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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후에 흡혈은 안 됩니다-29화 (29/307)

제29화

29화

뜬금없는 서은우의 개인 라이브 방송이 시작되자, 팬들은 이게 웬 떡밥인가 싶어서 마구 몰려왔다.

저번에 토트윈 라이브 방송을 한 번 해 본 뒤였기에 에르제는 자연스럽게 팬들과 인사를 나누며 본론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팬 여러분.”

- 은우 오빠!

- 와, 미모 실환가. 카메라 렌즈에 저렇게 붙어 있는데도 잘생겼네…….

- 흑발 완전 잘 어울려요!!

- 근데 라이브 방송 왜 켠 거??

에르제는 일단 눈에 보이는 채팅에 대답을 해 주다가 라이브 방송을 왜 켰냐는 말에 고개를 핸드폰 너머로 슬쩍 들었다.

“음…….”

이제 막 씻고 나와서 머리를 털던 민주혁은 수건을 머리에 얹은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형, 허락도 안 맡고 켜면 어떡해여……!!”

안단테는 숨죽인 채 비명을 지르며, 살금살금 그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방송을 왜 켰냐고…….’

에르제는 소파에 앉아 있던 그대로 대답 대신 잠시 옛 생각에 빠져들었다.

이번에 에르제가 올린 SNS글은 예전에 그가 직접 한 여인을 위해 작곡과 작사를 했던 곡이다.

늘 어두운 세상에 사는 그녀를 위해서 말이다.

그녀는 앞이 보이지 않았고, 주변 세상의 시선은 그녀를 더욱 깊은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런 그녀에게 음유시인이었던 에르제의 노래는 큰 위로가 되었고, 에르제도 온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 주는 그녀를 소중한 관객으로 여겼다.

‘이 감성을 이해하지 못하다니.’

안단테의 예상과는 다르게, 에르제는 그저 팬들의 삭막한 반응이 안타까워서 괜찮지 않았을 뿐.

그렇기에 에르제는 그때 그녀에게 불러 주었던 노래를 라이브 방송에서 부르기 시작했다.

― 달빛을 병에 담아

보관할 수 있다면

에르제가 그윽하게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 어두운 그대 맘에

언제든 비춰 줄 수 있을 텐데.

에르제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팬들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그의 노래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마음이 절로 편해지고 심적으로 이완되는 음성이었다.

언제 이렇게 가까이 다가왔는지 모를 안단테는 에르제의 코앞까지 와서 얌전히 그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 그대에게

포근한 밤이 깃들기를.

에르제는 딱 SNS에 올렸던 부분만 멜로디와 함께 노래를 불렀다.

아마 시간상으로는 대략 15초 이내였을 것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자신의 글을 가지고 놀리거나 오글거린다고 한 팬들도 생각을 바꾸지 않을까.

이 글을 그냥 적은 게 아니라 자신이 불렀던 노래 중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말이다.

- 돌았다;; 지금 꿈결인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 악기 하나도 없는데, 우리 은우는 목소리가 악기야. ㅠㅠ

다행히 빠르게 올라오는 채팅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내용이었다.

“그럼 팬 여러분, 모두 좋은 밤 보내세요.”

에르제가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고는, 이내 그대로 라이브 방송을 종료해 버렸다.

곧바로 팬들은 커뮤에 몰려가서 팬 사인회 이후에 에르제가 노래를 부른 것에 대해서 의미 부여를 하기 시작했다.

물론 에르제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 이건 분명 팬 사인회에 못 온 팬들까지 배려하는 거라고 본다.

- 일단 SNS에 올린 글이나 가사가 오글거린 건 둘째 치고……. 서은우 개인적으로 팬송 불러 준 거 아님?

┖ 오, 이게 신빙성 있다. 팬들이 자기가 쓴 글 가지고 놀리니까 그거 즉석에서 멜로디 만들어서 노래로 만들어 준 것 같은데.

┖ 아~! 또 올려치기 하죠. 딱 봐도 회사에서 시킨 거구먼;; 즉석에서 멜로디를 만들기는 무슨. ㅋㅋ 천재 프레임 씌우려고 난리.

┖ 우리 애는 얼굴 천재만 하기에도 바쁨.

┖ 먹금해.

왈가왈부, 이렇다 아니, 저렇다 하는 다양한 추측 글이 올라왔지만.

결론은 서은우가 했든, 회사에서 시켰든 ‘팬송’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이 사달을 만든 장본인은 정작 아무런 생각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같은 시각.

“도대체 뭘 한 거야, 은우야…….”

왜 진작 개인 계정을 막아 놓거나 저런 짓을 할 때 허락을 받게끔 시스템을 미리 만들어 두지 못했을까.

대상 없는 원망을 하던 이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퇴근하던 길에 대표에게서 연락을 받고 소속사로 유턴하는 이윤의 핸들은 주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슬픈 소리를 내었다.

* * *

이윤은 대표실에 불려가기 전, 토트윈의 숙소에 들러서 평온하게 잠을 자려는 에르제를 데리고 나왔다.

대표가 에르제까지 같이 호출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인데요?”

“가 보면 알아.”

물어보아도, 별다른 말도 없이 그저 가 보면 안다는 말만 반복한다.

어차피 곧 알게 되겠지, 하는 생각에 흥미가 떨어진 에르제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이 SNS는 어찌나 중독이 되는지 사람들의 반응을 자꾸만 확인하게 된다.

이미 정신적으로 성숙한 자신이기에 그들의 나쁜 말에 기분이 상하는 일은 아예 없었지만.

반대로 좋은 말이 보이면, 은근히 흐뭇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왜, 예전에 무대에서 공연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지 않은가.

노래를 부르기 전에는 조용하게 정숙을 지키던 사람들에게서…….

무대가 끝나고 난 뒤에 박수와 함성 소리가 들리던 그 순간처럼 말이다.

― 츄르릅.

┖ 침 닦아요.

┖ 아, 겨땀 찬다…….

물론, 이 세계와는 방식이 조금 다른 것 같기는 하지만.

그렇게 댓글을 살펴보고 있자, 회사에 도착했는지 이윤이 차를 세우고 “내리자.”라고 말했다.

에르제는 이윤의 뒤를 따라서 대표실로 향하면서 인사를 해 오는 직원들에게 웃으며 인사했다.

전에 데뷔하기 전에는 자신에게 그다지 관심을 가져 주는 느낌이 아니었는데.

‘확실히 분위기가 바뀌기는 했네.’

최근 들어서 인터넷 속 세상과 그 바깥의 세상이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뀐 듯한 기분이었다.

‘이게 멤버들이 그토록 원하는 인지도와 인기라는 건가?’

같은 회사에 소속되어 있는 이들의 태도가 바뀐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썩 달가운 기분은 아니었다.

‘……인지도를 받으면서 스폰을 하는 것도 그래서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에르제는 이윤의 등을 보며 대표실 안으로 들어섰다.

“어, 왔냐?”

장 대표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며 의자를 빙글 돌려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윤이 꾸벅 인사를 했고, 에르제는 늘 하던 방식으로 인사를 했다.

한 손은 가슴에 올리고 반대편 손은 아래로 부드럽게 원을 그리는 인사.

장 대표는 그 모습을 보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방송에서도 그렇게 인사하더니 어디 중세 시대 사람이냐, 네가.”

그러나 에르제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답했다.

“인사는 서로간의 존중의 표시니까요. 항상 고상하고 품격이 있어야 합니다.”

“어, 그러니까. 그냥 꾸벅 허리만 숙여도 된다니까 그러네.”

에르제가 고개를 젓자, 장 대표는 되었다는 듯이 눈두덩이를 주물렀다.

“그래, 뭐. 더 예의 바르게 인사하겠다는데, 누가 그거 가지고 시비 걸지는 않겠지.”

장 대표는 뻐근한 목을 한 바퀴 돌리고는 턱을 괴며 입을 열었다.

“윤아.”

“예, 대표님.”

“너도 은우가 라이브 켠 거 봤지?”

“실시간으로 보지는 못했는데, SNS에 영상 돌아다니던 것은 봤습니다.”

그 말에 대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모니터를 그들 쪽으로 돌려 주었다.

“이거 한번 봐 봐. 은우, 너도 같이.”

두 사람이 모니터 쪽으로 다가와서 화면을 확인하자, 그곳에는 무튜브 영상 하나가 떠 있었다.

영상의 배경은 남자 하나가 아련하게 밤하늘을 보고 있는 그림이었는데.

― 달빛을 병에 담아

보관할 수 있다면―.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에르제가 라이브 방송으로 불렀던 노래였다.

“으악……!!”

이윤이 기겁을 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너 이거 저장까지 했어!?”

그걸 또 저장을 해서 다른 사람들이 영상을 따 가서 홍보를 한 모양이었다.

“네.”

에르제는 당연하다는 듯 턱을 치켜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

“라이브 방송에 오지 못한 사람들은 그러면 제 노래를 못 듣게 되잖아요?”

너무나도 팬을 아끼고 사랑해 주는 말에 이윤은 울컥했다.

“이럴 때만……!?”

이윤이 추가적으로 에르제를 타박하려 할 때, 뜬금없이 장 대표가 에르제를 대변했다.

“잘했어.”

“그래! 아주 잘했……! 네? 대표님, 방금 뭐라고…….”

분명 매니저로서 가수 관리를 못 했다고 흠씬 혼날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장 대표의 반응에 이윤은 순간 멈칫했다.

뭐지? 반어법인가? 어디서 새롭게 매니저를 갈구는 방식을 배워 오신 건가?

그렇게 이윤이 영문을 몰라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자, 장 대표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진짜로 잘했다고.”

“역시 제 마음을 알아주는 건 대표밖에 없네요.”

“대표‘님’! 이 자식아.”

“아! 대표니미.”

“……그냥 하던 대로 해라.”

장 대표가 눈을 흘겼으나, 딱히 뭐라고 하는 것 같은 눈빛은 아니었다.

그는 아직도 혼란스러운 이윤을 향해 무튜브 댓글창을 보여 주었다.

그곳에는 ‘오글거린다.’ ‘중2병이냐.’ 같은 예상되는 댓글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 뭐야, 이거…… 노래로 들으니까 왜 좋아?

― 오늘 잘 때 이거 들으면서 잘 예정…….

― 나 원래 토트윈에게 1도 관심이 없었는데, 오늘 서은우한테는 입덕 한다……. 얼굴 존잘까지는 인정하고 있었는데, 목소리까지 존잘이네. ㅠㅠ

― 30대 남자인데, 옛날 하이월드 느낌 나고 좋네요.

┖ ㅇㅈ 음원으로 안 나오나?

― 예전에는 참 이런 감성적이고 시적인 가사가 많았는데…….

가사는 오글거리는 게 맞는데, 오히려 그것이 옛날 감성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헐.”

이윤은 평소에 잘 사용하지도 않는 직설적인 반응을 보였다.

장 대표가 그런 이윤을 보며 쿡쿡 웃었다.

“나도 처음에 너랑 똑같았다, 윤아.”

그러더니 다시 모니터를 자신 쪽으로 돌렸다.

“그런데 이게 참 이상하게 말이지. 자꾸 듣게 되더라. 뭐랄까……. 추억을 간질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다른 사람들도 같은 반응을 보이는지 1시간 만에 영상 조회수가 무려 3.7만 회를 넘어서고 있었다.

토트윈 팬들이 평소 스트리밍을 돌리는 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였다.

한 팬이 에르제가 부른 멜로디에 맞춰서 인트로와 아웃트로를 붙였다고는 해도…… 고작 30초밖에 되지 않는 노래가 말이다.

어느덧 진지한 사업가의 눈으로 돌아온 장 대표가 에르제를 보며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이거 진짜 노래로 내면 어떨 것 같냐?”

“……진짜 노래로 낸다고요?”

이윤이 되물었지만, 장 대표의 눈은 에르제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이거 1절, 2절이랑 뒤에 하이라이트 부분까지 다 작사, 작곡 할 수 있겠어? 작곡은 그냥 멜로디만 짜면 돼. 편곡 쪽은…… 어, 단테가 계속 공부하고 있으니까 아예 단테한테 맡겨 버리고.”

장 대표가 의자를 뒤로 젖히며 씩 웃었다.

“디지털 싱글로 낼 생각은 아니고, 컴백 앨범에 실어서 정규로 낼 생각이야. ‘토트윈이 만든 곡’이라고 해서 말이야.”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던 이윤이 어느새 정신을 차렸는지 침을 꿀꺽 삼켰다.

“대표님, 그 말씀은…… 이번에 이 해프닝을, 아예 떡밥이었던 것처럼 하시겠다는 말씀……인 거죠?”

“어.”

장 대표가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 팬들의 반응을 보면, 그냥 서은우가 팬송 형식으로 불렀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던데……. 아예 ‘컴백 떡밥이었다!’라는 걸로 만들어 보려고.”

이윤이 장 대표를 새삼 놀랍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어떻게 보면, 서은우가 사고를 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인데, 이걸 또 새로운 발판으로 만들어 내는 그의 발상에 놀란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한 마지막 산이 남아 있었다.

이윤도, 장대표도 모두 에르제의 입을 쳐다보았다.

“할 수 있겠어?”

장 대표가 다시 한번 물었고, 에르제는 곧장 답변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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