윈의 어원이 ‘올 핼러우스 이브(All Hallow’s Eve)’에서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흐음……. 그래서?”

“그래서 제가 아이디어를 하나 얻었는데, ‘이브’라고 하는 건 어떨까요?”

“……이브?”

“네.”

윤소희 실장은 흥미가 당기는 얼굴로 물었다.

“의미는?”

에르제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저희가 오는 것을 기다려 주는 팬들의 심정을 표현하는 좋은 단어가 될 것 같아서요. 크리스마스이브처럼 핼러윈 이브가 되는 거죠.”

“오…….”

“좋은데?”

여태까지 나왔던 의견들이 전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괜찮은 의견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만족했다는 듯이 입을 모았다.

“저는 지금까지 나온 것들 중에서는 이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어감도 좋고, 뜻도 제일 좋은데요?”

“핼러윈의 어원인가? 그거랑 관련이 있으니까 의미도 있고……. 뭔가 설레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저도요. 일단 후보군 중 하나로는 무조건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다들 엄지를 치켜세워 주자, 에르제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다시 관망 모드로 돌아갔다.

그는 책상 밑에서 다리를 꼬며, 예능 촬영을 했던 때를 떠올렸다.

‘저번에 예능 끝나고, 영어 사전을 통째로 외워 두기를 잘했네.’

당시 ‘블랙 윈도우’ 사건을 계기로.

에르제는 대한민국에서 영어 사용의 빈도가 굉장히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지어 아이돌이라는 말도 영어에서 온 말이지 않은가.

그래서 에르제는 예능 촬영이 끝난 다음 날.

곧바로 민주혁을 찾아가 영어 사전을 빌렸고, 두께만 책 3권은 될 것 같은 사전을 통째로 외워 버렸던 것이다.

실생활에서 영어권의 인간들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최소한 뜻을 몰라서 고생할 일은 이제 없어졌다.

그 때문에 이번에 이브라는 의견을 내기에도 수월했고.

‘아.’

그러고 보니, 저번에 라이브 방송을 켰을 때.

그때 보았던 통역 마법이 통하지 않은 문자도 영어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무튜브에 달리는 댓글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나중에 심심하면 다시 한번 찾아봐야겠어.’

에르제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자, 그의 의견을 제외한 다른 3개의 후보군도 얼추 추려졌는지 장 대표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고는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러면 이 4개의 후보를 공식 카페에 올리는 것으로 결정하자고.”

“네.”

공식 카페를 담당하고 있는 부서에서 그 일을 맡기로 하고, 장 대표는 토트윈에게 이제 나가 보라고 손짓했다.

“이제 너희들은 나가 봐도 괜찮아.”

“네, 수고하십시오.”

민주혁이 먼저 일어나면서 인사를 하자, 다른 토트윈 멤버들도 꾸벅 인사를 하고 회의실 바깥으로 나왔다.

나오자마자 안단테가 굳게 닫힌 회의실 문을 보며 툴툴댔다.

“우리 컴백 회의인데, 우리도 끼워 줘야 하는 거 아니에여?”

그의 말에 윤치우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번에 블링블링 선배님들 것도 같이 회의한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그럴 거야. 그리고 어차피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면 우리 불러서 또 회의할 거야.”

“그걸 형이 어떻게 알아?”

태현우가 궁금한 얼굴로 묻자, 윤치우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선배님이 알려 주셨어. 오늘 우리가 회의에 참석한다고 하니까 ‘벌써 윤곽 잡혔어?’라고 물으시더라고.”

“아하.”

그렇게 담소를 나누며 차에 올라타자, 태현우가 에르제를 돌아보며 말했다.

“나는 이브가 제일 마음에 들어. 그게 뽑혔으면 좋겠다.”

“나도.”

“저두여!”

“……그게 제일 괜찮았지.”

그러자 다른 3명의 멤버들도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덧붙였다.

에르제는 그들의 말에 팔짱을 끼고, 당연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까지 자신이 지어 준 마을의 이름만 몇 개였던가?

심지어 음유시인으로 활동할 때는 곡의 제목도 자신이 정했었다.

에르제는 별것 아니라는 투로 대답했다.

“이게 다 경험의 차이란다.”

“저런 것만 안 하면 좋을 텐데.”

태현우가 으휴, 하는 표정을 짓자, 마지막에 차에 올라탄 이윤이 핸드폰을 보다가 그들에게 말했다.

“방금 대표님한테 톡 왔는데, 너희 숙소 가면 영상 하나 찍어야겠다.”

* * *

공식 팬클럽명과 관련한 회의가 끝이 난 뒤 그날 저녁 8시.

토트윈의 공식 카페에는 영상 하나가 올라왔다.

‘Trick or Treat!!’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영상에 토트윈이 등장했다.

그들은 각자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카메라를 향해 옹기종기 모여서 손바닥을 펼치고 있었는데, 그 손바닥 위에는 사탕과 초콜릿이 잔뜩 올려져 있었다.

영상 속 토트윈 멤버들은 다시 한번 다 같이 ‘Trick or Treat!’라고 외치면서.

[ 안녕하세요, 팬 여러분들! 토트윈입니다!! ]

하고 인사를 하는 것으로 영상이 시작되었다.

그들이 손에 들고 있던 사탕과 초콜릿을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자, 카메라가 그들의 모습을 전신으로 잡아 주었다.

그들은 밤 시간에 맞춰서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들이 잘 때 입는 잠옷은 아니었고.

회사에서 영상을 위해 그들의 이미지와 어울리는 것으로 새로 구해다 준 것이었다.

그중 초록색 잠옷을 입고 있는 태현우가 윤치우를 보며 물었다.

[ 그런데 저희가 이 영상을 찍게 된 이유는 뭐죠?! ]

[ 그건 저희가 팬 여러분들께 부탁드릴 것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

윤치우는 이렇게 말하며, 카메라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아마 굉장히 오래 기다리셨을 것 같은데요. 이번에 정식 팬클럽명을 정하려고 합니다! ]

[ 와아아아!! ]

[ 짝짝짝짝! ]

멤버들은 윤치우의 말에 입으로 박수 소리를 내면서 열렬하게 호응했다.

그 모습에 민주혁이 순간 빵 터지면서 분위기가 혼란스러워졌지만, 윤치우가 금세 수습을 하고 본론을 꺼냈다.

[ 그래서 저희 회사에서 2개! 저희가 2개! 그리고 나머지 2개는 팬 여러분의 공모전을 통해서 총 6개의 후보를 추릴 생각이에요. ]

영상은 그렇게 6개의 후보가 공식 카페에 올라갈 예정이며, 최종 결정은 팬 투표를 통해서 정하겠다는 내용을 전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토트윈 멤버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작별 인사를 하는 것으로 영상은 끝이 났고.

영상이 실려 있던 본문에는 공모 방법과 관련한 내용들이 PDF 파일로 정리되어 올라와 있었다.

― 드디어 우리도 팬클럽명이 생기는 거야!?

― 토트윈 애들이 이제 우리 이름을 불러 줄 수 있어. ㅠㅠ

┖ 알못 소속사라고 욕 엄청 했는데, 빠른 피드백 굿!

― 아이디어 천재님들 예쁜 팬클럽명 정해 주세요!! 미쑵니다!

┖ 222

┖ 33333 먼발치에서 응원할게요!!

― 애들도 의견을 2개나 냈다는데, 그것도 뭔지 궁금하네.

┖ 그 와중에 잠옷 졸귄데, 누구 아이디어야? 상 주자.

― 애들 퍼스널 컬러가 저렇게 정해진 건가? 다 잘 어울린다.

갑작스럽게 팬클럽명 공모와 관련한 영상이 올라왔음에도, 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댓글을 달았다.

최근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토트윈의 공식 카페는 팬클럽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로 뜨겁게 달궈지기 시작했고.

3일 뒤.

공모까지 마친 모카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총 6개의 후보를 어떤 것으로 정할지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같은 날, 공식 카페에 팬들이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는 6개 팬클럽명 후보가 게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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