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30화 (30/307)

제30화

30화

“가능해요.”

에르제가 별 고민도 없이 대답하자, 장 대표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되물었다.

“진짜?”

“예.”

에르제가 다시 한번 힘을 주어 답하자, 장 대표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 가능하다니까 됐네.”

책상 위를 빠른 박자로 두들기던 장 대표가 말을 덧붙였다.

“그러면, 2달 내로 완성시켜서 컴백 일정 잡자고. 은우는 곡 완성되는 대로 바로 알려 주고. 일단 컴백 계획은 봄에 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으니까.”

사실 2달은커녕 솔직히 하루면 된다. 이미 1,000년도 전에 완성한 곡이니까.

심지어는 그런 곡들이 대략 1,400개 정도는 더 있었다.

그러나 에르제는 굳이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고.

‘하루 만에 주면 분명 더 달라고 하겠지.’

매우 현실적인 결괏값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루도 안 돼서 곡을 주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늘어날 것이 뻔했으니까.

게다가 그렇게 여러 곡을 앨범에 넣게 된다면, 너무 자신의 곡이 많이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되면, 또 팬들끼리 싸우게 되지 않겠는가.

‘윤치우랑 안단테한테 또 하는 게 뭐냐고 비난하겠지.’

그렇지 않아도 윤치우와 안단테를 향한 비이성적인 공격이 마음에 걸리던 차였다.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 멤버 사랑을 하고 있는 에르제를 보며, 장 대표가 흐뭇한 웃음을 지었다.

“좋아, 아주 좋아.”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추가적으로 팬 사인회 한 번 더 열고, 애들 예능 나가는 거 이제 기사로 슬슬 풀리기 시작할 테니까 준비 잘 시켜라.”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아! 그리고 애들 개인 SNS는 일단 막아 둬. 회사 허락을 받고 올리게 하거나 적어도 윤이 네가 검열 한 번 해라.”

“……네.”

이윤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 * *

팬 사인회와 에르제의 긴급 라이브 방송이 있고 난 하루 뒤.

이윤은 호들갑을 떨면서 숙소로 들어왔다.

“얘들아!! 38만 장이다!! 38만 장!!”

숙소가 떠나가라고 큰 소리를 지르는 이윤 때문에 멤버들은 방에서 나오며 미간을 찌푸렸다.

“뭐가 38만 장이라는 거예요?”

“초동! 38만 장!! 기록을 갈아엎었다고!”

“……진짜로요!?”

태현우가 먼저 날듯이 이윤에게로 달려왔고.

나머지 멤버들도 멍한 표정으로 ‘38만’이라는 숫자를 중얼거렸다.

‘그게 뭔데?’

에르제만 혼자 외딴섬처럼 거실에 우두커니 서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대박 났다고.”

이윤이 힘이 탁 풀린 사람처럼 소파 위에 쓰러지며 말했다.

그리고 태현우가 신나서 소파 주위를 빙글빙글 돌다가 이내 가만히 서 있는 에르제에게로 다가왔다.

“들었어? 들었냐고!”

“듣기는 했지. 듣기만.”

에르제의 말에 태현우는 입꼬리를 씩 올렸다.

은발에다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고 있으니 꼭 늑대인간의 인간 버전 같았다.

‘늑대인간과의 관계는 최악인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태현우가 설명을 해 주기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팔린 판매량인데, 원래 기존의 최고 기록이 ‘LAK’의 데뷔 앨범 32만 장이었거든.”

“LAK?”

“어. 이채선 있는 곳. 걔네들이 데뷔했을 때보다 앨범 6만 장이 더 팔린 거라고!”

그러데이션으로 신난 감정을 표출하는 태현우의 말에 에르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팬들이 무려 일주일 동안 앨범을 38만 장이나 샀다는 의미였다.

돈으로 환산해 보니, 조금 현실감 없는 숫자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게다가 최종 예상 판매량도 아니고, 이미 일주일 동안 팔린 양이니 계속해서 오를 숫자라고 한다.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자, 윤치우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깐만, 그렇다는 건…….”

멤버들이 뭐 하나 싶어서 쳐다보자, 윤치우가 빠르게 핸드폰을 꺼내어 음원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리고 원하는 것을 발견하자,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핸드폰 화면을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뭔데, 왜!”

차분하던 민주혁이 윤치우의 옆에 붙었다가 그와 동일한 모습으로 굳어 버렸다.

그렇게 순서대로 에르제를 제외한 모두가 선 채로 굳어 있었다.

결국 관망하던 에르제도 그들이 보고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윤치우의 옆에 붙어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 ‘ToT-win’ - ‘HaLLo’ ― 3위 ]

[ ‘ToT-win’ - ‘Kill Shot’ ― 9위 ]

그들의 데뷔 앨범에 수록된 2곡 모두 10위 안에 안착해 있었다.

“미친……!! 미친!! 와!! 미쳤어여!!”

정적을 깨고 안단테가 양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허.”

민주혁도 헛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러다가 1위 하는 거 아니야!?”

설레발을 치는 태현우였으나, 그 누구도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제는 진짜로 그 말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에르제는 팔짱을 끼며 그 말에 대답했다.

“난 1위 말고 해 본 적이 없어.”

어떤 대회를 나가더라도 항상 1위를 해 온 자신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데뷔 앨범부터 1위에 오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들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39위 했을 때도 좋아하길래 좀 의아했는데.’

에르제가 그러고 있자, 민주혁이 빈정거렸다.

“월말 평가에서 맨날 꼴찌만 하던 놈이 무슨.”

한 마디만 툭 던지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모습에 에르제는 입이 댓 발 나왔다.

이번에는 진짜 목을 물어 버릴까?

그가 진지하게 그 생각을 검토하고 있는 사이, 이윤이 손뼉을 짝 하고 쳤다.

“지금 계속해서 좋은 소식이 이어지고 있으니까 이 흐름을 잘 타야 해, 애들아.”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한 이윤의 얼굴에 다들 그쪽으로 시선이 쏠렸다.

“너희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예능 일정이 드디어 픽스 됐어.”

“오오.”

멤버들은 눈빛을 빛내며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너희 분량은 2주 동안 나갈 예정인데, 1주씩 나뉘어 나갈 거야. 그때 말했던 거 기억나지? 치우, 주혁이, 현우가 1팀이고, 단테랑 은우가 2팀인 거.”

“네! 기억하고 있어요.”

윤치우가 대답하자, 이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갔다.

“촬영 날짜는 곧 나올 거고, 어……. 그 전에 팬 사인회 한 번 더 열 예정이니까 미리미리 준비해 두자.”

“알겠습니다!”

“좋아! 좋은 소식 끝!”

어느새 사악한 눈빛으로 변한 이윤이 그들을 보며 말했다.

“연습하자, 연습.”

달달한 휴식을 깨는 그의 말에 멤버들은 금세 풀이 죽었다.

* * *

며칠 뒤에 열린 두 번째 팬 사인회는 탈 없이 잘 마무리되었다.

여전히 악성 계정들이 들러붙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팬들 분위기는 훌륭했다.

아무도 토트윈의 팬 서비스에 불만을 품지 않았고, 대부분 아주 만족스러워했다.

― 추가 팬싸가 주말이라 슬펐다……. 이렇게 귀한 모습을 직캠으로밖에 못 보다니. ㅠㅠ 내 눈아, 미안해.

― 와와와와! 현우 피어싱 왼쪽 광대에도 하나 뚫은 거 실화야?

┖ 나 팬싸 응모 성공해서 직접 실물로 보고 왔는데, 진짜 개섹시 그 자체였어.

┖ 와! ㅈㄴ 부럽.

그리고 그날, 또 화제가 된 것은 이번에도 역시 에르제였다.

저번에는 국자 젓기 댄스로 코믹한 모습을 선보였는데, 이번에는 훌륭한 팬 서비스가 화제가 된 것이다.

무튜브에 올라온 것을 보았는지, 아니면 에르제의 라이브 영상에 참가했던 인원 중 하나였는지.

팬 하나가 열심히 사인을 하고 있는 에르제에게 눈 딱 감고 요청을 한 것이다.

“노, 노래해 주세요!”

그때 에르제가 불렀던 노래를 다시 불러 달라면서 말이다.

보통은 노래를 불러 달라는 요청은 하지 않기 때문에 그 팬도 자신이 잘못 말했나 싶어 주책맞은 입을 틀어막는 순간.

에르제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알겠다며 노래를 불러 준 것이다.

“무슨 일이지?” 하던 팬들과, ‘뭐야, 저 무개념 팬은.’ 하고 옆을 노려보던 팬들도 황급히 그 모습을 찍기 시작했다.

덕분에 팬 사인회가 어느 순간 작은 콘서트가 되어 버리는 바람에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지만.

이를 막으려던 진행 요원을 이윤이 막아 주었기에 작은 콘서트는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마이크도 없이 부른 노래였으나, 팬들은 그날 행복에 푹 빠져 버렸다.

― 어제로 시간 돌리고 싶다.

― 응ㅇ웅엉ㅇ엉웅, ㅠㅠ 은우야!! 진짜 왜 이렇게 사랑스러운 거야. ㅠㅠ

― 저, 달 따러 우주선 탑니다. 달빛으로는 만족이 안 된다. 달 따 와서 우리 은우 줄 거예요. 말리지 마세요.

┖ 미쳤냐고. ㅋㅋㅋㅋ

그리고 당연하게도, 팬들은 서은우의 팬 서비스가 아주 훌륭했다면서 잔뜩 치켜세워 주었다.

심지어는 타돌 팬들도 와서 부럽다고 할 정도였다.

“우리 은우는 팬 서비스도 천재야. 다 가졌어. 진짜 나만 빼고 모두 다 가진 게 확실해!”

‘서은우 만능 천재설’을 밀고 있는 대학생은 침대에 누운 채 핸드폰을 보면서 피식피식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방문 너머로 보던 ‘같은 피가 섞인 남성 생명체’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어제는 팬 사인회 못 갔다고 술 먹고 울더니, 오늘은 또 웃고 있네. 그러다 털 난다, 멍청아.”

“남이사, 내가 털북숭이가 되면 깎아 줄 것도 아니면서.”

대학생은 짜증스럽게 대꾸하고는 발을 쭉 뻗어서 방문을 쾅 하고 닫아 버렸다.

덕질에 1도 도움이 될 일 없는 오빠였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했던 것도 잠시, 한참 서은우 직캠을 찾아보던 그녀의 방문이 다시 열렸다.

“아, 왜! 좀 꺼져!”

또 시비 걸러 왔나 싶어서 짜증을 냈으나, 그는 대학생에게 자신의 핸드폰 속 코코아톡을 보여 주었다.

그곳에는 그와 그의 여자 친구가 나눈 대화가 나와 있었다.

“뭐 어쩌라고?”

연애한다고 자랑질이라도 하는 건가 싶어서 쳐다보자, 그가 턱으로 핸드폰 화면을 가리켰다.

“내 여자 친구도 그 토트윈인가 뭔가 하는 애들 팬이거든.”

“……진짜?”

예상치도 못한 메이트 이야기에 그녀가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어쩌다 그런 훌륭하신 분이 저런 인간을 만나고 있지?

그런 생각도 잠시, 그녀는 코코아톡 내용을 보고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예능!?”

그곳에는 오빠의 여자 친구가 토트윈과 관련해서 말한 내용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 우리 애들 이번에 예능 나간대!! ]

그 말과 함께 링크까지 친절하게 달아 준 것이다.

‘이번에 초동 판매량 38만 찍었다더니 회사에서 완전 밀어 주는구나……!!’

심지어 TSN의 임 PD의 예능이란다.

예능 쪽으로 유명한 방송사에다 흥행 보증수표인 임 PD의 프로그램이라면 ‘예능 출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렇게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고 있자, 그녀의 오빠가 입을 열었다.

“내 동생도 토트윈 좋아한다고 하니까 이 링크 보내 주라고 하더라.”

“엇.”

그 말에 확인을 해 보자, 3달 전에 ‘집에 밥 있냐?’라고 왔던 코코아톡이 갱신되어 있었다.

“오, 씨……. 웬일이야. 땡큐.”

그녀는 ‘오올~.’ 하는 느낌으로 엄지를 세워 주었다.

그러자 그녀의 오빠는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속삭였다.

“사실 어제 네가 사 온 아이스크림 먹은 거 나임.”

“…….”

이마에 순간 힘줄이 돋았으나, 그녀는 관대하게 용서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만큼 토트윈의 예능 소식은 중요한 것이었으니까.

“이번만 봐준다.”

또 걸리면 죽여 버려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이제 나가라고 하려던 차에 대학생은 문득 든 생각에 그녀의 오빠에게 물었다.

“야, 근데 나도 그렇고, 니 여친님도 토트윈빠인데…….”

“?”

그녀가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너도 토트윈 덕질 같이 안 할래?”

“……꺼져라.”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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