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화
33화
에르제는 태현우가 깨지 않도록 창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그러자 곧 활강하는 소리와 함께 창틀에 무언가가 거꾸로 매달렸다.
소리의 원인은 바로 이 녀석이었다.
“…….”
에르제는 검은색의 물체를 바라보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나직이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세리나.”
완전하게 뱀파이어로 변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기에 이제야 자신을 찾아온 모양이다.
그녀는 아직 박쥐의 모습으로 창틀에 거꾸로 매달려 있었는데.
그렇다고 안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기에 세리나는 하고 싶은 말을 초음파로 쏠 수밖에 없었다.
[ 로드……. 제가 돌아왔습니다. ]
“그래, 고생했어.”
인간의 몸에서 다시 뱀파이어로 변하는 과정이 아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자신이 준 핏방울을 인간의 몸으로 받아 내는 건 끔찍한 경험일 테니까.
에르제가 그에 대한 걱정을 담아서 고생했다고 말하자, 세리나는 작은 얼굴을 푹 숙였다.
[ 별거 아니었습니다. ]
에르제는 창틀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턱을 괴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세리나를 바라보았다.
“근데 가족들은? 들키지는 않았고?”
[ 그럴 가족들이 따로 없습니다. 저를 낳아 준 부모는 시골에 계시고, 저는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까요. ]
“……너, 결혼 업체 회사에 다니지 않아?”
[ 그렇다고 꼭 결혼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
“……그것도 그렇지.”
에르제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다가 문득 든 생각에 세리나에게 물었다.
“갈증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어?”
뱀파이어가 되면 필연적으로 일정 주기마다 갈증을 느끼게 되어 있다.
그것을 무시하면 물론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그보다 당장 생명 유지가 어려울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피를 준 뒤로 거의 한 달이나 지났기에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에르제의 예상 밖이었다.
[ 그게…… 사실 로드를 찾아온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저도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아직까지 갈증이 느껴지지 않아서 말입니다. ]
“……?”
에르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럴 리가 없는데.”
[ ……. ]
그게 가능한 일인가?
‘주기가 변했을 가능성도 고려를……. 아! 설마?’
에르제는 곧 자신에게 일어났던 변화에 생각이 미쳤다.
“축복…… 때문이라고?”
[ 축복이요? ]
“……아니야.”
에르제는 그들에게 민감한 이야기일 수도 있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뱀파이어에게 신은 그다지 달가운 존재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에르제는 심각한 표정으로 화제를 조금 바꾸었다.
“앞으로 주기적으로 나한테 보고하도록 해. 갈증이 나든, 그렇지 않든 둘 다.”
[ 주기적이라면…… 제가 3일마다 한 번씩 이곳으로 찾아오면 되겠습니까? ]
“아니.”
에르제는 ‘무슨 큰일 날 소리를 하는 거야?’ 하는 눈빛으로 세리나를 바라보았다.
“여기에 오는 것은 위험하지.”
[ ……아. ]
생각해 보니 에르제가 혼자 살고 있는 집이 아니었다.
그리고 앞으로 천년만년 아이돌을 할 예정인 에르제에게는 더욱이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에르제가 듣는다면 기겁할 생각을 하던 세리나에게 그는 핸드폰을 보여 주었다.
“이걸로 해.”
[ 아! 네. 문자로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
“그래. 몸조심하고.”
[ 예, 로드. 그리고 다른 일족을 찾게 되면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세리나는 그 말을 남기고 이내 창틀에서 내려와 날개를 퍼드덕거리며 날아갔다.
뱀파이어로 완벽하게 변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고, 갈증에 대한 궁금증도 털어놓았으니 더 있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홈마 계정에 보정된 사진을 업로드 해야 할 일도 있고 말이다.
세리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밤하늘을 날아갔고, 에르제는 이를 지켜보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
그리고 에르제는 태현우와 눈을 딱 마주쳤다.
자고 있지 않은 태현우와 말이다.
그는 입을 벌린 채, 천천히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어디까지 들었지?’
에르제는 그렇게 묻고 싶었으나, 손가락으로 창가를 가리킨 태현우가 더 빨랐다.
“너 설마…….”
에르제는 침을 꿀꺽 삼켰다.
“박쥐랑 이야기한 거야?”
설마…… 내용까지 들었나?
세리나가 이야기한 것은 초음파 형태라서 듣지 못했겠지만, 자신이 이야기한 것은 충분히 들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에르제는 침대에서 완전히 몸을 일으키려는 태현우에게 재빠르게 다가갔다.
다행히 아직 표정이 풀려 있는 것으로 보아, 잠을 완전히 떨쳐 낸 상태는 아닌 모양이었다.
‘……어떻게 하지?’
하지만 달리 선택지가 없었다.
태현우의 정신을 조작했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니까.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믿게…… 하는 수밖에.’
지금은 일단 얼버무리고 내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으로 믿게 만드는 게 최선이었다.
에르제가 한층 날카로워진 눈으로 태현우를 바라보자, 그는 여전히 잠에 취한 채 중얼대고 있었다.
“너…… 뭐, 그런 능력 있는…… 거야? 동물이랑 이야기하고 막 알아듣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에르제는 최대한 저음으로 목소리를 깔았다.
인간이 들었을 때, 가장 편안하게 들리는 음역대의 소리.
“현우야.”
나긋나긋하게, 그리고 차분하고 고요하게.
에르제는 그렇게 목소리를 내었다.
“여긴…… 꿈속이야.”
“……어?”
“여긴 너의 꿈속이야.”
태현우가 점점 풀리기 시작하는 눈으로 에르제를 바라보았다.
태현우가 손가락으로 에르제의 볼을 쿡 찔렀다.
세게 찔러 놓고, 태현우가 그렇게 물었다.
“……아파?”
“안 아파.”
좀 쑤시는 것 같기는 한데.
에르제는 억지 미소를 지은 채 태현우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눌러 다시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침대에 걸터앉은 채, 반대편 손을 태현우의 심장 부근에 가져다 댔다.
“편안하게 심호흡을 합니다.”
그러고는 무튜브에서 보았던 ‘명상의 시간’을 떠올리며, 심장 위에 얹은 손으로 토닥토닥을 해 주었다.
일정한 리듬으로 손을 두들겨 주면서 에르제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당신은 녹색 빛으로 가득한 숲속에 있습니다. 토끼도 보이고, 사슴도 보이네요.”
“……어어…….”
“나뭇잎 사이로 따뜻한 햇살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따뜻……한 햇……살.”
“당신은 그 햇살을 맞으며 드러눕습니다. 그리고 눈을 감고, 평화로운 바람을 느낍니다. 풀냄새가 나고 조금씩…… 아주 조금씩,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됩니다.”
“…….”
“서서히, 느리지만 깊게, 아주 깊게 잠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
거기까지 말하고 손바닥만 토닥거리고 있자, 이내 다시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후우.”
에르제는 참았던 한숨을 길게 내쉬고 태현우가 깨지 않도록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들리자, 에르제는 그제야 식은땀을 닦아 냈다.
이래서야 침대에 다시 누워 잠자기도 어려울 듯싶었다.
‘앞으로 절대 찾아오지 말라고 해야지.’
문명에 뒤처진 세리나를 원망하던 에르제는 샤워를 하기 위해 방 밖으로 나갔다.
* * *
다음 날 오전.
차에 타고 회사로 향하는 길에 태현우는 개운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 어제 은우 꿈 꿨다?”
“으악.”
“은우를?”
안단테는 기겁했고, 윤치우는 흥미를 보였으나, 민주혁은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일단 꿈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다행이라고 여긴 에르제도 입을 다물고 차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박쥐 얘기라도 꿈이니까 상관은 없겠지.’
태현우는 멤버들의 반응에 신이 나서 자신의 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 내용은 에르제의 예상과는 사뭇 달랐다.
“어제 분명히 잠에서 깬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까 아니더라고.”
태현우는 밝은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꿈속에서 내가 숲속에 있더라.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아주 고요한 숲에!”
“음……. 그래서?”
“막 햇살도 따뜻하게 비추고, 동물들도 뛰어놀고……. 그런 숲이었는데 옆을 보니까 은우가 있는 거야.”
“뭐임. 둘이서 숲에 갔던 거예여?”
안단테의 말에 태현우가 고개를 저었다.
“모르지 나야. 그냥 그런 상황이었어. 근데 갑자기 은우가 내 이마를 눌러서 바닥에 머리를 박아 버리는 거야. 팍! 하고.”
“?”
갑자기?
에르제가 어이가 없어서 그를 쳐다보았으나, 태현우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그리고 갑자기 내 귀에다 대고 속삭이더라고.”
급 장르 변경에 안단테가 긴장해서 물었다.
“뭐, 뭐라고 했는데여?”
태현우가 음산한 목소리를 흉내 내면서 대사를 읊었다.
“여기에 오는 건 위험하지.”
“으으.”
갑자기 범죄 스릴러가 되었다.
에르제는 자신이 세리나에게 했던 이야기랑 짬뽕이 되자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그렇게 되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자, 태현우가 말을 이었다.
“그러고 나서는…… 몸조심해야지.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와! 완전 소름이 돋아 가지고.”
“그래서여!? 은우 형이 현우 형을 죽이고 그런 거예여?!”
결말을 듣고 싶어 하는 안단테에게 태현우가 손가락을 저었다.
“안타깝게도 내 기억은 거기까지. 근데 그 이후로는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거 보니까, 아마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이 인간이 멀쩡한 뱀파이어를 살인자로 만드네.
에르제가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자, 윤치우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면 잠은 잘 잔 건 맞아?”
“아아, 응. 이상하게 일어나니까 몸이 개운하더라고.”
안단테가 그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손뼉을 짝! 하고 쳤다.
“혹시 그런 거 아니에여? 막, 우리 대박 나는 그런 거!?”
쓸데없는 의미 부여를 하고 있는 안단테에게 태현우도 “오, 그런가?”라며 맞장구를 치고 있을 때.
이윤이 그런 그들을 보며 피식 웃고는 말했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네.”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차를 세웠다.
“도착했다. 회의하러 가자, 얘들아.”
* * *
‘크네.’
에르제는 그들에게 배정되어 있는 자리에 앉으며 생각했다.
회의실은 꽤 넓었는데, 그들 말고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도대체 이 많은 사람들과 같이 ‘컴백’에 관한 무슨 회의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홍보팀부터 시작해서 프로듀싱과 관련된 팀 등등 테이블 위에는 그들의 부서를 나타내는 세모로 접은 종이까지 놓여 있었다.
그렇게 그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자, 딱 시간에 맞춰서 장 대표와 윤 실장이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다들 왔나?”
장 대표가 가운데 자리에 앉으며 물었고, 윤 실장은 그 옆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네요.”
“흠. 좋아.”
장 대표는 씩 웃으며 모인 이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토트윈까지 회의에 참석시킨 게 의아하긴 할 텐데, 오늘 안건이 한 가지 더 있어서 말입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앞에 놓인 서류들을 책상에 탁탁, 쳐서 정리하고 다시 내려놓았다.
“컴백에 관한 이야기는 뒤에 하기로 하고, 일단은 이 안건부터 처리하는 걸로 할까요?”
모든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장 대표에게로 쏠렸다.
그는 그런 그들의 시선을 마주하다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아직까지 토트윈을 좋아해 주시는 팬분들의 팬클럽 이름이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아……!”
그제야 그들은 토트윈 쪽을 흘긋 쳐다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공식 팬클럽 이름을 정하는데, 토트윈의 의견이 빠질 수야 없지 않은가.
장 대표는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통통 두들기며 말했다.
“총 4개의 후보를 뽑아서 팬 카페에 게재할 생각입니다. 다들 좋은 의견이 있으시면, 기탄없이 이야기해 주세요.”
장 대표의 말과 함께,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